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주말이라 그런지 도로가 꽤나 막혔다.
트럭이 자꾸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금요일 오전인데도 이렇게 차가 많나 싶을 정도. 도로가 차로 가득 차있다.
“대체 저 사람들은 평일 오전에 뭐하길래 다 차 끌고 나온 걸까요?”
“그러게.”
“일하는 사람 아니면 차 못끌고 나 오게 무슨 법을 제정해야 한다니까요!”
30분째 거의 나아가질 못하고 있으니 마리가 뾰로통해질만도 하다.
마리가 심심하지 않도록 라디오를 틀어주었다.
난 별로 말주변이 없으니까.
마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오빠 많이 변하신 거 같아요.”
“내가?”
“오빠 첫 인상이 남 해치는 일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헌터하신다고 그랬을 때 오래 못 버틸 줄 알았어요.”
내 인상이 그랬어?
뭐랄까··· 좀 의외네.
나도 남들만큼 이기적이고 내가 제일 먼저인데.
“지금은 좀 강인해지신거 같아요. 자신감도 차있고.”
하긴, 뒤에서 응원만 한다고 하지만 게이트 안에서 나도 항상 목숨을 걸고 있다.
파트너 몬스터가 당하면 테이머가 바로 위험해지니까.
헌터가 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계속 생사가 걸린 게이트를 들락날락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성격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 나빠 보인단 건 아니에요. 남자는 역시 좀 강해야죠. 지금은 좀 믿음직한 느낌이 들어요.”
내 표정이 안 좋았나?
마리가 급하게 뒷수습하는 느낌이다.
“정말이에요. 빈말하는 거 아니에요. 전 남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남자다운 남자가 좋더라고요.”
2시간 가량 이동한 끝에 을왕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근처 무료 주차장에 3.5톤 트럭을 세웠다.
파란 하늘 아래 태양빛을 반사해 빛나는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과 달리 공기도 맑고 짠 바다내음이 코 끝을 간질였다.
여기 와서 냄새만 맡아도 힐링되는 느낌.
-그오오.
단단이가 트럭에서 내렸다.
쿠웅쿠웅.
주변을 둘러본다.
해변가가 신기한 모양.
태양이도 내 머리 위에 올라서 킁킁 바다내음을 맡았다.
“와 진짜 바다 오랜만이네요.”
“마리 너도?”
“네. 저도 사육사 되기위해 공부하느라 놀 짬을 못 냈거든요. 오늘은 제대로 놀려고 래시가드도 새로 샀어요!”
마리 수영복은 래시가드인가··· 좀 아쉽네.
나도 예전에 쓰던 사각 수영복을 챙겼다.
윗도리는 대충 알로하 티셔츠 입어주고.
커다란 여행용 배낭에 각종 물놀이 기구를 담아왔다.
오리 튜브, 비치볼, 물안경까지 가져왔다.
-뀨잉?
태양이에게 어린아이용 오리튜브를 장착시켜줬다.
-뀨뀨!
두둥실 물에 뜨는 튜브 위에서 즐거워하는 태양이.
-그오오.
단단이는 모래사장에 누워서 간헐적으로 차오르는 바닷물을 기분좋게 맞고 있었다.
“물 따뜻하고 좋네요.”
“얍!”
마리에게 바닷물을 끼얹었다.
“지금 저한테 싸움 거시는 거? 후회할텐데.”
마리가 웃으면서 펌프식 물총을 꺼내들었다.
언제 저런 걸 챙겼지?
치이이익-!
악!
수압이 생각보다 강력하다.
“하하하하!”
마리가 즐거워하며 연신 내게 물총을 쏘아댔다.
어푸어푸!
“앜! 코에 물 들어갔어!”
태양이가 다가와서,
푸!
입에 든 물을 물총 발사하듯 내 쪽으로 뿌렸다.
크헉! 태양이, 너도 적군이었어?
-뀨뀨뀨!
너만은 믿었는데···.
-그오오!
물놀이하는 우리가 재밌어 보였는지 단단이도 바다 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2.5미터, 3톤의 무게가 나가는 단단이가 바다로 뛰어들면···.
촤아악!
작은 해일이 만들어져서 우리를 덮쳤다.
“어푸어푸!”
“아악···.”
-뀨···.
우리 셋 모두 물 먹고.
최후의 승자는 단단이인가?
오전을 재밌게 보낸 뒤, 출출한 점심시간.
“이 근처는 바지락 칼국수죠. 단단이도 같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마당이 있는 식당 예약해뒀어요.”
역시 마리. 사육사의 귀감이다.
