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억울해
“몸 조심해라.”
“네 아버지도 재활치료 잘 받으세요.”
아버지가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먹고 보호장비 착용을 마칠 때 쯤 띠리리 전화가 울렸다. 희권 아저씨였다. 저번에 헤어질 때 노원구까지 태워다주신다고했었지.
아저씨는 고맙게도 날 태워주시러 집 앞까지 오셨다. 밖으로 나가보니 집 앞 골목에 낡은 소나타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다가가니 창문이 내려가다 덜커덕 멈췄다.
“고장난 거 아니에요?”
“아 씨··· 고쳐야겠네. 어쨌든 타라. 차타고 가야지 지하철로 가기에 노원은 너무 멀어.”
“저도 차 한 대 사야겠어요.”
매일 고속 버스나 지하철 타고 경기도나 강원도로 갈 수는 없으니까.
운전면허는 없으니 자율주행 차량으로. 미국 자율주행 차가 얼마 정도하지? 진지하게 차량 한대 구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경기도나 강원도 게이트 배정받으려면 차가 있어야 편하지.”
“아저씨는 자율주행차로 안바꾸세요?”
초전도체인 마정석이 개발된 이후로 자율주행차 배터리 성능 등 여러 기능이 많이 개선되었다. 요즘 세상에서 구형 내연기관 차량을 타는 건 아저씨처럼 몇몇 사람들 뿐이다.
“나도 이놈 고장나면 자율주행 차량으로 갈아타려고 했는데 영 고장이 안나네. 우리 나라가 차 하나는 튼튼하게 잘 만들어 하하하.”
아저씨랑 자동차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노원구 게이트에 도착했다.
근처 주차장을 찾아서 고물 소나타를 주차하고 게이트로 향했다.
이번 게이트는 시장 한복판에 생겼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이 벌써 일주일 째 장사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민원이 심한지 죽겠어요. E급 게이트면 어차피 별로 안 위험한 거 아니냐, 우리 장사하게 해달라 난립니다.”
담당 경찰이 하소연했다.
“니미··· 게이트 브레이크 터져서 몬스터 다 뛰쳐나와봐야 정신차리지. 하여간 안전 불감증이야.”
“빨리 게이트 닫아야 겠네요.”
“아냐. 그 상인들 사정 봐준다고 괜히 무리하다가 우리가 큰 사고 당할 수도 있어. 게다가 근처 접근 못하게 하는 건 게이트에서 마기가 새어나와서 오염될 수도 있으니까 막는 건데 각성자도 아닌 인간들이 마기 무서운 줄 모른단 말이지.”
임 씨 아저씨 말이 옳긴하다. 괜히 무리하다 게이트에서 다치면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으니까. 그래도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다 넉넉하시진 않을텐데 게이트 때문에 몇 주나 장사 못하면 타격이 얼마나 심할까. 내가 안전한 선에선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닫아주고 싶었다.
노란 띠로 두른 출입금지 선 안쪽으로 들어가자 저번 대방동 게이트 때처럼 헌터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게 보였다.
게이트 진입 준비를 하고 있는 헌터들이다. 무기 점검도 하고 구석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방동 게이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 비율이 확 늘었다는 것.
F급 게이트에서는 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간간이 섞여있다.
“F급 게이트는 헌터로서 가망성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E급 게이트부터는 초보 헌터들도 절반 정도 있거든 여기서 안 죽고 잘 성장하면 D급이 돼서 진짜 헌터라고 불릴 자격이 되는 거지.”
희권 아저씨 말에 의하면 D급이 가장 헌터 숫자도 많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급이라고 했다. 보통 프로 헌터라고 하면 D급 헌터를 말한다. F급은 각성은 했지만 게이트를 들어가는 것만 가능할 뿐 별다른 능력이 없거나 나이가 너무 많아 육체 기력이 쇠한 사람들이 많은 구간이고 E급은 나 같은 초보 헌터들이나 희권 아저씨 처럼 D급이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밀려나거나 은퇴하기 직전인 사람들이 많은 구간이라고 한다.
“C급 정도 되면 잘나가는 헌터라고 봐야지. B급 부터는 천상계고. A급은 뭐 말할 필요도 없지. 매일 뉴스에 나오고 우리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헌터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도 A급 헌터 노상겸, 주서욱 등의 이름은 알 정도니까. 그리고 날 구해주셨던 남경일 헌터도 B급에서 결국 A급 헌터 자격을 취득하셨다. 다만 남경일 헌터 같은 경우는 A급이 된지 얼마 안 돼서 한라산 게이트에서 행방불명되셔서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야~ 젊은 친구들이 다들 눈이 살아있네. 나도 젊을 때는 저랬는데.”
