표지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266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8.28 18:57
조회
254
추천
2
글자
9쪽

77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불러요.

DUMMY

“잘 가, 연습 많이 해오고.”

“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분홍은 수업 시간이 끝나도 레슨생을 잡아놓고 장황한 잔소리와 격려의 말을 늘어놓곤 했다. 오늘 현아도 분홍의 격려사를 들어야 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다음 주에 다시 찾아올 때 그들은 지난 주와는 전혀 다른 기운을 몰고 방으로 들어오곤 한다. 그들의 삶에서 한 주 동안 일어나는 일들은 그들을 울고 웃게 만들 만큼 종종 다이내믹했다. 노래로 인한 의욕 상승, 또는 좌절, 연애 문제, 가족 문제, 학교나 아르바이트 문제 등으로 롤러 코스터를 탄 뒤 탈진한 듯한 얼굴로 레슨실에 들어온 학생들과 마주하는 것은 분홍의 일상이었다.


분홍이 수업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학생들은 레슨이 끝나면 노래에 대한 의욕에 불타서 한 주 동안 자신의 노래로 온 세상을 덮어버릴 듯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가는 반면에, 한 주 뒤 레슨에 나타날 때는 연습을 안 한 탓에 대역죄인이 되어 쥐구멍에라도 몸을 숨기고 싶은 것처럼 입장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 주일 사이로 보이는 간극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레슨생들에게서 발견되었다.


분홍은 학생의 열정이 언제나 최고조는 아니어도 늘 일정 수준 이상이길 바랬고, 그러다보니, 레슨 후에 학생을 보내기 전에 노래를 어떻게 연습해야 되는지, 어떻게 가수나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열정을 유지시켜야 되는지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곤 했다.


“노래라는 게 원래 누구한테나 힘든 거야.”

“저도 노래 때문에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났는데요, 그래도 계속 하니깐 조금의 인정을 받았을 뿐이예요. 미숙 씨도 힘내세요.”

“진짜 열심히 해라.”

“너 진짜 잘 하고 있어. 쌤 정말 감동이야.” 등의 메시지를 학생에게 전달하게 된다.


오늘도 결코 짧지 않은 잔소리와 격려를 들은 현아가 가고나서, 분홍은 레슨실에 혼자 남았다. 현아는 갔지만 현아의 느낌이 방에 여전히 남아 있다. 분홍은 방을 떠나지 못한다. 현아의 오래전 레슨일지를 찾아 읽어본다. 날짜별로 레슨일지를 적던 분홍은, 그렇게 하니 한 학생의 예전 기록을 볼 수가 없어 불편했다. 가급적 한 학생 당 한 권의 노트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현아의 작년 기록들을 쉽게 펼쳐 볼 수가 있었다.


‘스스로 고음 불가라고 칭함’이라고 자신이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분홍은 혼자서 빙긋 웃었다.


“저는... 진짜 고음불가예요. 그래도 가도 돼요?”


현아와 처음 전화 통화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 현아가 조금만 음이 높아지면 얼굴이 빨개지고 목에 핏대가 서면서 시선을 당황한 듯 옆으로 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아가 분홍과 레슨을 한지 약 11개월, 곧 일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현아는 음역대를 넓혔고, 무엇보다도 고음이 나올 때 긴장하지 않고 가볍게 넘기기 시작했다.


“현아 너한테 중요했던 건 어쩌면 음역대 자체보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 실수해도 된다는, 아니면, 너의 소리가 정말 좋은 소리라는 믿음 같은 거 말이야. 전형적으로 여성스럽지 않아도, 그냥 너다우면 된다는.”


현아는 고개를 끄덕끄덕했었다.


분홍은 레슨생들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하라,고 말하곤 했다.


“하고 싶을 때만 노래하면 프로가 아니야. 너, 프로 되고 싶어서 배우는 거 맞지? 부르고 싶을 때만 부르는 건 누구나 다 할 거야. 노래방 가잖아, 사람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도 매일 노래하면 진정한 가수가 아니겠니?”


그런 말을 듣는 학생들은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듯 눈동자가 진해지면서 반짝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를 반성하는 듯 비통한 참회의 표정이 되곤 했다.


분홍은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노래에 인생을 건 나는...?’


분홍은 노래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 자신의 미래, 자신의 생계, 그리고 부모님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까지. 그녀에게 중요한 과제 역시 학생들에게 하는 주문처럼 ‘노래하고 싶은 기분이 아닌 날에도 노래하는 것’이다.


그 과제는 두 가지 의미에서 그녀에게 중요했다. 첫 번째는 연습량을 채우고 진도를 나간다는 의미였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닌 날’도 연습실에 진득하게 머물면서 노래를 하다보면 어느새 노래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로 바뀌었기에 자신에게 삶을 만들어가는 힘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래에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필을 받아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하다 보면 필을 받는거야.’


