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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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타다끼
작품등록일 :
2024.11.21 22:15
최근연재일 :
2024.12.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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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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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DUMMY

#01



뱀이 운다.


뱀이 소리 내어 운다.


하얗게 질린 뱀이 똬리에 고개를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생경한 그 모습에 데보라는 할 말을 잊고 멍해졌다.


경련하는 듯 오열하는 뱀을 향해 데보라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뱀의 몸집은 아주 커서 한 아름에도 다 잡히지 않을 같았다. 데보라는 허리를 살짝 굽혀 뱀의 하얀 비늘을 쓰다듬었다.


그 때 뱀이 고개를 빼든다.


그 낙차는 그녀에게 위압감을 전했다. 커다란, 마치 돌덩이인 양 차가운, 그런 무기질의 시선이 쏟아져 내렸다.


답을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마주보자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인다. 데보라는 무릎을 꿇고 그대로 뱀의 몸통을 끌어안았다.


차다기보다는 식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뱀의 체온이 뺨으로 전해진다. 데보라도 뱀도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곧 뱀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아득한 느낌에 데보라는 뱀에게 기댔던 상체를 살짝 일으켰다. 그 때 거대란 뱀의 몸체가 스슥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간다. 데보라는 살짝 뒤로 밀려나버렸다.


데보라는 멀어지는 뱀을 향해 손을 뻗고는 무엇인가를 외쳤다. 메아리와 같다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곤 흐느꼈다.


마치 뱀처럼.


입 속에 맴도는 한 마디만큼은 놓지 않고자 필사적이었다.


“아슈······.”






그렇게 눈을 뜬다.


익숙하게 뿌연 세상. 현실감이 다가오자 꿈은 꿈이었구나 싶다.


시력을 잃은 지 오래인 그녀가 그렇게 선명한 시야에서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던 거나, 뱀이 우는 소리란 당최 무엇이며, 뱀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지. 그리고 자신은 왜 그 뱀에게서······.


“으음··· 데보라······?”


자신의 옆자리에서 뒤척이는 이 소년을 떠올리게 된 건지.


데보라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그런 상념도 자신의 품을 파고 들어오는 소년의 몸짓에 금방 깨지고 만다.


“어리광 좀 그만 부려요.”

“따뜻한 데보라가 나쁜 거라고······.”

“그러다 지각하면 다 끌려가게요.”


나긋한 목소리로 화답하는 데보라에게 아슈는 볼멘 목소리로 답했다.


“어떤 간 큰 자식이 대(大) 에스미라덴의 수석참모이자 외무담당이자 스트라이커, 뭣보다 블라누 최고의 레이디 데보라의 기사를 연행한단 말이야.”


잠투정도 참 거창하다. 너스레는 무시하고 그의 정수리에 얼굴을 묻었다. 거친 머릿결이 예민한 뺨을 찔렀지만 마음만은 더 없이 포근해졌다. 뱀이라니 말도 안된다.


“게이르의 선봉장이자, 카마츠 마궁대의 주인이자, 십년전쟁의 영웅이자 전신, 마궁동시의 백작님이시죠. 어제 저녁부터 노숙까지 하며 기다려주신.”


그리고 수하의 일만 오천의 정예병까지.


분명 똑똑히 알아들었을 텐데도 아슈는 얄밉게도 데보라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대공이 기다려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오 분만, 아니 다섯 시간만 이러고 있자.”


데보라는 귀여운 연인이 칭얼거리는 모습에 한없이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그의 두 어깨를 양손으로 슬쩍 밀었다.


“그 쯤 되면 미네르님이 달려오실 텐데요.”

“으아, 깬다 깨!”


이 말만큼은 효과가 있었는지 아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을 돌리고 앉아 부스럭거리며 옷을 입는 소리는 쀼루퉁하게 과장되어 있다.


데보라는 괜스레 장난기가 돋아 한쪽 볼을 부풀렸다.


“좋게 말씀드릴 땐 귓등으로 흘리시더니 미네르님 이야기가 나오니 그렇게 이불을 박차시네요."

“데보라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히스테리 부리는 민은 대장도 못 말리거든.”


아슈는 워커 끈을 묶으며 답했다. 데보라가 입을 삐죽이곤 ‘그게 아니잖아요.’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그녀의 맨 등 위로 까끌한 셔츠의 촉감이 전해졌다.


귓가에 따뜻한 입김이 분다.


“그럼 공주님의 기사는 그 괴수를 상대하느라 또 일주일 밤낮을 새우게 될 거고. 안 그래?”

“능청하시고는······.”


