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꿈

강릉 5999게이트.
주로 나타나는 메이저 타겟 몬스터는 블랙 라이온이다.
레벨 40 중반 대의 강력한 몬스터다.
일반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도는 레어 몬스터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였다.
다행히 녀석들은 무리지어서 움직이지 않고 한 마리만 어슬렁거렸다.
그렇지 않고 다른 쫄 몬스터들처럼 몰려다녔다면 B급 몬스터 판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들이었다.
“몰아넣어!”
“이쪽이야!”
“지금이다! 원거리 사격 개시!”
베테랑 C급 헌터 대여섯 명이 전기 트랩을 바닥에 설치해 놓고 블랙 라이온을 그곳으로 몰아 붙였다.
파지지직!
헌터들은 감전되어 일시적으로 무력화된 블랙 라이온에게 일제히 달려들어서 겨우 한 마리를 사냥했다.
“휴우··· 다들 수고했어.”
“그나마 덩치가 작은 놈이라서 쉽게 잡았네.”
블랙 라이온은 암흑 속성 몬스터지만 영체는 아니라서 물리공격을 감쇄하는 특성은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근력과 민첩성,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만으로도 블랙 라이온은 충분히 위협적인 적이었다.
다행히 지능이 뛰어난 놈은 아니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본능에 따라 싸우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베테랑 헌터들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머리를 사용해서 놈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내 파트너 몬스터들에게는 함정이 필요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전기 트랩을 설치해서 녀석들을 잡는게 가장 안전한 공략법인데.”
헌터 대장이 건네는 함정을 굳이 받지 않았다.
블랙 라이온을 C급 헌터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굳이 번거롭게 함정을 설치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고 판단했다.
나도 이제는 19레벨의 테이머다. 척 보면 어느정도의 몬스터이고 태양이와 단단이와 비교해봤을 때 더 강한지 약한지 대체로 가늠이 되었다.
내가 볼 때 블랙 라이온들은 단단이 선에서 정리가 될 거 같았다.
“단단아, 할 수 있겠지?”
-그오오!
단단이가 블랙 라이온에게 달려들었다.
캬오오! 블랙 라이온이 발톱으로 단단이를 할퀴었다.
발톱에 은은한 검은 마력이 실려있어서 단순히 물리 방어력만 높은 일반 골렘이라면 몸체가 푹 파일만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단단이는 아이언 골렘과 크리스털 골렘의 믹스다.
몸 전체에 마력 역장을 두르고 있어서 마력을 두른 발톱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께게겡···.
블랙 라이온은 제 필살 공격이 통하지 않자 당황한 듯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오오! 단단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블랙 라이온을 잡아서 레슬러처럼 번쩍 위로 들어올리더니 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쿠와악!
블랙 라이온은 큰 충격을 받고 땅을 굴렀다.
콰지직!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단이가 블랙 라이온을 발로 밟아 끝장을 냈다.
[Lv.43 블랙 라이온을 처치했습니다.]
[스킬 ‘성장 가속’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14,000exp를 얻습니다.]
[레벨업! 파트너 몬스터 단단이 LV.25가 되었습니다.]
[파트너 몬스터 ‘단단’이 스킬 ‘헤비 펀치’를 습득했습니다.]
[헤비 펀치 Lv.1]
-적 1체에게 1.3배의 타격을 준다.
소비 MP : 15
오! 단단이가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다.
헤비 펀치···.
평범한 타격계 스킬이다.
별로 특별할 건 없지만 단단이가 원래 가진 파괴력을 더 강하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꽤 쓸만한 공격 스킬이었다.
한편 내가 블랙 라이온을 잡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이후 내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지다보니 흥미 본위로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와··· 저 강한 블랙 라이온을···!”
“보통 골렘이 아닌 거 같은데?”
“E급 헌터일 때 부산 C급 게이트를 정화했다더니 실력이 다르네.”
감탄하는 정화대 동료들.
무성이는 바로 블랙 라이온의 사체 쪽으로 다가가 마정석을 찾았다.
“와! 형 대박이다!”
“뭐야, 뭔데?”
“이거 봐.”
