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천하제일인을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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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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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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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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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풍(風)각주(1)

DUMMY

다음 날이 밝았다. 마찬가지로 사무각에 발을 들였고, 이번에는 각주가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무슨 닭도 아니고 아침부터 지붕엔 왜 기어가고 그래?'


기행을 일삼는 그는 이미 내가 오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바로 무서고로 직행이다. 사무각의 무서고에는 생각보다 많은 서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주로 사파무공 서책들이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정파의 무공 서책도 있었으며, 병법서, 진법서 등 전투와 관련된 서책도 더러 보였다.


뿐만 아니라 기본 인문서적,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서사문학도 상당 수 있었으며, 의서나 침술책, 약방문과 같은 잡서들도 즐비해 있었기에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 곳 사무각의 환경을 관리하는 결벽증이 있어 보이는 면모를 보이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게 서책은 종류별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일견 뒤죽박죽 섞여 있는 듯 보였다.


'이런, 제길! 정원 관리하는 것처럼 서책도 정렬 해 놨다면 좀 좋으련만.'


내가 찾고자 하는 것 역시 서책이었다. 그런데 책들을 이 따위로 정리를 해놓았으니, 꼭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은 아찔함에 절로 몸이 휘청였다.


'후······.'


속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심기일전 한 뒤 책장과 책장 사이를 누비기를 한참이 지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찾던 서적과 별개로 평소 관심이 있었던 무공이 보였다.


"오호, 꼭 군(軍)에서 쓸법한 창술도 있군."


어린 시절부터 전쟁이야기를 동경했다. 그래서 동네 무관에 다니면서 군인이 되고자 하는 꿈도 키웠었다. 비록 병과에 번번이 낙방해서 군인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운 좋게 마지막 심정으로 지원한 무림맹에 말단요원 이지만 입맹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주력은 아니지만 병과 시험을 준비할 때 창술을 다뤄봤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기울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마상전법서구만."


재미있었다. 대규모 전투에서는 기마병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곤 하는데, 기병의 주공격 수단은 창술이었다. 그런데 마침 창법서 옆에 마상전법서가 있으니 꼭 이어지는 서책이 나열된 것 같았다.


"!!!"


주훈의 눈이 갑자기 크게 떠졌다.


'이런 미친 자가!'


"조가창법, 마상전법서, 갑주품명록, 철갑주제작연공서 ······."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던 서책들은 놀랍게도 특정 규칙을 가지고 정리가 되어있다.


'아무렇게 정리된 게 아니다. 창술이면 그에 도움이 되는 전법서, 갑주관련 서적, 심지어 삼국시대 창술대가의 영웅 전기까지 ······.'


단순히 서책의 종류, 서책의 이름순으로 정렬하듯이 정리한 것이 아니라. 책 칸에는 서책 하나하나가 상호 보완적이고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장 하나하나가 무림을 옮겨놓은 것과 같군.'


사무각 각주의 세계관! 즉,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무림이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야 할 것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다시금 빠르게 책장을 누비더니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훈은 하나의 책장 앞에 섰다.


'도적(盜賊)'


끼이익


하필 내가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잡았을 때 사무각주가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수탉 마냥 지붕에서 미친 짓을 하던 그가 왠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더니 ···.'


그 동안 각주가 보인 해괴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절레절레


책장에 나열된 책들이 환각을 일으키나 싶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미친 작자라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주훈이 서책들을 살펴보고 있음에도 한 번 힐끗 거리더니 사무각주는 별다른 말없이 그의 전용 자리로 보이는 책상에 앉아, 여러 서책들을 펼쳐 놓고 무언가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무관심. 그러나 나에게는 잘 된 상황.


실마리를 찾은 책 칸의 서책들을 살펴봤다.


'도둑, 도적이라...'


[도둑질 하고 발뺌하는 방법]


이런 책도 있구나.


[소 잃고 외양간 제대로 고치는 법]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이 왜 여기 진열되어 있는 것인가?


[대도(大盜) 누루하치 판]


이건 도둑질로 유명한 이민족의 이야기 같군.


'가만! 루판(淚販)! 찾았다!'


전생에 특임대 시절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무림맹의 담을 넘어 사무각에 침입하려는 도둑놈을 잡은 적이 있었다. 무공에 비해 제법 날랜 신법을 가지고 있었고, 군사전에 확인해본 결과 무림공적 명단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좀도둑이라 생각해 훈방을 해줬는데, 얼마 뒤 공식 임무 중에 놈을 만난 것이 아닌가?


그때 그 도둑놈들 연합을 '하오문(下汚門)'이라 했던가?


비밀리에 하오문을 이루는 종파들이 집결한다고 해서 특임대가 소탕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마 사파의 신진세력 휘하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지?'


그 곳에서 그 좀도둑을 만났는데, 그놈이 본인이 하오문의 종주(宗主)격인 유령파(幽靈派)의 후예라고 설쳤다. 하지만 다른 종파의 문주들은 유령신법을 익히지 않은 그 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좀도둑놈은 사파의 휘하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신법을 찾아오겠다고 공언했지만 무림맹 심처에 경지가 가늠조차 안 되는 사무각주가 지키고 있는 곳에 그 신법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결국 헛소리라 치부하고 놈들을 일망타진하려 했지만, 그곳에 모인 여러 종파의 문주들은 하나 같이 신법에 관해서는 일가를 이룬 놈들이라 결국 사로잡지 못하고 작전이 대 실패한 적이 있었다. 놈들의 무공수위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신법에 특임대원들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 놈이 찾는 신법이 이리도 가깝게 있었다면 기꺼이 내 것으로 만들면 좋다.


