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서초구 게이트 공략이 시작된지 일주일 째. 내 성장세는 로켓이라도 탄 듯 거침 없었다.
태양이가 뿜어낸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베놈 고스트의 잿더미만이 남았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23이 되었습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LV.24가 되었습니다.]
[레벨업! 레벨 9가 되었습니다.]
···.
20레벨 중반 대의 베놈 고스트를 잡으며 여전히 폭렙중. 아마 태양이 레벨 20 후반대 까지는 지금의 성장세가 쭉 유지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멀티 컨트롤] 스킬을 습득할 것 같은 예감이다.
점심을 먹고 간이 천막 아래서 태양빛을 피하며 쉬고 있는데 군대 맞후임이었던 무성이가 다가왔다.
“형 잘 쉬고 있어?”
“어··· 무성이냐?”
무성이가 차가운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땡큐.”
우직하게 생긴 외견과는 다르게 군대에서도 선임들 잘 챙기고 일머리도 있어 이쁨 받던 녀석이었다. 점점 더워져가는 날씨였다. 차가운 캔커피가 목덜미에 서늘하게 넘어가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우준현이 자기 C급 헌터라고 우쭐대고 있었거든? 근데 형이 자기보다 더 사냥 잘하는 거 보니까 갑자기 입 다물고 조용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크크.”
우준현은 저번에 무성이에게 함부로 말하던 깡패 같은 헌터였다.
“강철 길드가 나름 대기업이라고해서 기분 좋았는데 완전 이상한 놈이 담당 헌터로 걸려서 죽겠어. 저자식 각성 전에는 소년원도 들락거리던 깡패였다는데. 형도 그놈이 나한테 하는 거 봤지?”
무성이는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우준현의 뒷담을 늘어놨다.
군대에서 2년간 겪어본 무성이는 성실하고 일머리도 있는 녀석이었다. 나도 무성이가 욕할 정도인 우준현이라는 녀석이 제대로 된 녀석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전과 있으면 헌터 못 되는 거 아냐?”
“소년원이니까. 그 후에는 어찌 잘 참았는지 따로 기록에 남을 나쁜 짓은 안 할려고 조심했나보더라고. 근데 전과 기록만 없지 인성이 완전 개 쓰레기야. 첨 본 순간부터 반말 찍찍 내뱉고··· 사람 기분나쁘게하는 올림픽이 있으면 아주 금메달 감일 거야. 아씨··· 사람이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있어야 되잖아? 맘 같아선 확 때려치고 싶다니까.
무성이는 당한 게 많았는지 씩씩대며 우준현을 씹어댔다.
“그래도 어쩌겠어. 여기도 어렵게 얻은 일자린데 여기서 나가면 딱히 갈데도 없고. 이번 게이트 끝나고 담당 헌터 바꿔달라고 해봐야지.”
후우 한숨을 내뱉고 다 마신 캔커피를 찌그러뜨리는 무성이.
억울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다들 살다보면 억울하고 치사한 꼴들 많이 겪잖아. 그러면서도 지켜야할 것들이 있기에 꾹 참고 버티고 견뎌내는 거지. 무성이도 그런 것들이 있으리라.
“너무 힘들면 참지말고 나한테 연락해. 나중에 잘 되면 나도 짐꾼 한 명 필요할테니까.”
“정말?”
“테이머 헌터로 본격적으로 일하려면 보조 역할 해줄 짐꾼 있어야지. 어차피 사람 쓸 거 아는 사람 쓰는게 편하지 않겠어?”
내 말을 들은 무성이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와··· 진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형 나중에 짐꾼 쓸 일 있으면 나한테 꼭 연락 줘. 다 때려치고 형이랑 일하고 싶다.”
“알았어. 좀만 기다려 봐.”
실 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점심 휴게 시간을 다 보냈다.
점차 태양이 레벨업이 느려지고 있었다. 벌써 20 레벨 중후반 대에 접근했으니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
무리할 필요는 없지. 오후 4시. 적당히 마정석을 챙기고 게이트에서 나왔다.
* * *
하루 쉰 후 다시 게이트에 진입했다.
저녁까지 쉬지 않고 레벨업.
[레벨업! 레벨 10이 되었습니다.]
[스킬 ‘멀티 컨트롤’을 획득했습니다.]
[멀티 컨트롤 Lv.1]
- 두 체 이상의 파트너 몬스터를 동시에 통솔할 수 있습니다. 각 파트너 몬스터에게 테이밍 버프가 적용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 수록 동시에 통솔할 수 있는 파트너 몬스터의 수가 증가합니다.
-현재 동시 통솔 가능한 파트너 몬스터 수: 2 체.
