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후임

서초구 게이트 발생 현장.
집을 나와 지하철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아직 차를 못 사기도 했고 서울이나 경기권은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어서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
새로 골렘 단단이가 파트너 몬스터로 들어와서 자금에 그리 여유가 없는 상황.
아직 테슬로 자율주행차를 사기에는 시기상조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여유로워질 때까지 좀 귀찮더라도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테이머 헌터는 직접 싸우지는 않지만, 안전을 위해 기본 방어구는 착용해야했다. 안전모, 흉부 갑주, 무릎과 정강이 보호대, 낭심 보호대까지.
전부 착용한 모습은 마치 현대판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듯하다. 자연히 지하철에서 이런 복장을 한 사람은 눈에 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 따라오는 건 자연스런 현상.
왠지 혼자서 할로윈 코스프레라도 하고 다니는 거 같아서 부끄럽다.
나 헌터요! 하고 외치고 다니는 거 같은 모양새.
“총각 헌터야?”
역시나 붙임성 좋은 할머니가 물으신다.
“예에···.”
“아이고! 좋은 일 하네. 수고 많아요~.”
어린애도.
엄마 손 잡고 지하철 탄 남자애가 날 빤히 쳐다본다.
“엄마! 저기 바! 저 아조씨 헌턴가바~.”
“준명아, 헌터 아저씨 감사합니다 해야지.”
“헌터 아조씨 감삼다~!”
“어··· 그래 고맙다. 흐흐.”
꼬마야 근데 나 아저씨 아니고 형이야···.
본의 아니게 엄청 응원 받아버렸다. 기쁘긴 한데 좀 낯간지럽다. 헌터들이 가까운 곳도 차끌고 다니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드디어 도착한 서초구 게이트. 지도 앱을 따라서 게이트 이동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게이트 현장이 어딘지 고려도 안하고 희권 아저씨 차 타고 근처 주차장에서 내렸을 텐데···. 이런 곳에서 희권 아저씨의 빈 자리가 느껴지네.
하지만 이러면서 나도 성장하는 거겠지.
바리케이트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헌터 카드를 보여주고 게이트 발생 현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선 여기 정화대의 대장 헌터를 찾아야 겠지.
정화대 대장은 오른쪽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차고 있다. 두리번 거리면서 대장 헌터를 찾았다. 아, 저기 간이 천막 아래에서 커피 타면서 다른 헌터들이랑 담소를 나누고 있는 단단한 덩치의 아저씨 오른 팔뚝에 붉은 완장이 보인다.
저 사람이 대장인가?
다가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게이트 정화대에 참여하게된 이호현입니다.”
“아~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여기 헌터 대장 C급 헌터 김길영이에요.”
헌터 대장과 악수를 나눴다.
“커피 드시죠?”
“네.”
“여기 헌터님 커피 한 잔 타드려.”
대장은 옆의 헌터에게 말하고는 인원 리스트가 적힌 것으로 보이는 서류철을 뒤적였다.
“등급이랑 클래스가 어떻게 되세요?”
“F급 테이머입니다.”
“아~ 헌터님이 유 팀장님이 말한 그 사람인가 보네요?”
유동명 팀장은 약속대로 헌터 대장에게 내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았다. 헌터 대장은 리스트에서 바로 내 이름을 찾았다.
“이호현 헌터님··· 출근 체크 완료 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팀장님이 기대 많이하고 계시던데요?”
김길영 대장이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런가요?”
“아직 F급 헌터신데 규정도 무시하고 이렇게 D급 게이트 정화 참가한 것도 상당한 특혜에요. 기대하지 않으면 귀찮게 허가 안 내주죠. 귀한 각성자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그것도 그렇다. 각성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전체 인구에 비교하면 10퍼센트가 채 안된다고 들었다. 또 거기서 절반 넘는 사람이 D급 이하 하급 헌터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상급 헌터들은 의사, 변호사보다 더 희귀한 귀한 인적 자원이라는 뜻이 되겠지.
“그래도 유동명 팀장님이 실력은 인정한단 거잖아요. 저도 기대가 큽니다. 게이트 후딱 닫아버리고 쉬고싶네요.”
