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서신

새벽의 빗소리는 도시의 어둠을 관통하며 일정한 리듬으로 울렸다.
톡..톡.. 차가운 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도시 속 한 건물 창가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의 희미한 빛이 방의 어두운 구석을 비췄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은 창백한 듯 보였지만, 모니터의 불빛은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반짝임을 만들어냈다.
컴퓨터 화면 속에는 검은 배경 위로 초록색 글씨가 깜박이고 있었다.
[검은 법정]
[심판 의뢰를 받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대상은 공개 투표를 통해 심판 됩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코드로 완성된 다크웹의 시스템이었다.
- 심판 의뢰.. 당신이 선택한 대상을 심판한다..
진우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에게 있어 이 문장은 단순히 시스템을 대표하는 문구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국가가 행사하는 정의는 부족해..
어느샌가 기세가 커진 비가 창문을 더욱 세차게 두드렸다.
진우는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피로가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능력과 이 시스템은 이제 그의 존재 이유와 다름없었다.
능력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 같이가!
무의적으로 같은 반 친구의 손을 잡았을 뿐인데, 눈앞에 이상한 환영이 펼쳐졌다. 손끝이 닿는 순간 상대방의 과거가 마치 필름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며칠 전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만화를 샀던 장면이었다.
순간 뇌를 파고드는 환영에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무일 없다는 듯 친구와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반복될수록, 그는 자신의 눈이 단순히 현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능력은 서진우에게 축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주에 가까웠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얽힐 때마다 그들의 가장 추악한 순간과 죄악을 목격해야 했다.
어릴 적에는 그 장면들이 너무나 생생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더 큰 일을 겪었다.
그의 담임 선생님이 교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학교와 지역 사회의 압력으로 사건은 묻혀버렸다.
담임 선생님의 책상에서 우연히 떨어진 머리카락 한 가닥을 만졌을 때, 그는 그가 학생들에게 저지른 온갖 추악한 행위들을 보았다
그때, 진우는 자신이 능력으로 본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며 비난을 받았다.
이후, 그는 신중해졌다. 더 이상 타인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이 능력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었다.
상대의 과거를 볼 때마다 죄악과 고통, 그리고 파괴의 흔적이 서진우의 머릿속을 짓눌렀다.
몇 초 만에 그들의 모든 과거가 그의 기억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이 능력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이 능력을 세상을 바로잡는 데 사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대신, 조용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는,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법은 부패했고, 권력은 죄를 묵인했다.
결국, 다크웹에서 그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검은 법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스템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그의 도구였다.
검은 법정은 간단했다. 의뢰인은 심판 대상을 제보하며, 그 대상의 죄를 입증할 자료를 제출한다.
서진우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죄를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심판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늘도 그의 손에 또 하나의 의뢰가 도착했다. 알림음이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던 서진우는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보았다.
[새로운 의뢰가 접수되었습니다.]
진우는 모니터를 클릭해 의뢰를 열었다.
[대상: 홍영석,
나이: 56세
직업: 화이트스톤 그룹 회장
죄목: 탈세, 인권 침해, 환경 파괴
증거 자료: 아래 첨부]
홍영석.
진우는 이름만으로도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는 최근 뉴스에서 자주 언급된 인물이었다.
화이트스톤 그룹은 환경 규제를 무시한 채 공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몰래 버렸고, 직원들을 과도하게 착취했다.
수많은 고발이 이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거리며 증거 파일을 열었다.
- 누가 맘대로 움직이래!
동영상 속에서 홍영석이 특정 직원 한명을 쏘아 붙이고, 구두를 신고선 직원의 정강이를 쎄게 걷어차댔다.
영상속에 보이는 직원들은 이 같은 상황이 익숙한듯 고개를 숙이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다.
다른 영상에서는 새벽녘 공장 직원들이 검게 변한 강물 옆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가지 영상들을 본 이후에는 첨부된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탈세자료, 폭력 소송, 환경 소송 등 지금껏 이슈가 있었던 사건들의 증거자료로 보였다.
진우는 모니터에서 눈을 때고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 후....
짧은 한숨을 내쉬곤, 진우는 테이블 옆에 놓인 상자를 꺼냈다.
