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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243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9.04 18:57
조회
219
추천
3
글자
9쪽

80화. 영토를 잃다.

DUMMY

분홍은 명남동 거리가 내려다보여 좋아했던 자신의 고시원 방을 멀리하게 되었다.


한 끼에 2천원이었던 연이 엄마의 밥을 감사해하며 먹던 때는 식당층인 6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었다. 또, 처음 6층 방으로 들어왔을 때는 매달 내던 원룸 월세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뿐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연이 엄마에 대한 시뻘겋고 시퍼런 감정들 때문에 분홍은 더 이상 그 밥이 좋지가 않았다. (한편 송은 처음부터 고시원 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분홍이 같이 먹자고 조르지 않았다면 거의 먹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연이 엄마의 분홍 커플에 대한 태도 변화와 방 문제에 대한 불문명한 입장으로, 분홍과 송이 둘 다 자신의 방을 쓰는 것이 이 검은색 건물 안에서 합법인지 불법인지 알 수조차 없어 불안했다.


“송, 나 6층에 가기 싫어.”

“그래요. 그런 것 같았어요. 그럼 1층 방에서 나랑 같이 지내요.”

“뭐? 그럼 나랑 동거를 하자는 거야?”

“뭐, 지금도 동거지."

"어떻게 이게 동거예요? 나는 6층에서 자고 자기는 1층에서 자잖아."


분홍은 송에게 큰 일 날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하하하."


송은 다소 무안해하는 듯 했으나 이내 느끼하게 웃었다.


"그래요, 동거 아니예요. 동거라기보다는 캐시뮤직 장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업무적 이유로 합숙을 하자는 거지요.”

"그럼요!"


분홍은 갑자기 속이 탄듯 종이컵을 하나 꺼내서 정수기 물을 떠다가 검은색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한 모금 꿀떡 마셨다.


“우리가 무슨 국가대표 선수야? 합숙을 하게...”

“헤헤.”


송은 분홍이 같은 방에 산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듯 싱글벙글이다.


“너 좀 좋아하는 얼굴이다? 은근슬쩍 나랑 공식적으로 한 방을 쓰겠다는 속셈인 것 같은데?”


분홍은 마음에 들지 않아 찌푸린다.


“방이 너무 좁아서 그래요?”

“그것도 그렇지만, 생각해 봐요. 연이 엄마 말 많은 거 알죠? 자기랑 나랑 한 방을 쓴다는 걸 알게되면 얼마나 떠들겠냐구요. 나는 연이 엄마가 남 이야기 하는 거 많이 들었잖아요. 그 아줌마가 씹으면 그 누구든 가루가 돼요, 가루가. 나도 가루 될 거예요. 그게 제일 무서워요.”

“흠...”


송은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답했다.


“자기가 그게 싫다면... 나는 여기에서 잘게요. 자기가 1층 방을 써요! 나는 짐도 거의 없으니깐 자기 옷이나 책 같은 것은 다 가지고 와도 돼요.”

“네...? 여기서 어떻게 자요.”

“침대 있잖아요.”


송은 프론트 데스크에 기대어 서서는 검은색 소파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에이, 안 돼요. 여기 이불도 없잖아요. 이제 바로 초가을인데, 여름이라고 해도 지하는 지하라 냉할 거예요. 그리고 새벽 되면 엄청 추울 거예요. 여긴 한 번도 햇볕이 든 적이 없는 모태 지하잖아요.”

“모태 지하? 하하하.”


송은 그저 즐거운 듯 보였다.


송의 마음은 확실했다. 그날 저녁 분홍과 컵밥으로 식사를 떼운 뒤, “가게 혼자 볼 수 있죠?”라고 분홍에게 말하더니 6층 방 열쇠를 달라고 해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자주 입는 옷들을 자신의 방으로 옮겨놓았다.


“내가 우선 자기가 자주 입는 것 같은 옷은 깨끗한 박스 하나에 담아서 옮겼는데, 속옷 같은 건 내가 모르니깐 자기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옮겨요. 책은 무거우니깐 골라만 놔요. 내가 내일 바로 내려줄게요.”


‘송은 정말 빠르구나.’