헌터 대장은 쉬고 있으라고 말한 뒤 다른 할일이 많은지 자리에서 떠났다.
게이트 진입 전까지 장비를 다시 점검하면서 쉬고 있었는데 뜻밖의 인물이 다가왔다.
“혹시 이 병장님 아니십니까?”
간이 의자에 앉아 쉬고있는 내 앞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탄탄한 체격의 청년이 날 보며 희죽 웃고 있었다.
근데 왠지 익숙한 얼굴이다.
“어··· 너 무성이야?”
“혹시나 해서 왔는데 호현이 형 맞네!”
성실해 보이는 청년이 활짝 웃었다.
녀석의 이름은 박무성. 군대시절 내 맞후임이었다.
빠른 년생으로 스무살에 군대 들어간 나보다 더 어린 녀석이었다. 빠른 년생이라 전역할 때 친구하자고 했는데 선임과 맞먹을 수 없다고 날 형이라고 부르는 성실한 녀석이었다.
“벌써 전역했어? 시간 참 빠르다.”
“흐흐. 나랑 몇 개월이나 차이 난다고.”
“여긴 어쩐 일이야? 너 헌터 됐어?”
무성이가 걸치고있는 방탄 재킷과 헬멧 등의 보호장구를 보면 영락 없이 헌터의 모습이었다. 근데 헌터가 될 자질이 있었으면 군대에 입대하지도 않았을텐데?
“헌터는 아니고, 짐꾼으로 취직했어. 나 게이트에 드나들 정도의 각성치는 되거든.”
그러고보니 이 녀석 각성치가 16인가 나와서 헌터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게이트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다.
그래도 짐꾼이라니.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좀 위험하긴 한데 길드에서 보험도 다 들어줬어. 나 같은 경우는 게이트 입구랑 바깥 왔다갔다하면서 마정석 옮기거나 보급물자 지키는 일만 하니까 몬스터랑 맞닥뜨릴 일도 없어.”
말은 그렇게해도 헌터도 위험한 곳이 게이트였다. 짐꾼에게 게이트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무성이 이 녀석도 나처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위험하지만 보수 많이 주는 짐꾼 일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러는 형이야말로 어떻게 된거야? 형도 짐꾼 일 하고 있어?”
각성치가 부족해서 군 입대한 내가 헌터가 될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전역 후에 사고가 생겨서 우연히 각성하게 됐어. 지금은 보다시피 헌터 일 하고 있고.”
“스무살 넘어서 각성했다고? 진짜?”
나는 무성이에게 간략하게 내가 겪은 일들을 말해주었다.
“와··· 그런 일이 진짜 있구나.”
“그러게 말야. 나도 안 믿긴다.”
“형도 고생 많았겠다. 다들 헌터들이 돈 많이 버는 줄만 알지 이렇게 위험한 일 하는 줄은 잘 모르잖아. 나도 말로만 듣다가 몬스터 직접 보고 얼마나 떨리던지···.”
“괜찮아. 그래도 괜찮은 클래스 각성해서 그럭저럭 익숙해졌어.”
그렇게 한 동안 무성이와 밀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난폭한 목소리가 무성이를 불렀다.
“야 짐꾼! 언제까지 노가리까고 있을래? 포션 박스 안 나를 거야?”
험악한 인상의 헌터가 무성이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몸 곳곳에 문신을 새긴게 딱 봐도 질이 안좋아 보였다.
“저 사람 우리 길드 헌터야. 형, 나 그만 가 볼게. 몸 조심하고.”
“그래. 너도 무사해라.”
무성이는 헌터에게 달려가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빠져가지고!”
“악!”
깡패 같은 헌터 녀석이 무성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무성이는 고통스러워하며 정강이를 부여잡았다.
저녀석이···!
해도 너무하네. 무성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강이 까는 건 너무 심하잖아.
화나지만 괜히 내가 나섰다가 무성이 입장이 곤란해 질 수도 있었다.
녀석 얼굴만 기억해두고 일단 참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대장 헌터가 게이트 정화작업을 곧 시작한단 신호였다.
“다들 모이셨죠? 항상 말씀드립니다. 안전 제일입니다. 불안하다 싶으신 분들은 제가 있는 본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세요. 혹시 외따로 떨어져서 몬스터들에게 둘러쌓였다 싶으시면 바로 신호탄 날리시고요.”
