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파트너 몬스터 찾으러 오셨어요?”
안에서 주인 아저씨가 나왔다.
“얘. 이 친구가 이번에 테이머 클래스로 각성해서 파트너 몬스터 찾으러 왔어요.”
임 씨 아저씨가 날 툭 치며 말했다.
“어이구~ 축하드립니다. 근데 이걸 우째? 우리 가게에 팔 몬스터가 없는데.”
“팔 몬스터가 없다니? 밖에 고블린이랑 오크가 실한 놈으로 있는데?”
“실은 훈풍 테이머 길드에서 상급 게이트 공략한다고 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 상점 몬스터들 전부 계약해갔어요.”
그 말에 임 씨 아저씨 눈썹이 뻗쳐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다 계약한다는게 말이 돼요?”
“말도 마세요. 헤카톤크롭슨지 뭔지 하는 몬스터라는데 몸에 자기 자식들을 수백 수천마리 달고 다니는 A급 몬스터랍니다. 그놈 못 잡으면 광주 게이트 브레이크 난다고 나라 망하는 꼴 보고 싶냐고 난린데 안 팔 수가 있겠어요? 저도 단골들한테 사과하고 죽겠습니다.”
“허참··· 몬스터 상점에 몬스터가 없다니···.”
임 씨 아저씨는 난감하다는 듯 날 쳐다봤다.
“다른 곳 가도 몬스터가 없을까요?”
밖에 있는 무시무시한 오크와 고블린을 동료로 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좀 안심이었지만 파트너 몬스터가 없어서는 곤란했다.
“다른데도 훈풍 길드가 다 돈 걸로 알아요. 몬스터 새로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일주일은 너무 늦어.”
임 씨 아저씨가 표정을 찌푸렸다.
“정말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소? 하나 몰래 빼돌려줘요. 초보 테이머를 파트너 몬스터도 없이 게이트로 보낼 수는 없잖아.”
주인 아저씨는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하나 몬스터가 있기는 한데···.”
“뭐야? 역시 남아있는 놈이 있었소?”
“훈풍 길드에서도 전력이 안 될 거라고 판단해서 패스한 놈이에요. 내가 봐도 전력 외라고 판단해서 다른 몬스터 먹이로 줘야하나 고민하던 놈인데··· 초보 테이머시라니까 오히려 그놈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보여줘나 보시오!”
주인 아저씨는 가게 안쪽으로 우리를 불렀다. 구석진 바닥 쪽 케이지 안에 슬라임이 한 마리 들어있었다. 원래는 노란 옐로 슬라임인 듯 한데 먼지와 진흙이 뒤엉켜서 회색에 가까운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뀨잉···.
슬라임이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굴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펫샵에서 안 팔리는 새끼 강아지가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아있는 몬스터라는게 슬라임이었소?”
슬라임은 모든 몬스터중에서도 최하급의 몬스터였다. 고블린이나 오크보다도 약한게 슬라임이다. 그래서 헌터 길드에서도 슬라임은 필요 없다고 안 사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슬라임은 좀···.”
-뀨이잉.
임 씨 아저씨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슬라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축 처졌다.
나는 슬라임을 살폈다.
“옐로 슬라임인가요?”
“아마 그럴 거예요.”
슬라임이 꾀죄죄해서 원래 색도 알기 힘들었다.
아저씨는 옐로 슬라임을 케이지를 꺼내서 상점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호스를 꺼내 물을 뿌려서 슬라임을 씻겼다. 그러자 거뭇거뭇한 흙과 먼지가 떨어지고 슬라임의 노란 몸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뀨잉~.
슬라임은 기분 좋다는 듯 물기를 털어냈다.
역시 옐로 슬라임이 맞는 모양이다.
“야 호현아. 아무리 그래도 슬라임은 좀 아니다. 딴데 가보자. 진짜 훈풍 길드가 여기 구로 상가 몬스터들 다 샀겠어? 어디 고블린이라도 한 마리 남아 있겠지.”
임 씨 아저씨가 날 말렸다.
