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그오오?
동면에서 일어난 골렘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으아아···.”
“크, 크다···.”
주위 헌터들이 무기를 들려는 것을 막았다.
“다들 무기 내려 놓으세요.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걸 인식시켜야해요!”
“저놈이 갑자기 덮치면 어떡해요?”
다들 커다란 골렘이 무서워서 불안한 듯했다.
대장 헌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 생각을 이해했는지 대장 박진우 헌터가 나섰다.
“테이머 헌터님 말대로 무기 내려 놓읍시다. 골렘 타입은 발이 느려서 여차하면 도망치면 돼요.”
대장의 말에 헌터들이 무기를 거두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골렘도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당장 우리를 공격하진 않았다.
[몬스터 골렘과 교섭이 가능해졌습니다.]
[교섭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교섭해야지.
[골렘에게 동료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골렘은 배가 고픈 것 같습니다.]
[마정석 5kg이 필요합니다.]
골렘이라서 마정석을 먹는건가?
마정석 5kg라··· 상당한 양인데.
“혹시 마정석 5kg 정도 구할 수 있을까요?”
헌터 대장에게 물었다. D급 게이트니 사냥해서 5kg정도 마정석이 있을 거 같았다.
“마정석? 여기 사람들이 사냥해서 그 정돈 나왔을 거 같긴한데요.”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시세대로 가격 쳐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죠.”
마정석 5kg. 순도 불문하고 500만원의 가치는 있다. 골렘 먹이로 주는게 좀 아까웠지만 이것도 투자겠지.
헌터 대장이 나서서 개인이 가진 마정석을 모아주었다.
모인 마정석을 골렘에게 가져갔다.
“배고프지? 많이 먹어.”
-그오···?
아직 경계심이 좀 남은 모양. 너튜브 테통령 TV에서 본 [야생 몬스터와 친해지는 방법] 영상이 떠올랐다. 야생 몬스터는 사람이 좀 떨어져 있어야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고 했었다. 하긴 밥 먹을 때 누가 지켜보면 편하게 먹기 좀 그렇지.
“다들 좀 멀리 떨어져 주세요. 여긴 저 혼자 있는게 나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형님, 조심하세요.”
다른 헌터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봤다.
나도 몇 걸음 떨어져서 골렘이 편하게 마정석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골렘에게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호감도를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그오.
내 호의가 골렘에게 전달되었는지 골렘은 바닥에 놓인 마정석을 한 움큼 씩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상당히 시장했는지 골렘은 순식간에 5kg이나 되는 마정석을 먹어치웠다.
-그오오오.
등 따숩고 배불러지자 골렘의 기분이 좋아진 거 같았다.
[골렘의 호감도가 올라갔습니다.]
다시 한 번 교섭 스킬을 활용해서 파트너 몬스터가 될 것을 권유해본다.
[골렘에게 동료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그우우우···.
[골렘은 고심하고 있습니다.]
아직 설득이 부족했나?
하지만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전력이었다. 아이언 골렘과 크리스털 골렘의 믹스. 물리와 마법 양쪽 다 내성이 있는 걸어다니는 방패! 꼭 파트너 몬스터로 삼고 싶었다.
어쩔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설득해보는 수밖에.
“골렘아. 언제까지 이렇게 추운데서 벌벌 떨면서 겨울잠 잘래? 나 따라오면 사시사철 따뜻한 축사에서 지낼 수 있고 마정석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야! 몬스터 목장가면 네 친구들도 많아서 외롭지도 않을 거고!”
골렘이 내 말을 알아들을리 없으니 무언극 배우처럼 몸짓으로 설명했다. 설원 바닥에 구르면서 추운 흉내를 내고 배고픈 몸 동작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를 손으로 가리킨 뒤 장작 옆으로 가서 따스한 곳에서 눈뭉치를 마정석처럼 뭉쳐서 배불리 먹는 연극을 보여줬다.
어때? 나랑 같이 가자!
-그오오오.
[골렘이 당신의 재롱을 보고 기꺼워 합니다.]
[골렘의 호감도가 올라갔습니다.]
