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영웅은 항상 위기의 순간 나타난다고 한다.
꼭 우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려는 듯이 태양이가 레벨업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10이 되었습니다.]
[스킬 ‘빛의 숨결’을 배웠습니다.]
[빛의 숨결 LV.1]
-빛 속성 브레스로 광범위한 영역의 적을 소탕합니다.
소비 MP 100
쿨타임 30분
간단한 설명.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지금 필요한 스킬이었다.
“태양아! 다 쓸어버려!”
-뀨잉!
태양이의 조그만한 입에 빛 입자들이 모였다. 다음 순간 세상이 하얗게 명멸하는가 싶더니 태양이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최강의 몬스터라 불리는 드래곤. 그 드래곤의 상징과도 같은 브레스 스킬을 최약체 슬라임이 사용하는 비현실적 광경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스켈레톤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광범위한 브레스 스킬. 게다가 빛 속성을 띈 공격은 스켈레톤들에게 보통의 배가 넘는 데미지를 입힐 터였다.
[LV.9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LV.7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LV.6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LV.7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LV.9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
띠리리리리···.
빛의 숨결에 타들어가는 스켈레톤들의 모습과 함께 내 귓가에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얻었다는 메세지 팝업이 시끄러울 정도로 울려퍼졌다.
일견 시끄러울 수 있는 그 메세지 알람이 내게는 신나는 EDM음악처럼 들렸다.
두둠칫 둠칫!
절로 어깨가 들썩 들썩.
-그오오오!!
스켈레톤 무리를 통솔하는 스켈레톤 제네럴 마저 꼼짝 없이 빛으로 화해 사라진다.
대박이다.
태양이는 샤인 슬라임이었다.
비유하자면··· 난 로또 당첨 된거야!
소리질러!!!
“으아아아아아!!!”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11이 되었습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12가 되었습니다.]
[파트너 몬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1000exp를 얻습니다.]
[파트너 몬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1000exp를 얻습니다.]
[레벨업! 레벨 4가 되었습니다.]
[응급 회복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응급 회복 LV.2]
하급 스켈레톤 30마리에 레어 몬스터 스켈레톤 제네럴까지 한 큐에 잡은 태양이.
태양이 레벨이 연속해서 2나 올랐다.
레벨 10부터는 파트너 몬스터의 성장에 따른 경험치가 오르나 보다. 총합 2000exp를 받아서 낙수효과로 내 레벨도 같이 상승했다.
“태양아! 난 믿고 있었어!”
-뀨잉?
네가 샤인 슬라임일 거라고 난 믿고있었다고!
태양이를 안아들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기분 말로는 설명 못한다!
살면서 어디서 이벤트 상품 한 번 당첨된 적이 없던 내가 로또 테이머라니!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아니, 방금 그건 무슨 일이야?”
“슬라임 녀석이 빛을 뿜어낸 것처럼 보였는데?”
임 씨 아저씨들을 비롯한 다른 헌터 아저씨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야, 호현아. 대체 어떻게 된거야? 태양이가 대체 무슨 스킬을 쓴 거냐?”
“[빛의 숨결]이라고 브레스 계열 스킬이에요.”
“브레스 계열? 얜 드래곤이 아니고 슬라임이잖아??”
어이없는 눈으로 태양이를 바라보는 임 씨 아저씨.
“아···! 설마 저번에 그 몬스터 목장 사육사가 말했던 레어 슬라임?”
“네. 태양이가 샤인 슬라임이 맞는 거 같아요!”
허허허. 임 씨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긴 나도 믿기지가 않는데 오죽할까.
“브레스를 쓰는 슬라임이 보통일리는 없지. 축하한다. 어째 너한테만 이렇게 운 좋은일이 연속해서 일어나지?”
지난 22년 동안 불행만 찾아왔던 반작용일까? 최근에 아버지가 퇴원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샤인 슬라임인 태양이가 내 파트너 몬스터가 되고 샤인 테이머라는 희귀한 클래스로도 각성했다.
갑자기 나한테 행운이 쏟아지는 상황.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살다보면 갑자기 운이 좋아질 때가 있는 법이야. 착하고 성실하게 산 사람들도 보답받을 때가 있어야지.”
언제 오신 건지 대장 김 씨 아저씨가 우리 뒤쪽에서 나타났다.
