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문

“이번에 한라산에 A급 게이트 생겼잖아. 그거 보고 경일이 형 생각 떠오르더라.”
아···.
바람 형도 나랑 똑같았구나.
“어떻게 잊어버리냐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저도 그랬어요.”
“너도?”
“네. 전 군대에서 남경일 헌터님 소식을 접했거든요. 저 위험하다고 근무할 때 공포탄도 지급 안 해줬어요.”
“아참 너 군대 갔다왔다 그랬지? 군대 얘기 신기하네. 탄은 왜 지급 안해줘?”
헌터들은 전부 각성청 의무 복무로 군역을 대체한다.
바람 형도 군대 가지는 않았겠구나.
나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군대에서는 여친이 이별 통보를 한다거나 가족중 누군가 돌아가는 큰 일이 나면 탄을 지급 안하거나 경계 근무에서 열외시켜 주곤 한다.
우울증 걸린 병사가 총기 난사를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는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난 남경일 헌터의 사고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아서 거의 한 달 동안 넋 놓고 지냈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엄청 위태로워 보였다고 한다.
“남경일 헌터님은 정말 돌아가셨을까요?”
“글쎄··· 다 똑같은 심정이지. 시신이 발견 된 것도 아니니까. 혹시 게이트 안 쪽에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거잖아.”
바람 형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살아 있어도 게이트에서 나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그래도 살아계시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나도 그래.”
출구가 있으면 입구가 있는 법이다.
게이트가 닫히더라도 다시 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다들 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게이트에서 실종된 실종자가 현실로 귀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게이트에서 탈출 못한 헌터들은 바로 사망자로 처리된다.
슬프지만, 현실은 그렇다.
“사실은 아직 확정된 얘기는 아닌데 말야.”
바람 형이 흘려들으라는 식으로 얘기를 꺼냈다.
“너 GDG라고 아냐?”
“아··· 네. 아프리카 조사하는 NGO 단체라고.”
테통령 아저씨가 말해주셔서 나도 장래에는 그곳에 참가하려고 생각 중이라는 걸 말했다.
“그래? 나한테도 접촉해 와서 몇 번 만났거든. 거기서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우리가 아는 게이트는 입구에 불과하고 게이트 안쪽 세계는 아프리카에 있는 탑에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이건 처음 듣는 소리다. 게이트와 탑이 연결되어 있다고?
“제가 듣기로는 아프리카 탑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고 하던데요.”
“어. 나도 이번에 한라산 게이트에 그 GDG에서 활동하는 녀석이 말해준 건데, 아직 그냥 가설 단계인 모양이야. 탑에 못 들어가는 건 입구를 못 찾아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입구가 그곳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더라고.”
“탑으로 입장하는 입구가 게이트라고요?”
“말 그대로 게이트인 셈이지.”
바람 형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근데 아무 게이트나 되는 건 아닌 모양이야. 예를 들면 이번 한라산에 발생한 변이 A급 게이트. 그 정도로 마기가 일그러지지 않는다면 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거지.”
너무나 놀라운 말에 나는 뭐라 대꾸도 못하고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이쯤되면 감 오지 않냐? 경일 형이 실종된 것도 변이 A급 게이트였어.”
“남경일 헌터님이 탑 안 쪽에 살아계시다고요?”
“나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솔직히 너무 근거 없는 망상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바람 형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나도 이해한다.
그만큼 남경일 헌터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의, 아니 인류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허무하게 죽었다는 걸 대체 어떤 사람이 쉽게 납득하고 포기할 수 있을까.
“이번에 한라산 변이 A급 게이트에 참가한 것도 혹시나 탑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찾아볼 생각으로 참가했던 거야. GDG 멤버들 주변에서 도우면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탑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게 해 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바람 형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방법은 못 찾았다.”
그런···.
“하지만 아예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냐.”
“네?”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 파장과 한라산 게이트에서 관측한 파장이랑 같다는 걸 알아냈어.”
“...그 말은?”
“게이트가 탑으로 가는 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놀라운 말이었다.
탑으로 들어가려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변이 A급 게이트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탑에 들어가면 남경일 헌터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어떨진 모르겠다. 경일 형이 실종된지 벌써 2년도 넘었잖아.”
그건 그렇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고 싶어. 그 형 아니었으면 난 그냥 양아치로 살다가 인생 망쳤을 거니까.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바람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저도···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일반 게이트 정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일일 텐데?”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바람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얘기하면서 왠지 그럴 거 같았어. GDG도 이미 알고 있다고 하고. 근데 일단은 힘을 기르는데 중점을 둬. GDG 참가하려면 적어도 B급 헌터 수준은 돼야 되니까.”