재, 재롱? 내 필사의 설득이 우스운 개그로 보였나 보다. 어찌되었던 호감도가 올라갔으니 된 건가?
다시 한 번 교섭을 해보자.
[골렘에게 동료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그오오.
빠빠빠~ 빰~!
상태창에서 팡파레가 울려퍼졌다.
[골렘이 파트너 몬스터가 되는 것을 승낙했습니다.]
[축하합니다. Lv. 17 골렘이 파트너 몬스터로 등록 되었습니다.]
+ + +
[골렘]
Lv. 17
HP: 770
MP: 120
경험치: 25/12000
종족 : 믹스 골렘 (아이언 + 크리스털)
특성: [물리 내성] [마법 내성] [바위 속성]
힘: 11
체: 15
마: 5
지: 7
속: 8
운: 8
스킬
[철벽 요새]
-물리 피해, 마법 피해가 1/4로 줄어듭니다.
-스킬 사용 중에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 + +
골렘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동시에 녀석의 이상할 정도로 높은 방어력의 비밀이 밝혀졌다.
[철벽 요새]라.
무려 물리, 마법 피해를 4분의 1로 경감하는 사기 스킬. 다만 스킬 사용 중에는 이동할 수 없다는 제약이 붙는다.
스킬이 없더라도 내성을 가지고 있으면 각 피해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탱커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특성이다.
“형님 성공하셨어요?”
멀리서 정승원이 물었다.
엄지를 치켜세워보였다.
다들 골렘과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정말로 저 광석 덩어리를 동료로 삼은 거야?”
“테이머 헌터도 대단한데?”
다들 신기하단 눈으로 골렘을 쳐다봤다.
“이녀석이 게이트에서 나가면 오염도가 떨어지겠죠?”
“아마 그럴겁니다. 이 게이트는 상당히 정화된 상태니까요.”
나는 골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권유했다.
“우정 목장으로 가면 여기보다 더 편하게 생활 할 수 있을 거야. 같이 나가자.”
-그오.
골렘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쿵쿵.
녀석이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골렘이 게이트 바깥으로 나왔다.
“오···! 오염도가 안정화 단계까지 줄어들었어요.”
대장 헌터의 말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다들 진척은 없고 질질 끌기만하는 게이트 정화작업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B급 헌터는 다음 주에나 온다고 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게이트를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거기다 게이트 안쪽 대부분의 몬스터는 사냥을 완료해서 별로 돈도 안 된다. 다들 죽을상이 될만 하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대단하세요.”
다들 진심으로 나한테 고맙다는 표정이었다.
“뭘요. 여러분들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골렘을 파트너 몬스터로 만들지 못했을 거에요.”
불 지필 장작도 같이 날라주고 마정석도 팔아주지 않았나. 나 혼자였으면 쉽지 않았을 거다.
“정말 감사합니다. 승원이랑 헌터님에게도 게이트 정화 완료 보수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네? 아니, 우리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한 게 없다니요? 제일 골칫거리였던 골렘을 치워주시지 않았습니까? 헌터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정화 마치지 못했을 거에요. 우리 감사의 마음이다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대장 헌터뿐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동의했다.
“맞아요. 테이머 헌터님은 자격 있습니다.”
“받으세요. 안 그러면 우리 마음도 편하지 않아요.”
이게 왠 횡재냐. D급 게이트 정화 보수는 적어도 500만원은 나올텐데. 이러면 골렘에게 호감 사기 위해서 사들였던 하급 마정석 값은 복구 된 셈이었다.
그나저나 골렘은 어떻게 목장으로 옮기지?
크기가 대략 3미터 조금 안되는 녀석이다. 타고 온 승용차에 태울 수도 없고.
나는 우정 목장의 황 주임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주임 아저씨와 연결되었다.
-어, 호현이냐? 무슨 일이야?
“아저씨. 제가 새로 골렘을 파트너 몬스터로 삼았는데 목장까지 이동할 방법이 없어서요.”
골렘도 새로 축사를 빌려서 맡기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아저씨가 선뜻 3.5톤 트럭을 보내주겠다고 나섰다.