“아니, 이 양반이 속고만 사셨나. 어딜 가도 고블린도 없을 거라니까요.”
테이머로 각성한 뒤에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테이머 클래스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며 내 나름대로 정보를 모았다. 우선 내가 각성한 클래스 [샤인 테이머]는 빛 속성 몬스터에 특화된 테이머 직업이었다. 그렇기에 빛 속성에 속한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애초에 몬스터들은 어둠에 속한 존재. 빛 속성에 속한 몬스터는 많이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상당한 고렙의 강력한 몬스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초보 테이머가 육성할만한 하급 몬스터가 많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띈게 슬라임이었다.
슬라임은 가장 약한 몬스터지만 그 종류가 많았다. 전격 속성을 가진 그린 슬라임, 물 속성의 블루 슬라임, 화염 속성의 레드 슬라임··· 물론 빛 속성을 가진 몬스터도 있었다.
바로 옐로 슬라임이었다.
가장 약한 몬스터로 다른 테이머들에게는 별달리 유용하지 못한 몬스터였지만 빛 속성 특화 테이머인 내가 당장 육성 가능한 몬스터는 옐로 슬라임이지 않을까?
“이 슬라임 제가 구입할게요.”
“뭐? 정말로 슬라임을 구입하겠다고? 아서라. 이거 최약체 몬스터야. 고블린 하나 제대로 잡기 힘들거다.”
-뀨이잉···.
자기를 욕하는 임 씨 아저씨의 말을 알아듣는건지 슬라임이 축 처졌다.
“몬스터는 테이머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한테 다 생각이 있어요.”
“하··· 네가 생각이 있다면야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그냥 슬라임이라고해서 값이 헐한 건 아니다. 잘 생각해봐. 싼게 비지떡이야.”
임 씨 아저씨 말을 가로막듯 주인 아저씨가 먼저 할인 공세에 나섰다.
“원래는 100만원 받아야 하는건데, 할인해서 70만원에 넘겨드릴게요! 진짜 내가 손님한테 미안해서 원가에 손해보고 넘겨드리는 거예요.”
이야··· 최하급 몬스터인 슬라임이 100만원? 아무리 헌터 장비의 값이 프리미엄이 붙었다지만 엄청 센 가격이다.
“...할부로 계산해주세요.”
손을 덜덜 떨며 발급 받은 헌터 카드를 건넸다. 헌터 카드로 헌터 관련 장비 구입시 비과세 혜택이 적용된다. 주인 아저씨는 웬 횡재야 하며 내 헌터 카드를 바로 긁었다.
바로 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web발신]
헌터 카드 이*현님
10/11 00:40
700,000원
승인
monstershopChoi
으아··· 무려 70만원.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내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큰 금액이다.
아냐, 헌터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이 정도 지출은 감수해야지.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그럼 바로 파트너 몬스터 계약 진행 하실 건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상점 주인 아저씨 말에 따르면 파트너 몬스터와의 계약은 상점 안쪽의 특수한 마법진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계약을 하면 파트너 몬스터가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바로 테이머 곁으로 소환 가능하다고.
나는 내친김에 계약까지 빠르게 마치기로 했다.
“마법진 위에 서세요.”
상점 안쪽에는 바닥에 좌우로 두 개의 마법진이 새겨진 방이 있었는데 가운데 커다란 기계가 놓여 있었다.
“중형 몬스터까지는 이곳의 계약 마법진으로 계약 가능해요. 대형 몬스터는 따로 계약소에 가야하지만요.”
마법진의 한 쪽에 내가 서고 오른쪽 마법진에 옐로 슬라임이 섰다.
“계약을 진행합니다.”
파지지직!
내 아래 마법진에서 마력의 전격이 튀었다.
빛이 여러번 번쩍이더니 내 상태창에서 팝업창이 튀어나왔다.
[F급 몬스터 슬라임 Lv.1과 계약하셨습니다.]
[500exp를 얻습니다.]
[첫번째 계약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특전으로 스킬 [파트너 몬스터 식별 Lv.0]을 얻었습니다.
[파트너 몬스터 식별 Lv.0]
-파트너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개방되는 정보가 많아집니다.)
