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급 헌터 이호현

-호현아. 나 원준이야. 강명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활약 잘 보고 있다. 진짜 네가 이렇게 대단해질 줄이야. 다음주에 동창회하는데 시간 되냐? 다들 너 보고 싶어해.
유명해지니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친구한테까지 연락이 온다.
심지어 잠깐 반짝 했을 뿐인데도.
이 맛에 사람들이 연예인하고 싶어 하는 걸까?
부산 시에서 표창을 수여한다고했다.
남들이 다 버릴 때 내가 도와준 게 고마웠나보다.
솔직히 표창이랑 돈보다는 각성청 청장님이 이번 공로와 표창 받은 것을 인정해서 2등급이나 특별승급을 시켜준다는게 좋았다.
승급하면 C등급 헌터가 된다.
솔직히 지금까지 게이트 돌면서 나름 주눅들었던게 사실이었다.
헌터들끼리 처음 만나면 의례 ‘무슨 등급 무슨 클래스를 각성한 아무개입니다.’ 하고 인사하는게 통례였으니까.
F, E급 하급 헌터인 채로는 아무래도 면이 안 선다.
실력은 충분하지만 최소 복무 기간이라는 제한 때문에 시험 응시조차 못하는 상황.
내색은 안 했지만 솔직히 많이 억울했었다.
그런데 각성청장 직권으로 바로 C급 헌터로 올려주겠다고 하니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C급 헌터부터는 어딜가나 대접 받는다.
삼선, GL, 네카라쿠베당토 이런 대기업에 입사한 것보다 한 급 높게 쳐주는 게 C급 헌터다.
이 급나누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당당히 남부럽지 않은 성공한 인생으로 쳐주는 것.
좀 위험하기는 해도 기본 억대 연봉에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니 존경도 받는다.
게다가 C급부터는 나라에서 생명수당과 헌터연금까지 나오기시작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게 된 시대···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 * *
“이호현 헌터님. 귀하의 희생, 헌신과 용기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부산 시민을 대표해서 이 표창장을 수여합니다.”
부산 시장님과 악수를 나눈 후 [게이트정화공로표창장]을 건네받았다.
표창장을 가슴팍에 들고 신문기자들에게 잘 보이게하고 활짝 웃었다.
찰칵 찰칵 찰칵.
쉴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눈부셨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음은 재계약.
오랜만에 서울남부지방각성청을 방문했다.
C급 라이센스 발급과 함께 의무복무 헌터 연봉 재계약까지 같이 진행하게 된 것.
“처음 계약할 때 호현씨 연봉을 활약에 따라서 산정해드린다고 했는데 이래저래 바빠서 이제야 제대로 활약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네요.”
유 팀장님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대로 대우 잘 해주셔서 감사하기만 할 따름이죠.”
“아닙니다. 사기업 헌터 길드에 소속되셨으면 지금의 몇 배 몇십 배를 더 받으셨을 텐데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계신 겁니다.”
유동명 팀장님이 테이블 위에 계약서를 꺼내서 펜으로 집어가며 설명해주셨다.
“처음에 작성하셨던 표준 계약서와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기 연봉 부분만 보시면 됩니다.”
사기업도 아니고 설마 나라에서 사기를 치겠어?
유동명 팀장님 말처럼 복잡한 계약사항은 건너뛰고 연봉 부분으로 시선을 옮겼다.
200,000,000 원.
와··· 무려 0이 몇 개냐···.
2억 원이다. 무려 연봉만 2억 원.
우리집이 졌던 2억 원이란 빚은 평생 갚아도 언제나 갚을 수 있을지 앞이 안보일 정도로 큰 액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연봉으로 2억 원을 받게 되다니.
감개무량이었다.
연봉만 온전히 저축해도 우리 집 건사하는 건 문제 없겠다.
“C급 헌터에게 억대 연봉은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만, 호현 씨 활약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서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 드렸습니다. 만족하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족하고말고요! 진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정도로 대우해주시는데 만족 못하면 내가 나쁜 놈이지.
“계약 내용에 동의하신다면 여기 싸인해주시면 됩니다.”
얼씨구 절씨구~ 신나는 어깨춤~.
유 팀장님 맘이 바뀌기 전에 얼른 싸인부터 했다.
“그리고 여기, C급 라이센스 카드입니다.”
유 팀장님이 고급스런 명함 케이스 크기의 작은 상자를 건넸다.
와아···!
상자를 열어보니 금박이라도 되었는지 반짝거리는 카드가 한 장 들어있었다.
C급 헌터 라이센스 카드였다.
내가 지금 가진 카드는 그냥 플라스틱 카드인데 이 녀석은 휘황찬란한 금색이다.
“이거 진짜 금이에요?”
“금박이긴 한데, 금 맞습니다.”
어쩐지··· 영롱한 금 색깔이 가짜 금박과는 때깔부터 달라보였다.
“각성청에서도 호현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기대요?”
“네. 솔직히 호현 씨 처럼 희귀한 직업으로 각성하는 사람이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수가 중도에 사망하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헌터 일을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적은 희귀 클래스 각성자 중에서도 C등급 헌터까지 올라오는 수는 5%도 안된다고 봐야겠죠.”
상급 헌터가 되기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5%라는 숫자를 들으니 진짜 힘든 거 맞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각성청에서는 호현 씨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호현 씨는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해내셨어요. 각성청에서도 본격적으로 지원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설령 위에서 안 된다고 해도 제가 최선을 다해서 위쪽을 설득할 겁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솔직히 감동이었다.
유동명 팀장 아저씨 맨날 생글생글 웃으시기는 하지만 어딘지 사무적이고 꾸며낸 듯한 미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냥 의례적으로 담당하는 헌터들에게는 모두 잘 대해주나보다 하고 넘겼을 뿐.
