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샤인 애로우!”
-뀨잉!
태양이가 만들어낸 빛의 화살이 섀도우 워커를 꿰뚫었다.
-@₩#%!
괴성을 지르며 안개처럼 흩어지는 섀도우 워커.
“와···!”
“대단하다. 벌써 몇 마리 째야?”
“5마리야··· 게이트 진입한지 두 시간도 안 지났는데···.”
“아무리 마법 공격이라지만 섀도우 워커는 E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급인데 한 번 공격으로 잡아버리네?”
지난번 게이트 정화 때 정승원처럼 내 주변에는 대방동 게이트에서 만난 아저씨들 외에도 젊은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내 주위에서 어슬렁 멤돌며 사냥하면서 내가 섀도우 워커를 사냥하는 걸 감탄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
“야··· 꼭 팬클럽 끌고 다니는 아이돌 같네. 네가 몬스터 한 마리 잡으면 와 하고 함성이 터지잖아.”
희권 아저씨가 낄낄 웃었다.
“...놀리지 마세요.”
물리 감쇄 특성이 없었다면 섀도우 워커는 본래 태양이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샤인 애로우!”
-뀨잉!
파파파팟!
태양이는 파죽지세로 게이트 안의 섀도우 워커가 보이는 족족 원샷원킬로 사냥해나갔다.
[LV.17 섀도우 워커를 처치했습니다.]
[스킬 성장 가속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890exp를 얻습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14가 되었습니다.]
섀도우 워커는 경험치도 많이 준다. 태양이는 쑥쑥 레벨업해 나갔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15가 되었습니다.]
태양이가 레벨업하면서 들어오는 경험치의 낙수 효과로 나도 성장해나간다.
[파트너 몬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1000exp를 얻습니다.]
[파트너 몬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1000exp를 얻습니다.]
[레벨업! 레벨 5가 되었습니다.]
[성장가속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성장 가속 LV.3]
으하하. 아주 쭉쭉오른다! 도파민 뿜뿜이다!
오후 4시 게이트 정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내가 잡은 섀도우 워커는 모두 17마리. 거기서 나온 하급 마정석만 4kg 가까이 된다. 마정석을 담은 마대자루가 상당히 묵직하다. 그래도 이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무거운 줄 모르겠다.
게이트에서 나오고 나서도 사람들은 내 얘기로 시끄러웠다.
“이호현 헌터가 섀도우 워커를 17마리나 잡았다는데?”
“대박이네··· 정말로 F급 맞어?”
“헌터 등급 시험이 원래 최소 기간은 채워야지 응시할 수 있잖아. 정승원 헌터만 해도 원래는 D급 헌터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다들 인정하고 있고.”
“그러고보니 정승원 헌터는 오늘 사냥 결과가 어떻게 되나?”
“섀도우 워커 12마리 사냥했을걸?”
“그것도 대단하긴 한데···.”
“그치? 이호현 헌터랑 비교하니까 왠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거 같지.”
“정승원 헌터보다 이호현 헌터가 더 대단한데?”
거참. 딴에는 내 귀에 안 들어가게 속닥거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각성해서 신체능력이 좋아져서 그런지 작게나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들렸다. 뒷담화도 아니고 뒷칭찬?? 귀가 간지럽다.
“어이, 친구들. 내가 호현이랑 대방동 게이트 같이 돌고 그랬어.”
마정석 매입 차량을 기다리며 모여 내 뒷 칭찬을 하고 있는 젊은 헌터 그룹에 키 작은 아저씨가 끼었다. 대방동 게이트에서부터 함께했던 3인방 아저씨 중 하나인 만수 아저씨다.
“진짜요? 대방동 게이트에서는 어땠는데요?”
“분명 초짜 F급 테이머라고 그랬는데 대방동 게이트 들어가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지. 그 때 붙은 별명이 뭔지 아나? EX급 테이머야. 다들 EX급 테이머라고 불렀어.”
아··· 만수 아저씨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그 별명을 다시 입에 담아버렸다.
“오···!”
“EX급 테이머··· 확실히 어울리긴 하네요. 가진 스킬이 진짜 규격 외 잖아요.”