그곳에는 의뢰인이 보낸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홍영석의 최근 미용실 방문 후 수집된 머리카락이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머리카락을 집었다. 머리카락이 그의 손끝에 닿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무거운 압박감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첫 번째 장면은 그의 어린 시절이었다.
홍영석은 아이들을 괴롭히며 즐거워했다.
그는 친구의 물건을 빼앗고, 고자질한 아이를 체육 선생님에게 일러벌려 벌을 받게 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이제는 젊은 사업가로서의 홍영석이 보였다.
그는 경쟁 회사의 공장을 매수해 일부러 폐쇄했다.
그 공장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는 서류에 사인을 하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 이런 게 사업이야.
마지막 장면은 최근 몇 년간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젊은 여성 직원을 성추행했다.
그 여성이 문제를 제기하자, 홍영석은 오히려 그녀를 무고죄로 고소하며 쫓아냈다.
- 너 같은 애는 입 닫고 있어야 해. 더 망신당하고 싶어?
모든 장면이 끝나자 진우는 손에서 머리카락을 놓았다.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선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잠시 진정을 취하던 그의 입이 나즈막히 열렸다.
- 그래.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지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심판 의뢰를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몇번의 클릭과 키보드 버튼을 누르자 시스템은 곧바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는 7일에 거쳐 진행되었다.
진우가 생각한 다크웹 사용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의 시간이었다.
검은 법정을 메인에 심판 대상자인 홍영석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범죄혐의 등이 나타났다.
다크웹 사용자들이 심판 여부를 투표했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찬성: 92.7% / 반대: 7.3%]
[심판 확정.]
최종 결과를 확인한 그는 심판 설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 홍영석의 심판을 준비해줘. 설계내용은 준비되는대로 알려주고.
설계자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서진우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모니터는 검은 화면 위에 심판 대상의 이름과 심판 진행 상태를 차갑게 알리고 있었다.
[심판 진행 중]
문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판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의 능력과 시스템은 이미 수십 번 입증되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가슴 어딘가에 무언가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조명을 받은 손끝은 창백했고, 손톱 끝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이 손끝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를 보아왔다.
그들이 겪은 삶, 그들이 저지른 죄악, 그들의 가장 추악한 순간들이 그의 기억 속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기억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그의 일부가 되어갔다.
처음 능력을 사용했을 때는 그저 다른 사람의 과거를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사용하며 심판을 집행할수록, 그는 점점 그 죄악들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그들과 똑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 그들은 모두 죄를 저질렀어.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며 안심하려 했다.
그의 손끝에 담긴 과거들은 너무나 명확했다.
어린아이를 학대했던 사람, 공장에서 수백 명을 착취하며 사익을 채웠던 사람, 타인의 생명을 짓밟으며 웃었던 사람들. 그들은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 손끝이 과연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의자에 앉은 그의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머릿속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나는 정의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법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대신하는 거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을 막아야 해.’
하지만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네가 정의의 기준이 된다는 건가?’
‘누가 너를 심판자로 세웠지?’
그는 순간 의자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뒷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옆 작은 서랍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낡은 수첩이 들어 있었다.
서진우는 천천히 수첩을 꺼내 펼쳤다.
수첩에는 과거에 심판했던 대상들의 이름과 죄목,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 적혀 있었다.
홍영석.
그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 옆 페이지에는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이름마다 그가 본 환영이 짧게 기록되어 있었다.
박철민: '가난한 부모에게 학대를 반복. 병원비도 내주지 않음.'
최승훈: '여성을 협박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
김태용: '수십억 원을 탈세하며, 직원들을 강제로 노역.'
모든 이름마다 공통된 문장이 있었다.
‘심판 완료.’
'이들이 무고했나? 아니다.'
그는 속으로 말하며 손끝으로 이름들을 짚었다.
이름 하나를 짚을 때마다 머릿속에는 그들의 죄악이 떠올랐다. 그는 그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서 내가 심판을 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죽어야만 했을까?”
그는 조용히 수첩을 닫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모니터로 돌아갔다.
깜빡이는 심판 진행 상태 창이 마치 그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 네가 정말 심판자라고 믿는가?
어느새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이 손끝은 너무나 많은 죄악을 들추었고, 너무나 많은 심판을 행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잃은 것은 무엇인지 그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손을 주먹으로 쥐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내가 누구에게 심판받아야 하지?'
- 작가의말
세상의 어둠을 처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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