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영웅

시그니엘 호텔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둑어둑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6시 반이었다.
호텔 프론트에 연락해 아침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태양이랑 단단이는 잘 잤을까?
둘은 호텔 근처에 있는 목장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소환되지 않은 몬스터를 ‘우정’ 목장으로 돌려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
자세히는 모르지만 들어왔던 문으로만 나갈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상급 테이머들은 몬스터 운송 수단을 따로 마련해 다니는 이유기도 했다.
테이머 한 명이 통제할 수 있는 몬스터의 마릿 수는 정해져 있다.
내 경우엔 두 마리.
통제를 벗어난 몬스터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게이트 안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몬스터를 데리고 가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여러모로 아직 나한테는 따로 운송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덜했다.
호텔 프론트에서 가져온 아침을 간단히 먹고 바깥으로 나가 어둑어둑한 해운대 바다를 거닐었다.
비릿한 바다내음과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았다.
삼십 분 쯤 바깥 바람을 쐬고 8시쯤 돼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무성이는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 폰을 붙잡고 있었다.
“일어났냐?”
“형···! 큰일났어.”
“큰일?”
“형 완전 유명해졌어. 완전 영웅이야 영웅!”
무성이는 상기된 얼굴로 제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보여줬다.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큰 위기 넘겨. 테이머 헌터 이호현 씨 활약.]
[서울에서 올라온 EX급 테이머? 국제시장 게이트 정화 완료.]
[부산의 구세주! 테이머 헌터는 누구인가?]
무성이 말대로 인터넷 기사가 무수히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부산 지역지 신문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
“아침에 형 전화가 시끄럽게 울리길래 알람인 줄 알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더라고. 몇 번 끊었는데 계속 오길래 중요한 전화인줄 알고 형 잠시 나갔다고 말해주려고 받았지. 근데 신문사 기자라는 거야. 형 전화는 어떻게 알았는지··· 인터뷰하고 싶다고 그래서 일단 형 오면 전해드린다하고 끊었어. 그리고 뭔 일인가 하고 검색해봤는데···.”
우우우웅~.
무성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근데 010으로 시작하는 걸 봐서는 해외 스팸 사기 전화는 아닌 듯한데.
“형 받아봐. 신문사 기자일지도 모르잖아.”
폰을 터치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호현 헌터님 전화 맞으세요?
“...그런데요.”
-아! 안녕하십니까. 전 부산경제신문 김선근 기자입니다.
정말로 신문 기자였다.
“네에··· 근데 무슨 일로?”
-이번 국제시장 게이트를 영웅적으로 정화하신 헌터님이랑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조금만 시간 내주시면 안 될까요?
무성이가 옆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인터뷰하라고 손짓했다.
흐음···.
상급 헌터들은 무슨 연예인처럼 광고를 많이 찍었다.
그들의 수입의 꽤 많은 부분이 광고료라는 말도 있을 정도.
헌터일을 하려면 여러가지로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이 기회에 내 인지도를 높여두면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뷰에 시간이 얼마나 들까요?”
-30분 정도만 내주시면 됩니다!
“그럼 뭐··· 좋습니다.”
기자는 희희낙락하며 미리 준비한 질문을 빠르게 물었다.
주로 내 신상에 관련된 것.
어떻게 국제시장 게이트 정화에 참가하게 된 건지.
강력한 레어 몬스터를 어떻게 사냥할 수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운 좋게도 암흑 속성 몬스터에 강력한 능력을 각성했거든요. 그 이후로 암흑 속성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 위주로 정화하고 있습니다.”
“아하! 암흑 속성 몬스터를 잡는데 스페셜리스트란 얘기시군요.”
“네··· 뭐, 비슷합니다.”
기자의 말과 달리 인터뷰는 거의 1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그것도 내가 먼저,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은데요. 인터뷰는 이쯤해서 끝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해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기자를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형, 벌써 각 커뮤니티에서도 난리야. 국제시장 게이트를 닫은 헌터가 누구냐고.”