탑으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최소 변이 A급 게이트 수준이라고 하면 어차피 B급 헌터 정도 되는 실력이 없으면 개죽음일 뿐이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고민을 하며 게이트 정화에 작업을 계속했다.
흑염야저 무리를 소탕하며 파트너 몬스터들의 성장에 집중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20이 되었습니다.]
태양이가 38레벨에 도달한 낙수효과로 육성 보상 EXP를 받아서 레벨업했다.
[레벨업 보상으로 이하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멀티 컨트롤 Lv.2]
- 파트너 몬스터를 3체까지 동시에 통솔할 수 있습니다.
-각 파트너 몬스터에게 테이밍 버프가 적용됩니다.
오···!
멀티 컨트롤이 레벨업 하면서 세 마리까지 동시에 파트너 몬스터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또 한 마리의 파트너 몬스터를 동료로 맞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새 스킬 얻었지? 축하한다.”
내가 멍하니 상태창을 살피는 걸 보고 바람 형이 다가왔다.
“파트너 몬스터를 한 마리 더 다룰 수 있게 됐어요.”
“오! 테이머 헌터한테는 가장 좋은 거 아냐?”
맞다. 20레벨이라는 딱 떨어지는 레벨에 도달하니 좋은 스킬이 개방된 듯하다.
“어떤 몬스터를 파티에 넣을지 생각해 봤어?”
멀티 컨트롤 스킬의 레벨이 오른다면 통솔할 수 있는 파트너 몬스터 수가 늘어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세 명째 멤버를 어떤 몬스터로 해야할 지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부분이다.
현재 딜러는 태양이, 탱커는 단단이로 역할은 확실히 분담되어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힐러.
탱, 딜, 힐 이 세 가지 부분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효율 좋은 파티가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는 내가 응급회복 스킬로 미약하게나마 힐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역시 전문적으로 힐러 역할을 해줄 파트너 몬스터가 있으면 파티가 더 완벽하게 돌아갈 것 같았다.
“힐러? 역시 파티의 기본 조합은 탱딜힐이지.”
바람 형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는 어떻게 구할 거야?”
“왠만하면 게이트에서 괜찮은 몬스터 찾아보려고요.”
“몬스터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상점도 있다고 하던데?”
“좀 알아봤는데 좋은 몬스터는 시장에서 가격이 10배 20배 올려서 받는 건 예사라고 하더라고요.”
“아··· 바가지 씌운다는 건가?”
내가 파트너 몬스터를 팔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만약 태양이와 단단이가 시장에 나온다면 몸 값이 적어도 몇십 억 수준으로 책정 될 거다.
그만큼 파트너 몬스터 시장의 거품은 심했다.
내가 태양이를 구로구 상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진짜 로또 맞은 듯한 행운이었던 거지.
현재 태양이와 단단이는 자기 역할을 더할나위 없이 수행해주고 있었다.
가능하면 힐러도 두 파트너 몬스터의 수준에 부합되는 좋은 녀석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그런 녀석을 찾으려면 도저히 내가 가진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래. 뭐든지 발품을 파는게 제일이지. 편하게 가려고하면 눈두덩이 후려맞는 거야.”
테이머 헌터인 나는 교섭 스킬을 사용해서 한층 편하게 파트너 몬스터를 영입할 수 있었다.
좀 귀찮더라도 끈기 있게 찾아봐야지.
* * *
월 말이 되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성과 보고를 위해 서울남부지방 각성청 찾았다.
평소에는 얼굴을 보기 힘든 십여 명의 정화 5팀 멤버들이 모두 미팅 룸에 모였다.
“여, 활약이 대단하던데?”
오랜만에 만난 내 전 사수 임희권 아저씨가 내 어깨를 툭 쳐주며 옆자리에 앉았다.
“부산 국제시장 게이트 활약 잘 봤다.”
“그걸 보셨어요?”
“헌터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잖아. 방송사에서 나한테까지 취재하러 왔어!”
“아··· 그거 저도 본 거 같은데.”
“봤냐? 가족들이 나 TV빨 잘 받는다고 난리야! 내가 헌터가 안 됐으면 배우로 나섰어야 했는데···.”
“에이··· 그건 아니죠···.”
“뭐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희권 아저씨는 여전한 것 같다.
“아저씨는 요즘 잘 지내세요?”
