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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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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19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8.3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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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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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78화. 연두식, 그가 강했을 때.

DUMMY

타인의 힘과 후광을 끌어다 쓰고 싶은 마음.


분홍은 살면서 아버지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길 늘 바랬었다. 아버지의 힘이, 아버지의 재력이 분홍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어주길 바란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연두식은 별 일 아닌데 화를 버럭 내곤 하여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불편해 하면서도, 아버지의 사업적인 성공이나 화려한 인맥에 대해서는 속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분홍은 부모님 집 안방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성적표를 열어보고 황당해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엄마가 차려준 밥으로 간만에 포식을 하고 티비 앞에 벌러덩 누워있던 분홍에게 주방에 있던 엄마는 “분홍아. 엄마가 네 성적표 모아놓은 거 알지? 그거 니네 집으로 가져가라.”라고 방 안까지 들릴 만큼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성적표? 왜? 나 필요 없어.”

“필요가 없긴. 다 추억인데. 너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써준 말들도 얼마나 기념 되고 좋니?”


그렇게 해서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안방 장롱 아랫서랍에 들어있던 누런색 서류봉투를 꺼내었다. 이제는 종이 가장 자리가 누래진 초등학교 때부터의 성적표들이 봉투에서 나왔다.



"내가 노래하는 게 싫을 만도 해."


분홍은 딸들의 학교 성적에 관심이 많고 선생님들이 써준 생활 평가의 말 한두 줄까지도 소중히 간직하는 엄마의 성격을 생각하면서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성적표들을 넘겨 보던 분홍은 억지로라도 한 마디쯤 써줄 수 있는 좋은 말을 하나도 써주지 않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두껍고 넓은 얼굴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성적표를 다시 서랍에 넣어놓는데 서랍 바닥에 오래된 앨범이 하나 보였다. 열어보니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이 꽂혀 있었다. 사진첩을 넘기던 분홍은 한때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남주일과 함께 와인잔을 부딪히며 웃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앨범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분홍은 주방으로 나와 앨범을 엄마에게 보이며 물었었다.


“엄마, 아빠랑 남주일이랑 친구야?”

“몰랐어? 말 안 했나...? 우리 집에도 몇 번 왔었어. 우리 주화동 아파트에 살 때.”


엄마는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에다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답했다.


“진짜? 우리 집에도?”

“응.”

“분홍이 과일 먹을래? 사과 줄까, 오렌지 줄까?”


사진 속 아버지는 고급스러운 호텔의 파티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진들을 보던 분홍의 머리에는 ‘화류계’라는 말이 난데없이 떠오르기도 했다.


분홍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아버지의 까만 승용차가 호텔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영국 근위병 같이 옷을 입은 직원이 아버지 승용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뒷자석에 아버지와 앉아 있던 분홍은 아버지를 따라 총총총 내렸고, 영국 근위병은 차문을 닫아주었다.


그런 풍족한 기억은 중학생 때 이후로는 사라져버렸다. 어느 정도의 흥망이 있던 아버지의 사업이 그때쯤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했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나이가 열 살이 많은 분홍의 언니 초록은 분홍보다는 조금더 많은 풍요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제일 비싼 과일만 먹었었지.”

“여행 가면 호텔에서만 잤잖아. 하룻밤에 최소 사오십만원.”

“내가 손이 큰 건 아빠 때문이야. 아빠가 용돈은 진짜 많이 주셨잖아. 어쩌면 너네 형부랑 내가 자주 싸우는 것도 돈 문제가 제일 클 거야. 아빠에 비하면 다른 남자는 너무 짜.”


분홍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일뿐인 ‘돈 많고 힘센 아버지’의 기억이 언니 초록에게는 여전히 결혼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큰 변수였다.


잔상과도 같았다.


분홍은 지금은 요양병원의 침상에서만 지내는 아버지에게서 아주 조금이라도 돈 많고 힘센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아빠, 우리 아파트 되게 컸지? 나 기억나.”

“......”

“고제훈 시장이랑 아빠 친했잖아. 그치? 아빠랑 젊었을 때부터 친구였다며?”


