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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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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08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9.14 19:20
조회
211
추천
3
글자
9쪽

82화. 삶이 되어 버리다.

DUMMY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응...?”


연극영화과 학생인 예림은 분홍보다 열 살은 어리면서, 분홍보다 훨씬 어른인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평소 어리버리하고, 레슨이 끝나면, 레슨곡 악보나 필통은 기본이고, 핸드폰을 놓고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예림이다. 그런 예림의 말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분홍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림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 분홍에게 수줍은 얼굴의 예림은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니, 그게, 어어어... 그러니깐, 선생님이 주말에도 여기 붙잡혀서... 자유가 없으시고, 어, 어, 그러니깐, 제가...”


분홍은 예림의 버벅이는 말을 들으면서 ‘아... 내가 학생들한테 그렇게 신세한탄을 많이 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 연습실 장사를 하는 분홍에게 가장 힘든 일은 주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낙천적으로 여겼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주말이 어딨어. 주말에 장사하면서 노래 연습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거지.’라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이제 그런 생각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예림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는 분홍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선생님, 저를 부려 먹으세요. 흐흐흐.”라고 말을 이었다.


“......? 하하하. 예림아. 어떻게 제자를 부려먹어? 나랑 같이 노동청 가려고? 흐흐흐.”


분홍은 선생님을 걱정해주는 예림이가 엉뚱하고 귀여워서 당황했지만 농담으로 이어간다.


“저는... 휴학... 했잖아요. 어차피 알바도 맨날 하는 거가 아니라서... 제가 일 주일에 두 번정도는 여기, 가게, 아니, 스튜디오 봐드릴 수 있어요. 알바도 해봤거든요.”


분홍은 고맙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여 말을 잇지 못한다. 또한 어리바리한 예림이가 알바를 해봤다는 말이 놀랍기도 했다. 예림이가 알바를 하는 모습이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예림은 분홍이 송에게 종종 흉을 볼 정도로 어리바리한 아이였다. 노래 가사를 매번 틀렸고, 물건을 자꾸 흘리고 다녔으며, 레슨 시간을 번번히 까먹어서 맨날 문자를 보냈다.


[ 선생님. 이번 레슨 목요일이죠? ]

[ 아닌데. 금요일인데. 예림이 네가 바꿔달랬잖아~! ]


한 번은 자꾸 레슨 시간을 까먹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매너가 아니라고 한 마디 했더니 장문의 사과문자와 함께 또다시 다음 레슨 날짜가 언제인지 물어왔었던 아이다. 그런 예림이가 가게를 봐준다고 하니, 가게 일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불쾌감도 들려고 하고, 진짜로 맡겼다가 무슨 탈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저 못 믿으시겠죠. 흐흐. 저희 엄마도 저 못 믿겠다고 맨날 그러세요... 흐흐.”


예림이 바보처럼 웃으면서 분홍의 속 마음을 콕 짚자, 그녀는 가슴이 뜨끔하다.


“아, 아니야. 못 믿다니...! 나야 고맙지. 선생님도 가게 때문에 못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선생님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고.. 고마... 감...사해서요.”


분홍은 가슴이 찡하다.


어리바리한 예림이는 그 나이의 다른 학생들보다 순수해 보였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서 길어진 머리가 부스스한듯 치렁치렁했는데, 한창 화장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임에도 늘 맨 얼굴이었고, 옷도 오래 전에 산 옷만 입는 것 같았다. 그런 예림이는 그야말로 ‘실수 투성이’였다. 분홍은 혹시 예림이가 보통 사람들보다 아이큐가 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었다.


연극영화과를 다니는 예림이가 2학기에는 휴학을 하고 노래를 하겠다는 것도 분홍에겐 의아한 일이었다. 기왕 실기시험까지 패스해서 연극과를 다니는데 휴학을 할 것이 아니라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면서 분홍에게는 노래의 기초를 배워서, 결국 뮤지컬 배우 쪽으로 가라고 진로 상담을 여러 번 해주었다. 그러나 예림이는 자신에게는 연기가 하나도 맞지가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제대로 설명하지를 못했다.


