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고학 생활

슥슥 삭삭.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몬스터 축사를 쓸었다. 몬스터들한테는 여기가 집일텐데 축사가 너무 더러웠다. 녀석들도 지저분한 집보다는 깨끗한 집에서 지내고 싶겠지.
그런 생각을 들어서 더 열심히 쓸었다.
“너희들도 깨끗한게 기분 좋지?”
-아우~
축사에 있는 그레이 울프 3마리가 기분 좋은지 하울링을 했다.
“호현 군 참 열심이네? 요즘 젊은 친구들 같지 않게 참 성실해.”
지나가던 주임 관리자 아저씨가 기특하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쳤다.
“기왕 일하는거 열심히 깔끔하게 하면 얘네들도 좋고 저도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허허 참 된 친구야. 너희들 설렁설렁하지말고 이 친구 본 받으라고 일한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어째 알바한지 반년 다되가는 늬들보다 낫냐!”
주임 아저씨가 알바 선배들을 흘기며 말했다.
몬스터 축사는 넓어서 한 동을 나와 선배 두 명이 같이 청소했다.
주임 아저씨의 핀잔에 선배들은 궁시렁 거리며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주임 아저씨는 한바퀴 축사를 둘러보고 그레이 울프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이 파트너 몬스터들은 우리가 테이머 헌터 분들한테 위탁받은 녀석들이야. 이놈들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우리한테 이놈들 맡긴 테이머 헌터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성심껏 관리해야해.”
“알고말고요.”
곳곳에 나타난 게이트. 게이트를 제때에 닫지 않으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서 몬스터가 게이트 밖 현실로 뛰쳐나오는 미증유의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2020년 노원구에서 일어난 10.10사태. 10월 10일날 게이트가 터져서 몬스터가 우르르 현실로 뛰쳐나왔다. 몬스터들에 노원구 주민의 절반이 살해당했다.
유례가 없는 대 참사였다.
정부에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게이트를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헌터들과 그들을 돕는 파트너 몬스터들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감사의 마음을 담아 파트너 몬스터들의 축사 청소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야 신입! 열심히 하는 척 적당히 해라. 너 때문에 또 우리 이미지만 나빠지잖아!”
껄렁한 선배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게 쏘아붙였다.
저 사람들은 선배 행세만 하고 참 맘에 안드는 사람들이다.
여기 사는 그레이 울프들이 담배 연기를 싫어한다는 걸 잘 알텐데 여기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니.
“담배 필 거면 나가서 피우세요! 주임 관리자님이 여기는 완전 금연 구역이라고 말하셨어요.”
내가 서슬 퍼렇게 말하자 두 선배는 좀 주춤했다.
“나가서 필라 그랬어!”
궁시렁 거리면서 담배 피러 나간다. 완전 골초다. 하루에 담배를 몇 번을 피는지 일하는 시간보다 담배 피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게다가 한 번 나가면 무슨 담배를 30분을 피다 온다.
-휴우.
농땡이 필 생각만 하는 선배들이 짜증났지만 난 나한테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레이 울프의 축사로 들어가서 더러워진 톱밥을 새 걸로 갈아주고 급수기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레이 울프 점심 식사로 냉장고에서 생닭 20마리를 가져와서 각각 먹이로 주었다. 그레이 울프 3마리는 생닭을 맛있게 먹었다.
내가 30분에 걸쳐서 오전 일과를 끝낼 때 쯤 해서 선배들이 담배를 다 피고 돌아왔다.
“오~ 다 했냐?”
설렁설렁 돌아와서 다 했냐고 묻는다. 원래는 세 명이서 나눠서 해야하는 일인데···.
“네. 청소하고 먹이주는 건 제가 다 했으니까 선배들은 주변 청소만 해주세요.”
선배들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빗자루를 들고 축사 주변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카일을 한 번 보고 퇴근할 생각이었다.
이 몬스터 목장 제일 안쪽 축사에는 오랫동안 싸우다 다쳐 은퇴한 드래곤이 있었다.
이름은 카일.
내가 제일 존경하는 A급 헌터인 남경일 헌터의 파트너 몬스터였던 드래곤이다.
7년전 내가 15살때 우리 학교에 게이트가 갑자기 생겨났다. 학교 주변은 침식되어 이계화 되었고 갑작스런 돌연변이 게이트의 출연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갇혀서 벌벌 떨었다.
그때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이 남경일 헌터였다.
학교 주변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을 전부 처치하고 학생들을 모두 구해주었다.
한번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면 수십 명 씩 죽어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례적으로 모두 생환한 것이다. 다친 사람은 몇 명 있었지만 모두 무사했다.
모두 남경일 헌터 덕이었다.
드래곤 카일도 그때 남경일 헌터랑 같이 싸웠었다.
카일은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 카일은 한 게이트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게이트 밖으로 터져나오는 마기를 온 몸으로 막았다고 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파트너 몬스터로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이 몬스터 목장에서 휴양하고 있었다.
이 목장으로 아르바이트 왔을 때 여기 카일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경일 헌터는 한라산 게이트에서 행방불명 되기 전에 카일을 여기 목장에 맡겼다고 한다.
카일은 나이도 적지 않아 기운이 쇠해진데다가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어서 오래 못 살거라고 했다. 그래도 목장에서 극진히 간호한 끝에 그나마 수의사가 말한 것보다는 오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최근 카일은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해지고 있었다.
“몸 안에 축적된 마기가 카일의 생명을 좀 먹고 있어요. 지금까지 버틴게 용한거죠. 오래는 못 갈 거 같습니다.”
지난 주에 수의사가 와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이후 나는 매일 퇴근 전에 와서 카일의 상황을 살핀 뒤에 퇴근하곤 했다.