마침내!
게이트 안 쪽에서 두 마리의 파트너 몬스터를 제어 가능한 스킬을 손에 넣었다.
내가 구상한 딜러 태양이와 탱커 단단이의 조합이 실행 가능해진 상황.
사실 여기 서초구 게이트에서는 태양이 혼자서도 그리 어려움 없이 사냥을 할 수 있었지만, 얻은 스킬은 바로 써먹어보고 싶잖아?
당장 시험해 보기로 했다.
“파트너 몬스터 소환! 대상 지정 단단이!”
[파트너 몬스터를 소환합니다.]
[대상 LV. 17 골렘 ‘단단’]
[소환까지 남은 시간 5분 30초···]
크기가 커서 그런가? 꽤나 소환 대기시간이 길다.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태양이와 놀아주며 단단이가 소환되길 기다렸다.
5분여가 지나고.
-그오오!
바닥의 마법진에서 2.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믹스 골렘 단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아! 오늘은 첫 실전이니까 대충 몸만 풀어.”
-그오오!
쿵! 쿵! 쿵!
단단이가 걸어가니 땅이 움푹움푹 패인다. 마치 작게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다.
그 모습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날아다니는 하얀 보자기 같은 베놈 고스트들이 단단이에게 몰려들었다.
보자기 속에서 검은 갈고리 손이 나와서 단단이를 할퀸다.
카캉!
하지만 단단이에게는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고유 특성인 [물리 내성]이 적용되어 피해가 1/2로 줄어든다.
원체 강철로 된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어서 피해는 없다시피 한 수준.
베놈 고스트들이 단단이에게 정신 팔린 사이 작은 덩치의 태양이가 눈에 띄지 않게 다가가서 샤인 애로우를 날린다.
-뀨잉!
빛의 화살이 차례 차례 베놈 고스트들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의 베놈 고스트들이 한무더기의 마정석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오오!
-뀨잉!
승리의 포효를 지르는 두 파트너 몬스터. 아주 흡족하다.
“야··· 뭐냐 저거 야생 몬스터는 아니지?”
“파트너 몬스터인거 같은데. 저 테이머 헌터가 소환했나봐.”
“무지막지하구만. 저런 파괴력으로 F급 헌터라고? 뭐가 잘못 된 거아냐?”
내 활약상을 보고 수군거리는 헌터들.
대장 헌터는 흡족하게 미소지으며 내게 엄지를 척 치켜올렸다.
베놈 고스트는 다 해치웠고, 이제부터는 내가 일할 차례다. 땅바닥에 떨어진 하급 마정석 주워야지.
베놈 고스트들이 이렇게 쉽게 죽어서 우습게 보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D급 몬스터다.
놈들이 떨어뜨리는 하급 마정석의 양은 E급 몬스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벌써 준비해온 5kg짜리 마대 자루가 하급 마정석으로 거의 꽉찬 상황.
사냥하면서 마정석 가지고 다니려면 이것도 꽤나 중노동이다.결국 무거워서 중간중간에 게이트 바깥으로 나가서 경찰에게 마정석을 맡기고 다시 게이트 안쪽으로 들락날락 거렸다.
자연히 사냥 흐름이 크게 끊기게 돼 버렸다.
저번에 무성이에게 말한 것처럼 나도 슬슬 전용 짐꾼을 한 명 고용하는 걸 고려해야할 시점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짐꾼들의 월급은 달에 500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젊은이들이 받는 돈으로는 상당한 금액이다. 물론 목숨을 걸어야하는 짐꾼 일이기에 그만큼 크게 돈을 측정해주는 것.
나도 짐꾼을 고용하려면 매달 500만원 정도의 지출은 생각해야했다.
솔직히 지금 내 현재 상황에서 돈 주고 짐꾼을 쓰기는 버거웠다.
많이 벌지만 그만큼 많이 나간다. 괜히 초반에 빛 냈다가 갚지 못하고 파산하는 헌터 푸어들 얘기가 들리는게 아니었다. 제대로 헌터를 준비하려면 초기 비용이 상당히 나간다.
특히나 테이머 헌터 같은 경우는 파트너 몬스터를 목장에 맡기고 육성하는 비용도 감당해야하니 돈 나갈 일이 많아서 여유가 없다.
돈 모을 생각을 한다면 당분간 좀 불편하더라도 짐꾼 없이 게이트 정화를 하는게 나았다.
그래도 짐꾼이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짐꾼을 한 명 고용해서 게이트 사냥 외적인 걸 맡긴다면 나는 그만큼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다.
결국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짐꾼을 고용해야한다.
아··· 돈 아끼면서 짐꾼을 고용할 방법은 없을까?
