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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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타다끼
작품등록일 :
2024.11.2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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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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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DUMMY

#02



키넨 알츠는 밀려오는 군세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병력은 삼천 남짓. 전원 가벼운 무장의 기병. 복색조차 통일되지 않은 것이 일천 명으로 용병으로 보인다. 일만 오천의 정병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적은 숫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승리에 대한 바람을 포기하고 포기하다 보면 단순히 살아남자는 생각조차 포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해도 키넨 자신이라면 저런 무책임한 대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성이 무리라면 물러나서 유리한 지세를 선점할 것이며 증원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 아니겠는가?


둥- 두둥- 둥-


때에 맞춰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따라 카마츠 마궁대의 백인장은 비스듬하게 시위를 매겼다. 주위를 살짝 둘러본다.


앞으로 얕게 호(壕)를 파고 그 위로 낮은 널빤지 책(柵)을 세워 엄폐한 장궁병들이 넓은 열을 맞춘다. 그 뒤로 복합궁으로 무장한 카마츠 마궁대가, 그 뒤로는 블라누의 성벽보다 높이 선 운제(雲梯) 20기가 자리했다.


이 운제야 말로 이 전쟁을 위해 십 수년을 준비해온 게이르군의 승리의 열쇠였다.


본디 운제란 수성이 가진 가장 큰 이점인 성벽의 높이를 무시하는 공성병기이다. 하지만 그 빼어난 위력만큼이나 만만치 않는 한계를 가지는데 그것이 바로 기동성. 대게의 큰 공성병기가 그러하듯 공성을 위해 이동을 하는 동안 적이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게이르가 개발한 신병기인 이 운제는 손쉽게 분리 및 조립이 가능하여, 적의 성 지척까지 접근한 후 반나절이면 조립이 가능했다.


실제로 블라누 앞으로 당도한 것은 어제 저녁이지만 공병들은 달이 완전히 차오르기도 전에 운제를 완성했다. 시험사격으로 블라누의 성벽에 화살을 세 개나 박아 놓고는 뿌듯함에 잠겨 간만의 꿀잠을 청한 공병대장의 근심 걱정 없이 기름기도는 안색도 목도한 터이다.


이 비장의 병기가 있는 탓에 적을 저지할 수 있는 목책이나 참호도 가볍게 준비한 것이다. 운제가 진격할 때 얕게 판 호 위로 흙을 적당히 밀어 넣고 널빤지로 덮어 이동로의 지반을 고르게 한다.


키넨은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저 군의 태반은 도착하기도 전에 고슴도치가 될 것이다. 마갑(馬甲)은커녕, 기수들조차도 얄팍하기 짝이 없는 경갑 아닌가?


둥둥둥둥둥 둥- 둥!


잘게 쪼개지는 북소리가 지겨워질 참에 사격 명령이 떨어진다. 가볍게 시위를 놓았다.


쉬아아아아-


수천 발의 화살이, 그 그림자가, 그 파공음이 허공을 수놓음과 동시에 적이 여덟 줄기로 산개(散開)했다.


의외로 일사불란한 그 모습에 키넨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적들의 가벼운 무장은 화살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무더기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여덟 줄기로 분리된 경기병들은 각자 게이르 군에 일렬로 돌격을 하고 있었기에 정면에서 쏘아도 닿게 되는 표면적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다보니 운제에서 지상으로 쏘는 화살은 사실상 무력해졌다. 빠르고 민첩하고 가늘게 접근하는 적병에게, 성벽에 고정된 적을 노리는 운제의 큰 화살은 큰 의미가 없었다. 재장전도 느렸고.


무장이 가벼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듯싶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여전히 손실은 클 것이고, 닿는다고 해도 저 전력차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걸까?


적은 병력, 낮은 집중도.


적이 취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북소리와 수기에 따라 몇 발을 연달아 날렸음에도 키넨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적들은 쓰러지고 쓰러졌지만 결국 첫 번째 포진에 닿는다.


격돌에는 자신이 있다. 장궁으로 무장하긴 했으나 본디 장창을 다루는 중장보병들. 목책에 붙어 적을 찌르면 저 병장기로는 당할 방도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장창에 수십 명의 적병들이 찔려 넘어진다. 난전의 형상이 되자 카마츠 마궁대 역시 집결한다. 휘하 백인대를 통솔하며 키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대로 돌파한다고?”


적의 군세는 보병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고집스러워 보일 정도의 일렬 돌격이다. 개미도 적을 맞이하면 포위하여 공격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찔려 쓰러지면 쓰러지고 떨어지면 그저 떨어진다. 야전을 수행하는 군인이라기보다는 트인 시야를 가리고 결승지점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와도 같다.


