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 Our Lovey (3)

[교육시간 짧으니까 집중하세요!]
전자기기가 주는 파급력.
방송이 나왔음에도 기숙사 안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정숙하세요!! 교육에 집중합니다!!"
6층은 딱따구리 직원이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진정시킨다.
"저는 폰 잠깐 못썼다고 손이 근질근질한거 있죠?"
"그래? 난 누구때문에 정신없었는데."
"야, 그렇게 쳐다보면 서운해? 얼마나 재밌으면 정신이 없어. 안그래?"
"생각안났으면 좋은거 아닐까요?"
"너도!"
"그치? 방장이 내맘은 잘 알아준다니까?"
"그럼 둘이 껌딱지해."
복도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떠드는 세사람.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잦아들자, 이들도 입을 닫을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침묵.
뿅!
어느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에서나 들어봄직한 발랄한 효과음.
화면 중앙에 띄워져있던 캐릭터에게 생기가 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뽁뽁뽁뽁···.
[안녕! 반가워.]
그 토끼는 화면 곳곳을 뛰어다니며 입소자들을 반겨준다.
나라에서 만든 호국누리원 전용 AI의 제대로된 등장이었다.
[여긴···. 영양이네? 반응이 왜 이모양이야? 나쁜 표정은 좋지않아.]
[777번! 욕은 너무한거 아니야? 누가 좀 도와줘! 역시 우리 직원들밖에 없네. 고마워!]
마치 카메라로 다 들여본다는 마냥 첫 소감을 말하는 토끼.
[우리 뉴비 입소자 여러분 안녕! 나는 러비 베이빗(Lovey Baybit)이야! 러비라고 불러!]
옛날 애니메이션에나 볼법한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다.
손을 흔들며 입소자들을 향해 뿜어내는 하트.
진짜 마법소녀의 감성이다.
"AI인가?"
"······."
"뭐이렇게 촌스럽게 생겼냐? 돈 좀 쓰지."
"나라에서 만드는데 돈을 쓸리가요."
돈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소.
러비를 보고는 허공을 향해 눈을 돌린 미혜와는 달리, 유진과 은영은 관심을 보인다.
"눈이 동그래진거봐!"
"눈이야 원래 동그란데?"
"관심있으면 그냥 관심있다해요."
미소의 지적에 정곡이 찔린 두 사람.
"생긴건 멍청한데 하는 꼴은 좀 재수없어. 안그렇냐?"
"그러게? 기분이 좀 그래. 버튜버처럼 사람이 움직이는거 아냐?"
그래도 솔직한 표현은 꺼림직하다.
"딱봐도 AI인데. 뭔 버튜버야. 바로 알만한데, 몰랐어요?"
미소의 물음에 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에게 있어 이 둘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 치게 만든다.
"아이고야. 언니들도 이정도면···. 분명 몰라보는 사람도 있겠네."
"몰라도 잘살아."
"근데 어떻게 바로 알았어?"
AI가 난무하는 시대.
사람의 창작물에 대한 보호와 함께 경쟁력을 갖추게 만든 정책이다.
따라서 모든 컨텐츠에는 AI의 사용여부를 알수있게 명확히 표기하도록 되어있고, 휴먼메이드가 가치있는 취급을 받고있다.
"워터마크가 없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가장 대표적인 구분법이 바로 워터마크다.
잠깐 잊었던 지식을 떠올린 유진.
그리고 유진과 미소는 고개를 돌려 은영을 쳐다본다.
"왜 날봐?"
"유진 언니는 까먹었다치고, 언니는 몰랐죠?"
"야, 모를수있지!"
"언니 어디 촌 살았죠? 사투리 교정 빡세게 잘했네요?"
"수도권 살았거든!"
"어디요?"
"경기도!"
"경기도 갈라진지가 언젠데. 언니, 거짓말하면 안돼요!"
미소와 은영이 투닥거린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귀신같이 날아드는 딱따구리.
"620호! 정숙하세요!"
"네."
"흡!"
"언니는 말소리좀 낮춰요."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을 사랑해줄거라는 의미야! 너희들도 러비를 위해 응원해줘!]
러비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포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혜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마냥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토끼를 쳐다본다.
교육의 일환이겠거니 하고말이다.
'AI···? 재밌네.'
미혜는 이미 마음만은 호국누리원 밖으로 탈출한 민간인의 마음가짐이다.
몸만 여기에 묶여있을 뿐,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상태.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하는 편한 마음이 생긴다.
'원피스 디자인이 왜저래? 촌스럽게.'
토끼의 의상에 대한 지적을 할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앞으로 모든 생활을 호국누리원에서 하는거 알고있지? 단체생활에서 규칙은 기본이야! 화면에 크게 띄워서 읽어줄게. 천천히 봐. 알았지?]
러비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서를 펼친다.
<호국누리원 생활 규칙>
1. 기상시간은 7시.
조식 7시 30분, 중식 12시, 석식 6시부터 1시간입니다. 취침 시간은 10시입니다.
2. 3개월 동안 '산모'가 될 준비를 합니다. 그 과정을 직원과 군인들이 돕습니다.
└ 그들은 여기서 소수이자 약자입니다.
└ 그들은 벌점을 부과할 권한이 있습니다.
└ 여러분들의 일관적인 진술같은 방법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3. 교육 시간은 오전 9시~12시, 오후 1시~오후 6시 입니다. 저녁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유시간입니다.
└ 자유시간이어도 통제는 따라야 합니다. 벌점을 조심하세요.
4.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 벌점이 부과됩니다. 벌점 10점이 쌓이면 퇴소 처리됩니다.
└ 같은 방, 같은 층 구성원들끼리 함께 움직이세요.