아저씨 말처럼 젊은 헌터들은 다들 긴장하면서도 날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희권 아저씨는 구석으로 담배 피러 갔고 나는 젊은 헌터들이 모여있는 간이 천막으로 갔다. 천막에 구비되어 있는 접이식 의자를 하나 꺼내 앉았다.
“야, 그 소문 들었어?”
“뭔 소문?”
옆에서 얘기를 나누는 젊은 헌터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게이트에 모인 헌터 중에 대단한 녀석이 있다던데. 헌터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하급 게이트를 다 쓸어버리다시피하는 녀석이 있다더라고.”
“뭐? 진짜? 그게 말이 되냐?”
“레알로. 서울 헌터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소문이야. 빛 속성이라서 암흑 속성 몬스터들은 상대가 안 된대. 그래서 일부러 암흑 속성 게이트만 찾아다닌다는데?”
“그런 놈이 다 있어?”
“아마 엄청난 레어 클래스를 각성한 거 아닐까?”
서, 설마··· 내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나? 흐흐흐. 이거 참 부끄럽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흠흠.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거참··· 거북스럽네 조용히 자리 일어나야하나?
“그 사람 이름이 대체 뭐야?”
크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편하구만.
“분명 이름이 정승원이었을 거야. 클래스는 라이트 세이버라고 하더라고.”
···.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하긴 벌써 내 소문이 노원구까지 퍼질리는 없겠지.
“F급 라이센스 따고 딱 두 달 채워서 바로 E급 라이센스 땄다더라고. 지금도 등급은 E급이지만 실력은 D급 프로 헌터들이랑 비교해서 뒤떨어지지않을거라고 아저씨들이 그러더라.”
“야··· 세상 참 불공평하다. 누구는 1, 2년 열심히 해서 겨우 E급 라이센스 도전하는데 그런 재능충은 2개월 만에 E급으로 올라가네.”
“D급 라이센스 따려면 무조건 E급에서 반 년 이상 활동해야 하잖아. 그것만 아니었으면 벌써 D급 받고도 남았을 거랜다. 게다가 집안도 빵빵해서 할아버지가 각성청 전 장관이고 큰아버지가 각성청 국장이래.”
“완전 헌터 엘리트 집안 출신이잖아. 그런 놈이 희귀 클래스 각성까지 해? 진짜 다가졌네. 어떤 놈인지 궁금하다야.”
“곧 오겠지.”
두 사람은 정승원 얘기로 한참을 시시덕 거렸다.
그나저나 나처럼 빛 속성 클래스를 각성해서 암흑 속성 게이트만 돌아다니는 놈이 또 있었구나. 왠지 동질감 느껴지네. 나도 옆에서 시시덕대는 청년 헌터들처럼 그 정승원이라는 녀석이 궁금해졌다.
“어! 저, 저기 저놈인 거 같은데?”
경찰 안내를 받으며 한 녀석이 출입통제선 안쪽으로 들어왔다. 좀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을 지녔다. 게다가 푸른 은빛을 띄는 방어구들은 척 봐도 비싼 레어아이템 같았다.
정승원이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야~ 저놈이 정승원인가? 과연 때깔부터 다르구만.”
내 옆에 어느샌가 희권 아저씨가 와 있었다.
“아저씨도 저 친구 아세요?”
“아까 담배피면서 다른 헌터 아재들한테 들었다. 최근에 유명해진 놈이라던데.”
정승원 근처로 남이랑 말 섞기 좋아하는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정승원 헌터 맞죠?”
“소문 많이 들었어요. 잘부탁합니다.”
살갑게 인사하는 헌터들을 쓱 둘러보더니 정승원은 고개를 끄덕이듯말듯 하며 목례하고 지나갔다.
“거, 인사 좀 하고 살지. 젊은 친구가 예의가 없네.”
쌜쭉하게 혼잣말하는 아저씨 헌터의 말을 들었는지 정승원이 코웃음쳤다.
“아저씨들. 게이트가 장난이에요? 살고 싶으면 괜히 친목질한다고 시간 낭비 말고 본인 장비 점검이나 해요.”
정승원이 노려보자 멀리 떨어진 나까지 움찔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아까 들으니까 실력만큼이나 싸가지 없는 걸로도 유명하더라고. 크크.”
