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슬라임이 아니다

“오늘 다들 수고했어요. 다친 사람도 하나 없고. 완벽하게 처리했네.”
담당 경찰관에게 정화 작업을 보고하고 온 최연장자 대장 헌터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특히 오늘 새로 온 신입. 호현 군이라고 했던가? 활약이 대단하네. 덕분에 영민 씨랑 다른 사람들도 살았어. 일도 빨리 끝나고. 젊은 친구가 참 대단해.”
“그 뭐라 그러던가? 젊은 친구들은 대단한 각성자를 EX급이라고 한다던데.”
“아주 대단해. 우리 호현 군 힘숨찐이야 힘숨찐!”
대장 김 씨 아저씨가 내 등을 팍팍 쳤다.
아니··· 아저씨 힘숨찐은 좋은 뜻만은 아닌데요??
힘을 숨긴 찐따란 뜻이니까 제가 찐따란 뜻이잖아요?
뭐 그래도 대장 김씨 아저씨가 좋은 뜻으로 말씀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요 슬라임 이슬람이라고 했던가?”
“태양입니다···.”
“진짜 슬라임 맞어? 뭔 슬라임이 스켈레톤을 줘패냐?”
“가죽만 슬라임이여. 적으로 안 만난게 다행이다 싶더라니까?”
“좋은 파트너 몬스터 고르는 것도 테이머한테는 실력이지. 호현이가 테이머 재능이 있는가보네. 허허.”
헌터 아저씨들은 내 칭찬 뿐 아니라 이제는 태양이 칭찬까지 한바가지로 퍼부었다.
-뀨잉 뀨잉!
태양이도 신났는지 보다 활기차게 흐물거렸다.
“김 씨 아저씨. 오염도는 어느정도 내려갔어요?”
임 씨 아저씨가 대장 헌터 김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 44퍼센트라네.”
“오늘 들어갈 때 오염도가 59퍼 였죠? 많이 줄어들었네.”
“응. 하루에 15퍼센트 줄면 많이 줄은거지. 일진 안 좋을 때는 7퍼 8퍼 줄었을 때도 있었으니까.”
“게이트 오염도가 44퍼센트면 안정화 들어간 건가요?”
내가 물었다. 참고로 안정화라는건 게이트가 가만히 놔둬도 오염도가 올라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44퍼면 좀 애매하지. 그래도 그동안 우리가 놀고 있을 것도 아니잖아. 이번에 초특급 에이스도 들어왔고. 이번 게이트는 문제 없이 닫을 수 있을 거 같다.”
김 씨 아저씨가 날 보고 빙긋 웃어보였다.
헤헤. 초특급 에이스라니. 오늘 살면서 들을 칭찬 다 듣는 날 아닌지 모르겠네.
게이트 공략이 다 끝났는데 헌터 아저씨들은 돌아가지 않고 담배 한 대씩 피면서 게이트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다들 안 들어가세요?”
“어, 마정석 매입해주는 업자가 곧 올거라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정석 팔려고 대기 타는 거야.”
임 씨 아저씨 말에 의하면 게이트 공략이 끝날 때 쯤 헌터 기업에서 마정석 매입 차량을 보내서 마정석을 매입해준다고했다.
“하급 마정석 같은 경우는 많이 팔아야하니까 무게가 무겁잖아. 수수료 비싸게 쳐주는 건 아니지만 편하니까 다들 매입 업자들한테 파는거지.”
임씨 아저씨 말처럼 게이트 쪽으로 육중한 장갑으로 덧댄 방탄 트럭이 한대 들어왔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정석 파실 분들은 줄서주세요!”
건장한 청년 두 사람이 내리더니 트럭 뒤쪽 문을 열고 저울을 바닥에 놓았다. 헌터 아저씨들은 하나둘 마정석이 든 마대 자루를 가지고 트럭 앞으로 와서 줄을 섰다.
“하급 마정석 320g이네요. 25만원입니다.”
“뭐야, 그것 밖에 안돼?”
“불순물이 많이 섞여있어요. 저희는 그냥 회사에서 정한 가격대로 책정해드리는 거에요.”
첫 번째 아저씨는 투덜대며 마정석을 넘기고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바로 다음 아저씨가 나와서 마대자루를 저울 위에 올렸다.
“하급 마정석 130g 13만원 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게이트에서 얻은 마정석을 팔고있었다.
“쩝, 나가서 팔면 여기보다 더 받을 수 있긴한데···.”
“그래요?”
천만원보다 더 받을 수도 있다고?
