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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225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11.27 20:01
조회
210
추천
3
글자
9쪽

85화. 아흐메드 씨의 방문.

DUMMY

“분홍, 내가 가게 볼게요. 자기는 올라가서 좀 쉬어요.”


부지런히 움직이며 손님들이 나간 방 상태를 체크하고 어지러진 케이블과 앰프 등의 위치를 바로 잡던 송은, 프론트에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는 분홍에게 말한다. 일요일 저녁, 송이 회사를 쉬는 날이다. 분홍을 장사에서 빼주려는 모양이었다.


“아니야. 마감까지 해야지.”


분홍은 모니터 밖으로 고개를 빼며 송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그것도 그냥 내일 해요. 나 있을 땐 좀 쉬어.”


분홍은 고민이 된다. 분홍에게 가게 주인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다. 분홍의 정체성은 가수이다. 아직 앨범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으므로, 가수 지망생이라고 해도 괜찮다. 그런데 가게를 남자친구가 봐준다고 해서 방으로 올라가(그것도 성냥갑 만한 고시원 방으로) 쉰다는 것은 분홍에게는 ‘내가 누구인가’에 해당하는 심각한 질문이 된다.


“그럼 자기가 가게 봐주는 덕분에 나는 연습을 좀 할게요.”


분홍은 스마트폰의 음악 폴더를 엄지 손가락으로 넘겨보면서, 어떤 노래를 부를까 찾아보고, 한 손으로는 컴퓨터 옆에 뉘여있던 연두색 악보집을 넘긴다. 연습에 시동을 거는 분홍을 송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여자친구 분홍에게 캐시 뮤직 장사를 맡으라고 설득했을 때 송이 생각한 미래는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다. 분홍에게 공짜로 쓸 수 있는 방 여섯 개짜리 연습실을 갖게 하고, 고시원방을 공짜로 씀으로써 분홍의 원룸 월세를 절감하고, 반대 급부인 가게 장사에 대한 책임은 송 본인이 지면서, 분홍에게 꿈의 월드를 선사한다, 뭐 그런 것이었다.


분홍은 아침 열 시에서 밤 열 시까지, 때로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손님이 오면 손님을 맞아야 하는 가게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고시원 종업원 연이 엄마와 이 검은색 건물의 건물주 황윤희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을 치기 일보 직전이 되어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송은 자신이 분홍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아, 분홍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지만, 만일 분홍이 은근히라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면, 신경이 자극되고 화가 끓어올라 분홍에게 몹쓸 말은 다 하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나마 분홍의 얼굴이 행복해 보일 때는 학생을 가르치고난 뒤라던가, 실컷 노래 연습을 한 날이었다. 그럴 때는 송의 마음도 좀 편해지고 뿌듯해졌지만, 주말도 없이 장사를 한 지 수 개월이 지난 분홍의 얼굴엔 다크 서클이 늘 고여 있는 듯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마음이 무거울 때 사람의 가슴은 무거운 노래와 만난다. 오케스트라 방에 들어간 분홍은 이소라의 노래부터 부른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 정말 대박이야. 딱 내 마음이잖아.’


이 검은색 건물에 들어올 때 분홍은 지출이 제로가 되는 생활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 다음 단계는 매상에 대한 압박과 ‘돈도 안 내고 사는 것들’로서 멸시를 받는 단계였다. 그 다음은 그런 멸시가 싫어, 월세를 많이 내면 대접을 잘 받으려니, 하고 기대를 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월세에 깔려 불안과 초조 속에 깊은 한숨을 쉬다가도 노래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 삶이다.


‘월세를 많이 내는 것이 어떻게 너의 품위를 올려줄 수 있단 말이야?’


현실감각 좋은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비웃을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분명, 그런 불안과 초조에 대한 세라피가 된다. 이 노래가 뿜어내는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감상은, 분홍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감상으로 전환된다. 제법 구슬픈 목소리가 되어 공간을 메운다.


분홍은 가게 주인답게 가장자리 방인 오케스트라 방을 차지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요일 저녁, 예약손님들이 가고나서 더 이상은 손님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내린 선택이었다.