마리를 따라서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 건물 바깥의 나무 평상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바지락 칼국수를 먹는다.
태양이도 내가 까준 바지락을 맛있게 냠냠.
단단이는 바지락이 아니라 그 껍질을 먹는다.
-와그작 와그작.
“바지락 껍질은 골렘 족 몬스터가 좋아하는 별미에요.”
바지락 껍질 외에도 여러가지 조개 껍질을 깨끗하게 씻어온 식사가 나왔다.
마리가 전날 식당에 미리 부탁해서 준비해주신 거라고 했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는 듯 단단이는 조개 껍질을 맛있게 먹었다.
“오빠도 좀 드세요. 태양이는 제가 챙길게요.”
바지락 국수가 불기 전에 후루룩 흡입했다.
으음.
깊고 진한 바다의 맛이 느껴진다.
국물도 시원하고 면발도 짭조름하고 탄력 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점심까지 먹고, 식후 커피가 빠질 수 없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셨다.
한동안 식당 평상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다가 다시 바다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물놀이.
어두워진 후에는?
마지막 코스로 불꽃놀이 감상이 남아있다.
다행히 오늘은 지자체에서 합법적으로 불꽃놀이 축제를 하는 첫 째날.
일찍부터 와서 놀던 우리는 제일 좋은 맨 앞쪽 자리를 미리 차지했다.
퍼엉! 퍼어엉!
검은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폭죽들.
-뀨우···.
-그오오.
태양이와 단단이는 밤하늘에 펼쳐지는 불꽃을 넋이 나간듯 바라봤다.
그렇게 을왕리해변에서의 바캉스가 끝나갔다.
* * *
“마리야, 오늘 너무 고마웠어.”
단단이를 트럭에 태우고 마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무리 담당 사육사라지만 하루종일 고생한 마리에게 인사는 해야지.
“뭘요. 저도 오랜만에 바닷가 와서 놀고 좋았어요. 그리고 애들이 기분 좋아하는 걸 보니까 저도 좋고요.”
“태양이랑 단단이도 좋아했을까?”
“그럼요. 애들이 아주 생기가 넘치던 걸요?”
-뀨잉!
-그오오!
태양이와 단단이가 마리 말에 대답하듯 목소리를 냈다.
참 그러고 보니 여기 원래 온 목적은 호감도 랭크를 올리기위한 것이었다.
호감도 랭크가 올랐는지 확인해봐야지.
바로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했다.
[파트너 몬스터 ‘태양’의 호감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호감도 랭크 3이 되었습니다.]
[파트너 몬스터 ‘단단’의 호감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호감도 랭크 2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둘 모두 바닷가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두 마리 이상의 파트너 몬스터의 호감도 랭크2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빛 속성 부여]를 얻습니다.]
* * *
[빛 속성 부여 Lv.1]
-파트너 몬스터의 속성에 빛 속성을 추가합니다.
사용 조건: 호감도 랭크 2 이상의 파트너 몬스터.
제한 시간: 10분 (스킬 레벨에 따라 증감.)
소비 MP 50.
쿨타임: 6시간.
* * *
오? 나한테 꼭 필요한 스킬이 나왔다.
무려 파트너 몬스터에게 빛 속성을 부여하는 스킬.
이로서 빛 속성이 아닌 단단이도 샤인 테이머의 사기적인 스킬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10분이라는 시간 제한은 있지만 전투에서 중요한 순간에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운이 좋군.
로또 클래스를 각성한 이후에 주기적으로 로또 스킬을 습득하고 있다.
터져나오는 도파민을 주체 못할 지경.
“오빠 축하드려요. 오늘 애들 데리고 휴가 온 보람이 있었네요.”
태양이와 단단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테이머로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꼭 호감도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가끔 파트너 몬스터들과 놀러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날 서초구 게이트.
이제는 게이트 정화 작업도 막바지 단계였다.
“지금 오염도 34퍼센트입니다. 오늘 중으로 깨끗하게 게이트 정화하고 이번 달은 푹 쉽시다.”
김길영 대장이 헌터 대원들을 독려했다.
“형, 바로 시험해볼거지?”
게이트 들어가기 전 확인하듯 묻는 무성이.
무성이가 묻는 건 [잠재능력 개방] 스킬의 사용여부.
어제 태양이 호감도 랭크가 3으로 올라갔으므로 사용조건을 달성한 상태였다.
“그렇긴한데 베놈 고스트가 많은 곳으로 가야겠어.”
어중간한 베놈 고스트 무리는 태양이가 변신하지 않고도 쉽게 잡을 수 있다.