한가지 방법은 헌터 길드와 계약하는 것이다.
무성이가 일하고 있는 ‘강철’ 길드 같은 헌터 길드와 계약하면 짐꾼을 직접 고용할 필요 없이 헌터 일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매니지먼트 해준다.
물론 의무 복무로 정부에 묶여있는 나는 헌터 길드와 계약하는 건 2년을 기다려야하는 일이긴 하지만.
듣기로는 정부 계약 헌터 중에 높은 랭크의 헌터들은 헌터 길드에서 해주는 것 같은 혜택을 받는다던데···.
나도 유동명 팀장님에게 한 번 말해 볼까?
혹시 모르지. 짐꾼 고용 비용을 나라에서 지원 해줄 수도 있잖아?
보통 F급 헌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F급 헌터는 짐꾼이랑 크게 대우가 다르지 않은 신분이니까.
그래도 나는 F급이지만 내 실력이 F급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잖아?
진짜 한 번 전화해 볼까?
* * *
-뚜르르르.
게이트 정화가 끝나고 마정석 매입 차량을 기다리는 사이, 각성청 정화 5팀 유동명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금방 전화가 연결됐다. 유동명 팀장님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호현 씨? 안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다음 달 초에 E급 헌터 시험 잡혔습니다.
“오! 정말요?”
원래는 4개월은 더 기다려야 E급 헌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계속 F급 라이센스로 게이트 들어가기 여러모로 귀찮아서 빨리 상급 시험에 응시하려고 했던 것.
-김길영 대장한테 들었습니다. 서초구 게이트에서 활약이 대단하시다고요? 저도 대장 바디 캠 영상으로 호현 씨 사냥하는 모습 봤습니다. 테이머 헌터의 사냥 방식은 확실히 보통 헌터들이랑 달라서 인상적이더라고요. 호현 씨 실력이면 D급 라이센스 시험도 문제 없을 거 같아요. 다만 규정이 규정이라 D급 시험은 E급 라이센스 따시고 한 달 정도 기다렸다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정도만 돼도 괜찮다. 1년을 기다려야 할 걸 한 달 남짓으로 단축하는 거니까.
유동명 팀장님이 말은 안 해도 꽤나 애써주신 것 같다.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호현 씨 같이 전도 유망한 각성자들이 헌터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게 각성청 역할인데요.
부드럽게 웃는 유동명 팀장님.
이런 분위기면 짐꾼 일을 부탁드려볼만 할 거 같은데?
염치 불구하고 입을 열었다.
“저··· 팀장님. 부탁드리는 김에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슬슬 몬스터 잡는 숫자도 늘고해서 마정석 옮기는 것만해도 일이어서요. 따로 짐꾼을 한 명 고용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잘 아는 성실한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를 제 짐꾼으로 고용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제가 거기까지는 신경 못 썼네요. 어떤 분입니까? 저희 쪽으로 이력서 한 통 보내주세요. 저희가 면접 보고 결격사유 없으면 급여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오! 럭키! 역시 말은 꺼내고 봐야하는 거 같다. 무려 500만원이나 되는 짐꾼 급여를 각성청에서 대신 내주다니! 1년이면 굳는 돈이 얼마야?
-법으로 의무복무 헌터에게 민간처럼 좋은 지원을 못해주게 막혀있습니다. 저도 의무 복무 헌터들이 불만 많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맡은 헌터 분들은 제 권한으로 가능한 선이라면 최대한 기분 좋게 일하시게끔 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힘든 일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 주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호현 씨 급여도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활약도에 따라서 조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급 라이센스 획득하시면 임금 협상 할 수 있도록 조치해보겠습니다.
와아···! 이 아저씨 천사인가? 이제는 내 월급도 올려준다고 하시네. 충성 충성!
갑자기 애국심이 화르륵 솟아오르는 거 같다.
바로 무성이를 찾았다. 좋은 소식은 바로바로 알려줘야지.
무성이는 유준현이 사냥한 마정석을 대신 챙겨서 마정석 매입차량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유준현은 사냥 끝나자마자 화려한 스포츠카를 타고 먼저 퇴근했다.
무성이가 말하기를 녀석은 카 푸어라고 했다. 아무리 헌터 벌이가 좋아도 C급 헌터가 비싼 페레리를 끌고 다니는 건 좀 무리긴 하다.
“무성아 잠깐 괜찮아?”
“어, 형. 무슨 일이야?”
“너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있냐?”
“뭐? 농담 아니고 진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대자루 보이지? 혼자서는 감당 안되겠더라. 짐꾼 한 명 필요하겠어.”
무성이가 흰 건치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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