분홍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그 날로 거주 공간을 쓱싹,하고 바꿔버리는 송을 보고 분홍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냥 6층이 싫다는 거지, 이렇게 방을 그날로 바꿔버릴 필요가 있나? 송한테는 무슨 말을 못 한다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 정말 추진력 하나는 짱이야. 이 남자랑 결혼하면 인생이 지진부진할 일은 없겠다.’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부터 분홍은 송의 방을 제 방처럼 드나들었다. 바로 화장실 때문이었다. 분홍은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볼일을 쉽게 보지 못했다. ‘그것’이 곧 나오려고 할 때도 문 밖에서 “아, 오늘 연습 좆나 안 되지 않냐?” 하는 무서운 고등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거든 ‘그것’이 원 위치로 돌아가곤 했다.


고시원 생활도 어쩔 수 없는 단체 생활이었다. 빨랫감들을 껴안고 나가서 공용 세탁기에 돌려야 한다든가, 그렇게 빤 젖은 옷들을 사람들이 다 보는 복도에 널어야 한다든가, (분홍의 경우엔 식당층에 살아서 식당에 옷을 널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을 때 얼굴은 낯이 익어 알지만 서로 말을 걸지 않는 사이끼리 옆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식판 밥을 먹거나 하는 류의 어색함이 늘 존재했다.


사적인 시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홍에게 고시원은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것을 잘 아는 송은 분홍이 자신의 방을 무례하게도 ‘개인 화장실’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고, 적극 찬성했다.


분홍도 처음엔 남자 친구의 방을 화장실로 이용하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큰 것’이 나오려고 하면 당연한 듯 송의 방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분홍이 수업 자료를 찾으러 6층 방에 올라갔을 때, 연이 엄마는 분홍의 소리를 들었는지 자신의 방에서 벌컥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이 ‘벌컥’ 나온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딴 데를 쳐다보는 표정을 두 번 짓더니 말했다.


“인제 요 방은 안 써도 되지? 뭐, 여기서 안 자는 것 같드만.”


분홍은 연이 엄마의 말을 듣고 이 검은색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싫어지는 기분이었다. 달라는 돈은 점점 늘어났다. 계약서를 써도 소용 없었다. 계약서를 쓴 뒤에도 내야 할 돈이 몇 가지 생겨났다. 그리고 분홍이 일하는 대신 사용하기로 한 것들, 방이나, 연습실, 등은 자꾸 유료로 변경되거나 오늘처럼 박탈되었다.


분홍은 ‘이모가 저랑 시경 씨랑 방 하나씩 쓰라고 해서 이모님한테 열쇠 받고 들어온 거 아니예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분홍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연이 엄마가 무서웠다.


“며칠까지 비우면 돼요? 저도 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분홍이 순순히 방을 빼기로 한 것은, 검은색 건물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어떤 것도 분홍의 것 같지가 않았기에 가능했을런지도 모른다.


연이 엄마는 분홍이 순순히 말하자, 다소 당황한듯했다.


“뭐, 다음 주. 그래, 다음 주까지면 충분허지 않나?”라고 말했다.


“네. 다음 주 화요일까지 뺄게요.”


분홍은 이사를 서둘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분홍은 원룸을 정리하고 이곳 플라자 고시텔로 들어올 때도 천천히 원룸에서의 살림을 정리했었다. 그 집의 주인집 할아버지는 월세까지 계속 내어가면서 짐을 정리하는 분홍을 보고 ‘특이헌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방을 정리해야 하는 마당에 시간을 많이 끄는 것 역시도 연이 엄마 앞에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요. 당신이 시끄럽게 말하는 소리 다 들리는 이 방이 싫어요. 내가 서럽게 울었을 때 밖에서 큰 소리로 웃었던 당신 때문에 이 방이 싫었어요. 당신과 뽀글머리 할머니가 고시원 이야기할 때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이 방, 나한테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홍과 송의 영토는 줄어들고 있었다. 고시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방도 하나는 비우게 되었다. 이제는 1층 송의 방과 지하 캐시 뮤직이 그들 공간의 전부였다. 검은색 건물에서 연이 엄마의 노동을 덜어주면서, 그만큼 혜택도 누리면서, 서로 간에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신의와 믿음을 기반으로 생활한다,는 유토피아적인 원래의 이상은 이렇게 부서지고 있었다.


분홍의 마음 속에는 이제까지 연이 엄마를 통해서 들었거나 직접 목격하기도 한 이 검은색 건물을 스쳐간 수많은 인물들의 마음을 진실로 알 것 같다는 모종의 동지애가 들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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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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