순간 키넨의 뇌리에 무언가가 번뜩 스쳐갔다.


“설마, 저들은······?”




“이 미친놈들이!”


블라누 공성전을 맡은 게이르 별동대의 대장이자 동시백(銅矢伯)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가논 백작 란츠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삼천이란 병력에 설마, 하지만 총병력의 과반이 넘는 수라는 의미에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지만 지금 적의 행동의 동기는 명확했다. 저들은 수성에 나선 것이 아니다.


삼천 명의 결사대(決死隊)인 것이다.


적의 목표는 운제까지 돌격하여 저것을 파괴하는 것이리라. 하긴 고작 삼천으로 할 게 달리 뭐가 있을까도 싶다.


거대한 운제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게이르의 병력들은 무리하게 집결하거나 제대로 된 목책을 설치할 수가 없었다. 그 틈을 노려 돌격한 놈들을 운제를 향해 간간히 유황주머니를 던졌다.


저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난전 상태에서 경기병은 유일한 장기인 기동성을 살릴 수도 집결하기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게이르의 신병기를 무너뜨렸다는 기록은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삼천을 산화시키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 수는 있다. 온전히 병력을 보존해 후방으로 물리는 것이 전쟁을 끌고 가기에는 더 나은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개전의 상징성을 두고 보자면 다르다.


게이르의 운제는 적의 허를 찔렀음에 큰 의미를 가진다. 일만 오천이라 오천으로 수성을 하고 차차 후방군을 올려 증원을 한다는 연합의 기본적인 전쟁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데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게이르는 많은 것을 준비했고, 그 중 하나 정도는 첫 전투에서 보여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며, 그 하나로 연합이 자랑하는 철의 요새 중 제 1관문이 허무하게 넘어갔다는 의미.


한 요새를 수중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이겨간다, 라는 그 의미가 대공이 노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전에 있어서는 게이르에서 손에 꼽는 장수이자 자신의 심복인 동시백을 보냈다. 이것은 그런 그림이다.


그 대공이 주문한 완벽한 승리가, 이 승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다다다다다


동시백은 휘하의 호위병들을 몰아 가장 먼저 도착한 경기병 무리에게 부딪혀 갔다. 유황 주머니를 던지고는 자신을 발견하고 잔인한 웃음을 짓는 적병의 지척에서 화살을 뽑아 던져버렸다.


파아앙-


시위를 매기지도 않은 채 손에서 쏘아져간 동시는 적병의 앞니를 부수고 들어간다. 적병은 입에 화살을 박은 상태로 뒤로 튕겨나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안다.


동시에는 부패(腐敗)의 저주가 새겨져 있다. 땅에 떨어질 때 쯤 얼굴은 새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을 터.


그 사이 적병들이 몰려온다. 이 정도까지 들어오면 사람 때문이건 뭐 때문에건 어느 정도 모아올 수밖에 없다. 동시백은 최선봉에 서서 장창을 휘둘러 한 번에 서넛의 적병들을 땅에 떨어뜨렸다.


퍽- 퍽- 퍽-


뒹구는 적들을 한명씩 확인 사살한 동시백은 창을 치켜들고 포효했다.


“어림도 없다, 이놈들아!”


아아아아아- 아아-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에 온 산천이 떨 듯 동시백의 호령은 블라누 앞 전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멀지 않은 자리에서 분투하던 병사들은 적아를 불문하고 순간적으로 굳어버린다.


그렇게 얼어붙은 전장 위로 유독 우레와 같이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십년 하고도 수년이나 지나 희미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이다. 동시백은 고개를 돌렸다.


“케이온!”


붉은 늑대, 케이온. 거창 슈라카를 꼬나 쥐고 자신을 향해 오는 거한을 바라보며 동시백은 호기롭게 웃으며 말을 몰았다.


준마에 탄 전사들이 교차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차장- 창-


창 사이에서 불꽃이 튄다.


“살아있었구나, 붉은 늑대!”

“애플리나트의 늑대는 이십년을 산다.”


붉은 늑대는 오랜 숙적에게 무뚝뚝하게 대꾸하곤 다시 창을 뻗었다.


“붉은 늑대로는 아직 삼년이나 남았지.”


창-


동시백은 슈라카를 걷어내곤 히죽 웃었다.