오! 새로운 스킬이다. 파트너 몬스터 식별? 근데 이 정도는 테이머라면 당연히 있어야하는 스킬 아닌가. 뭐 눈으로 봐도 파트너 상태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바로 수치로 보여준다면 편리하긴 하겠다.
“첫 계약 축하드립니다! 보니까 특전으로 스킬도 얻으신 거 같네요.”
아마 첫번째 계약을 하는 테이머들은 전부 비슷한 스킬을 얻는 듯하다. 상점 주인도 특별할 거 없다는 반응인거 보니까.
“앞으로도 저희 상점을 자주 찾아주세요. 다음주 쯤 되면 괜찮은 몬스터들이 많으니까요. 특별히 할인가로 모실게요.”
-뀨잉···.
벌써 주전 자리를 위협받는다는 걸 알았는지 옐로 슬라임이 또 축 처졌다.
“아뇨. 당분간은 이녀석 육성하는데 전념해보려고요.”
“오··· 약한 몬스터로 어디까지 강하게 만드는지 도전해보겠다? 테이머로서 그것도 좋은 자세지요. 어쨌든 몬스터는 테이머가 육성하기 나름이니까요. 화이팅입니다.”
상점 아저씨는 골칫거리였던 옐로 슬라임을 팔아치워서 기분이 좋은지 연신 희희낙락이었다.
“저 인간 분명 실력도 없으면서 아무 몬스터나 데리고와서 바가지 씌우는 거야.”
상점에서 나와 걸으며 임 씨 아저씨가 투덜거렸다.
“괜찮아요. 아마 하급 몬스터 중에 저한테 가장 잘 맞는 몬스터는 얘일 거예요.”
-뀨잉뀨잉!
날 따라오는 옐로 슬라임이 대답이라도 하듯 울었다.
“제 테이머 스킬은 암흑 속성 몬스터에게 가장 강하거든요. 암흑 속성 몬스터에게 강한 빛 속성 몬스터의 특성과 만나면 상성이 더 좋아질거에요.”
“그래? 그렇다면야 슬라임을 고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겠구나.”
“네. 얘가 저한텐 딱이에요.”
그러고보니 계속 옐로 슬라임이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이름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 이름을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이름? 글쎄다. 노라니까 노랑이?”
슬라임을 쳐다봤다. 별로 마음에 안드는 눈치.
“흐음···.”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떠냐. 너가 이씨니까. 이 슬람이라고 하든가. 푸하하하.”
임 씨 아저씨는 본인이 말하고 본인이 폭소했다. 하나도 재미 없는데···.
“넌 무슨 이름이 좋겠니?”
슬라임을 집어들고 물었다. 그때 태양빛이 슬라임의 몸을 통과해서 보석처럼 빛났다.
“그래! 태양빛처럼 노란 색이니까 태양이 어떠니?”
“야. 노랑이나 태양이나···.”
-뀨이잉!
태양이는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좋아! 오늘부터 넌 태양이다!”
-뀨잉뀨잉!
마음이 통한 우리 옆에서 이씨 아저씨는 미련이 남는지 이슬람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이 씨 성을 가진 슬라임, 이슬람 좋잖아?”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도 얻었겠다. 임 씨 아저씨는 바로 게이트로 향하자고했다.
“어차피 게이트 정화 작업은 노가다야.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면 부담이 줄어드니까 바로 들어가자고.”
대방동 5479 게이트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아저씨 말처럼 태양이 힘도 시험해 볼겸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태양아 첫 실전이야. 잘 부탁한다!”
-뀨잉뀨잉!
태양이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몸통을 크게 부풀렸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대방동게이트는 최소 10레벨 몬스터들이 나오는 곳인데 1렙 슬라임으로 괜찮을까?”
임 씨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암흑속성 몬스터가 아니면 내 힘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 별 수 없다. E급 헌터인 임 씨 아저씨도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
태양이와 우리 두 사람은 상가 옥상에서 아저씨의 낡은 소나타를 타고 대방동 게이트로 향했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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