왠지 내 별명이 EX급 테이머로 고착될 거 같다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
게이트에서 마정석을 판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하급 마정석을 팔고 350만원을 벌었다.
양은 묵직했지만 역시 하급 마정석은 중급 이상의 마정석에 비하면 돈이 안 된다.
아니지.
계속 잭팟 터지듯이 큰 돈이 벌려서 감각이 이상해진 것 같다. 350만원도 한 달 일해야 벌까말까한 큰 돈인데. 그런 큰 돈이 하루만에 들어오다니 충분히 대박이지.
“이제 오냐? 게이트에서는 별 일 없었고?”
집에 돌아가니 아버지께서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재활 센터 갔다 오셨어요?”
“어. 이 아빠가 운동도 열심히 하잖냐. 재활 센터에서도 몇 개월만 더 치료 받으면 일상생활하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란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셨다.
“게이트에서 일하고 오느라 배고프지? 참치 찌개 끓여놨다. 한 번 맛 볼래?”
오! 참치 찌개!
바로 한 숟갈 떠서 맛 봤다.
“맛있어요!”
요리와 집안일에 집중하셔서 그런지 요즘 아버지 요리 레퍼토리도 많이 늘어나고 맛도 좋아졌다.
건강은 생각 안하시고 미원을 듬뿍 넣으셔서 그런지 MSG의 깊은 감칠맛이 도는게 진짜 식당에서 파는 참치찌개 먹는 것 같았다.
“그러냐?”
아버지는 기분 좋으신듯 눈가가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나저나 시아가 무슨 일이 있나?”
“시아요? 시아가 왜요?”
“그냥··· 요새 왠지 말수가 적고 딴 생각하는 거 같이 멍하니 있는게 뭔 고민이라도 있는 거 같애.”
시아가 원래 리아나 지아처럼 막 떠드는 애는 아니긴 한데.
“제가 한 번 살필게요.”
요즘 헌터일이 바빠지고 아버지 퇴원하느라 정신없고해서 동생들을 잘 못 살폈다. 간만에 둘이서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힘든 거 없는지 얘기 들어주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그럴래? 아무래도 아빠나 엄마한테는 말하기 힘든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고3이고 앞으로 진로 문제라든가 여러가지로 고민할 게 많을 나이였다.
오늘은 더 할 일도 없고 내일은 마침 쉬는 날이다.
저녁에 시아가 알바하는 카페로 찾아가서 한 번 얘기라도 해볼까?
시아는 학교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집에서 쉬다 시아 아르바이트 끝날 때 쯤해서 시아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갔다.
“어 오빠? 왠 일이야?”
“왠일은, 가끔은 여동생 저녁이나 사줄까해서 왔지.”
“됐어. 돈 아깝게. 집에 가서 저녁 먹으면 되지.”
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야, 오빠 이제 돈 잘 벌어. 가끔 밖에서 외식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너 파스타 좋아하잖아. 근처 맛있는데 있던데 같이 가자.”
“그래도··· 돈 아껴야지.”
“너랑 같이 밥 먹는게 몇 달에 한 번인데 그거 아낀다고 부자 되는 거 아냐. 너 자꾸 오빠 자존심 상하게 뻐팅길래?”
계속 되는 억지에 결국 시아가 졌다.
“알았어. 좀만 기다려. 교대할 사람 오면 바로 나갈게.”
나는 시아가 서비스로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면서 구석에서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시아랑 교대할 알바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카페에 도착했다.
시아는 알바생에게 인수인계 끝내고 탈의실에서 유니폼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오빠, 많이 기다렸지? 가자.”
시아랑 근처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인테리어가 깔끔해서 여자애들이 좋아할 법한 가게다.
야··· 파스타가 기본 13,000원부터 시작하네. 그냥 국수다발 볶은게 왜 이렇게 비싸지?
하지만 내가 누구? 하루에 300만원씩 버는 EX급 헌터다.
“가격 보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시켜!”
시아가 피식 웃었다.
“진짜? 나 젤 비싼 트러플 파스타 시켜버린다.”
“여기 주문이요! 트러플 파스타 하나랑···.”
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 농담이야. 난 그냥 토마토 파스타 먹을래.”
“아냐, 트러플 시켜. 난 바닷가재 들어간 씨푸드 파스타 먹으려고. 서로 나눠서 먹어보자.”
