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믹 봄

정승원과 박남수는 나머지 스무 명 가량의 D, C급 헌터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리치 나이트와 대치했다.
리치 나이트가 두르고 있는 암흑 역장.
그 강력한 보호막 앞에서 빛 속성 무구를 가지지 못한 헌터들은 너무나 무력한 존재들이었다.
원래 그들의 역할은 김동수 헌터 대장과 엘리트 헌터 정승원이 리치 나이트를 상대할 동안 쫄 몬스터인 고스트들이 두 명을 방해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었다.
헌터들도 그것을 알았기에 정승원과 박남수 두 명에게 리치 나이트를 맡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도망 안 가요?”
헌터 중 한 명이 의리 있게도 호현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가세요! 전 남아서 도울게요.”
지금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헌터는 호현이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태양이가 C급 레어 몬스터 리치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을지.
“태양아 한 번 해볼래?”
-뀨잉 뀨잉!
태양이도 파이팅이 넘친다.
“잠재능력 개방, 스킬 발동!!”
[잠재능력 개방을 사용합니다.]
[대상 지정 파트너 몬스터 ‘태양’.]
[남은 제한 시간 3분 00초.]
태양이의 몸이 빛나며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도망가다 말고 변신하는 태양이를 보고 놀라워했다.
“우와··· 저게 대체 뭐지?”
“역시 승원이가 그냥 아무나 데려왔겠어? 뭔가 비장의 한 방이 있었던 거야.”
* * *
-슈우우!
리치 나이트로서도 가장 거슬리는 건 정승원과 박남수였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슈웅 슈웅!
검붉은 마기를 흩뿌리며 리치 나이트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으아악!”
박남수가 허벅지를 부여잡고 땅을 굴렀다.
그 아래쪽에 선을 그은 것처럼 붉은 피가 주욱 이어졌다.
“남수 형!”
정승원이 박남수를 감싸듯 리치 나이트를 막아섰다.
리치 나이트의 몸에서 검붉은 마력이 폭발하듯 퍼져나왔다.
“크허억!”
강렬한 마력에 쐬인 정승원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누가 봐도 절체절명의 상황.
그 때였다.
태양이가 변신을 마치고 ‘킹 슬라임’으로 변화한 것은.
갑자기 뒤편에서 번쩍이는 빛에 당황한 리치 나이트는 정승원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타이밍을 놓쳤다.
정승원은 그틈을 놓치지 않고 부상당한 박남수를 데리고 뒤로 도망갔다.
“형님! 이게 대체···?”
“승원이 넌 다친 사람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피신해!”
“형님은요?”
“난 괜찮아. 태양이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내 자신만만한 대답에 정승원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 혼자서는 무리예요!”
“괜찮다니까! 어서 가! 더 지체했다가 상처가 덧날 수 있어.”
내 말처럼 박남수의 상처는 얕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하지만 대처가 늦어진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알겠습니다. 무사하세요.”
정승원은 박남수를 데리고 게이트 바깥 쪽으로 향했다.
슈우우–!
리치 나이트는 이미 정승원과 박남수는 보고 있지 않았다.
녀석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킹 슬라임으로 변신한 태양이.
뀨오오!
태양이의 몸이 빛났다.
빛의 화살, 샤인 애로우가 십여 개 동시에 생성되었다.
원래 태양이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마법이었다.
슈슈슈슈슉—!
빛의 화살이 소낙비 내리듯 리치 나이트를 향해 쏟아졌다.
파카카캉!
강력한 암흑 역장도 빛 속성 화살 앞에서는 무용지물.
검은 역장이 설탕유리 깨지듯 깨어졌다.
-슈오오!
온 몸에 빛의 화살이 박힌 리치 나이트가 고통스런 포효를 내질렀다.
“태양아 방심하지마!”
큰 타격을 준 건 분명하지만 아직 녀석의 마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의 타격은 입지 않았다는 소리다.
리치 나이트가 마검을 양손으로 잡고 검도의 상단세와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마력의 파동이 강풍처럼 휘몰아쳤다.
리치 나이트 녀석, 진짜 온 힘을 다해서 태양이와 맞설 생각이다.
녀석도 알았겠지, 태양이가 자신이 온 힘을 다해도 이기기 힘들 정도로 격이 다른 상대라는 걸.
탓!
녀석이 먼저 움직였다.
거의 날라가듯 4미터 가까이 점프해서 태양이의 정수리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푸우우욱!
마치 젤리를 반으로 자르듯이 태양이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버리는 리치 나이트.
역시 C급 레어 몬스터. 왠만한 B급 몬스터에 준하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지경.
태양이에게 강력한 재생, 복원 능력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비명을 질렀을 광경이었다.
하지만.
반쪽으로 갈라져 흐물텅거리던 태양이의 양쪽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슈우우욱···!
몬스터가 하는 말은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어이가 없겠지.
반으로 잘라버려도 금새 원상 복구되는 녀석을 어떻게 이기겠냐고.
물론 태양이가 무적인 것은 아니다.
태양이가 가진 육체의 물성이 우리 상식과는 달라서 생기는 인식의 부조화다.
인간은 몸이 반으로 갈라지면 치명상이다.
하지만 몸의 대부분이 점액질인 태양이에게 있어서 몸이 반쪽으로 갈라지는 건 겉보기와는 달리 그닥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태양이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금이지만 마력량이 줄어들었다.
-뀨오오오!
태양이가 리치 나이트를 도발하듯이 몸을 꿀렁댔다.
[남은 제한 시간 2분 12초.]
“태양아! 시간 없어! 장난치지 말고 한 번에 없애버려!”
너무 강대한 힘을 가져서일까?