스킬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니 한 번에 제대로 능력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다.
“잠재능력을 모두 개방한 태양이가 어느정도의 힘을 발휘할지 제대로 확인하려면 좀 강한 상대가 필요해. 가능하면 레어급 몬스터가 나오면 좋겠는데···.”
그리 자주 나오지 않으니 레어급 몬스터지.
나도 초반에 운이 좋아 몇 번 봤을 뿐 그 이후엔 통 조우하지 못했다.
“알았어. 내가 다른 헌터들한테 부탁해볼게. 좀 강한 몬스터 무리를 찾으면 우리한테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서초구 게이트 정화작업이 시작되었다.
오전내내 게이트를 돌았지만 그리 강력한 몬스터 무리와 조우하지 못했다.
정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좀 아쉽지만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힘을 시험해볼 수밖에.
점심으로 양갈비를 먹은 뒤 간이 천막 아래서 태양빛을 피하고 있는데 무성이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형! 아까 다른 헌터들한테 들었는데 동북쪽 지역에 레어급 몬스터가 있다는 거 같아!”
“진짜?”
“민석 씨랑 상훈 씨가 핏빛 갑주를 입은 좀비 사무라이를 보고 놀라서 도망쳤다 그러더라고.”
핏빛 갑주의 좀비 사무라이 몬스터···.
D급 게이트에 나타난 레어 몬스터는 C급 몬스터와 비견될 강함을 가지고 있다.
[잠재능력 개방] 스킬의 힘을 시험해보는데는 더할나위 없는 적인 것 같았다.
“형, 근데 진짜 갈거야? 얘기 들어보니까 몬스터 포스가 장난 아니라던데···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을 걸?”
“아싸리 말하네. 무슨 근거라도 있어?”
“민석 씨랑 상훈 씨가 도망칠 수 있을 정도면 우리도 도망칠 수 있겠지.”
“어··· 그것도 그렇네. 근데 지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두 사람 디스한 거 아냐? 흐흐흐.”
어쨌든 판은 깔렸다.
남은 건 힘을 시험해보는 것 뿐.
“태양아 자신 있지?”
-뀨잉 뀨잉!
태양이도 힘이 넘치는 상황.
한 번 가보자!
* * *
게이트 동북쪽 구역.
무성이 말대로 강력한 마기를 지닌 몬스터의 존재가 멀리서도 느껴졌다.
“형 진짜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게···.”
무성이도 각성치는 낮지만 마기는 왠만큼 느낄 수 있었다.
C급 몬스터의 마기에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
“괜찮아. 정 무서우면 좀 떨어져서 있어.”
“...멀리서 응원할게.”
태양이와 둘이서 마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저 멀리 부서진 아파트 콘크리트 잔해 위에 우뚝 선 붉은 갑주를 걸친 몬스터가 보였다.
[Lv.36 핏빛 좀비 사무라이.]
-강력한 적입니다. 조심하세요.
상태창에 몬스터의 간략한 정보가 표시되었다.
과연 20 레벨 중반 대 몬스터가 주류를 이루는 던전에서 다른 몬스터들보다 월등히 높은 레벨을 가졌다.
내뿜는 마기가 너무 진해서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막상 마주보니 좀 걱정된다.
진짜 태양이가 저 무시무시한 레어 몬스터를 이길 수 있을까?
-뀨잉 뀨잉!
하지만 태양이는 주눅들지 않고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
그래! 이호현, 테이머인 네가 태양이를 안 믿으면 누가 믿겠냐?
찹찹.
손바닥으로 뺨을 몇 번 때려주며 정신을 차린다.
“태양아, 준비 됐지?”
-뀨잉!
“스킬 [잠재능력 개방] 발동!”
[잠재능력 개방을 사용합니다.]
[대상 지정 파트너 몬스터 ‘태양’.]
[남은 제한 시간 3분 00초.]
태양이의 몸이 말그대로 태양처럼 강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나는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좋아! 진짜로 변신하는구나!
쿠구구구구.
번쩍번쩍.
어···?
근데 뭔가 이상하다.
너무 커지는데···??
빛나는 태양이는 벌써 단단이 크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우와아···.
번쩍!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4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젤리 덩어리로 변화한 태양이였다.
-뀨이잉~.
거대하게 변한 태양이가 몸을 꿀렁댄다.
[파트너 몬스터 ‘태양’이 잠재능력을 개방하여 ‘킹 슬라임’으로 진화했습니다.]
[남은 제한 시간 2분 59초.]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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