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인터넷 뉴스를 찾아봤다.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시장 상인들이 시위하는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게이트의 등장으로 국제시장 전체가 2주 째 폐쇄되자 상인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다 망하라는 거냐! 부산 시는 대책을 마련하라!]
[더딘 게이트 정화에 시장 상인 다 죽는다!]
[각성청은 뭐하는 거냐! 졸속 행정 규탄한다!]
작은 규모의 시위가 아니었다.
게이트 주변은 시위대와 경찰이 섞여서 난리통이었다.
정승원 녀석은 조부모님 고향이 부산이라 그쪽 헌터들과도 긴밀한 관계라고 했다.
-저 D급 됐거든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라도 빨리 성장하려고 괜찮은 C급 게이트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정승원은 E급이었을 때도 실력은 D급 헌터에 준한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지금은 실력을 더 늘렸으리라.
-근데 너무 쉽게 봤던 거 같아요. C급 게이트는 다르더라고요. 리치 나이트 잡으려다가 부상당한 헌터들이 한둘이 아니예요. 헌터 대장은 괜히 고집부려서 지원 요청도 안 하려 들고.
“지원 요청 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한라산 A급 게이트가 크게 터졌잖아요. 그거 못 막으면 제주도 완전 날아가는 거예요. 여기 게이트는 브레이크 터지더라도 바리케이트 치고 군이랑 같이 막겠다는 심산이에요.
상급 헌터들은 다 한라산 게이트로 동원 되었다고 들었다.
부산 게이트까지 커버할 여력이 없다는 얘기.
-저 혼자서는 좀 버거운데, 형님이랑 같이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암흑 속성 몬스터라면 내가 전문이긴하지.
나한테도 나쁠것 없는 제안이다.
강원도 훈련장에서 훈련도 이번주로 끝날 예정. 며칠 일찍 끝내는 거긴 하지만 다음에 또 오지 뭐.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에 대한 뉴스를 찾아본 뒤 바로 각성청 유동명 팀장님에게 연락했다.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에 참가하시겠다고요?
“네. 이번 훈련 성과를 확인할 겸해서요.
-국제시장 게이트라··· 정승원 헌터 말처럼 지금 한라산 게이트에 총력을 기울여야하는 상황이라서 따로 상급 헌터들을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호현 씨가 국제시장 게이트에 참여해주신다면 각성청으로서도 좋은 일이지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는 유동명 팀장님.
“그럼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이쪽에서 오히려 부탁해야할 일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호현 씨가 암흑 속성 몬스터의 스페셜리스트라는 건 저도 인정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C급 게이트에 도전했던 전례가 없습니다.
“이번에 강원도에서 훈련하면서 파트너 몬스터들의 성장세를 보고 C급 게이트도 문제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음··· 알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유동명 팀장님에게 허락도 맡았겠다.
이제는 훈련장을 떠날 준비를 해야했다.
“C급 변이 게이트? 괜찮을 거 같네요. 훈련과 실전을 섞어가면서 해야 실력도 빨리 느는 법이에요.”
테통령 아저씨도 일찍 훈련을 마치겠다는 내 생각에 찬성해주셨다.
“원래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마치는 거니까 날짜 계산해서 적립해드릴겁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할 거니까 이용 못한 일수는 적립해 뒀다가 나중에 쓰면 된다.
바로 무성이에게 전화 걸었다.
내가 수련한 3주 동안 무성이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트럭을 운전할 수 있게 1종 대형 면허를 따두라고 임무를 줬었다.
-어, 형. 무슨 일이야?
“예상보다 일찍 훈련 중단해야할 거 같아서. 너 면허는 어떻게 됐어?”
-형! 나 박무성이야. 2년 연속 백골 부대 수송 에이스! 당연히 한 방에 붙었지.
녀석, 자신만만 하더니 빈말은 아니었나보다.
“너 그럼 3.5톤 트럭 한 대 렌트해서 강원도로 올 수 있지? 주소 찍어줄게.”
-넵, 명령만 내려 주십쇼!
다음날 오전.
무성이는 단단이를 이동 시킬 수 있는 트럭을 끌고 강원도로 왔다.
단단이를 짐칸에 싣고 이동 준비를 마쳤다.