데보라는 풋 웃고는 아슈의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잠깐 그렇게라도 함께 라는 여운을 더 즐기고 싶었다.


아슈도 같은 마음인 듯 그대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같은 심박으로 심장이 뛰는 설렘을 즐기던 데보라는 이내 등을 떼고 고개를 슬쩍 저었다. 같은 마음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상체를 살짝 아슈 쪽으로 돌린다.


“준비는 다 되었어요?”

“기사는 언제나 만전의 상태를 유지하지.”


피식, 웃음이 새었지만 금방 정색한다.


“에스미라덴으로 복귀해서 바로 출진하시는 거죠?”

“작전, 물자, 키 플레이어들의 포지션만 체크하고 말이지.”


이미 다 눈으로 확인하기로 한 듯 확신에 찬 어조. 마치 제철 낚시를 가는 낚시꾼처럼 가볍다. 그런 남자였다.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단순명료하게 만들어버리고, 결국 그대로 되게 만든다.


데보라는 지금까지의 그 모습들을 상기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믿어야지. 믿어야 한다. 믿어야만 보낼 수가 있다. 그래야만 하루라도 더 지금처럼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슈와, 나를 먹먹하게 만드는 이 남자와 함께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입술 뒤를 간질이는 한 마디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괜한 한 마디가 다문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순간 양볼에 거칠고 익숙한 손바닥, 체온이 전해지고 이내 입술로 따뜻하고, 더 익숙한 무언가가 닿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떨어진다.


“조심히 다녀올게”


다 안다는 듯한, 아니 그 이기에 정말로 다 알고서 전하는 것이 분명한 한 마디.


언제나 처럼 가볍고, 역설적이지만 힘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 데보라는 입가에 맴돌던 말이 어느새 자취를 감춘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긴 거다. 그가 말했다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데보라는 기분 좋게 웃었다.


“네, 조심히요.”


그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같았다.






루멜리아는 본디 동해를 이르는 말이었다. 아득한 수평선 끝에서 해가 떠오를 때 여명을 바라보며 옛 사람들은 바다 저 편에서 큰 용이 알을 낳는 것이라 생각했다. 붉은 여명은 뜨겁고 큰 알을 낳으며 흘린 용의 하혈(下血)이리라. 유독 루멜리아에 용의 신화와 전설이 많은 이유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기록이 시작된 이래 이천년 동안 루멜리아의 눈과 귀는 서방으로 겨울 너머의 대지, 아카사와 금빛 초원, 그란데까지 닿았으나 동해 너머로는 몇몇 군도 외에는 새로운 땅과 연을 맺지는 못했다.


루멜리아인들이 외지인들에게 스스로를 극동에서 왔다고 소개하게 된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수다스럽고 물색없는 이들은 천룡(天龍)과 태양왕(太陽王) 이래 수많은 용과 영웅들의 전설을 떠벌이면서 이 땅의 잦은 분쟁과 척박한 지형을 전하곤 했다.


근 삼백 년 간 이 루멜리아의 종주국은 한이었다.


루멜리아 전역을 일통한 그들은 통일 즉시 전 국토에 대한 정비를 시작하였다. 길었던 분쟁은 인적, 물적 자원을 끝도 없이 소진시켰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금속 제련 기술과 효율적인 조직통제에 대한 노하우를 낳았다. 우수한 첨단산업기술과 체계적이며 실용적인 행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통일된 대륙의 도로와 역참을 정비하니 척박한 대지는 수많은 광물과 산림자원의 보고로 재탄생하였다.


극동의 패자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여 14대 왕 즈믄 때 기록된 바에 따르면 서부 아카사 지방에서 조공을 바친 국가가 34개국에 이를 정도였다. 하나 그 위세도 26대 왕 라온 대에서 후계 문제로 크게 내란을 겪은 이후부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부를 지킬 강한 상비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곧고 넓은 도로는 수도로 창을 겨누고 말을 달리기 더 없이 좋았다.


이윽고 한력 304년, 북방을 통일한 투바투족의 훈이 한에 선전포고를 한 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을 하고 만다.


한은 멸망했지만 유력 귀족들은 사병들을 보존하여 남하하였고 남부의 군소 영주들과 힘을 합쳐 롤랑, 애플리나트, 케이로트, 리오트의 4개 국가를 세웠다. 4국은 연합하여 루멜리아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 단층인 태벽(泰壁)을 경계로 훈의 남진을 칠년이나 저지하였다. 훈이 선전포고를 하고 후한 연합에 막혀 철수할 때까지 십년간의 난세는 후세에 이르러 십년전쟁이라 일러졌다.