가장자리 방의 좋은 점은 옆방의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 쪽에서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방과 방 가운데 위치한 방의 경우는, 양쪽에서 모두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무대나 조명 등 그 어떤 것의 도움 없이 발가벗고 노래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단, 행인들의 눈에 안대를 채우는 조건으로 말이다.


우울한 감정이 담겨있는 노래는 부르는 이의 우울함을 증폭시켜 주면서 결국은 그 우울함을 떨쳐내 버린다.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빠지기 위해 슬픈 노래를 시작하고나서 몇 번은 감상에 젖어있을 수가 있지만, 부르다 보면 때가 벗겨져 나가듯이, 감상이라는 장막이 걷히듯이, 순수한 즐거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기분이 조금 좋아진 분홍은 노래 <청혼>의 엠알을 튼다.


“말할 거예요. 이제 우리 결혼해요.

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겁이나요. 꼭 붙들어줘.

같이 처음부터 시작해요 우리의 시간. 나는 당신을 믿을게요.

그대에게 나 반한 것 같아. 말은 안 했지만 너무 멋져 보여요.

그대에게 나 반한 것 같아. 말한 뒤에라도 후회하진 않을 게요.”


보사노바 풍의 비교적 빠른 리듬에 분홍은 라틴 댄서처럼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자신의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으로 수줍은 얼굴 표정도 지어보고 여성스러운 손짓도 만들어본다. 분홍의 흥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올라 버렸다.


분홍이 부르는 노래들은 더 이상 빨라질 수 없고, 더 이상 거칠어질 수 없을 만큼의 스피드로 올라간다.


이제, 그녀의 록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무대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을 때 록을 할 순 있지만, 절대로 헤드뱅잉은 하지 않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한 록커가 헤드뱅잉을 하면 다음날 목이 매우 아픈데 노래할 때는 아픈지도 모르고 한다고 방송에 나와 하는 말을 듣고, 목을 다쳐가면서까지 헤드뱅잉을 한다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남자 가수가 그러는 것은 멋이라도 있지만, 여성 가수가 그렇게 한다면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편견이겠지만 말이다.


분홍의 헤드뱅잉이 시작되었다.


“워우~! 예~! 우워~~~~~~~!”


“분홍! ... 분홍!”


송은 분홍이 큰 음악 소리 때문에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자 분홍을 향해 팔을 휘휘 흔든다. 분홍은 송의 팔짓을 보고 그가 오케스트라 방에 들어온 걸 깨닫는다.


“어? 왜?”

“아흐메드 씨가 오셨어. 할 말이 있으시대.”

“... 진짜? 아흐메드 씨가?”


분홍의 가슴이 철렁해진다.


송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정확히 아흐메드가 뭐라고 했는지 송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문장을 정확히 정리하여 전달하는 송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헤드뱅잉의 기운을 정리하면서 복도로 나간다.


아흐메드 씨의 큰 귀가 오늘따라 더 커 보이고 거무잡잡한 얼굴도 오늘따라 더 진해 보인다.


“헬로우.”


분홍은 최대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흐메드는 복도 바닥을 가리키며, “잇츠 두 더티, 유 니 투 클린 디스. It's too dirty. You need to clean this.”라고 말했다. 분홍은 청소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답하려다가, 변명하는 모습은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관뒀다.


“아이 헐드 유 투 피플 해브 푸드 인 마이 레스토란트. 잇츠 낫 페어. 유 페이 원 룸. 쏘 유 이트 온리 원 펄슨. 원 페이 원 푸드. I heard you two people have food in my restaurant. It's not fair. You pay one room, so you eat only one person. One pay one food."


검은색 건물 꼭대기 층에서 송과 분홍이 어저께 함께 식사를 한 것을 두고 항의하러 온 모양이었다.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mockUp표지 (버스정류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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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원 퍼슨 원 푸드 One person one food. 17.11.28 213 3 8쪽
» 85화. 아흐메드 씨의 방문. 17.11.27 211 3 9쪽
84 84화. 행복한 캐시 뮤직. 17.10.22 205 3 10쪽
83 83화. 꼬물 냉장고와 고시원 창고. 17.09.19 210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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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39 2 11쪽
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2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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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너의 입맞춤은 황홀하였네. 17.08.12 284 2 11쪽
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8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5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698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5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5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3 3 15쪽
59 59화. 키큰 유덕화. 17.01.25 571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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