희권 아저씨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그때 익숙한 얼굴 세 명이 나랑 희권 아저씨 쪽으로 다가왔다.
“호현아. 오랜만이다!”
“어, 아저씨들도 여기 게이트 배정받으셨어요?”
나는 세 명의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했다. 대방동 게이트에서 같이 정화 작업을 했던 E급 헌터 아저씨들이다.
“희권 씨도 잘 지냈어?”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우리는 호현이 옆에 착 붙어 다니려고. E급 게이트는 아무래도 F급 게이트보다 위험하잖아.”
“그래. 사고도 많이 나고. 호현아. 우리 신세 좀 져도 괜찮겠냐?”
뭘 신세까지야. 나로서도 아저씨들이 옆에 있으면 안심되고 좋다. 여차하면 아저씨들이 탱커 역할을 해줄테니까.
“다 같이 게이트 공략하시죠. 저도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 많으면 사냥하기 편해요.”
“야~ 역시 호현이는 인성까지 됐어.”
“다들 저 정승원이라는 녀석 얘기만 하더만. 내가 볼 때는 우리 호현이도 저 놈 못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지.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호현아, 저 정승원이라는 놈보다 더 활약해서 콧대 좀 꺾어줘라.”
하하하. 뭘 또 다른 애랑 경쟁까지 할 필요 있나.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자, 다들 모였나? 슬슬 준비해요. 게이트 들어가야지.”
이번 노원구 게이트의 대장 역할을 맡은 D급 헌터가 사람들을 중앙으로 불러모았다.
나이는 30대 중반 쯤 됐을까? 큰 덩치의 네모난 턱을 지닌 헌터를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남자였다.
대장의 말에 모인 인원은 날 포함해서 15명.
저번 F급 게이트에 비교해서 5명이나 많아졌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겠지.
“자 그럼 점호 하겠습니다. E급 박원우 씨. 오셨어요?”
“넵!”
“E급 우성준 씨.”
“네~.”
한 명씩 인원 체크를 한다. 그러다 대장이 한 명을 발견하고 미소지었다.
“승원이 왔구나. 잘 부탁한다. 혹시 위기 빠진 사람들 있으면 좀 구해주고.”
대장 헌터는 정승원을 잘 아는 듯 그에게만 살갑게 인사했다.
“저 사냥하는데 걸리적 거리지만 않으면요.”
“짜식~ 성깔머리 하고는.”
피식 웃으면서 다음 사람을 호명한다.
“오? F급도 오셨네. 이 게이트 쉽지 않을 텐데. 이호현 씨.”
“네.”
손을 들었다.
내 모습을 확인하고 대장 헌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호현 씨··· 초보 같은데? E급 게이트 들어가도 정말 괜찮겠어요?”
의심스런 눈초리로 날 째려본다.
억울하다. 지금까지 F급 게이트를 하드캐리하는 EX급 테이머라고 불렸는데 여기선 완전 어른들 일하는데 끼어든 애 취급이잖아?
“이 친구 실력은 문제 없어요. 내가 보증합니다.”
희권 아저씨!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나 대신 나섰다.
“누구?”
“E급 헌터 임희권이오. 얘 사수로 같이 게이트 돌고 있어요.”
“보니까 베테랑 같으신데 이제 두 번째 게이트 도는 초짜를 E급에 데려오는 게 맞습니까?”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두 번째 정화라고?”
“장난하나. 이거 1명은 깍두기라고 생각해야겠네.”
“그러게 말야 헌터 한 명 한 명이 중요한데. 꼭 10명으로 축구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다들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악! 이거 진짜 억울하다···.
희권 아저씨 목소리도 점차 커졌다.
“니미··· 나이도 어린 게! 늬가 얘 싸우는 걸 봤어야해! 내가 아무렴 암것도 모르는 초짜 헌터를 E급 게이트로 데려올까!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아저씨 진정하세요!”
대장도 더 했다간 언쟁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거두었다.
“아저씨가 잘 챙기세요. 사고 일어나도 난 모릅니다.”
“사고는 개뿔! 야 호현아. 게이트 가서 너 혼자 몬스터 한 30마리 잡아라!”
희권 아저씨 말에 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참. F급 게이트에서 매일 칭찬 세례만 받다보니 영 적응 안되네. 억울하기도 하고.
실력 함 보여줘?
- 작가의말
12월 시작! 독자님들 한 해 마무리 잘하세요!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