그리고 그 십년전쟁이 끝나고 17년이 흐른 지금은 후한력으로 330년. 그리고 이제는 왕국이 된 북방민족의 나라, 게이르에서 공포된 책력인 게이르력으로 22년. 게이르의 실세이자 십년전쟁의 최고 영웅 중 한명인 루카스 대공 아소 칸 투바트 루카스 공작은 게이르의 2대 왕인 천명왕(天命王) 모안 투바트 게이르의 명에 따라 삼십만의 정병(精兵)을 이끌고 남진을 시작하니 바야흐로 새로운 전란의 시작이다.


“······라고 한들······.”


벤자크는 한 숨을 내쉬곤 주변을 둘러봤다.


에스미라덴 공식 바보 1호의 명성에 걸맞게 리오는 거꾸로 착용한 새 견갑의 의외로 단단한 매듭의 해제 방법에 대해 즉흥 연구에 돌입하다 기묘한 자세로 낙마의 위기에 처했고, 퇴역 권유를 몇 번이나 고사한 철밥통의 노병(老兵) 크론은 침침한 눈을 끔뻑이며 그저께 수령한 길드의 통장잔고를 부정하고 있었으며, 에스미라덴이 자랑하는 수석참모이자 외무담당이자 스트라이커는 에스미라덴이 자랑하는 유격 2조 차석이자 대장, 붉은 늑대의 무남독녀이자, 마스코트에게 멱살을 잡힌 채 전신을 구타당하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전쟁의 첫 전투를 후세에서는 어떻게 기록할지 생각 만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벤자크는 고개를 내저으며 수통을 들어 생명수를 한 모금 마셨다.


“출전 전에 음주는 분명 금지라고 했을 텐데요.”


물론 그것은 차석참모 안나의 번쩍이는 칼질 한 번에 가죽 수통이 반으로 잘려 나가기 전까지 꿨던 꿈일 뿐이지만.


“쳇,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지금은 적당한 알콜로 긴장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필요가 있었어요.”

“의무담당이라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신다면, 에스미라덴의 장기적인 생존역량 강화를 위해 해부학 실습을 대장에게 즉각 건의하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샘플 확보가 우선이겠네요. 그리고 더러운 손 좀 핥지 마요. 결단력 수치가 상승하고 있어.”

“알았으니까, 칼 좀 치워요. 움직이질 못하잖아.”


쏟아진 술이 묻은 왼 손등을 핥던 벤자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각도로 자신의 목울대를 찌르고 있는 안나의 세이버(Saber)를 보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두어 방울 흐른다.


안나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세이버를 거둬 칼집에 도로 꽂았다.


“우리 수석참모께서 작전 수행에 치명적인 차질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네요?”

“항상 같은 일이죠. 예비 부마(駙馬)가 밤새 자리를 비운 탓에 독수공방, 노심초사하시던 우리 공주님 앞에서 그 당사자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환히 웃었을 뿐이에요. 뺨에 두 뼘 길이의 보라색 머리칼이 붙었다는 걸 모른 채요.”

“실망시키지를 않는 군요.”

“혹시나 해서 어제 저녁부터 공주님 주변의 쇠붙이들은 깃발 오르기 전까진 제가 맡아두기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건틀렛은 깜빡 했군요. 저거 주먹에 징 박힌 걸로 새로 맞춘 거였는데.”

“아, 저 피가 코피만이 아니었군요.”


태연자약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벤자크와 안나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더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수석참모의 작전 수행 가능성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는 구경꾼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곤 돈을 뺏어 주머니에 넣으며 두 사람 사이를 갈라 위기에 처한 수석참모를 구출해내었을 때쯤 단상 위로 한 거한이 올라섰다.


건장하다는 말로 부족한, 거대한 체구. 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형형한 안광. 등 뒤로 성인 남성의 팔뚝만한 굵기의 철창, 슈라카와 자신의 키 만한 거도, 바라니를 엇갈리게 맨 그 사내의 이름은 케이온 바라 미라덴.


그야 말로 붉은 늑대라 불리는 십년전쟁의 또 다른 영웅이자, 루멜리아 최고의 특수전 전문 기동타격용병대, 에스미라덴의 리더이다. 무엇보다······.


“당장 미네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그 더러운 팔부터 먼저 분리해주겠다, 의무담당.”

“······그래, 딸 바보지.”


벤자크는 더 절망할 것도 없을 것이란 확신을 되새기며 자신의 품안에서 버둥거리는 미네르를 풀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턱주가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에 대한 억울함과 울분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기억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느 정도 소요가 진정되자 안나의 부축을 받아 단상 위로 올라온 아슈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나름 각을 잡고 뒷짐을 지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다.