분홍은 여전히 저명한 정치인들이나 재력가들의 이름을 아버지 앞에서 꺼내어 본다. 그러나 자존심 센 아버지는 돈 있고 힘 있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분홍의 말을 전혀 받아주지 않는다.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에서는 노인 환자들의 화려했던 과거가 보호자들의 입을 통해 병실 안에 둥둥 떠다닌다.


“조은식 대통령하고 박한중 대통령이 둘다 우리 집에 찾아왔었어. 이 양반이 아주 돈을 잘 벌었지, 사업을 잘 했어.”

“정치인이셨나 봐요.”


분홍은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자 물티슈 한 장을 뽑아 침대 테이블을 닦다가 다른 환자의 부인이 말을 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이야기는 길어지게 마련이다. 세련된 커트 머리에 연한 파란색의 원피스를 입은 환자의 아내는 말을 이어간다.


“아니야.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 정치는 절대로 안 했어. 돈만 대준 거지. 산악회 같은 거 하면서 표도 많이 모아 주고.”

“아, 네.”


분홍은 ‘나도 그런 세계를 조금 알아요.’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끄덕인다.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네요.”


지금은 오양병원의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환자들의 잘 나가던 시절의 모습은 화끈하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다.


“아휴. 나 고생 안 시킬려고 설거지랑 빨래랑 혼자 다 하던 양반이 이렇게 누워있어...”


분홍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첫 해에 들어가셨던 요양병원에는 매일 남편을 찾아오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었다. 파마를 한 단발 머리가 부스스했던 그 아주머니는 언제나 단색의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반신 마비가 온 남편의 팔과 다리를 살살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환자의 그 시절, 그 때를 분홍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고는 ‘지나간 시절에 빠져 있으면 안 되지. 현실은 이거야.’라는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시 남편의 다리를 주물렀다.


분홍은 병원에 계신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간호사나 의료진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일흔두 살의 연두식은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염색을 하지 않아 완전한 백발이 되었다. 살까지 많이 빠져서 어떤 때는 팔십 세의 할아버지보다도 더 늙어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혈압계의 숫자를 확인한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혈압을 다시 재겠다고 하거나, 혈액 검사 시 주사 바늘이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아 다시 꼽거나 하면, 거의 어김없이 소리를 질렀다.


“아야! 이것들이 왜 그러는 거야!”


분홍이 아버지를 보기 위해 병원에 도착하면 병실의 간병인이나 병동의 간호사는 뚱한 얼굴일 때가 많았다. 분홍이 말을 시키면 그때 그들의 입이 열렸다.


“할아버지가 오늘도 화를 냈어요.”

“아, 네...”

“어제는 간호사한테 욕도 했어요. 하이고, 우리 할아버지가 왜 그러실까.”


서른 살이 된 분홍의 머릿속에서 돈 많고 힘 있던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지 않게끔 깨끗이 지우고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풍족한 시절을 분홍보다는 더 오래 겪은 언니 초록은 그 잔상 지우기를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새로운 캐릭터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워낙에도 버럭 화를 자주 내는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큰 수술을 몇 차례 치르고 나서 정신과적 문제까지 얻었고, 그것은 칠십대 노인이 우려해야 할 바로 그것, 치매로 이어지고 있었다.


분홍은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힘없고 약한 노인’으로 지내주길 바랬다. 그것이 사람 손이 모자란 요양병원에서 아버지가 한 번이라도 더 서비스를 받고 관심과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의 호방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등의 크고 거창한 농담을 던지다가, 어떤 날은 간호사들의 작은 실수나 정상적인 처치 행위에도 화를 내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의료진에게 함부로 하여 병원 기록에 아래와 같은 흔적을 남겼다.


[ 환자가 약을 거부하고 욕을 하였음. ]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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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연두식, 그가 강했을 때. 17.08.31 298 3 9쪽
77 77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불러요. 17.08.28 254 2 9쪽
76 76화. 방 안에 갇히다. 17.08.26 221 3 7쪽
75 75화. 스판 바지와 검은색 소파. 17.08.24 277 2 7쪽
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39 2 11쪽
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2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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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8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5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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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5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5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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