3.5톤 트럭이라. 이사 갈 때나 물류 이동할 때 쓰이는 큰 트럭이다. 그 정도면 골렘을 싣고 운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비스로 운반비는 목장에서 부담하마. 거기 어디니? 지금 바로 차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아저씨에게 여기 주소를 불러주었다.
“형님. 얘도 이제 파트너 몬스터니까 태양이처럼 이름 지어줘야하는거 아니에요?”
정승원 말처럼 계속 골렘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 없을 것 같다.
“골렘아. 넌 어떤 이름이 좋을 거 같아?”
-그오?
흐음···.
“단단하니까 단단이 어때요?”
정승원이 툭 내뱉었다.
단단이···?
“태양이랑 세트 느낌도 나고 좋은거 같은데요?”
“골렘아. 단단이란 이름 어때?”
-그오.
싫다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냥 단단이로 결정할까?
“단단아. 잘 부탁한다.”
-그오오.
* * *
새롭게 파트너 몬스터로 단단이도 들어왔겠다. 2체 동시 소환을 위해서 레벨업 할 필요가 늘었다. 게다가 돈도 필요하다. 3미터에 달하는 단단이의 축사 대여료와 하루에 먹는 먹이 값이 장난 아니었다.
“혹시 단단이가 마정석만 먹는 건 아니겠지?”
한 끼에 마정석 5kg씩 먹는다면 하루 식비로만 1,500 만원이 나간다. 아무리 요즘 내가 돈을 많이 번다지만 하루에 1,500만원씩 쓴다면 파산이다.
전담 사육사 마리에게 전화 걸어서 내 걱정을 말했다.
“마정석을 제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더 싼 사료도 잘 먹어요. 얘를 들면 돌덩이나 철광석 같은 거요. 제가 줬는데 맛있게 먹던데요?”
마리의 대답에 나는 한숨 돌렸다. 철광석은 15kg에 3,000원 정도 밖에 안 한다고 했다. 돌맹이는 더 싸고. 마정석은 골렘에게 있어선 인간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정도의 특식이라고 했다. 맛있어서 선호하는 것이지 딱히 매일 마정석을 15kg 씩 먹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마리에게 태양이에 이어서 단단이 사육도 맡겼다. 골렘에 대해서도 아는게 많아서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쟀든 목장에 태양이와 단단이 두 몬스터를 맡겼으니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이 증가한 상황.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게이트 정화를 해야했다.
이제는 희권 아저씨의 도움도 없고 나 홀로 게이트를 정하고 움직여야한다.
마침 각성청의 유동명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찾는 암흑 속성의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바로 유동명 팀장과 미팅을 잡았다.
“원하신대로 D급 게이트를 찾아왔습니다.”
유동명 팀장님이 찾아온 게이트는 서초구에 새로 생긴 D급 게이트였다.
주 출현 몬스터는 베놈 고스트. 암흑속성의 영체 몬스터다. 나에겐 딱 맞는 환경. 바로 게이트 정화대에 참가 의사를 밝혔다.
“좀 버겁다 싶으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유동명 팀장님은 걱정스레 말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미 태양이는 E급 게이트는 너무 쉬워질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아, 팀장님. 근데 제가 F급 헌터인데 자꾸 높은 등급 게이트를 들어가려 하니까 대장 헌터들이 의아하게 여기더라고요. 좀 빨리 등급을 올릴 수는 없나요?”
원래 헌터 자격을 습득하고 다음 단계 시험을 볼 때까지 통상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너무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경험을 쌓아서 다음 단계에 도전하라는 뜻으로 응시 경력을 제한한 것이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란 건 알지만 나로서는 이미 충분한 실력을 쌓았음에도 F급에 머물러야하니 여러가지로 불편함이 많았다.
“아··· 그것도 그렇겠군요. 일단 헌터 대장에게는 제가 언질을 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시험도 특별히 일정을 당길 수 없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호현 씨 실력은 F급은 확실히 넘어섰으니까요.”
역시 말해보길 잘했다. E급 헌터만 되어도 왜 D급 게이트에 왔냐고 욕먹지는 않겠지.
이젠 맘 편히 서초구 게이트 대비만 하면 되겠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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