“갑자기 레어 몬스터가 나타났다고해서 급하게 달려왔더니만 우리 EX급 테이머가 또 한 건 해결했나 보구만.”
“호현아 덕분에 살았다! 진짜 너 아니었으면 황천길 갈 뻔했다.”
몬스터에 쫒기며 날 불렀던 아저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뭘요. 아저씨가 몬스터 많이 몰아와 주신 덕분에 결국 태양이도 레벨업하고 레어 스킬도 배웠잖아요.”
태양이가 한 번에 잡은 몬스터만 30마리. 떨어진 마정석을 줍는 것만 해도 일이다.
“다들 호현이 마정석 주워주자고! 우리가 뭐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잡일이라도 거들어 줘야지.”
김 씨 아저씨 말에 다른 아저씨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 스켈레톤 잔해를 뒤져가며 마정석을 찾았다.
“놔두세요. 제가 찾으면 돼요.”
“아냐. 호현이 넌 좀 쉬어. 그래도 이 아저씨들이 헌터 선밴데 도움 받고 입 싹 닫을 수는 없잖아. 저런 잡일이라도 해야지 맘이 좀 편하지.”
임 씨 아저씨까지 나서서 날 막았다.
어쩔 수 없지.
지친 태양이에게 응급 회복 스킬로 조금 활기를 되찾게 도왔다.
그 후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에 앉아서 얼마간 쉬었다.
“자, 받아라.”
김 씨 아저씨가 묵직한 마대자루를 건네주었다.
안에는 30마리의 스켈레톤에게서 나온 하급 마정석이 수북히 담겨 있었다.
와··· 이 정도면 3kg은 되겠는데?
중급 마정석도 꽤나 크다. 2~300g은 충분히 될 것 같았다.
게이트 들어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이가 무시무시하다.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라.”
“그래, 남은 건 잔챙이니까. 우리도 조금이라도 벌어 가야지.”
아저씨들이 농담 조로 말했다.
나로서는 오늘 벌만큼 벌었고 태양이가 샤인 슬라임이라는 것도 알았다.
행운은 이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치지.
설렁설렁 아저씨들 사냥을 지켜보다가 시간 맞춰서 게이트에서 나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담당 경찰관이 경례를 올려 붙였다.
“김 경관. 오염도는 어때?”
김 씨 아저씨가 경관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염도가 19퍼센트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며칠 내로 안정권으로 접어들 것 같아요.”
오염도가 줄어 안정권으로 접어든 게이트는 가만히 놔둬도 점차 오염도가 낮아지다 이윽고 자연소멸한다.
“휴우. 한 건 해결했구만.”
김 씨 아저씨가 보람찬 표정으로 웃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게이트에 파견된 헌터 아저씨들 얼굴에서 보람찬 자부심이 느껴졌다. 다들 돈 때문에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기뻐하는 아저씨들 모습에서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게이트를 닫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호현이가 수고 많았어. 설마 오늘 레어 몬스터까지 포함된 스켈레톤 30마리를 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 덕분에 오염도가 극적으로 떨어져서 게이트가 안정권에 접어든 거지.”
“수고 많았다!”
“뭘요··· 아저씨들이 도와주셔서 편하게 싸울 수 있었죠.”
“흐흐. 젊은 녀석이 예의도 발라.”
“진짜 된 놈이다. 내 딸이 쫌만 더 컸어도 사위 삼는 건데.”
안정권에 접어든 게이트는 헌터 두 세 명이 관리하면 된다. 지금처럼 십여 명의 헌터가 투입될 필요는 없다는 모양.
“이 정도면 됐다. 넌 한 단계 위 게이트로 가야지.”
임 씨 아저씨가 권하는 것처럼 돈을 벌려면 더 상급 게이트로 향할 필요가 있었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 일 수록 마정석도 더 많이 나오니까.
“내일 하루 쉬고 모레 각성청으로 나와. 유동명 팀장이 다음 게이트 지정해줄 거야.”
***
임 씨 아저씨의 고물 소나타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엄마에게 돌아왔다고 인사해야지.
“호현이 왔니? 피곤하지? 별일 없었고?”
주방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시는 어머니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 있었다.
아무래도 빚 갚을 일이 막막해서인 듯 싶었다.
“엄마, 잠깐 얘기 좀 해요.”