“근데 여기서 파는게 낫겠다.”
“왜요? 밖에서는 더 비싸게 팔 수도 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게이트 나온 헌터들 노리고 강도질하는 악질들도 있거든. 너 같이 초보 헌터들 많이 노리는데 그냥 여기서 마정석 처분하는게 나을 거야.”
아! 루터들.
Looter 약탈자 도둑이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로 현대에서는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각성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게이트에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각성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범죄이력이 있는 각성자들은 기본적으로 헌터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불만을 품고 가진 힘을 활용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게이트를 정화하고 나온 헌터들을 덮쳐서 마정석과 돈이 될만한 부산물을 강도질하는 것도 루터들이 자주 일으키는 범죄들 중 하나였다.
“위험하고 귀찮은 거 생각하면 그냥 여기 헌터 기업 매입업자들한테 파는게 속 편해. 돈도 알아서 세금 떼고 계좌로 입금해주니까 편하고.”
그래. 괜히 천만원이나 하는 마정석 가지고 있어봐야 걱정돼서 잠도 잘 안 올 거 같다. 스켈레톤 파이터를 잡고 나온 중급 마정석을 바로 처분하기로 했다.
마정석을 팔려고 줄 선 아저씨들 뒤로 갔다.
얼마 안 가 내 차례가 왔다. 자루에서 중급 마정석과 일반 스켈레톤을 잡고 얻은 하급 마정석 몇 개를 꺼냈다.
“와아··· 이거 중급 마정석이죠? 게다가 크기도 상당히 큰데요?”
헌터 기업의 매입업자가 내가 건넨 중급 마정석을 저울에 달아보며 감탄했다.
지이잉.
저울에서 X선 센서가 나와서 내 중급 마정석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무게는 280g에 순도도 좋네요! 감정가 1,100만원 나왔습니다.”
처, 천 백만원?? 내심 기대는 했지만 진짜 이깟 돌맹이가 천만원이 넘는 가치를 가졌다고? 현실감이 아득히 흐려지는 기분이다.
“운이 좋으신 거에요. 요즘 중급 이상 마정석 시세가 많이 올랐거든요.”
그래서 평소보다 더 비싸게 매입하고 있다는 설명.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나야 비싸게 팔 수 있으면 이득이지.
중급 마정석 뿐 아니라 다른 스켈레톤을 잡고 나온 하급 마정석 150g도 같이 팔았다. 이건 13만원 나왔다.
“전부 팔게요. 매입해주세요.”
“넵. 감사합니다. 입금 계좌는 헌터 등록하실때 설정하신 계좌로 입금해드리면 될까요? 함께 은행 1009-625xxxxxxxxx 맞으시죠?”
“네 그 계좌로 입금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내 손에 천백만원이 찍힌 영수증이 쥐어졌다.
“늦어도 내일 모레까지는 입금 될 거에요.”
방탄 트럭은 마정석을 전부 싣고 떠났다.
아직도 실감이 안 든다. 내가 하루만에 천백만원을 벌다니···.
마정석 매입 차량도 가자 다들 슬슬 짐 싸들고 게이트에서 떠날 채비를 했다.
“자자. 다들 수고했고. 내일은 푹 쉬고 내일 모레 오전 10시까지 집합이야. 잊지들 말어!”
김 씨 아저씨의 호령에 아저씨들은 인사를 주고 받으며 삼삼오오 헤어졌다.
“오늘 수고 많았다. 가자. 집까지 태워줄게.”
임 씨 아저씨가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근데 내일은 게이트 안 들어가는 거에요?”
“아무래도 몸 쓰는 일이다보니 하루는 쉬어줘야지. 젊으니까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늙으면 몸에 무리 온다.”
하긴 운동도 원래 하루 열심히 하고 하루 쉬어줘야 근육도 더 잘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태양이는 어쩔거냐? 덩치가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몬스터인데 집에서 키울 수는 없잖아?”
그렇다. 아무래도 집에 데려가면 집 바닥이 점액질 때문에 끈적 거릴 거다. 원래 테이머들은 몬스터 목장들과 계약하고 목장에 몬스터들을 맡긴다. 계약할 때 몬스터들을 언제나 자신이 있는 곳으로 소환할 수 있으니 평소에는 몬스터 목장에 몬스터 관리를 맡기는 것이다.
“제가 아는데가 있거든요. 거기로 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임 씨 아저씨에게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신림동의 ‘우정’ 몬스터 목장 주소를 말해주었다.
“가깝네. 이제부터 두 달간 같이 일할건데 그정도는 도와줘야지.”
