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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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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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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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2화. 플라자 고시텔.

DUMMY

분홍 커플과 검은색 건물 간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계약의 주체는 분홍이기도 하고 송이기도 하다. 상대방은 '사모님' 황윤희이기도 하고, 연이 엄마이기도 하다.


분홍이 살던 원룸은 이제 분홍이 짐정리를 위해 물건들을 늘어놓아 발 딛을 틈도 없다. 그리고 검은색 건물에는 그녀의 밥과, 남자 친구와, 그녀가 좋아하는 누런색 개, 그리고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제부터 그녀는 검은색 건물, 플라자 고시텔에서 잠을 자기로 한다.


마음이 생길 때마다 원룸에 들러서 물건 정리를 하기로 한다. 집주인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원룸에서 잠도 안 자면서 월세는 계속 나가고 있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정리만 하는 공간이 한시적으로 생겼다는 것이 그녀에겐 그녀만의 ‘작업실’이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어차피 길어봤자 일이 주야. 이걸 즐길래.’


분홍은 잘 때 입을 수면바지와 면티, 그리고 세면 도구 등을 캐리어에 담아 자신의 고시원 방에 옮겨놓았다. 하얀색이 깨끗해서 좋다고 생각한 방의 벽면은 계속 보니 벽지가 아닌 페인트여서 차가운 느낌을 줬다. 더군다나 그 페인트 벽에는 낙서들이 있었다. 또 벽에는 이유 모를 작은 구멍이 몇 개 있었고 그 구멍 하나가 어떤 사람 얼굴 모양의 낙서에서 눈동자를 대신하고 있었다.


‘뭐야. 이것도 미술적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시꺼먼 눈 하나를 가진 낙서를 골똘히 보던 분홍은 뭔가 괴기스럽다고 생각한다.


원룸에 아직 자신의 물건을 두고 고시원방에서 자려니 독립한 뒤 불어나 버린 짐들에서 벗어나 개운하기도 했지만, 이젠 정말 고시원에서 사는구나, 하니 착잡했다. 그래도 여전히 송이 외우게 해준 주문 ‘지출 제로!’는 매력이 있었다.


옆방의 연이 엄마의 거대한 목소리는 어느 때고 예고없이 들려왔다.


“아니, 글쎄, 와서 보라니깐요? 어차피 내가 말로다가 다~ 설명을 해도 결국 또 직접 와서 봐야 되잖아요!”

“네. 푸라자 고시텔입니다.”


‘아휴. 아줌마는 플라자, 라고 제대로좀 발음하면 안 되나. 왜 맨날 꼭 푸라자라고. 부라자도 아니고...’


분홍은 연이엄마의 통화 소리를 하나하나 들으며 불만스러워했다. 하나하나 안 들을 수가 없게 하나하나 모두 들렸다.


"아휴~~~~~ 더러워. 머리칼을 이렇게 흘려들대, 흘려대기를? 여자애들이 더 더러워. 내가 그래서 여자애들을 싫어해. 이 거울을 갔다가 버려버려야지. 여기 거울이 있으니까 이 년들이 요 앞에서 꼭 머리를 만지자악- 만지작하고 더 그래. 사모님 오시면 저 거울좀 치우라고 해야겠어.“


옆방에서 들려오는 연이 엄마의 목소리도 분홍이의 신경을 긁었지만, 예상치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식판이었다. 고시원생들이 철제 식판에다가 밥을 먹는 소리가 방 안으로 여과없이 들려왔다.


“싹싹. 쩍쩍. 달그락달그락. 찌이익- 찌이익- 쩝쩝쩝쩝. 후루룩. 콜록콜록. 흐응.”


분홍은 침대에 걸터앉아 한동안 쇠와 쇠가 부딛치는 소리를 들었다. 부엌의 음향이 그대로 분홍의 방 안으로 들린다고 생각하니까 뭔지 모르게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분홍이 입주하기 전에 고시원 식당에서 연이 엄마의 무용담을 듣고 있을 때였다. 주로 그녀의 남편과 시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는 시간을 초월하여 한국전쟁과 이북 출신들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폭력과 용서, 배움과 무지, 불효와 결혼, 등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쇼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 이모! 너무 시끄러워요. 좀 조용히좀 하세요!”


지금 분홍의 방에 살던 긴 생머리 여학생이 잠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나와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분홍은 연이 엄마가 시끄럽다는 걸 매우 잘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직설적으로’, ‘어른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일 씨디 플레이어부터 갖구와야겠다...’


2월. 봄이 다가온다고 하지만 여전히 추운 겨울. 플라자 고시텔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는지 갑자기 부르르- 추위가 밀려왔다.


‘방에서 입을 얇은 잠바도 하나 가져와야 되겠고...’


아무런 온기가 없는 고시원방, 분홍 자신의 온기만이 있는 방, 그 방 안에서 분홍은 자신에게 온기를 전해줄 하나의 생명체를 떠올렸다. 바로, 누런 개 연이였다.


분홍은 옆 방 연이 엄마 방문에 노크한다.


“언니.”

“엉. 드루와.”

“저기, 제가, 오늘... 연이 데리고 자도 돼요?”