근데 내 오해였던 거 같다.
이 아저씨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나라를 생각하는 참 공무원이었다.
“진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처음엔 기대도 안했거든요. 괜히 군대 두 번 끌려온 거 같다는 억울한 생각만 들었고···.”
눈물까지 찔끔 나려고했다.
“제가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젊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군인으로, 또 헌터로 복무하시는 분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 저도 다 알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의무복무 헌터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도 나라에서 녹을 먹고 사는 저희 각성청 사람들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팀장님···.”
“게이트 정화 중에 다리를 다쳐서 은퇴한 제가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젊은 헌터들이 나라를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없도록 돕는 것 정도니까요.”
유 팀장님은 자신의 다리 쪽으로 잠깐 시선을 보냈다.
가끔 다리 절뚝이시는 거 같다고 느꼈는데 다리를 다치셨구나.
크흑··· 진짜 참 헌터이자 공무원이시다.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서 힘내주시기 바랍니다.”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각성청을 나서자 마자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C급 헌터 됐어!”
* * *
내가 C급 헌터가 되자 가족들이 나보다 더 기뻐해주었다.
“옆집 영애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C급 헌터가 대기업보다 낫다데?”
“말해 뭐해? 연봉이 2억이래잖어!”
웃으면서 투닥거리는 부모님.
“장하다 우리 장손. 네가 드디어 이름을 빛내기 시작하는구나. 그렇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하는 법이지.”
“오빠, 진짜 축하해. 열심히 헌터 일 한 게 인정 받은 거잖아.”
“진짜로. 오빠 알바하느라 힘들었는데 인생 폈네.”
“나 학교가서 울 오빠 C급 헌터라고 자랑할게!”
할아버지와 여동생들까지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줬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내가 진짜 성공해서 우리집 빚도 다 갚아드리고 효도하고 동생들도 잘 챙기고 할게요!”
와아아! 짝짝짝.
박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엄마가 사오신 케이크를 잘랐다.
생일도 아닌데 축하할 일이라고 엄마가 동네 빵집에서 제일 비싼 푸르츠타르트 케이크를 사오셨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네 마리나 사오셨다.
밥상 위에 푸르츠타르트 케이크와 시장 전기통닭 네 마리가 늘어졌다.
일견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건 가족들의 마음 아니겠나.
케이크를 7명 가족에 맞게 등분해서 자르고 전기 통닭도 먹기 좋게 북북 찢었다.
닭다리는 인수 별로 하나 씩 나누고.
“오늘 주인공이니 호현이는 특별히 두 개 뜯어라.”
아버지가 닭다리 두 개를 내 앞으로 돌리셨다.
가족들과 즐거움을 나누니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다.
* * *
C급 헌터가 된 기쁨은 슬슬 접어두고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해야했다.
C급 게이트부터는 자주 발생하지 않을 뿐더러 정화 난이도도 하급 게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부산 국제시장의 C급 게이트를 정화 함으로써 내가 지금 가진 전력으로 C급 게이트를 충분히 공략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빠르게 B급 게이트로 치고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계속 C급 게이트에 머물면서 내실을 다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B급 게이트 부터는 들어가고 싶다고해서 바로 찾아서 정화대에 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발생되지 않았다.
미리 각성청에 신고해 놓으면 게이트 발생에 따라서 각성청에서 연락이 오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서울에서만 게이트가 발생한다는 보장도 없다.
지방에서 B급 게이트가 발생한다면 이번에 부산에 내려갔던 것처럼 이동해야했다.
나는 면허가 없지만 군대 수송 에이스였던 무성이가 있으니 이동 걱정은 덜었다.
위이잉.
테통령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호현 씨? 활약 잘 봤어요. 특별 공로로 C급 헌터로 승격되었다면서요? 축해해요.”
“감사합니다. 근데 어쩐 일로?”
‘험험.’ 테통령 아저씨는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일전에 말한 거 기억하죠? 아프리카의 탑을 조사하는 거요.”
콩고 분지 열대 우림에 있다는 탑 얘기였다.
그 탑이 세상에 게이트를 흩뿌리는 원흉이 아니냐는게 아저씨 주장이었다.
“호현 씨도 이제 C급 헌터가 되었잖아요? 이제 B급도 눈앞입니다. 상급 헌터라고 불리는 B급부터는 국제헌터연맹이 조직하는 아프리카 조사대에 참가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고민해 볼 때가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힘을 키워서 조사대에 참가하는 건 나중이라도 마음은 미리 정해놔야죠. 그럼 나를 비롯해서 GDG에 소속된 헌터들이 호현 씨를 물심양면 도울 수도 있고요.”
아프리카 조사대에 참여할 건지 결정해달라는 소리였다.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솔직히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었다.
이제야 C급 헌터로 승급해서 돈을 억수로 벌고 가족들 호강시켜줄 일만 남았는데, 위험한 아프리카 조사대에 참여한다고 말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긴하죠. 그래도 고민해봐요. 언제까지 게이트를 두려워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조사해야할 일이고 그 힘은 우리만 가졌어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내기 너무 우리 생각만 한 거 같구만. 너무 서둘러 결정하려하진 말아요. 어차피 B급 라이센스를 따는게 선결 조건이니까. 꼭 우리 GDG에 참여 않는다고해도 B급 헌터로 올라갈 거잖아요. 그때까지 차분히 생각해봐요. 그리고··· B급 라이센스 따려면 그에 걸맞는 정화 경력을 인정 받아야 해요.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할 거예요.”
“넵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 테통령 아저씨 말처럼 일단은 B급으로 승급하는 것부터 신경쓰자.
아프리카로 갈지 결정은 그때 다시 해도 늦지 않으니까.
-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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