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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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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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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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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81화. 버튼을 눌러라.

DUMMY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


지하 캐시 뮤직에서 손님에게 마이크를 추가로 가져다주고 방에서 나오던 분홍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다.


‘또 시작이네...’


그녀가 검은색 건물과 인연을 맺은 뒤로 소방벨이 울리는 것은 월례행사 정도가 되었다. 벨소리는 권투 선수들이 듣는 종소리처럼 강력했으면 귀뚜라미 소리보다 빨리 울리면서 굴러갔다. 분홍은 그런 경고음을 들을 때 ‘이러다가 정말 나뿐만 아니라, 고시원 건물 사람들 다 큰 일 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에이, 설마. 뭔 일 있으려고...’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이 엄마는 황윤희의 오빠인 황 사장이 저 벨이 울렸을 때 ‘멍청하게’ 소방서에 신고 전화를 했다면서 맹 비난을 했던 바가 있다. 처음는 그 일이 왜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찬찬히 들어보니, 저 벨은 진짜 화재가 나서가 아니며, '전기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방에서 담배를 피는 무뢰배 때문에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소방서에 신고 전화를 하는 것은 멍청하다는 것이다.


분홍은 다소의 책임감을 느꼈다.


화재가 발생하면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겠지만,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오는 책임감이었다. 그녀는 지하에서 연습실 장사를 하는 어엿한 사장님이고, 고시원 입주자이기도 한, 그리고, 한 때나마 이 검은색 건물 사람들과 상부상조하고자 했던 마음도 한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내 계단을 타고 뛰어올라갔다.


때마침 송이 퇴근을 하여 검은색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송도 벨 소리를 들었는지 조금은 긴장한 얼굴이다.


“어떡하지, 송?”

“괜찮을 거예요. 이거 하루이틀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이모님한테 전화를 좀 해봐요.”

“응.”


분홍은 연이 엄마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응, 글쎄. 어떤 년이 무슨 소리냐고 전화를 했던데... 그게... 괜찮은 거야. 그러니깐 어떤 빌어먹을 것들이 방 안에서 담배를 피는 거야. 안 그래도 어젯밤에 3층에 있넌 애가 친구들을 몽땅 데리꾸 온 것 같던데. 그것들이야. 고시원에 몰려와서 뭔 쓸모있는 일덜을 하겠어?"

"네... 근데,"

"지난 번에 소방소 사람덜이 왔을 때도 괜찮다고 했대도? 그나저나 이 건물은 화재 대피 비상구가 읎어. 그것 때문에 사모님도 늘 신경을 쓴다고.”

“네... 그럼 이 벨소리는 어떻게 해요?”


시끄러운 소리에 분홍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 위에 멈춤, 인가? 뭐 하나 똥그래미가 하나 있을 거야. 그걸 눌러. 저번에 안 가르쳐줬어?”


통화를 마친 분홍은 한숨을 쉬고 난 뒤 연이 엄마가 알려준 버튼을 누른다. 진짜로 벨 소리가 멈춘다.


“송, 됐나보다. 근데 고시원 사람들 다 적응 됐나봐. 어떻게 한 명도 안 나와보네...”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있어서 그런가 보지.”


송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분홍, 내려가 있어요. 나 금방 옷만 좀 갈아입을게요. 얼마나 바빴는지 초가을에 땀을 한 바가지 흘렸어요. 박 사장은 괜히 나를 데리고 다니려고 해요. 가보면 별 것도 아닌데... 암튼 우리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요.”라고 조금 지친 듯하지만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네.”


송은 1층 방으로 들어가고 분홍은 다시 지하 캐시 뮤직으로 내려가려는데, 그때 다시 “따르르르르르릉”하고 경망스러운 벨소리가 울린다.


분홍은 다시 올라가 다시 멈춤 버튼을 누른다. 소리는 몇 초 멈추더니,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 말고 그 누구라도 이 위급 상황에 동조해 주길 바라면서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고시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보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마침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방에서 나온다. 분홍은 애걸하는 눈빛으로 그의 눈을 바라본다.


‘이 상황이 당신도 불안하죠? 그냥 넘어가면 위험한 거 아닐까요?’라고 눈빛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장에서 자신의 신발을 찾아서 신고 성큼성큼 나간다.


분홍은 책임감과 두려움 속에 갇혀 소화벨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였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익숙한 템포의 발소리가 들린다. 연이 엄마는 계단을 밟는 느낌이 아니라 계단에 다리가 한 쪽씩 떨어져 부딛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내려오곤 했다. 연이 엄마의 얼굴은 겁을 먹은 낙타 같은 표정이었다. 계절보다는 한 발짝 빠른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조끼를 걸쳐입고 있다. 분홍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말해 놓았는데도 멈추지 않고 울리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거 버튼을 누르라니깐, 안 눌렀어?”