무성이가 보여준 마정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와··· 이거 중급 마정석 아냐?”
50g 쯤 되려나? 손톱만큼 작았지만 분명 중급 마정석이었다.
메인 타겟으로 무수히 나오는 쫄 몬스터가 적은 양이지만 중급 마정석을 드롭하다니···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었다.
과연 C급 게이트.
괜히 C급 헌터들이 스포츠카를 몰고다니고 명품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순도가 어느정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급 마정석 1kg의 시세는 3천 만원 상당이었다.
50g의 마정석 조각이라도 150 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150 만원 정도를 벌던 나였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블랙 라이온의 갈기도 모아서 가져다 팔면 비싸게 팔 수 있다더라고.”
무성이는 챙겨온 톱과 갈무리 칼로 블랙 라이온의 갈기를 정성껏 잘랐다.
“가급적이면 갈기는 안 상하게 해서 잡아줘. 부산물도 갖다 팔아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그래, 알았다.”
그 후 오후에 블랙 라이온을 세 마리 더 잡았다.
거기서 나온 마정석만 600만원 상당.
게다가 무성이가 따로 갈무리한 블랙 라이온의 갈기는 뺀 금액이다.
대기업 직원 한 달 월급을 하루만에 번 셈이다.
“형, 쭉쭉 치고 올라간다! 이러다 진짜 우리 재벌 되는 거 아냐?”
“우리라고 맨날 밑바닥 인생으로 살라는 법 있냐? 기회 왔을 때 잡으면 우리도 위로 올라가는 거야.”
“그렇겠지? 근데 실감이 안 난다. 진짜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하고 말야. 형이랑 만난게 진짜 행운인 거 같아.”
“나도 너랑 같이 다니고부터 더 잘 되는 거 같다. 네가 알아서 잡다한 일 잘 처리해주니까 나는 게이트 정화에만 집중할 수 있잖아.”
실제로 오늘 무성이가 블랙 라이온에 대해서 조사해와서 갈기를 따로 팔 수 있다는 걸 알아왔기에 추가 수입을 올렸지 않은가.
“블랙 라이온 갈기 팔아서 나온 돈 절반은 네가 가져가.”
“뭐? 절반이나?”
“너도 돈 들어갈 데 많잖아.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앞으로 네가 알아서 갈무리 할 수 있는 부위는 챙겨서 가져다 팔아. 돈 나오면 이번처럼 절반은 너 먹고.”
내색은 안하지만 아픈 동생이랑 홀어머니 부양하고 살려면 무성이도 돈이 많이 필요할 터였다.
어차피 마정석은 내 수입으로 들어올 거고 갈무리하는 수고 생각하면 무성이에게 절반을 떼어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절반은 너무 많다. 나 30퍼센트만 먹을게.”
“괜찮다니까.”
“아냐. 나도 양심이 있고 자존심 있는 놈이야 형. 솔직히 30퍼센트도 과분하게 많다는 거 알아.”
군대 말년에 병장들이랑 다 친구 먹을 때도 끝까지 나를 선임 대접 했던게 무성이였다.
은근히 고집 세고 자신만의 선이 정해져있는 녀석이었다.
물론 그렇게 성실해서 내가 좋아하는 거지만.
“그래. 너 맘대로 해라. 근데 내가 너 기대하는 거 알지? 투자하는 거야. 나는 테이머 헌터로서 최고가 되고, 너는 짐꾼으로서 최고가 되자고. 나중에 딴데 가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하자는 선 투자금 같은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
무성이는 고개를 돌려서 잠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짜식. 눈물이라도 나는 걸까.
“고맙다는 말 안하고 나도 내 실력으로 증명할게. 짐꾼으로서 최고가 될거야.”
무성이가 물기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이거 무슨 닭 튀기는 냄새 같은데?
부엌으로 가보니 아버지가 요리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 뭐하시는 거예요?”
“어, 호현이 왔냐? 오늘 저녁은 깐풍기 만들어 보려고.”
아버지는 언제 사셨는지 멋들어진 중화웍에 닭을 볽고 계셨다.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단 얘기는 들었는데 중화 요리를 배우고 계셨나?