“게이트 조심해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탈출하고.”
“걱정마세요.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테통령 아저씨와 작별하고 무성이가 운전하는 트럭에 올랐다.
“벌써 다음 게이트 정해진 거야?”
“부산 국제시장에 C급 게이트 발생했어. 거기로 갈 거야.”
“C급 게이트?! 벌써 C급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E급 헌터 된지도 얼마 안 됐잖아?”
“위험해지면 바로 나올 거야. 믿을 만한 녀석도 같이 들어갈 거고.”
“형이 알아서 하는 거겠지만 무리하진 마. 헌터는 몸이 재산이잖아.”
“알고있어 임마. 바로 부산으로 출발하자.”
“오케이!”
우리는 렌트한 트럭을 타고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5시간 넘게 걸리는 강행군이다.
자율주행차면 모르겠는데, 렌트한 트럭은 자율주행 기능이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 들려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계속 도로를 달렸다.
하늘이 어둑해질 즈음해서 부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트럭을 대고 내렸다.
정승원은 미리 공용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정승원과 악수를 나눴다.
“강원도에서 훈련하고 오는 길이라고요?”
“어. 양염 길드 훈련장에서 최신 훈련 시설을 사용해서 맹훈련하고 왔다. 태양이랑 단단이 둘 다 너 알던 실력이 아닐 거야.”
“정말요? 그거 기대되는데요?”
정승원은 무성이와도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형님 짐꾼이에요?”
“내 군대 맞후임이야. 인사해. 이쪽은 정승원 헌터.”
“알고 있습니다. 신도림 역에서 사람들 구하신 의인 헌터! 만나서 영광입니다.”
정승원은 신도림 사건 이후로 TV를 많이 탔으니까. 무성이가 정승원 얼굴을 알아보고 마치 연예인 보는 듯한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괜히 얼굴 알려져서 귀찮기만해요. 호현 형님 짐꾼이면 얼굴 자주 보겠네. 잘부탁해요.”
“와··· 근데 형이 어떻게 정승원 헌터 님도 알아?”
“몰랐어요? 그때 저랑 같이 신도림 역에 있던 헌터 중에 호현 형님도 있었어요.”
“아! 그랬어? 난 몰랐네.”
나야 정승원 뒤편에서 다른 헌터 아저씨들이랑 같이 작게 사진이 실렸으니까.
무성이가 모르는게 당연했다.
무성이는 다시 봤다는 듯 날 존경스럽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게이트 상황은 여전히 안 좋아?”
“말도 마요. 오염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정화대 대장 놈이 완전 또라이예요.”
정승원은 쌓인게 많았던지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잡겠다고 외부 지원도 안받겠다고 하는데 게이트 닫는 거보다 자기 자존심에 금 가는 걸 못참겠다니 미친 놈이죠.”
“그정도야?”
“형이 E급 헌터라서 그나마 별말 안하는 거예요. C급이나 B급 헌터였으면 자기 무시하냐고 개지랄을 했을 거예요.”
무성이도,
“와··· 그게 말이 되나?”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놈 ‘강철’ 길드에서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간부라서 각성청에서도 심기 못 건들여요. 위험한 거 아니냐, 외부 지원 받자고 해도 다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나 못 믿냐고 성질만 내니까 어쩔 도리가 없어요.”
헌터 대장이라는 녀석, 말이 안통하는 놈인 듯했다.
“B급 헌터라면서? 아무리 레어 몬스터라지만 C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B급 헌터가 못 잡나?”
“이번에는 상대가 좀 나빴어요. 그 인간이 불 속성인데 리치 나이트가 불 속성 내성이 있었거든요. 보통 생각있는 사람이면 무리라고 생각하고 포기했겠죠. 근데 이 또라이가 나폴레옹이 빙의라도 했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이러면서 자꾸 고집부리는 거예요. 덕분에 정화대 헌터들만 부상당하고 다 죽게 생겼어요. 내가 오죽했으면 어떻게 해보려고 형님한테까지 연락했겠어요.”
정승원도 맘고생이 심했던 듯했다.
우리가 게이트 정화에 실패하면 시민들이 몬스터의 위험에 바로 노출되게 된다.