태양이 녀석 킹 슬라임으로 변신하면 좀 오만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약간 내 명령도 무시하려 그러고···.
내 테이머로서 격이 낮아서 태양이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뀨잉!
그래도 원체가 착한 태양이였다.
내 명령을 알아듣고 리치 나이트를 끝장내기 위해 돌격하는 태양이.
리치 나이트를 잡아먹을 듯이 돌격했다.
일전에 ‘핏빛 좀비 사무라이’를 몸 안에 넣고 녹여버렸던 것처럼 리치 나이트를 제 몸 안에 가둬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킹 슬라임으로 변한 태양이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변신 전보다 더 느려졌다.
느릿느릿 이동해서는 빠르게 이쪽저쪽으로 도망가는 리치 나이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적은 리치 나이트 뿐이 아니었다.
[남은 제한 시간 1분 56초.]
3분 밖에 안 되는 변신 시간도 고려해야할 요인이다.
질질 끌었다가는 불리하다.
그러나 싸움의 양상을 보니 리치 나이트를 남은 시간 안에 잡기 힘들어보였다.
녀석은 영리했다.
태양이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요리조리 도망가면서 반격의 틈을 엿보고 있었다.
녀석이 태양이의 변신 한계 시간에 대해 알리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안되겠다,
조금 도박수기는 하지만···.
훈련기간 동안에 익혔던 필살기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단단이 쪽으로 손을 흔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내 쪽으로 와서 날 보호하라는 수신호다.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태양이와 단단이의 연계 플레이를 연습했다.
그 대비가 지금 빛을 발할 차례였다.
-그오오.
쿵쿵.
단단이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태양아! 아토믹 봄이다!”
-뀨오!
킹 슬라임으로 변한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대 폭발 기술 ‘아토믹 봄’.
이 기술의 유일한 약점은 주변에 있는 아군까지 휩쓸릴 정도로 광범위한 타격을 준다는 것.
강원도 훈련장에서 연습해본 결과 ‘아토믹 봄’의 유효범위는 무려 4,000제곱미터에 달했다.
거의 초등학교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말그대로 초토화 시킨다는 것.
아토믹이라는 기술 명이 붙을 만한 위력이었다.
이 기술이라면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리치 나이트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4000 제곱 미터를 도망가다가는 2분 남짓한 변신 시간이 끝날 수 있었다.
여기서 단단이가 내 방패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단단이가 날 품듯이 끌어안고 엎드려서 스킬 ‘철벽 요새’를 발동하는 것.
전혀 피해가 없지는 않지만 버틸수 있다는 것은 이미 훈련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태양이가 마음껏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엎드린 단단이 품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오.
단단이가 내 위에 엎드려서 물샐틈 없이 사방을 막아주었다.
“태양아 해치워버려!”
그 후에 단단이가 내 시야를 가로막아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빛이 한 번 번쩍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장한 폭음과 진동이 단단이 몸을 덮쳤다.
쿠콰콰콰쾅 —-!!!
한바탕 소란이 인 끝에,
리치 나이트의 마력이 소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 * *
다른 헌터들은 전부 게이트에서 탈출했고 맨 마지막에 나온 게 나였다.
게이트에서 나온 나는 깜짝 놀랐다.
바깥에 군인들과 경찰 병력이 쫙 깔렸있었다.
완전 무장한 군 병력에 뒤쪽에는 K1A1 탱크에 소방차까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헬기 소리까지 들렸다.
“헌터···?”
“어떻게 된 거야?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혼자서 홀연히 나타난 내 모습에 놀라워하는 사람들.
“혹시 국제시장 게이트 정화대 소속 헌터십니까?”
군 사령관인듯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게이트 상황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게이트 붕괴위기라고 들었는데.”
불안감과 희망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사령관이 물었다.
“걱정마세요. 게이트 안쪽의 레어 몬스터는 해치웠습니다. 국제시장 게이트는 곧 안정화될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못 믿겠다는 듯이 귀찮게 구는 사령관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나도 무척이나 지쳤다.
“잠시만요!”
군 사령관이 날 붙잡으려 했지만 내 뒤로 쿵쿵 소리를 내며 단단이가 빠져나오는 통에 군 사령관은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형 수고 많았어!”
무성이가 다가와서 수건과 음료수를 건넸다.
“이게 다 무슨 난리야?”
“헌터 대장 김동수 헌터가 실려나오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정승원 헌터까지 탈출했잖아. 바깥에서는 꼼짝없이 레어 몬스터를 잡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했어.”
아···.
게이트 정화대에서 제일 믿을만한 두 헌터가 모두 중상을 입고 실려나왔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승원 헌터가 바로 군을 부르라고 요청했어. 잘못하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승원이는?”
“병원에 실려갔어. 상처가 심했거든.”
군 사령관이 엉거주춤 재차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로 레어 몬스터는 쓰러진 겁니까?”
“정 못믿으시겠으면 게이트 오염도 조사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군 사령관은 분주하게 오염도 조사를 명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말거나 빨리 가서 쉬고 싶었다.
C급 게이트는 마기 농도가 높아서 안에 들어가 있기만 해도 상당히 피로해졌다.
게다가 레어 몬스터와 사투까지 벌였으니 주로 구경만 했다고 하지만 긴장을 너무 했는지 온 몸이 녹초가 된 것 같았다.
“무성아 호텔로 가자.”
“어, 알았어!”
날 경이롭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군인들과 경찰들.
그들은 내가 다가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양 옆으로 길을 터 주었다.
그들을 지나쳐서 공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단단이를 트럭 짐칸에 적재하고 시그니엘 호텔로 향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하루 푹 쉬고 싶었다.
다음날.
나는 부산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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