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222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12.09 21:41
조회
260
추천
3
글자
12쪽

[최종 화] 88화. 당신과 바다가 나를 도와준다면.

DUMMY

분명히 외국에 있다고 했던 아흐메드가 캐시 뮤직에 나타났을 때 분홍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분홍에게 자신의 착한 와이프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의 실정법으로 처벌 받을 수가 있고, 그나마 '순진한' 와이프 대신 자신의 변호사를 상대하게 될 테니 똑바로 하라,고 겁을 주었던 아흐메드는 온데간데 없었다.


분홍을 본 그의 첫마디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고, 세상에 말로 풀지 못할 오해는 없으니 이제부터 잘 풀면 된다고 하였다.


“아흐메드 이메일 받고 화도 나고 정말 무서웠는데... 근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한국에 왔을까, 송?”

“아마 한국에 원래 있었으면서 외국이라고 거짓말을 했을 거야. 아니면, 황윤희한테 우리가 보낸 서류 얘길 듣고 일이 커지겠다 싶으니깐 바로 귀국했거나.”

“아무튼 자기는 머리가 정말 좋은 거 같애.”


위로 자꾸만 올라가는 굵은 줄무늬 모양 니트 스웨터를 몇 분마다 아래로 끌어내리는 까페 주인은 난방을 거의 안 하는 모양이었다. 분홍은 코가 시려워졌고 코코아는 순식간에 식어버려 아이스 코코아를 먹는 것 같았다.


유리로 된 초는 심지가 불타고 있지만 손을 데어봤자, 유리의 차가운 느낌만 다시 한 번 들 뿐이었다.


“아흐메드를 믿지 말았어야 돼. 그렇게 인간적으로 나오니까 또 속았어. 나는 진짜... 내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은지 몰라. 자기가 돈 따로 받으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분홍이 또 가슴을 쥐어뜯기 시작하자, 송은 다시 분홍을 달랬다.


“우리는 정말 잘 싸우고 잘 나왔어. 그래도 우리가 보통 사람은 아니야. 다른 사람 같았으면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났을 거야. 악기나 물품 같은 거 우리가 고장 낸 거라고 우겨서 보증금을 어떻게라도 까고 안 줬을 사람들이야. 그래도 자기랑 나랑 힘 합쳐서 그거라도 받아나온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분홍. 송이 있잖아요. 플라자 고시텔이랑 캐시 뮤직하고 이별했으니 우리 앞엔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송은 역시 긍정적이야.’


분홍이 송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었다. 사실 분홍은 아흐메드가 갑자기 대화모드로 바뀐 뒤에 아흐메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흐메드는 분홍이 하는 말을 다 귀담아 들어주었고, 최대한 송과 분홍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태도가 되었다.


분홍이 이야기 중에 “위아 위크, 앤 유 아 스트롱. 유 아 디 오우너 오브 디스 빌딩. We are weak, and you are strong. You are the owner of this building.”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흐메드는 찡그리면서 누가 강하고 누가 약자이고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라면서, 분홍과 아흐메드는 서로가 수평한 사이, 친구, 라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분홍이 검은색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원래 캐시 뮤직의 손님이었으며, 연이 엄마가 방을 쓰면서 장사를 하라고 적극 권유해서 들어오게 되었다는 분홍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진심 어린 질문을 했었다.


분홍은 아흐메드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설명이 복잡한 감정을 송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왜 좋아했을까? 부자여서? 아빠 같아서?'


“난 그래서 아흐메드가 변한 줄 알았고, 그 사람이 사실은 일처리를 잘 하고 친절하다고 느꼈어.”


'그래... 그 때 아흐메드는 합리적이었고 사려깊은 모습이었어.'


캐시 뮤직엔 월세 사용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선불로 월 사용료를 내고 방을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사용했다. 오르간 방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업라이트 피아노까지 들여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분홍을 사려깊은 말투로 상대하던 아흐메드 씨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돈을 언제 내는지 따졌고, 분홍은 그들에게 돈을 받은 날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아흐메드 씨는 보증금에서 그 돈을 제외한다고 했다. 120만 원이었다. 분홍은 그러자고 했다.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선불로 받은 돈을 제하는 건 사리에 맞는 것 같았다. 분홍도 검은색 건물에서 어서 나가고 싶었다.