“진짜로? 7,8만원은 나올텐데···?”
“언제 이런 것도 한 번 먹어보고 그래야지.”
나는 주문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트러플 파스타와 씨푸드 파스타 하나씩 시켰다.
“사이드로 굴 그라탱이랑 안타파스토? 이것도 하나씩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나간 후 시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오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아. 돈은 다 오빠가 낼 테니까 걱정하지마. 오늘 몬스터 많이 잡아서 이 정도는 낼 수 있어.”
시아는 돈 걱정을 하면서도 막상 파스타와 사이드 메뉴가 나오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맛있어···.”
시아가 파스타를 오물거리며 미소지었다.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도 되니까.”
“치이. 지금 있는 것도 다 못 먹겠다. 이렇게 무리하면 금방 빈털터리 되는 거 아냐?”
“너한테만 이렇게 쓰는 거야. 오빠 평소에 짠돌인 거 몰라?”
“근데 나한테만 이렇게 사줘도 되나? 리아, 지아는?”
“걔네들한테도 다 따로 사줄 거야. 오늘은 너랑 얘기도 하고 싶어서 따로 부른 거고.”
“얘기? 무슨 얘기?”
“너도 고3이고 곧 입시도 있잖아. 최근에 내가 너희들 신경 못 쓴 거도 있고해서··· 뭐 힘든 거 있으면 다 말해 봐.”
“힘든 거 없어.”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파스타를 우물거렸다.
흐음···아버지가 말한 그냥 말수가 적어지고 표정이 어둡다는 걸로만 시아가 말 못할 고민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둘이서 마주보고 식사하다보니 시아 분위기가 왠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 뭔가 고민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무슨 걱정거리 있으면 다 말해봐.”
“으음···.”
시아는 말 끝을 흐리다 입을 열었다.
“스토킹··· 까지는 아닌데 전부터 카페에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있단 말이지. 근데 왠지 요즘 날 보는 눈빛이 좀 달라진 거 같아서···자꾸 쳐다보는 것만 같고.”
“뭐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바로 말해야지!”
“아니··· 딱히 그 사람이 나한테 뭘 한 것도 아니고 날 본다는 것도 그냥 내 생각일 수 있으니까···.”
시아가 말 못한 것도 납득은 간다. 아직 무슨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니니까. 다만 오빠로서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상황.
어떤 놈이 시아 근처에서 얼쩡거리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언제쯤 오는데?”
“알바 끝날 때 쯤 자주 오거든. 그래서 오늘 오빠가 와줘서 좀 안심했어.”
“시아야. 또 그놈이 나타나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가서 몰래 지켜볼테니까.”
대체 위험한 놈인지 아닌지 한 번 판단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시아한테 연락이 왔다.
[그 손님 또 왔어. 지금 커피숍에 있음!]
시아 연락을 받고 나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혹시나 스토커한테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줘야겠다 생각하고 바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에 도착하니 어떤 놈이 시아 앞에서 껄떡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요··· 너무 제 타입이셔서··· 용기 내서 말하는 겁니다. 번호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저 곤란해요.”
“그럼 이거 제 번호 거든요? 연락 주세요.”
스토커 놈이 자기 번호가 적힌 종이쪽지를 억지로 시아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이런 거 못 받아요.”
“맘 내킬 때 연락 주시면 돼요.”
안 받겠다는 걸 억지로 쥐어주려는 녀석.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야 이자식아! 싫다잖아!”
스토커 녀석의 팔을 확 잡아챘다.
“넌 뭐야?!”
이자식··· 정승원이잖아?
나한테 손아귀를 잡힌 놈은 E급 헌터 정승원이었다.
시아를 따라다니던 스토커가 정승원이란 말야?
세상 참 좁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여동생을 지켜야 한다. 난 정승원 놈을 단호히 노려봤다.
정승원 녀석도 날 알아봤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빠!”
혹시 싸움이라도 일어날까 염려했는지 시아가 날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니 이놈을 가만히 놔둘 순 없다. 난 계속 정승원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왜 여깄어?”
“... 다음에 또 올게요.”
내 손을 뿌리치고 정승원은 도망치듯이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 작가의말
벌써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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