연이 엄마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른 쪽을 쳐다보며 “그래.” 하고 대답한다.


작은 점프를 하고 있는 연이를 들어올려 데리고 나오려는데 “잠깐만. 이것도 가지구 가.” 하며 연이 엄마가 연이의 소변판과 걸레 두 장을 들고 따라온다.


“이 걸레를 받쳐놔. 이 년이 정신 못 차리고 판 밖으로 오줌을 흘리기도 하니까. 또 요로오케 걸레를 깔아놔야 소변판이 고정이 돼가지구선 안 움직여. 이 년이, 하이고~~ 아주 키우기가 힘들어.”


분홍은 연이의 원래 이름이 ‘개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름이 한 글자로 줄어 연이가 되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런색의 연이는 분홍의 방에 들어온 것을 매우 기뻐하는듯하다. 분홍은 자신의 고시원 입주를 환영해주는 생명체가 있음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 년이 여기 잠깐 살던 여자애를 엄청 좋아했어. 걔가 이 년을 데리고 밖에두 나가고 그랬거든. 얘가 지금 이 방에서 그애 냄새가 나서 이러고 좋아하는거야.”


연이의 기쁨이 분홍이 아닌 다른 사람 때문이라니, 분홍은 조금 실망한다.


분홍은 연이 엄마의 날선 말에 하루종일 노출되어 살아가는 연이를 위로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때로는 연이도 암컷, 연이엄마와 분홍 자신도 ‘암컷’이라는 생각에 암컷끼리 모였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이것이 진정 시스터후드라며 애써 그 모임의 의의를 찾기도 했다. 셋이 모두 힘든 하루를 보낸 날에는 세 개체의 암컷이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분홍은 누런 개 연기가 자신을 검은색 건물로 초대한 당사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연이야~ 아이, 이뻐.”


분홍은 연이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다.


분홍은 연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연이 엄마의 추천과 소개로 이 건물에 살게 되었다.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거친 말 표현으로 인해 정을 붙이기 어렵고 마음을 완전히 다 줄 수가 없다. 연이가 그런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믿는다.


“띵동”


[분홍. 나 문좀 열어줘~♥]


송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유리문 앞에 서 있는 송이 노란색의 비상등 조명을 받고 서 있다.


“우리 자기가 쓸 방이 이렇게 생겼구나. 내가 꽃방으로 꾸며줄게~!”

“흐흐흐. 꽃방? 꽃방이 뭔데?”

“그런게 있어. 이 송을 믿어봐.”


송은 작은 고시원방을 둘러보며 세상을 다 가진 장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여자처럼 웃는 눈을 하고서. 분홍은 그런 송의 행동이 갑자기 작은 방에서 살게되어 의기소침해진 분홍을 위한 송 특유의 진심어린 허풍,임을 짐작한다.


‘난 처음엔 네 허풍에 실망도 많이 했는데, 이젠 너의 허풍에는 긍정의 주문이 들어 있다고 믿어.’


분홍은 누군가에게 '당신의 허풍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라며 그 말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생각한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다. 연이는 송에게 작은 점프를 하랴 분홍에게 작은 점프를 하랴 바쁘다. 성냥갑처럼 좁은 방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연이뿐이다.


“나, 이제 내려갈게.”

“벌써 가?”

“가야지.”


그러더니 목소리를 거의 영(0)으로 낮춘다.


“옆에 이모님이 다 들으셔.”


그리고는 분홍의 이마에 뽀뽀를 한다. 분홍은 연이와 둘이 남아 작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려 덮는다.


“띵동”


[분홍, 환영해. ^^ 고시원 첫날밤 잘 보내. 사랑해.]


연이는 분홍의 손길을 받을 때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는다. 눈물이 많은 건지 촉촉해진 눈가를 보고 분홍은 더욱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끌어안는다.


다음날 아침, 분홍은 조용히 눈을 뜬다. 고요한 검은색 건물의 고요함만큼 조용히. 옆방에서 연이 엄마가 틀어놓은 티비 소리가 들리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플라자 고시텔의 고시원생들은 일요일이면 거의 일제히 시계가 늦게 돌아간다. 분홍은 느리게 일어나 송에게 띵동 메시지를 보낸다.


[송. 우리, 연습실 언제 열까?]

[잘 잤어, 분홍? ^^ 주말인데 늦게 열자~]

[주말엔 손님이 더 많지 않을까?]

[손님들도 다들 늦잠 자야되니깐 일찍은 안 올거야. 그나저나 잘 잤어, 분홍? ^^ ]


송은 오늘도 하루를 긍정으로 연다. 장사를 책임지는 송이 느긋하게 말하니 분홍도 여유가 생긴다. 삼십분은 더 자도 될 것 같다. 다시 눕는다. 주인집 할아버지가 발라놓은 칙칙한 컬러의 실크 벽지 대신에 새하얀 페인트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숨소리처럼 중얼거린다.


‘젊음의 거리, 삼국대 앞 연습실이라...’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강아지연이_글씨크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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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감자조림. 15.11.29 755 20 12쪽
8 8화. 반값 요금. +1 15.11.08 791 24 13쪽
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2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0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298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0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77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3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61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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