그녀는 아무리 힘들거나 피곤한 날에도 노래를 시작하면 하나의 세상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차원 이동을 하는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완전히 다른 그 세상은, 더 밝고 더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며, 조금더 행복한 시공간이었다. 무엇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다. 같은 과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자신의 신비주의자스 같은 면모를 들키고 싶지 않았고, 또 그런 말을 한다는 게 가진 실력은 미천한 데 비해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필을 받으면 분홍의 노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연이 엄마가 밤 열 시쯤에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하면 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분홍이 캐시 뮤직의 사장이 아니었으며 관리 책임자였던 연이 엄마의 처분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려있었다.) 그러나 이제 캐시 뮤직의 어엿한 사장인 분홍은 장사를 마치고나서 늦은 밤에도 필을 받으면 노래를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한 노래를 집요하게 반복하여 연습했고, 어떤 날은 여러 곡의 노래를 혼자만의 콘서트를 하듯, 수십 곡에 걸쳐 불렀다. 밤이라는 시간은 분홍이 믿는 마법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밤에 개인 연습을 하다보면, 결국은 모든 레파토리가 끄집어져 나와, 중학교 때 불렀던 가요와 팝송까지도 모두 몸에서 흘러나왔고, 심지어 전공도 아닌 가곡과 오페라, 뮤지컬곡까지 분홍의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새벽 2시나 3시가 되어도 아직 초저녁인 듯 피곤하지 않았고, 다음 날을 걱정하다가도 캐시 뮤직의 조그만 포인트 조명 아래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질 때 그 맛에 취해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럴 때에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피할 수 없었다. 분홍은 ‘무대가 필요해.’라고 되뇌였다.


분홍은 무대를 떠올릴 때마다 가수의 뒷모습과 자신과는 멀찍이 떨어진 조명들이 눈 앞에 보였다. 처음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한 무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홍이 무대 한 가운데 서고, 화려한 조명이 그녀에게 집중되며, 모든 관객들이 분홍의 노랫소리와 호흡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전율하는 그런 것이었다. 코러스 가수이기에 다른 코러스와 볼륨을 똑같이 맞추고 화음을 맞춰야 한다. 가수보다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크게 불렀다가는 코러스가 (코러스 주제에) 누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느냐, 는 타박과 눈총을 받게 된다.


분홍에게만 있는 목소리, 아직은 다 완성시키진 못했지만 고유한 분홍의 음색, 분홍의 감성, 분홍의 끼, 그런 것을 세상에 아낌없이 보여줄 무대가 필요했다.


연습실에서만큼은 무대 한 가운데 있다는 상상 속에서 노래를 하면서 밤을 새웠고, 날이 밝을 때쯤 기분좋으면서도 약간은 노곤한 상태가 되며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무서워서 밤새 켜놨던 입구와 복도 등을 끈 뒤 악보 파일을 들고 계단을 터덜터덜 올라가 공용 화장실에서 씻고 작은 고시원 침대에 누우면, 일찍 일어난 고시원생이 식판을 달그닥거리며 밥을 먹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달그락달그락 찌익찌익- 하는 음식을 주제로 한 금속성 피날레 곡을 들으며 눈을 감곤 했다.


혼자만의 콘서트를 마치고 잠에 빠질 때, 어떤 누구는 분홍과 바통 터치를 하듯,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새벽잠을 자르고 일어나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았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분홍이_밤.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8 [최종 화] 88화. 당신과 바다가 나를 도와준다면. +2 17.12.09 261 3 12쪽
87 87화. 떠나야 할 때. 17.12.08 214 3 13쪽
86 86화. 원 퍼슨 원 푸드 One person one food. 17.11.28 215 3 8쪽
85 85화. 아흐메드 씨의 방문. 17.11.27 211 3 9쪽
84 84화. 행복한 캐시 뮤직. 17.10.22 206 3 10쪽
83 83화. 꼬물 냉장고와 고시원 창고. 17.09.19 210 2 8쪽
82 82화. 삶이 되어 버리다. 17.09.14 211 3 9쪽
81 81화. 버튼을 눌러라. 17.09.05 261 3 10쪽
80 80화. 영토를 잃다. 17.09.04 220 3 9쪽
79 79화. 아버지라는 이름의 복지국가. 17.09.03 211 3 6쪽
78 78화. 연두식, 그가 강했을 때. 17.08.31 301 3 9쪽
» 77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불러요. 17.08.28 255 2 9쪽
76 76화. 방 안에 갇히다. 17.08.26 222 3 7쪽
75 75화. 스판 바지와 검은색 소파. 17.08.24 278 2 7쪽
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40 2 11쪽
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3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8 4 12쪽
71 71화. 그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17.08.13 232 5 11쪽
70 70화. 너의 입맞춤은 황홀하였네. 17.08.12 285 2 11쪽
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9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5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700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6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7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5 3 15쪽
59 59화. 키큰 유덕화. 17.01.25 572 3 1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홍차임'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