330만 부산 시민의 안위가 달려있는 게이트 정화이니 만큼 신경을 안 쓸수가 없겠지.
“내일 바로 게이트 들어가면 되는 거야?”
“맞아요. 오늘이 휴식일이었거든요. 아마 내일도 리치 나이트를 처리하지 못하면 휴식일 없이 매일 게이트 정화 매달려야할 거예요. 외부지원도 받아야할 거고요.”
우리는 정승원이 예약한 시그니엘 호텔에 짐을 풀었다.
과연 갑부집 자식.
부산에서도 최고급인 5성급 호텔을 예약해주었다.
“와···! 형님 해운대 바다가 바로 보이네요. 쥑인다···.”
무성이는 발코니 창 너머로 보이는 부산 바다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C급 게이트 쯤 되면 운영비도 많이 지급되거든요. 못 쓰면 어차피 반납해야하는 돈이라 비싼 방으로 잡았어요.”
정승원은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놓고 영상을 보여주었다.
노이즈가 심한 영상이었다.
게이트 정화 작업 중에 바디 캠으로 찍은 영상인가?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비가 내리는 음울한 해변가의 모습이 보였다.
해변가에 나타난 것은 뼈만 앙상한 해골 말을 탄 마법 기사, 리치 나이트.
어떤 조화인지 리치 나이트가 타고 다니는 해골 말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 주변을 호위하듯 하급 몬스터 고스트들이 일렁이며 배회하고 있었다.
스무 명이 넘는 정화대가 리치 나이트에게 덤벼들었다.
마법의 화염과 전격이 번쩍였다.
영상 너머로 보는 광경이었지만 절로 긴장하게 되었다.
쿠콰콰쾅!
바디캠이 크게 흔들렸다.
마법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마법 공격은 리치 나이트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리치 나이트가 휘두르는 검보랏빛 검격에 헌터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후퇴! 후퇴하라!
공격이 통하지 않자 대장으로 보이는 헌터가 후퇴를 명했다.
지리멸렬한 후퇴였다.
“녀석은 암흑 역장으로 보호받고 있어요.”
정승원이 씹어삼키듯 말했다.
리치 나이트에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난 듯했다.
“아시다시피 암흑 역장은 빛 속성 이외의 피해를 전부 경감합니다. 이때 제대로 싸울 수 있었던 건 빛 속성 라이트 세이버를 가진 저 뿐이었어요.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빛 속성 스킬을 가진 헌터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이렇게 맥없이 지진 않았을 거예요.”
암흑 역장이라··· 상당히 까다로운 방어 스킬이다.
빛 속성이 아니면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없으니···.
“다른 헌터들이 고스트를 비롯한 쫄 몬스터들의 주의를 끌고 저랑 형님이 연계해서 리치 나이트를 잡는 겁니다. 제가 근거리서 공격할 거고요. 불리해지면 놈은 분명 빠른 기동력을 살려서 하늘로 도망갈 겁니다. 그때 형님이 태양이 마법 공격으로 리치 나이트 발을 묶어주세요. 그럼 제가 다가가서 끝장 내면 됩니다.”
정승원은 벌써 나를 이용한 전략까지 다 세워놓은 듯했다.
과연 엘리트 헌터답다.
녀석 명령을 따르는건 내키지 않았지만,
계획은 녀석이 큰 리스크를 지는 것이고 전술도 납득 될 정도로 고심해서 짠 흔적이 보였다.
어차피 나야 태양이 힘을 가늠해보는 실전 훈련으로 게이트를 찾은 것이니 안전하게 녀석의 작전을 따르는게 좋겠지.
“괜찮네. 마정석 나오면 반반 나눌 거지?”
C급 레어 몬스터니만큼 중급 마정석 이상이 나오는 건 확실했다.
중급 마정석은 1kg만 나와도 3,000만원이다.
챙길 건 챙겨야지.
“좋습니다. 원래는 리스크를 크게 지는 제가 더 많이 먹어야하지만, 남도 아니고 형님이시니까 특별히 5 대 5 하시죠.”
정승원 녀석 큰 선심 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분배도 끝났고 남은 건 사냥 뿐이다.
- 작가의말
성탄절이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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