분홍은 송과 레슨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었는데, 예림이 이야기를 할 때는, “모잘라. 많이. 그런데 착해. 재능은 있는 것 같아. 아니, 그것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분홍은 주말이나 쉬는 날 없이 캐시 뮤직에 붙어 있는 것을 힘들어하면서도, 본드로 붙어버린 나뭇가지 마냥, 이렇게 가게를 봐줄 사람이 생겼는데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붙어 있으려는 자신의 모습에서 관성을 보았다. 일종의 심리적인 집착이라고 느껴졌다. 집착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휴식을 취할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예림아. 그러면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네가 편한 요일과 시간을 알려줘. 그리고 일 주일에 두 번까지 아니어도 괜찮아. 일 주일에 하루라도 봐주면 정말 고맙겠다. 그리고 쌤처럼 프론트에 있을 필요 없어. 방에서 연습하다가 손님들 갈 때 돈만 좀 받아줘. 아무튼 진짜 고마워.”


예림이가 분홍을 구제해줘서 분홍에게는 일 주일에 최소한 한 번, 자유 시간을 가지거나 ‘화려한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분홍은 레슨 제자 예림과 일종의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알바비를 주지 않으면서 제자에게 가게를 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도 분홍은 쉬고 싶었다. 또한 연습실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실력은 느는 법이니 예림이에게도 좋은 일이라면서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분홍에게 자유 시간이 생겼다!


분홍은 예림이가 캐시 뮤직을 봐주는 날 알앤비의 여왕 강주연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검은색 건물과 인연이 생긴 뒤로 처음으로 얻는 휴가였다. 그 휴가가 1박 2일이나 2박 3일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검은색 건물이 분홍에게 뻗고 있는 인력을 역행하고서 서울문화회관으로 향하는 분홍은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고, 스스로 매우 성공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저녁 때 회사 일로 바빠 콘서트에 함께 못 가는 것에 대해 자꾸 미안해하는 송에게 정말 괜찮다고 했다.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에 더 갈급했다.


분홍은 강주연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강주연보다는 강주연 위로 쏟아지는 화려한 조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의 대표적인 히트곡 <둘이었을 때>의 전주가 나오자 관객들은 크게 환호한다.


분홍은 콘서트라는 것을 회피하기도 했다.


돈이 아까워서, 혹은 일할 때 공연을 맨날 보니까, 등등의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콘서트를 하는 가수들에게 질투가 났고 질투를 가라앉히노라면 마음이 괴로웠다. 코러스석에 서서 무대 중앙의 가수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언제쯤 그 자리에 자신이 서게 될지, 이 모든 외로움과 경제적 곤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났다.


분홍은 강주연이 독차지하고 있는 노란색, 보라색, 흰색, 붉은색 조명이, 그 모든 빛깔이 뒤엉켜 더 매력적인 따듯한 것이 자신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또르르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서러움과 혼합되어 진한 빗물이 되기 시작했다. 목이 메어왔다. 공연장 안에 가득찬 강주연의 노래는 분홍의 사정과는 달리 상큼하고 밝은 노래였다.


‘나는 언제...’


분홍은 강주연이 지금 별로 최선을 다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준비가 덜 된 공연인 것 같았다. 서울문화회관이라는 공연장의 이름값과 가수의 명성이 아니면, 무대가 별로 꽉 차지 않는 부족한 공연 같았다. 부모님이 공연을 보면 딸이 실수할까봐 가슴 졸이셔서 자신은 늘 부모님께 오지 말라고 한다는 가수의 멘트가 나왔다. 단독 콘서트에서 충분히 가능한 멘트인데도 분홍에게는 웬지 지나치게 사적이고 불필요한 말처럼 들렸다.


분노였다.


‘이것도 병이다. 병. 질투겠지? 아니면 상처인가? 이제는 평범하게 가수의 공연을 감상하는 것마저도 불가능해진 건가? 노래를 선택한 게 오히려 노래와 멀어지는 결과가 된 것 아니야...?’


제자 덕에 캐시 뮤직에서 저녁 나절 한 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분홍은 다시 캐시 뮤직으로 돌아간다. 버스에서 약간의 멀미를 느낀다. 덜컹덜컹. 그래도 그녀는 다시 검은색 건물로 향한다. 검은색 건물이, 분홍이 책임져야 할 연습실 월세가, 분홍이 노래 연습을 하는 그 공간이 분홍을 잡아당긴다. 분홍은 빨려들어간다.


콘서트를 보러 나설 때는 약간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연습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겁이 났다. 그러나 캐시 뮤직과 검은색 건물은 분홍에게는 삶이 되어버렸다.


삶 그 자체.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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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화. 삶이 되어 버리다. 17.09.14 21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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