항상 적으로 부딪힌 붉은 늑대였다. 하지만 십년전쟁이 끝나고 수많은 전장을 둘러보면서도 그만한 무용(武勇)을 지닌 상대를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에 동시백의 마음에는 반가움이 더했다. 게이르는 이미 루멜리아의 패자로 자리잡았기에 남은 상대라 해봐야 어설픈 솜씨의 산적이나 조잡한 무장의 반군 조무래기였기 때문이다.


이번 남진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도 이런 싸움이었다. 지위와 책임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맞붙고 싶은 상대를 만나는 것. 붉은 늑대 정도라면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다.


“어쩐지 늙은 티가 팍팍 나더구나. 불사왕(不死王)은 어디다 두고 이런 초라한 몰골이냐?”

“네 놈의 허벅지를 보고 말해라. 요즘에 말을 타기는 하나?”

“핫핫- 멍청한 놈! 대 게이르의 백작들은 마상(馬上)에서 숙식을 해결해도 이 정도 체격은 기본이니라. 연합의 비루하고 왜소한 개들과는 다르지. 너야말로 그렇게 비쩍 곯아서 힘이나 제대로 쓰겠느냐?”


동시백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붉은 늑대의 체구를 비웃다가 순간 침울해졌다.


“젠장, 곯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허점!”

“으엇!”


쩡-


절묘하게 허벅지를 노려오는 창을 황급히 쳐낸 동시백은 이를 뿌득 갈았다.


"네 놈! 여전히 비열하기 짝이 없구나!”

“헛소리. 저승말을 하기엔 아직 몇 분 이르지 않나?”

“죽여 버리겠다!”


동시백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등에서 화살을 빼들어 붉은 늑대의 말을 향해 던졌다. 붉은 늑대는 흠칫 놀라 말을 물려 저주의 동시를 피했다. 동시가 박힌 바닥에서 들풀이 기이한 연기와 소리를 내며 까맣게 썩어들어 간다.


붉은 늑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시백의 노호성을 지르며 뒤돌아섰다.


“도망이냐!”


휘익-


동시백이 돌아서는 찰나 그의 어께를 노리던 화살이 동시백의 손에 잡혔다. 화살을 쏜 벤자크도 벤자크였지만, 반사적으로 잡아챈 동시백도 어이가 없긴 어이가 없는 눈치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붉은 늑대는 벤자크의 어께를 툭 치고 함께 운제를 향해 달렸다. 동시백 주위를 다시 호위병들이 둘러싼 것도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네 놈······.”


동시백은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혔다. 자신은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이다. 그리고 전쟁에 필요한 것은 승리 뿐. 그 안에 감상은 없다. 이기고, 모조리 죽여서, 그것을 취할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친다.


“카마츠 마궁대 전원은 백인대 단위로 응집, 운제에 접근하는 적들을 섬멸한다. 나머지는 각 자리를 지켜! 적을 가두는 거다!”


몇 차례의 복명복창. 북소리가 다른 흐름을 탄다.


전투 개시 십 분이 지났다.




“센데?”


미네르는 태평한 어조로 불길한 말을 내뱉는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때에 맞춘 한 마디를 쏘아주고 싶었지만 눈앞의 창을 걷어내는 일에 집중하였다.


보병용 거창은 살짝만 걷어내도 주인의 자세를 흐트러뜨리기가 용이하다. 적보다 빠르게 자세를 잡고 상대의 목을 그어버리자 새빨간 피가 튀었다.


“뭐야, 그래서 어렵다는 거야?”

“아니, 하지만 한 번 정도는 더 부딪혀야 견적이 나올 것 같은데?”


아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네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봤잖아. 동시백을 저만큼이라도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빠 밖에 없다고, 읏차!”


상체를 크게 틀어 화살을 피한다. 카마츠 마궁대의 화살은 성가시기 그지없다. 이 정도로 난전이었기에 다행이지 정말 정면이었으면 승산을 느끼기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저 얄미운 수석참모가 있는 이상 그런 상황과 마주할 일은 없겠지만.


“아니야, 두엇 합치면 될 것도 같아.”


아슈는 옆에서 말을 몰며 자신 있게 말했다. 신기하게도 피한방울 묻지 않았다. 정말 요령 좋은 녀석이라니까.


“누구 말이야?”

“한 명은······ 아무르라무르의 나에르 대장.”


아슈는 턱으로 한쪽을 가르켰다. 거대한 체인을 휘두르는 회색머리의 장년. 날렵한 체구의 그는 타던 말은 잃었지만 더욱 민첩한 몸놀림으로 카마츠 마궁대원 여섯 명을 한 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아, 그 사이에 두 명이 쓰러진다. 네 명으로 정정.


“그리고?”