나는 엄마를 데리고 안 방으로 왔다.
“왜? 무슨 일인데?”
“엄마 계좌 번호 불러주세요.”
“계좌 번호? 그건 왜?”
“저 헌터 일해서 번 돈 드리려고요.”
“뭐? 그 돈을 왜 날 주니?”
“아버지 병원비 대시느라 빚 많이 졌잖아요. 조금이라도 보태려고요.”
엄마는 고개를 저으셨다. 그리고 완강한 어조로 말하셨다.
“호현이 네가 그럴 필요 없어. 엄마가 다 갚을 수 있어.”
갚으실 수야 있겠지. 근데 몇 년 동안 고생하시고 빚 갚느라 힘들어하시는 엄마 모습을 내가 어떻게 보겠어.
“괜찮아요. 저 돈 많이 벌어요. 그리고 제가 뭐 바보 같이 버는 돈 엄마 다 갖다드리는 것도 아니고요. 저 쓸거 쓰고 남는 돈 드리려는 거에요.”
“남는 돈이라니? 너 나중에 대학교 갈 등록금도 모으고 또 결혼할 자금도 모으고 그래야지! 엄마한테 쓸 돈이 어딨니?”
엄마는 완강히 거절하셨다.
“아니, 그럼 빌려드리는 걸로 할게요! 어차피 저 2년 동안 헌터 의무복무라 대학도 당장 못 가잖아요. 또 아직 여친도 없는데 언제 결혼할지 멀었구요. 나이도 22살인데 적어도 8년 후에는 결혼해야지 저도 안 억울하죠. 저 청춘 즐기다 서른 넘어서 결혼할 생각이니까 그 때 돈 갚으세요!”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다.
“호현아. 엄마가 못 나서 미안하다. 어린 너한테까지···.”
“뭐가 미안해요. 엄마가 저 잘 키워주셨잖아요. 저도 이제 스물 두살이에요. 다 컸다고요. 돈도 버니까 이제 사회인이잖아요. 저도 엄마한테 효도해야죠.”
“... 그래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났다.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바로 엄마 계좌에 1천만원 송금해드렸다. 처음 게이트 들어갔을 때 팔았던 마정석 대금이다.
그 후에 팔았던 마정석 대금도 입금 될테고 태양이 돌봐주는 우정 목장 사용료는 다음 달에 합산해서 내면 되니까··· 이정도 돈 쯤 써도 되겠지.
“아, 아니! 너가 돈이 어딨다고 천만원이나··· 당장 다시 가져가라!”
엄마가 계좌에 입금된 돈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한 100만원이나 넣어줄 줄 아셨던 모양.
“가만 있으면 이자 많이 나오잖아요. 이걸로 원금부터 갚으세요.”
엄마가 돈을 빌린 곳은 사금융이라 1금융권에 비하면 이자가 무시무시하다. 돈 생기는 족족 원금부터 갚아나가야지.
“호현이 너 정말 이거 일해서 번 거야?”
돈이 너무 많았나? 어머니가 이젠 이상한 의심까지 하신다.
“엄마는 TV도 안 보세요? A급 노상겸 헌터, 주서욱 헌터 이런 사람들 월급도 아니고 주급이 1억이래잖아요! 헌터 돈 많이 벌어요.”
내 말에도 못 믿는 눈치.
“그 사람들은 초 유명 헌터들 아니니? 넌 헌터 된지 한 달도 안됐잖아? 근데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나니?”
“마정석 아시죠? 완전 희귀한 중급 마정석을 제가 발견했어요. 오늘도 게이트에서 나온 마정석 팔아서 제가 번 돈이 1300만원이에요!”
한참을 설득한 끝에 어머니는 어찌어찌 돈을 받으셨다.
“호현아. 차용증 쓰자. 엄마가 진짜 이 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줄게.”
“에이··· 가족끼리 차용증은 무슨. 무이자로 편할 때 갚으세요.”
돌려 받을 생각도 없다. 앞으로 더 상급 게이트로 가면 더 많이 벌텐데. 고작 천 만원은 그냥 어머니 드려야지.
앞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빚도 다 갚고 우리 가족 더 큰 집으로 이사도 시켜주고. 할 일이 많다.
“진짜 내가 아들 너 때문에 산다. 우리 효자···.”
내 등을 두드려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작가의말
불효자는 웁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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