“눌렀죠. 그래도 울리는데요.”


분홍은 괜시리 자신을 나무라듯 말하는 연이 엄마 때문에 짜증이 솟구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게 연이 엄마 잘못은 아니야. 이런 건 사장이 해결해야지. 매 번 이렇게 버튼 누르면서 넘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이러다가 진짜 불나면 어쩌려고...’하며 연이 엄마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짜증을 누른다.


‘별일 없을 거야.... 아니야! 이게 바로 안전 불감증 아니야?’


분홍은 왔다갔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하로 내려간다. 연이 엄마가 실력이 되든 안 되든, 어찌되었건 이 건물의 책임자는 연이 엄마야, 라고 생각하면서.


벨소리가 멈추고 나서 분홍은 장사를 하는 자신과 박 사장 사무실로 출근하는 송 사이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재 벨이 울릴 때는 멈춤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부실한 매뉴얼로 6층이나 되고 방이 쉬흔 세 개나 되는 고시원을 운영하는 황윤희에 대해서 성토하고 싶기도 하다.


“송, 우리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갈까요, 밖에서?”


분홍과 함께 볶음밥을 먹고 중국집에서 나오던 송은 늘 캐시 뮤직에 붙어있으려고만 하는 분홍이 밖에서의 커피 타임을 제안하자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손님들 때문에 자기 마음 불편한 거 아니예요? 그럼 그냥 들어가도 돼요. 나는 괜찮아요.”라며 부홍의 마음이 바뀔지 살피기도 한다.


분홍은 송이 철이 다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니예요. 우리 거기 가요. 엔젤 타운요.”라고 말했다.


분홍은 송과 한 건물에서 살고 함께 장사를 하게 된 뒤, 과연 두 사람이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더 가까워진 것인지 생각해 보곤 한다.


그녀는 검은색 건물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서 송의 진심을 의심한 적도 있었고 그를 여러 차례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인 문제들을 떠나서도, 장사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에 대한,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연인에 대한 케어는 최소화 한 채, 모든 신경을 손님들과 가게에 쏟아야만 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연인한테는 신경질만 내지 않아도 잘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주 앉아야 해. 단 한 시간이라도.’


같은 밤 거리이지만 <엔젤 타운>에서 내려다 보면 명남동의 밤은 달라 보였다. 거대한 멍키 스패너와 톱을 벽에 장식품으로 걸어놓은 인테리어는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도 대기업 프랜차이점이 주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한 건물에 살고 있지만, 더욱 마주할 시간이 없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그녀는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예전보다 어두워보이기도 하고, 지쳐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낯설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했다.


“송, 우리 여기 와서 진짜 고생 많이 한다, 그지?”

“뭐, 그렇죠. 우리 나이가 원래 고생하는 나이예요. 내 친구들도 다 그래요. 아니면 애 키우느라 고생하거나요.”


두 사람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동시에 창문 밖을 내다본다.


퇴근을 한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삼국대 학생으로 보이는 이십대들이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다. 학생들은 9월 초인 지금 개강 파티라도 했는지, 큰 소리로 구호 같은 것을 외치면서 춤을 추며 발을 구른다.


분홍은 그들의 삶을 보면서, 노래로 인생의 승부를 내겠다는, 노래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자신의 삶을 응시한다. 그런 그녀는 고무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어서 오세요.”, “또 오세요”라고 말하면서 십 분에 한 번씩 이번 달 월세 걱정을 하고 있다.


‘나는 얼마나 뒤쳐지고 있는가.’ 혹은 ‘나는 지금 진정으로 앞서가고 있는 걸까?’하며 상념에 잠긴다.


송은 시원한 까페 라떼를 마시고는 기분이 조금 정돈이 된 듯, “분홍. 걱정 말아요. 손님이 앞으로 엄청 많아질 거예요. 연이 엄마나 황윤희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기한테 함부러 하면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예요. 내가 뒤로 빠져있는 것 같다고 서운해 말아요. 내가 껴들어서 정리해 주고 싶어도, 괜히 여자들끼리 싸우는데 남자가 끼어들면 일이 너무 커질까봐 그러는 거예요. 진짜 너무 심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요, 걱정 마요.”라고 말한다.


‘여자들끼리의 싸움...’


분홍은 그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쓸데 없는 일로 여자들끼리 감정 소모하는 걸로 보이는다는 말로 들린다. 분홍에게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분홍의 인생과 한 달의 삶, 한 달의 월세에 관한 일들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의 전부와도 맞먹을 일이었다. 송에게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러다 이내, ‘그래, 송의 본심은 그게 아니야. 송은 내가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야.’라고 하면서 그의 마음을 더듬어본다.


엔젤 타운의 수많은 라임색 조명이 밤 시간 창문에 둥둥 떠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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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버튼을 눌러라. 17.09.05 25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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