분홍은 방 이름과 그들에게 받은 돈에 대해 적어 그들의 방 사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연이 엄마에게 인계했다.


분홍 커플이 검은색 건물에서 나가는 날, 건물주이자 아흐메드의 부인인 황윤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이 엄마에게 듣기로 황윤희는 몸이 아프다고 했고, 그녀가 함직한 일은 연이 엄마가 대행했다.


분홍은 악기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연이 엄마의 등 뒤를 노려봤다.


연이 엄마가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날 만큼은 연이 엄마 앞에서 기죽고 싶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가서 잘들 살아야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했으나 분홍은 대답하지 않았다. 송은 “네, 이모님도 건강하세요.”라고 예의있게 답했다.


‘송은 속도 넓어.’라고 생각하며 분홍은 입을 삐죽 내밀었었다.


분홍은 황윤희가 미웠지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제자인데...’


분홍은 아흐메드에게 말했다.


“쉬 러브드 싱잉 베리 마치. 아이 호프 쉬 킵스 싱잉. 플리즈 텔 허. She loved singing very much. I hope she keeps singing."


아흐메드는 분홍을 빤히 쳐다보다가 피씩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얼굴의 아흐메드의 뾰족한 귀가 어떤 때는 아주 뾰족했다가 어떤 때는 강아지 귀처럼 수그러들며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날 분홍과 아흐메드는 우정을 담아 악수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흐메드는 분홍과 송이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분홍은 명남동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했고, 말대로 명남동에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송이 분홍 대신 짐 정리를 시작하자 분홍은 "송, 그냥 놔둬요. 정리는 나중에 해도 돼요. 맛있는 거 먹으로 가요."라고 말하고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분홍과 송은 지옥에서 빠져나온 기념이라며 송과 와인을 한 잔 했었다. 명남동에는 저녁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파스타 집이 하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비쌀 거야..."하면서 지나치던 그곳을 분홍은 앞장 서서 들어갔다.


좌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분홍과 송은 실외 포차처럼 비닐이 씌워져 있는 일종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분홍은 '오징어 한 마리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송은 스테이크를 시켰다. 오징어 한 마리 스파게티엔 정말로 오징어가 통째로 한 마리 들어있어 분홍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접시를 내려다 봤었다.


시골이나 빈한함을 상징하곤 하는 '비닐 하우스'로 길가에 야외 공간을 확장하여 장사를 하는데도 그 가게가 줄을 서서 기다려서 먹는 집이라니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던 분홍의 얼굴은 가까이에서 타고 있는 가스 난로가 뿜어내는 열로 벌개졌다. 분홍과 송이 추가로 주문한 와인이 몸으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얼굴은 피로와 열기가 함께 올라와 더욱 불그레해졌다.


이제는 황윤희도 연이 엄마도, 아흐메드 씨도, 검은색 건물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두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잔을 부딪치며 간간히 웃어댔다. 특히 외국에 있다던 아흐메드를 두 사람 앞에 당장 나타나게 만든 송이 만든 서류를 칭송했다.


“송. 넌 진짜 대단해!”

“기본이지.”


우쭐한 표정으로 송이 답했다.


캐시 뮤직의 월세 손님들이 분홍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 것은 와인이 담긴 유리잔을 부딛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분홍은 울면서 송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 여기로 올 수 있어? 큰일 났어.”


그들은 캐시뮤직이 폐쇄되었다고 했다. 분홍은 당황해하는 손님들에게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연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황윤희를 대행하여 인수인계를 받은 사람은 연이 엄마였기 때문에,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믿지 않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은 무언가 검은색 건물과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비현실적인 두려움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분홍은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는 그들의 항의를 참고 또 참으며 들었다. 그녀는 이제 검은색 건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지만, 처음 그 손님들을 받았던 자신이 ‘도의적’인 책임은 지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자세라고 믿었다. 그러나 연이 엄마는 ‘주인이 시키니 나도 모른다’라면서 전화를 계속 끊는다고 했다. 그들의 항의 전화는 점점 거세어지고 거칠어졌다. 전화를 겨우 끊고나서 시간을 확인해 보면 어떤 때는 항의를 들은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 있었다.