임 씨 아저씨는 흔쾌히 신림까지 날 태워다 주셨다.
우정 목장까지 차로 30분 남짓 걸렸다.
아저씨 고물 소나타에서 내려서 몬스터 목장을 둘러봤다.
헌터 일을 시작하며 목장 일을 그만뒀었는데 여긴 변한 게 없었다.
목장을 둘러보며 나는 죽은 드래곤 카일이 생각나서 기분이 좀 울적해졌다.
“너 호현이 아니냐? 헌터 되었다더니 여긴 어쩐 일이야?”
몬스터 축사 바닥에 깔 톱밥을 나르던 주임 관리자 아저씨가 날 알아보고 물었다.
“주임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호현이 너야말로 헌터 되고 고생이 많지?”
나랑 주임 아저씨는 간단히 근황을 주고 받았다.
“너 나가고 나서 제대로 일하는 녀석이 없어서 힘들어 죽겠다. 그렇다고 헌터로 일하는 녀석을 다시 부를 수도 없고··· 근데 무슨 일로 온 거냐?”
“실은 제 파트너 몬스터를 여기 맡기려고요.”
나는 내 발치에서 흐느적거리는 태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파트너 몬스터라니··· 호현이 너 테이머 클래스로 각성했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존경하는 남경일 헌터가 소중한 파트너인 카일을 맡긴 목장이었다. 나도 여기서 몇 달 간 일하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았다. 물론 일을 제대로 안하고 농땡이 부리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주임님이랑 다른 직원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열성적으로 몬스터를 돌봤다.
내가 몬스터를 맡길 곳은 여기 신림 우정 목장말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현이 네 파트너 몬스터인데 우리 목장에서 맡아야지.”
주임 아저씨는 흔쾌히 답했다.
“네가 태양이냐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뀨잉!
태양이가 주임 아저씨에게 답하듯 통통 튀었다.
태양이의 목장 등록을 위해 우리는 검사실로 향했다.
“... 근데 이 녀석 옐로 슬라임 같은데 좀 다르구나.”
태양이의 건강 체크를 하던 주임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르다고요?”
“다를 게 뭐가 있어. 누가 봐도 슬라임인데.”
임 씨 아저씨가 흐흐 웃었다.
“아니. 내가 몬스터 목장에서 일한지만 30년이에요. 일반 옐로 슬라임과는 좀 다른 거 같아요. 일반 옐로 슬라임은 좀 누리끼리한 황색이거든요. 근데 얘는 선명한 황금빛이에요.”
그런가? 주임 아저씨 말을 듣고 태양이를 살폈다. 태양이 피부색이 선명한 노란색인 건 맞았다. 근데 애초에 나는 일반 옐로 슬라임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서 비교할 수도 없다.
“색이야 개체마다 다 다른 것 아니오? 사람도 검둥이 흰둥이 노란둥이 다양하잖아.”
임 씨 아저씨에 말에 주임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옐로 슬라임 중에 변종이 있는데 샤인 슬라임이라고 불린다더군요. 단순히 피부색만 다른게 아니라 성장하면서 성장치가 보통 슬라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에요. 스킬들을 배우는 것도 일반 슬라임과는 다르고요.”
샤인 슬라임? 공교롭게도 내 샤인 테이머 클래스와 이름도 비슷하네.
“이놈이 그렇게 대단한 슬라임이라고? 구로 상가에서 안 팔리고 쩌리로 남은 놈 데려온 건데?”
임 씨 아저씨가 코웃음 쳤다.
태양이는 자기를 얕보는 임 씨 아저씨에게 삐졌는지 눈을 샐쭉하게 떴다.
“저레벨일때는 전문가라도 구분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말그대로 피부색이 밝은 옐로 슬라임인지 샤인 슬라임인지 알 방법이 없어요.”
“그럼 무슨 수로 태양이가 샤인 슬라임인지 판단 할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방법은 딱히 없다. 하지만 이 애가 샤인 슬라임이라면 분명 성장하면서 보통 옐로 슬라임과는 다른 스킬들을 익혀갈 거야. 10 레벨 쯤 되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거다.”
흐음··· 태양이가 특별한 샤인 슬라임? 그런 행운이 나한테 일어날 거 같지는 않지만···.
-뀨잉?
왠지 태양이를 보면 기대하게 된다. 태양아. 너 진짜 특별한 샤인 슬라임이니?
-뀨잉 뀨잉!
내게는 마치 태양이가 자기가 특별한 샤인 슬라임이 맞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절로 미소 지어졌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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