하지만 저렇게 도보여서는 화살받이가 되기 딱 좋다. 동시백과의 거리는 멀지 않아 보이지만 다가가기도 전에 동시의 먹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의 마스코트님이실까나?”

“뭐, 뭐? 우, 우악!”


아슈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면으로 미네르의 애마 샤키샤키의 엉덩이를 때렸다. 사정없이 질주하는 샤키샤키의 머리에 괜히 꿀밤을 먹인 미네르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너, 너 죽여버린다아아아아-!”


히이힝-


샤키샤키의 억울한 울음소리는 덤이었다.




카마츠 마궁대장이자 동시백의 호위대장인 판 카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 너무 전면에 서시는 것 같습니다.”


동시백은 그제야 판을 돌아다보았다. 눈가에는 군인 특유의 살기와 무인 특유의 희열이 가득하다.


“자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일까? 오히려 즐겨볼까 싶을 때다 싶으면 어김없이 훼방을 놓고 있지 않느냐?”

“장군의 무용이야, 소문이 따르지 못할 정도긴 하나······.”


판은 고개를 조아렸다.


방금까지 동시백을 상대하던 자들도 제법 한가득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호위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주검이 되고 꽁무니를 빼었다. 실로 전신(戰神)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전장에서 보낸 저 사내의 무위는 단순히 민첩하다는 선을 벗어나있었다. 빠른 몸놀림과 압도적인 완력, 빼어난 반사신경을 넘어선······. 인지나 의식 없이도 화살을 피하고, 별다른 계산 없이도 상대의 급소를 드러나게 만들고 주저 없이 찌른다.


맹수조차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하나 이곳은 전장입니다. 장군의 옥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요.”


그렇다.


동시백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있지만 판 역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다. 무용은, 패기는 피와 살점이 튀는 전장에서 생각보다 허무하게 스러진다. 일군을 이끄는 장군이 굳이 그 판에서 몸을 굴리며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백은 시큰둥했다.


“없긴 왜 없겠나. 이 모진 목숨보다는 중요한 것이 분명 있지.”


동시백은 판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길게 끌어올렸다.


“바로 승리이니라. 대공 저하의 완전한 승리!”


일개 산적이었던 그를 거둔 북방의 왕자는 드넓은 북방을 등지고 끝없이 남으로 향했다. 글을 배우고 예를 배웠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일자무식이라고 칭하는 천생 무골, 란츠는 부동항(不凍港)이니, 정쟁(廷爭)이니 하는 말은 사실 귓등으로 흘렸다.


‘남(南)을 원하시면 제가 제일 앞에 선 기수가 되겠나이다.’


보기 드물게 술기운이 오른 대공은 그보다 더 보기 드문 파안대소로 답하였다. 동시백은 자신의 친애하는 주군에게 조만간 똑같은 웃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심했다.


대공의 붓이 되어, 그의 그림을 완성해낼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붓의 시야는 필요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한 피를 담뿍 머금고, 몸을 비빌 뿐이다. 헌데······.


“저 잡놈들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나눠줄까 싶으냐?”




소년은 웃었다.


“전황(戰況) 싱크로율은 B.”


날씨와 기온.


일조량과 시간.


지형과 습도.


설비의 파괴 정도.


소음.


병사들의 배치와 집중, 흥분도, 사기.


구상했던 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쁘지 않은 캔버스다.


“1분 20초.”


동시백의 말은 호위대의 것보다 빠르다.


달리기 시작하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인 폭발력만큼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동시백의 급한 성정을 받아낼 수 있는 놈답다.


동시백은 평균적으로 삼분에 한번 꼴로 밖으로 나선다. 편차가 커서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타이밍을 재는 데는 분명 의미가 있는 기댓값이다.


소재로써 개성이 나쁘지 않다.


“충전 상태 양호”


사흘 간 마구(魔具)에 비축해둔 마력은 충분하다.


전장에서도 일곱 개의 마구를 번갈아가며 시동을 걸었다. 광열손실은 적다. 아침에 미네르에게 실컷 얻어터졌지만 오히려 컨디션은 평소 이상이다.


사실 작전 전에 몇 대를 맞으면 몸 상태가 괜히 개운해지곤 한다. 그녀에게 빠져들지 않게 조심하자.


“최종 점검.”


표적 경로 예측.


진입 동선 확보.


마력 순환 가동.


제반 환경 기억.


“아······.”


소년은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품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양피지 한 장. 소년은 다시 미소 짓는다.


전투 동기 재고.


최종 시뮬레이션 종료.


“아다르드 실피레이느(Adardu Shylphirai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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