김길영 헌터 대장은 마지막으로 인원 체크를 한 뒤에 게이트 입장을 명령했다.
나도 다른 헌터들과 같이 서초구 D급 게이트로 들어갔다.
우선 태양이를 소환하고.
“파트너 몬스터 소환! 대상 지정 태양이!”
[파트너 몬스터를 소환합니다.]
[대상 LV. 20 슬라임 ‘태양’]
-뀨잉!
서초구 게이트에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는 베놈 고스트. 독 공격이 주특기인 암흑 속성 영체 몬스터다.
녀석은 이전 E급 게이트에서 출몰했던 섀도우 워커와 대처법이 비슷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독 속성의 상태이상 공격을 하는 점인데 그 쪽에 대한 대비도 완벽하게 준비했다.
우선 태양이는 새로운 패시브 스킬 [빛의 저항]으로 상태이상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
밝은 날에만 적용되는 패시브 스킬이지만 사전 정보대로 게이트 안쪽은 밝은 태양빛이 충만한 도심 지대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해독 포션도 백팩 가득 준비했다. 이 정도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
나는 이번 게이트부터 가능하면 단독 행동을 하려했다. 혼자 힘만으로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지 그 한계를 가늠해보고 싶었다.
“가자 태양아!”
-뀨잉!
베놈 고스트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마치 보자기가 떼지어서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괴한 광경이었다.
-뀨잉!
태양이가 빛의 숨결을 내뱉었다.
클럽 불빛처럼 요란하게 번쩍이는 섬광이 사위를 뒤덮었다.
타들어가는 썩은 내와 함께 바스라지듯 화르르 연기로 화하는 베놈 고스트들.
[LV.24 고스트를 처치했습니다.]
[스킬 성장 가속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2,800exp를 얻습니다.]
[LV.21 고스트를 처치했습니다.]
[스킬 성장 가속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2,500exp를 얻습니다.]
[LV.23 고스트를 처치했습니다.]
···.
게이트 공략은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떨어진 하급 마정석을 줍는게 전투보다 더 힘들 정도.
벌써 5kg짜리 마대가 절반 이상 하급 마정석으로 채워졌다.
캬··· 이게 돈이 얼마냐? 200만원은 넘을 거 같은데?
“이대로만 가자 태양아!”
“뀨잉!”
E급에서 여포처럼 무쌍을 찍던 태양이는 D급 게이트에서도 파죽지세로 몬스터를 잡아갔다. 태양이의 유일한 약점은 너무 빨리 줄어드는 MP량 뿐. 그 문제도 축사에 설치한 마력석 침상에서 꾸준히 생활하다보면 해결될 문제다. 급할 거 없지.
하루에 한 병 정도는 마력 포션을 섭취해도 큰 문제 없다고 들었다.
“태양아 쭉 들이켜.”
-큐우···.
내가 그릇에 담아준 마력포션이 맛 없다고 싫어하는 태양이.
호감도가 좀 떨어지겠지만 폭렙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1보 후퇴 2보 전진이다!
마력 포션을 모두 마신 태양이의 몸이 청록빛으로 빛났다. MP는 모두 회복 되었다.
다시 사냥 시작이다!
다시 몬스터를 찾아 나서는 태양이와 나.
베놈 고스트가 보이는 족족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듯이 날려버렸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21이 되었습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22가 되었습니다.]
[샤인 애로우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샤인 애로우 LV.3]
[레벨업! 레벨 8이 되었습니다.]
···.
레벨이 쭉쭉 오른다.
그도 그럴게 태양이 레벨보다 높은 베놈 고스트를 한마리도 아니고 몇십 마리씩 무더기로 잡다보니 레벨이 안 오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스킬 [성장 가속]의 효과로 얻는 경험치에 보너스까지 붙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동료 헌터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뭐야 저 친구?”
“C급 헌터인가?”
“혼자 날라다니네.”
주변에서 쳐다보거나 말거나 나는 폭렙이다.
목표는 두 체 이상 몬스터를 동시에 컨트롤 하면서 버프를 줄 수 있는 [멀티 컨트롤] 스킬의 습득!
-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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