“나야 뭐 항상 똑 같지. 그래도 요즘 게이트가 늘어서 좀 무리하면서 돈 좀 벌고 있다. 우리 딸 대학 갈 때 등록금 보태려면 목돈 만들어야 돼.”
“따님 아직 중학생 아니었어요?”
“내년에 고1이야. 얼마 안 남았다고. 내가 언제까지 돈 벌 수 있을지 모르잖아.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희권 아저씨는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러지 말고 돈 벌어서 차 좀 바꾸세요.”
“임마! 쇼나타는 내 평생 파트너야!”
웃고 떠드는 사이 유동명 팀장님이 미팅룸에 들어오셨다.
“다들 모이셨으면 미팅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한 달간 정화 성과를 공유하고 게이트 정화 지침을 전달하는 회의가 이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정화 5팀 사람들과 같이 조를 이루어서 게이트를 돌아야 했지만 빠른 성장에 발 맞춰서 정화를 하라고 유동명 팀장님이 나만 따로 정화 스케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특혜라면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지.
때문에 사수였던 희권 아저씨를 제외하면 같은 팀이지만 얼굴만 겨우 익힌 정도였다.
미팅이 끝나고 정화 5팀 아저씨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어서 한마디 씩 했다.
“아우~ 호현 헌터님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주세요!”
“상급 헌터 되셔도 저희 잊으시면 안됩니다.”
“호현 씨는 우리 정화 5팀의 자랑이에요. 허허허.”
내가 유명해진 후에는 아저씨들이 미팅 때마다 아는 척 해주시고 응원의 말도 잊지 않으셨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인류애가 솟아나는 흐뭇한 팀원들이다.
“호현 씨. 끝나고 잠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유동명 팀장님이 독대를 요청하셨다.
다른 팀원들은 나가고 미팅 룸에 나와 팀장님 두 명만 남았다.
“실은 무성 씨한테서 들었습니다. 강철 길드에서 접촉했다면서요?”
“아··· 일부러 숨긴 건 아니고요. 거절했는데 괜히 말씀드리기도 뭐한 거 같아서요.”
“호현 씨에게 뭐라고 그러려는 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접촉한 게 호현 씨 잘못은 아니니까요.”
혼내키려고 부르신 건 아닌 모양이다.
“강철 길드 제안 거절하신건 잘 하셨습니다. 그쪽 애들이 유망주들한테 계약 제안하는 거 저도 대충 내용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자기네 변호사들로 소송 걸어서 정부 계약 파기한다던지 아예 국적까지 바꿔서 활동하라고 권유하는 일도 있다더군요.”
“예? 국적을 바꿔요? 그건 너무 심하네.”
“솔직히 추천드릴 방식은 아닙니다. 잠깐 빠르게 돈을 손에 쥘 지는 모르겠지만 강철 길드에 목이 매이는 신세가 되는 거니까요. 그놈들 정치권에도 기웃거리던데. 뒤가 구린 놈들이에요. 솔직히 조폭에 가까운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폭···? 그래도 한국에서 손에 꼽는 대기업 헌터 길드인데 조폭에 비유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원래 이 바닥이 큰 길드일 수록 더 막나가는 곳입니다. 구태여 아실 필요는 없지만 길드란게 절대로 얌전하게 법 지키면서 돈버는 놈들은 아니에요.”
휴··· 돈에 혹해서 놈들이랑 계약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단 건가?
“하지만 호현 씨 입장도 이해 갑니다. 이만큼 실적으로 증명하셨는데 각성청에서 지원이 미비하다고 느끼셨을 수 있죠. 저희가 더 신경쓰겠습니다.”
유동명 팀장님이 진심어린 말투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지금도 잘해주시는데요 뭘.”
“대기업 길드보다 잘 해드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호현 씨 편의 봐드리겠습니다.”
유동명 팀장님.
역시 성실한 사람이다.
이거 강철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 받은게 의외의 이득을 가져다 준 느낌인데?
“저··· 그럼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든지 말하세요.”
“실은 제가 파트너 몬스터로 힐러 클래스의 몬스터를 찾고 있는데 혹시 도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각성청에 연락해서 최근에 발견된 레어 몬스터중에 힐러 클래스가 없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게이트에 대한 모든 정보는 각성청으로 모인다.
정보상에 몇백, 몇천 만원 주고도 얻기 힘든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으니 이점 만큼은 정부 계약 헌터가 좋은 점이리라.
유동명 팀장님에게서 연락이 올때까지 편한 마음으로 기다려보기로 했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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