“에스미라덴의 대장 대리, 수석참모 아슈 미라덴이다, 쿨럭!”


저 녀석 정말 괜찮은 거 맞나? 벤자크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슈를 올려다 보았다. 아슈는 젖은 수건을 건네주는 안나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레 상처를 닦고는 숨을 조심히 몰아쉬었다.


“집합이 완료 되었으면 현 시간부로 ‘화살 꺾기 영(零)번’으로 정렬하도록 해.”


에스미라덴의 부대장이자 기수(旗手), 로엔이 회색 기를 들어 단상 뒤를 가리키며 휘휘 저었다. 각 조의 차석들이 “영번!”을 외치고, 각각 소속된 조의 구성원들이 복명복창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영번의 정렬.


유격 1조와 2조가 양 끝에 2열 종대로 서고, 정찰조 7명이 중앙 선봉에서 1열 횡대로 선다. 정찰조 뒤로는 기동 1조와 2조, 지원 1조와 2조가 섰다. 112명, 전원 경기병이다.


벤자크도 지원 2조에 중진에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렬하는 진세. 익숙한 앞뒤로 양 옆으로 시야 모두 식사자리 만큼이나 익숙하다.


2군에 해당하는 보충역 삼십여 명 무장을 갖추곤 도보로 열을 맞춰 선 것까지 확인한 아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유격 1조, 장비 확인.”


유격 1조 수석, 베론 마카베라가 앞으로 나서 외친다.


“유격 1조, 장비 확인! 창검 확인!”

“창검 상태 이상 무!”

“노궁 확인!”

“노궁 상태 이상 무!”

“군도 확인!”

“군도 상태 이상 무!”

“오라 확인!”

“오라 상태 이상 무!”

“안장 확인!”

“안장 상태 이상 무!”

“군마 확인!”

“군마 상태 이상 무!”

“기타 장비 확인!”

“기타 장비 이상 무!”

“필승 확인!”

“이상 없습니다!”


베론은 고개를 들어 아슈를 올려다보며 전의로 가득 찬, 하지만 분명한 여유가 느껴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격 1조, 송곳니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슈는 마주 웃어 보이며 유격 2조, 정찰조 등의 인원 및 장비 확인을 마쳤다.


“‘화살 꺾기’의 핵심은 장비와 적시 기동이다. 각조의 수석은 수기 사용에 주의하고 차석은 복명복창 잊지 말도록. 이어 대장님의 말씀이 있겠다.”


아슈가 브리핑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자 붉은 늑대가 앞으로 나선다.


“이번 일전은 어느 때보다 대규모 연합작전이다.”


붉은 늑대의 묵직한 목소리가 에스미라덴의 주둔지에 울려 퍼졌다. 가라앉은 듯 보이나 그 기저에는 백전을 치른 강인한 용병의 패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천의 블라누 정규군 중 이천이 출전 적의 정면에서 맞붙고, 여덟 용병대의 구백육십 병력이 각자의 임무를 가지고 적진의 측면을 교란한다. 집중력을 잃고 이탈하여 우군의 말발굽에 밟혀 죽어도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정규군과 타 용병대 두엇과 연계하여 작전을 수행한 경험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도합 삼천의 병력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 분명했다. 벤자크는 허리춤을 뒤졌지만 역시나 잘려나간 수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의 상대는 명실공히 게이르 최정예로 카마츠 마궁대이다. 적은 우리보다 강하다. 함부로 맞서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수석참모의 입버릇을 기억해라.”


붉은 늑대는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단상 뒤에서 토를 하고 있는 수석참모의 등을 두드려주는 차석참모의 모습을 신뢰가득한 눈으로 잠시 바라보곤 다시 정면을 보며 말을 잇는다.


“강함을 버리고 승리를 쥐어라!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바를 차질 없이 순차로 수행하다 보면 결과에 닿는 법!”


용병의 일은 전투에 참가를 하고, 결국 보수를 받는 것이다.


무용을 뽐내는 것이 아니다. 목을 베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이길 필요가 없다. 그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순서대로 클리어하고, 살아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완전한 승리.


“적이 자리하기 전에 고지를 취하라. 늦으면 베고, 베지 못하면 함께 삼켜라. 죽음은 방해물일 뿐이다. 그렇게 작은 것을 취하고 취하는 것······.”


붉은 늑대는 발을 크게 굴렀다.


“그런 승리야 말로 에스미라덴의 약속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케이온 바라 미라덴과 아슈 미라덴을 비롯한 단상 위의 이들을 제외한 143명의 에스미라덴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단상 너머로, 성벽 너머로 집결한 14,643명의 게이르 군 진영에까지는 닿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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