무성이는 참 신나보였다.
갑작스런 관심이 얼떨떨하고 부담스러웠다.
무성이가 호텔 거실에 마련된 TV를 틀었다.
지역 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소식이었다.
-부산 시민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던 국제시장 게이트는 이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상태라면 인위적인 개입 없이 가만히 놔두어도 게이트는 자연 소멸될 거라는 전문가 의견입니다.
“어···.”
뉴스 화면에 헬기에서 찍은 듯한 영상이 나타났다.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를 상공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내가 나오는 모습이 찍혔다.
내 뒤를 이어 단단이와 단단이 어깨 위에 올라탄 태양이가 게이트에서 나왔다.
군 사령관이 날 가로막고 경위를 묻는 모습까지 찍혀있었다.
-22일 오후, 게이트 정화를 위해 들어간 대장 김동수 헌터와 유망주 정승원 헌터까지 큰 부상을 입고 게이트에서 탈출하자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졌습니다. 군과 경찰 당국은 게이트 브레이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부산시의 경찰 병력과 근처 군부대, 소방대까지 출동시켜 국제시장 주변 10km를 봉쇄했습니다. 위기의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게이트 정화대에 지원으로 참여한 한 테이머 헌터가 국제시장 게이트의 레어 몬스터를 잡아내며 게이트를 정화한 것입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테이머 헌터의 이름은 이호현 헌터로 헌터가 된지 채 3개월이 된 E급 헌터라고 합니다. 위기의 순간 초신성처럼 나타난 유망주의 소식에 시민들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헌터 카드 등록할 때 찍은 증명사진까지 뉴스 자료화면으로 나왔다.
휴··· 잘생기게 나온 사진으로 등록증을 바꿔놓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난 사진빨이 잘 안 받는다.
샤워하고 거울을 보면 참 잘생겼는데 사진만 찍어놓으면 오징어채처럼 된단 말이지···?
그래도 저 사진이 뉴스까지 타다니···모처럼 E급 헌터가 되어서 헌터 카드 등록하는 거라서 스튜디오까지가서 사진 찍은 보람이 있다.
우우우웅~.
또 전화가 온다.
귀찮네 전화를 꺼놓기라도 해야하나.
그러고보니 정승원 녀석 입원했다고 하던데.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녀석 괜찮은지 병문안이라도 한 번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성이한테 시켜서 정승원이 입원한 병원을 알아냈다.
정승원 뿐 아니라 헌터 대장 김동수와 박남수 헌터 등 다친 헌터들은 거의 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는 듯했다.
나는 무성이와 함께 정승원이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형님 오셨어요?”
병실로 들어서자 정승원이 날 알아보고 반겼다.
“다친데는 좀 괜찮아?”
“전 그리 심하진 않아요. 남수 형이 걱정이지.”
심하지 않다고 하기엔 몸통에 붕대를 둘둘 두르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겉보기엔 심하게 다쳐보이지 않았었는데··· 참고 있었던 거 같다.
“죄송해요. 남수 형만 바깥으로 빼고 바로 도우러 가려고 했는데 의사가 잡는 바람에.”
“됐어. 나 혼자서도 잡을 수 있었어.”
“근데 어떻게 된거예요? 정말로 C급 레어 몬스터를 혼자서 잡다니··· 대체 무슨 수련을 하고 온 거예요?”
훈련이 고되기도 했지만 최신식 설비와 나 자신이 레어 클래스로 각성한 게 컸다.
보통 테이머 헌터가 피나게 훈련했다고해서 한 달만에 나처럼 급격한 성장을 이루진 못했겠지.
“언제쯤 퇴원할 수 있대?”
“한 일주일 쯤 가만히 있어야 될 거 같아요. 아참, 형님 완전 스타 되셨던데요?”
정승원도 뉴스기사를 봤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참고로 형님 이름이랑 정보를 기자한테 흘린 건 접니다.”
“뭐야, 네가 범인이었냐?”