'변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언젠가 날 노릴 게 뻔한 손범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설령 그 좀도둑놈이 허풍이라 할지라도 손해 볼 것은 없으니 말이다.


주훈은 얼른 서책을 끼고 살펴보았다.

대도(大盜) 누루하치 판, 줄여서 루판이라 불렸다. 그는 역시나 북방의 이민족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곤궁하여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도둑질로 대성한 인물이었다. 현재는 몰락했지만 과거에 위세를 떨쳤던 구대문파의 장문신물(掌門神物)까지 훔쳐냈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다 믿을 순 없겠지.'


그렇게 많은 무림의 보물들을 훔쳐냈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보관하고 있단 말인가? 책자의 초장에는 허무맹랑한 말들이 많았지만 도둑놈의 일대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


[유령보(幽靈步)]


책을 어느 덧 절반을 읽고 나자 드디어 찾아 헤매던 신법이 나왔다. 유령보, 즉 귀신의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보법을 밟는 위치, 보법을 밟을 때 운기하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그림과 글로써 적혀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여기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저 놈의 사무각주가 날 의심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되니 최대한 침착을 유지한 채 서둘러 암기하기 시작했다.


혈천신공을 전수 받은 뒤부터 암기력이 급격하게 좋아진 것 같았다. 한번 본다고 외워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빠르게 속독으로 몇 차례 읽어 나가고 이해를 하기 시작하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 책은 소장하고 싶은데, 아니면 불태우던가.'


슬쩍 사무각주의 눈치를 보니, 그도 마침 이쪽을 보는 것이 아닌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얽혀봐야 대갈통만 깨질 것만 같았다. 몰래 품속에 책자를 집어넣고 책칸에 다시 꽂는 척했다. 저자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서책들이 즐비한 곳에서 한 권 비는 것을 바로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수련이나 해야겠다."


군사전으로부터 자유롭게 이용해도 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기에 사무각주 역시 별말이 없다. 과연 총군사는 무림맹의 이인자 다웠다.


'그래도 그놈도 맹주 놈과 한통속일지 모르니 조심해야 된다. '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등잔 밑은 늘 어둡다. 안 그러면 사부로 여겼던 자에게 배신당해 죽을 수도 있다.


전각을 나서 연무장에서 혈천신공을 수련했다. 처음에는 내공을 발휘하지 않고 제일식 혈영환무부터, 제이식 무중섬인, 제삼식 신뇌격격까지 차례로 펼쳐보았다.


"헉헉"


그래도 어제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수련의 묘미는 하루에 개미발자국 만큼이라도 성장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제사식까지는 내공 없이 펼치기에 동작이 꼬이고 근육도 후들거릴 것이다. 그 앞 초식만 봐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내력을 실어보자."


목검을 재차 뽑아들고 내공을 실어 제일식에서 삼식까지 펼쳤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내력을 싣자 위력은 급변했다. 어지러워보이던 동작은 빛무리 속에 숨어들어 시야를 잠식했고, 그 속에서 가상의 상대를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검은 피할 방도가 없어보였다.


현란함 속에 숨어있는 비수에 전생에 여럿 목숨을 빼앗았다.


"쳇, 내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군."

제일식만 펼쳐도 내공이 절반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기수식을 바꿔 제이식 무중섬인을 준비했다.

번개처럼 빠른 쾌검식으로 혈영환무와 연환기로 사용하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초식으로 잔상을 남길 만큼의 빠른 검초를 펼친 뒤 그 잔상에 숨어 시간차로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이 검식의 요체이다. [쾌(快)]라는 무리(武理)를 지배해야만 진정한 위력을 펼칠 수 있는 초식이다.


아직 주훈은 제이식 무중섬인의 제대로 된 위력까지 발산은 어려웠으나 한 순간 내지르는 검의 움직임에 가히 눈으로 쫓기 어려울 만큼 빠름을 느낄 수 있었다.


피슝


제이식 무중섬인을 펼친 뒤 채 숨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미간을 노리고 날아오는 암기!


'죽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머리에 구멍이 뚫릴 것이 뻔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삼식 신뇌격격(迅雷殛擊)


전신의 내공을 쥐어짜 펼쳤다. 기본적으로 강검을 추구하지만, 불필요한 동작이 전혀 없는 초식으로 오로지 쾌(快)의 무리를 적극 활용하여 날아오는 한 점 암기를 막기 위해 미간 앞의 공간을 타격했다.


콰릉


때댕!


공간을 타격하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고, 금속으로 된 암기가 공격을 맞고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크윽, 동···전 한닢?'


이윽고 날아오는 괴인의 신형에 손쓸 방도도 없었다. 내력은 부족했고, 몸 상태는 말단무인이었으니 말이다.


빡!


내 대갈통을 후려치는 느낌이 왠지 익숙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가는 와중에 보았다. 살벌하게 노려보는 그를!


"···사무···각주···."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렇게 경계했건만 ···.'


그렇게 주훈은 바닥으로 꼬꾸라져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유령보를 훔쳐가는 희한한 종자인 줄 알았더니, 혈천신공이라···."


사무각주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그대로 주훈을 들쳐 업고 전각 안으로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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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사형 곽무빈(1) 24.12.17 86 2 12쪽
6 6화. 풍(風)각주(3) 24.12.16 106 2 13쪽
5 5화. 풍(風)각주(2) 24.12.13 106 2 12쪽
» 4화. 풍(風)각주(1) 24.12.12 116 2 11쪽
3 3화. 사무각(邪武閣) 24.12.11 128 2 11쪽
2 2화. 무림맹주의 제자 24.12.10 142 2 12쪽
1 1화. 배신 그리고 회귀 24.12.10 18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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