손님들에게 황윤희의 전화번호도 가르쳐주었으나 황윤희는 문을 열어줄 이유가 자신에게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홍이 한 번도 월세를 낸 적이 없는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송. 내가 아흐메드를 믿은 게 잘못이었어.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사람을 가지고 놀 수가 있어? 난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화가 나면서도 신기해.”


송은 명남동으로 달려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던 분홍에게 그는 이제부터 당분간 전화기를 켜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전화기를 켜지 않으니 조금 도움이 되었다. 다소 진정을 한 분홍은 아흐메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캐시 뮤직이 잠겨 있어서 이용자들이 많이 화가 나 있으니 확인해 보고 조치를 하라고 하니, 아흐메드는 알겠다고 했으며 이메일을 보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잠시 분홍은 안심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흐메드는 더 이상 답장을 주지 않았다.


분홍은 신경쇄약에 걸리고 말았다. 한 번 껐던 전화를 다시 켤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화가 나. 내가 마지막까지 속았던 것도 화가 나고... 으어엉.”


송은 “분홍 손 줘봐.”라고 다시 말했다.


분홍은 “으어엉.” 울면서 손을 탁자 위에 다시 강아지 발처럼 올렸다. 송은 분홍의 손을 다시 감아 쥐었다.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그래도 새해가 되기 전에 거기서 나와서 다행이예요. 새해는 백지처럼 시작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넓은 바다가 보이면 자기 마음도 많이 가라앉을 거예요.”


분홍은 울면서 머릿속으로 ‘레슨해야 되는데. 이렇게 계속 수업 쉬면 학생들 떨어져 나가는데. 그나저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어어엉” 울었다.


하지만 송과 함께 바닷가에서 쉬었다가 가면 정말 속을 비워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슴에 들어오기도 했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며 일을 다니시는 어머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더욱 아파왔다. 하지만 으어엉 울어대는 분홍의 손을 송이 감싸쥐고 있으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넓은 바다에 검은색 건물의 기억을 던져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억울함이 조금 덜해졌다. 까페 주인은 분홍이 소리내어 우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스웨터를 더 자주 내리면서 “흠- 흠-”하며 헛기침을 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저의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IMG_20160525_225355.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1 dongguri..
    작성일
    18.01.01 23:55
    No. 1

    정말 있을것만 같은 일들이 블랙코미디처럼 연결되어 웃기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땅에 살고는 있는데, 서로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잼나게 읽었습니다. 건필하십시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홍차임
    작성일
    18.01.03 00:58
    No. 2

    웃기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제가 이 소설의 장르를 '리얼리즘 코미디'라고 규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최종 화] 88화. 당신과 바다가 나를 도와준다면. +2 17.12.09 261 3 12쪽
87 87화. 떠나야 할 때. 17.12.08 214 3 13쪽
86 86화. 원 퍼슨 원 푸드 One person one food. 17.11.28 212 3 8쪽
85 85화. 아흐메드 씨의 방문. 17.11.27 210 3 9쪽
84 84화. 행복한 캐시 뮤직. 17.10.22 205 3 10쪽
83 83화. 꼬물 냉장고와 고시원 창고. 17.09.19 210 2 8쪽
82 82화. 삶이 되어 버리다. 17.09.14 211 3 9쪽
81 81화. 버튼을 눌러라. 17.09.05 258 3 10쪽
80 80화. 영토를 잃다. 17.09.04 219 3 9쪽
79 79화. 아버지라는 이름의 복지국가. 17.09.03 210 3 6쪽
78 78화. 연두식, 그가 강했을 때. 17.08.31 298 3 9쪽
77 77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불러요. 17.08.28 254 2 9쪽
76 76화. 방 안에 갇히다. 17.08.26 221 3 7쪽
75 75화. 스판 바지와 검은색 소파. 17.08.24 277 2 7쪽
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39 2 11쪽
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2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8 4 12쪽
71 71화. 그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17.08.13 231 5 11쪽
70 70화. 너의 입맞춤은 황홀하였네. 17.08.12 284 2 11쪽
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8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5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698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5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5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3 3 15쪽
59 59화. 키큰 유덕화. 17.01.25 570 3 1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홍차임'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