하루만에 내 번호를 알아내고 연락해온 게 좀 신기하긴 했다.
“좋은 뜻으로 알려준거예요. 형님도 매스미디어 세례를 좀 받아야 유명해지고 그러죠.”
“세례 한 번 더 받았다가는 귀찮아서 죽겠다.”
“방송 나가서 나쁠 것 없어요. 저도 의인 헌터로 유명해지고 광고도 하나 찍었잖아요.”
그러고보니 정승원을 광고에서 본 것 같기도하다.
불조심하자는 공익광고였나?
“형님도 이래저래 돈 들어갈 데가 많잖아요. 광고비좀 타 쓰시라는 맘으로 그나마 괜찮은 기자들한테만 슬쩍 형님 정보 귀뜸해줬어요.”
“그래··· 잘했다. 근데 앞으로는 그러지마라. 귀찮다.”
“자주 나올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가끔은 얼굴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기억해주죠.”
“말하는 거 보니까 괜찮아 보이네. 난 간다. 쾌차해라.”
“또 보시죠. 시아 씨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로부터 며칠 간은 연락이 진짜 많이 왔다.
정승원 조언대로 가장 영향력이 클 TV 생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다.
KBC 아침 세상.
매일 아침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방송에 나와서 웃으며 헌터로서 가진 사명감에 대해 있어보이는 말을 했다.
“제가 헌터가 된 이유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리 방송작가와 얘기해서 어떤 내용으로 방송을 할지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방송대본을 받아보니 더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 내용이 써있었다.
내 삶이 이렇게 영화같았나···?? 싶을 정도.
방송에서 나는 고교시절 남경일 헌터에게 목숨을 구해졌고 힘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소년 가장처럼 열심히 일했고 그러다 사고로 마기에 심하게 노출되었으며 기적적으로 각성한 천재 유망주 헌터로 그려졌다.
대체로 맞는 말이기는 한데 군데군데 드라마틱한 각색이 들어간 재연 드라마가 틀어져서 흥미를 더했다.
“불쌍한 우리 아들.”
지아가 틀어준 재방송 너튜브 영상을 보며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셨다.
“원래 큰 인물이 되려면 젊었을 적에 고생을 겪어야하는 법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감정 이입을 하시면서 재연 드라마를 시청하셨다.
이게 매스컴의 힘인가···.
우리 가족들까지 사로잡다니.
며칠 후에는 희권 아저씨가 인터뷰한 영상까지 너튜브에 올라왔다.
-호현이 걔 내가 키운거나 다름없어요. 청출어람이란 말이 딱이지 뭐. 어느새 가르쳐준 나를 넘어서서 큰 헌터가 되었네요.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희권 아저씨는 즐거워 보였다.
그러고보니 신도림 변이 게이트 때도 그렇고 방송 나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그놈은 떡잎부터 남다른 놈이었어요. F급 게이트 돌 때 주변 헌터들이 걔를 뭐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EX급 테이머라고 다들 그랬어요. 인성도 좋아~ 실력도 훌륭해~ 참 잘 컸습니다. 아 제가 역할을 한 거 아니냐고요? 하하하. 역할은 무슨··· 그래도 제가 쪼오끔은 가르친 부분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부산 게이트를 정화한 EX급 테이머로서 부산시와 관심있는 헌터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소소하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한 일주일 정도는 헌터넷에서도 내 얘기를 할 정도였다.
다행히 일주일 후에는 나에 대한 관심이 좀 사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최정예로 구성된 정화대가 한라산 A급 게이트 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노상겸, 주서욱 두 명의 A급 헌터는 다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산 시민들이 나에 대해서 가지는 고마운 마음은 쉽게 식지 않았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라는 말처럼,
부산의 위기일 때 내가 게이트를 닫은 것을 기억해준 것이다.
각성청 유동명 팀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호현 씨. 부산시에서 표창을 수여한다고 합니다. 더불어서 호현 씨의 특별 진급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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