└ 나쁜 유혹이 있더라도 꼭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 벌점으로 퇴소당한다면 교육과정 이수후 재입소하게됩니다.
5. 준비가 미흡한 분들은 '5기숙사'로 가거나, 퇴소처리될 수도 있습니다.
└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6. 나라사랑카드는 잃어버리지 마세요!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 오늘 신청한 분들은 내일 지급될 예정입니다.
└ 재발급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7. 여러분이 선택한 호국누리원! 항상 선택에 따른 대가가 주어집니다.
└ 하는 만큼 돌아옵니다.
└ 보급품은 소중히 여기세요!
[중요한 건 이해했지? 딴짓하지 말고 잘 읽어. 퇴소당해도 다시 와야해. 시간낭비하기 싫지? 열심히 하는게 좋을거야.]
번호가 적혀있는 핵심 문장만 천천히 읽는 러비.
퇴소 글씨에 X자 스티커를 붙이며 여러번 강조한다.
나머지는 알아서 읽으라는 듯,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뭐 없네. 호들갑만 떨고.'
군대랑 크게 다를게 없는 규칙들.
은영은 대충 훝어보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본 유진이 한소리한다.
"너, 또 제대로 안읽고 멍때리지? 벌점얘기 못들었어?"
"아닌데!"
"니가 제일 조심해야돼."
그렇다.
초장부터 사고를 낸 은영에게 있어 벌점은 가장 신경 쓰이는 요소다.
거슬리는 인간들을 참고 넘어가야 하는지.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가면서 밟아줘야 할지.
'이게 고민이란 말야···.'
아직도 독사같이 숨어있는 그 기운.
은영을 신경쓰이게 만든다.
유진과 미소는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을 마주치고는 조용히 웃었다.
'벌점.'
미혜는 1억에 이어 벌점을 머리에 박아넣었다.
당장 러비가 준 정보.
벌점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벌점을 최대한 빨리 쌓을 궁리.
어처구니없는 것부터 하나하나 쳐낸다.
[자! 궁금한게 많지? 그래서 선배님들이 가장 많이한 질문을 가져왔어. 마저 읽는 동안 잘 들어봐!]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각자의 생각을 알리가 없다.
러비는 주머니가 없는 원피스를 혼자 뒤적거린다.
그러고는 꺼낸 종이 한 장.
한글자 한글자 힘을 주며 읽기 시작한다.
질문을 읽을 때는 상투적으로, 답변할 때는 과장된 액션을 팍팍 넣어가며 자신의 캐릭터성을 어필한다.
Q : 5번의 준비는 무엇을 뜻하나요?
A : 여러가지가 있어! 너무 말랐거나! 너무 살쪘거나! 영양은 5기숙사인데, 궁금하지? 근데 비밀이야! 몰라야 무섭지 않겠어?
Q : 집에 가고싶어요.
A : 엄살 부리면 안돼! 귀한 딸로 자랐겠지만 어엿한 성인이야! 선택에 책임을 져야지!
Q : 머리 자르고 싶지 않아요. 전 단발머리가 안어울려요. 전 장발이 예뻐요.
A : 위생은 중요해! 안돼!
"여기 머리 자를 사람 2명이나 있네."
"나? 빡빡 밀어도 상관없는데."
"안돼요! 못생겨지잖아요."
"어쭈!"
"······."
Q : 금지 물품도 많고 소지품 검사도 빡세고 너무 불편해요.
A : 조금만 참아! 혹시라도 금지물품을 갖고 있다면 몰래 버리는게 좋을거야!
'담배로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601호의 방장.
미란의 눈에 약간의 총기가 들어온다.
안그래도 담배 얘기를 하던게 생각난다.
'좀전에 깐깐한 직원은 어디갔지?'
그녀는 몰래 말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녀는 어느샌가 자리를 비웠다.
좀 전에 복도를 오가며 보았던 '마음의 소리함'이 떠오른다.
'여기에라도 적어서 낸다면···.'
막연한 희망.
나라사랑카드도 가져오지 않는 그녀에게 종이나 펜이 있을리 만무하다.
빌려라도 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지만,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혼자만의 편견에 사로잡힌다.
미란은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쉬고 싶었다.
"아! 맞다."
"왜?"
"뭐뭐뭐."
"방금 생각났어. 내 친구가 아는 사람 본 거 같다던데?"
"대박이지 않냐? 여기서 우리말고 아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
"누구누구? 존나 재밌겠다."
그러나 직원이 사라진 걸 눈치챈듯,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떠들고 있는 이 여자들의 기에 눌린다.
미란의 그 숨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아직까진 별말이 없는걸 보니 깔거리가 없나 싶지만.
[대표 질문을 대답해 줬어. 마음에 들었니?]
"내가 아침에 다시 물어볼게."
"오케이. 내일 그거 알지?"
"누가 몰라? 입좀 조심해."
[교육 이야기는 내일 다른 사람이 자세히 해줄거야. 오늘 너무 슬프고 힘들었지? 하지만 다 하는 일인걸? 우리나라를 위해 힘내줘!]
아무래도 당장은 미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모앙이다.
셋도 태블릿은 뒷전이고 서로 떠들기 바쁘다.
[뭐 궁금한건 없니? 없다고? 없으면 잠이나 자던가! 불침번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모르지? 공주처럼 자라가지고 아주.]
러비는 입소자들에게 응원과 격려, 실랑이를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
[내일부터 7시 기상! 원래 점호랑 불침번도 있거든? 오늘만 내가 대신 해줄게!]
3:1로 나뉜 견고한 벽.
미란의 고민에 공감을 해줄 사람은 있는걸까?
[교육 끝! 지금부터 자유시간이야!]
당장의 대답은 '없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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