“카일 오늘은 좀 괜찮아? 밥은 잘 먹었어?”
내가 코를 쓸어주자 카일은 -그르렁. 하고 울었다.
폭이 10미터 가까이 되는 녀석이지만 내 앞에서는 곧잘 어리광도 부렸다.
“좀만 더 힘내. 분명 나을 수 있을거야.”
주둥이를 쓸어주며 그렇게 위로했지만 나도 카일이 낫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호현아 알바하고 왔어?”
집에 가니 웬 일로 엄마가 집에 와 있었다.
평소엔 아버지 병간호 하시느라 병원에 계셨는데.
“아버지 수술 받으시고 많이 괜찮아지셨어. 잘만 하면 다음달에는 퇴원하실 수도 있으실거라더라.”
“정말요?”
계속 힘든 일만 계속되던 우리 집에 간만에 들리는 좋은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시다 공사현장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터져서 마기를 안 좋게 쐬이셨다. 그게 벌써 반 년 전이다.
각성하지 못한 보통 인간이 마기에 노출되면 몸에 크게 안 좋았다.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방사능 노출의 위험성과도 비견할 만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헌터들이 빨리 출동해서 게이트는 금방 닫히고 희생자도 몇 명 안나오고 사건이 끝났지만 하필이면 아버지가 마기에 잘못 쐬이셨다.
현대 의학으로 몸 속에 들어온 마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각성을 해서 스스로 마기를 몰아내거나 마기가 자연스럽게 빠질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20이 넘어서 각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각성할 일은 없었고 마기가 자연히 빠져나가길 바래야했다.
그러나 마기에 노출된 인간은 힘이 쭉 빠지고 살아도 산게 아니다. 당연히 힘쓰는 일도 하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병원에서 몇 차례에 걸쳐 인공적으로 마기를 빼내는 수술을 해서 어느정도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닐 정도로 마기 농도가 낮아졌다는게 엄마 말이었다.
“네 아버지가 살아난 것만해도 천만 다행이지만 그 많은 병원비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구나.”
원래부터 형편이 안 좋던 우리 집으로서는 따로 보험도 들지 못했다. 나라에서 의료보험을 지원해 준다지만 그럼에도 수술비와 매주 맞아야 하는 약 값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병원비와 약값으로만 벌써 2억 가까이 돈이 나갔다.
우리 집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다세대 주택도 팔고 월세 살이를 시작했다.
방 3개에 거실이 있는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어서 월세가 좀 비싸더라도 큰 집에서 살아야했다.
장남인 나에 세 쌍둥이 여동생들, 할아버지도 우리와 같이 사셨다.
한 집에 7명이 살려면 방 3개인 집도 비좁았다.
부모님이 한 방을 쓰시고 나랑 할아버지가 같은 방을 쓰고 세 명의 여동생들이 한 방을 썼다.
“좁아 죽겠어! 이런데서 어떻게 사냐고!”
막내 여동생 지아가 투덜거렸다.
“참어! 너만 불편하니!”
핀잔을 주는건 둘째인 리아.
“오빠 우리도 알바 늘려서 도울게.”
장녀인 시아가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다.
“뭔 알바야. 이제 너희들도 고3이잖아! 공부나 해! 돈은 오빠랑 엄마가 어떡해서든 마련할 거니까.”
“오빠도 돈 모아서 대학 들어가야지!”
시아가 날 염려하며 말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스무살이 되자마자 군대에 들어갔다. 1년 6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나와서 공부해서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서 입원하시고 내 등록금으로 쓰일 돈은 아버지 병원비로 나가고 말았다.
“현호야 미안하다. 이 아비 때문에··· 내가 죄인이다 죄인이야···.”
아버지는 눈물 흘리시며 고개를 드시지 못했다.
“아빠 걱정마세요! 그래봐야 아직 22살이잖아요! 위인전 보니까 지금 재벌 헌터 기업을 일군 사람들도 대학 안 나오고 다 성공했대요. 저도 알바하면서 사회 경험도 쌓고 대학은 나중에 가려고요.”
“그래도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건데··· 이 아버지 때문에 네가 공부도 못하고 정말 면목이 없다.”
키가 177이신 아버지는 기골도 장대하셨다. 실전 노가다로 압축된 근육을 가지고 계셔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만 봐 왔는데···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작고 외로워 보였다.
“아버지 걱정마시고 몸 조리만 잘 하세요. 돈은 저랑 엄마가 어떻게든 할게요. 할아버지도 경비일 시작하셨어요. 시아, 리아, 지아도 알바 열심히 하고 있고요. 무려 여섯명이서 돈 버는데 아버지 병원비 하나 어떻게 못 하겠어요? 우리 가족 일어설 수 있어요! 아버지만 몸 나으시면 돼요.”
내 말에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셨다.
“그래. 내가 빨리 낫는게 너희들에게 폐를 덜 끼치는 거지. 이 아버지 꼭 나으마. 조금만 참아다오.”
아버지의 눈에 다시 힘이 돌아온 것 같았다.
***
몬스터 목장 아르바이트. 일이 고되고 냄새도 나고 힘들어서 다들 기피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힘든 만큼 보수가 좋았다. 시간당 1만 5천원씩 쳐주었다.
여기서 오전에만 일하면 한 달에 225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오전에 일하고 오후 시간에는 공부를 위해서 시간을 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시면 나도 다시 대학에 갈 준비를 해야했다. 그를 위해서 저녁에는 꼭 시간을 내서 공부를 했다.
근 1년동안 거의 쉬지 않고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삶을 이어갔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 병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버지가 병에서 나으시면 빨리 빚도 갚고 대학도 가야지!
나는 그런 희망을 품고 다시 몬스터 목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향했다.
- 작가의말
연재시각 새벽 1시 55분에 찾아뵙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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