“왜 우리 어릴 적에는 기쁜 일 있으면 짜장면, 짬뽕 먹으러 갔단 말이지. 아무래도 나는 양식은 입에 안 맞고 한식은 좀 재미 없는 거 같고 그래. 그래서 중화 요리 배워보려고.”
“괜찮은 거 같은데요? 요즘에 중국 요리로 유명한 쉐프들 TV에 많이 나오잖아요. 젊은 애들도 탕후루니 마라탕이니 하는 요리들 좋아하고요.”
“흐흐. 네 생각도 그러냐? 나도 좀 젊은 감각의 중화 식당 열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
“저도 응원할게요.”
사실 요리 초보이신 아버지가 식당을 열어서 돈 버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
식당일을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만 누구보다도 전문적이고 노하우가 있어야하는게 식당일이라고 들었다.
초보자들은 설거지하는데만 하루 종일 걸려서 요령 없으면 장사 못 한다고.
내가 하루에 돈을 600만원을 버는데 아버지가 장사하시다 실패하시면 좀 어떤가 싶었다.
여유로운 마음은 넉넉한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다.
돈이 많으니 그저 아버지가 희망을 가지고 삶을 활기차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재활은 다 끝나신 거예요?”
“그거 거진 평생 동안 해야된다더라. 그래도 이제는 한 달에 두세 번 오라고 하니 다 나은 거나 다름 없지 뭐.”
아버지가 걱정 말라는 듯 미소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잘 이겨내실 거라고 믿었다.
곧이어 프레시 매니저 일을 끝내고 엄마도 퇴근하시고, 할아버지도 주간 경비 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애들은?”
“학원 갔다가 10시 넘어서야 올 거야.”
“애들 잡겠다. 밤 10시 넘어서까지 공부를 시켜야하나?”
엄마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애들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해서 하는 건데 뭘. 그래도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한 거지.”
아버지 말처럼 시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열심히 열공하는 중이었고, 리아도 체육 대학에 진학해서 생활체육 지도자가 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아는··· 두 언니가 열심히 공부하니 자기도 지기 싫다는 일념으로 수능 준비 하는 중.
그래도 놀기 좋아하는 지아가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며 공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자자, 공부 열심히 하는 딸내미들은 응원하고, 우리는 저녁 먹어야지. 아버지, 제가 실력 좀 발휘해 봤습니다. 깐풍기 좋아하시잖아요.”
아버지가 중화 웍 째로 깐풍기 요리를 식탁으로 가져오셨다.
“와···! 이거 진짜 당신이 만든 거야?”
“고럼! 내가 요리 교실에서 이제 완전 와따야!”
“허 참. 사내 녀석이 이제 제법 주방에 익숙해졌구나.”
약간 못마땅한 할아버지.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남자가 부엌 서는게 흉 아니에요. TV 나오는 유명 쉐프들 못 보셨어요?”
“네가 그 사람들 처럼 될 수 있겠어?”
“안 될 거 뭐 있습니까. 한 번 부딪쳐 보는 거죠.”
아버지가 오랜만에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자신있게 말하셨다.
계속 병상에 누워서 기운 없는 아버지 모습만 보다가 옛날처럼 자신에 찬 아버지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았다.
“저는 아버지가 훌륭한 요리사가 되실 거라고 믿어요!”
“흐흐흐. 너밖에 없다. 우리 아들.”
아버지가 내 접시에 깐풍기를 올려주셨다.
냠냠. 아버지가 만든 깐풍기는 평소처럼 자극적인 단맛 짠맛으로 침샘을 자극했다.
건강은 모르겠고 맛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만든 깐풍기를 소스까지 싹 다 핥아서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괜찮은 음식 솜씨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투자할 나라는 투자자가 있으니 아버지가 실패할 일이 있을까?
아버지가 어떤 요리사가 될 지, 어떤 식당을 차리실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작가의말
벌써 이번 년도의 마지막 날이네요. 12월 한 달 동안 너무 큰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저는 송년회 사내 카드 대회에서 1등을 하는 운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1등 상금이 꽤 많습니다. 흐흐흐.
제 좋은 기운 팍팍 보내드립니다.
독자님들도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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