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인간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오징어무침
작품등록일 :
2024.12.13 01:53
최근연재일 :
2024.12.13 08:00
연재수 :
1 회
조회수 :
16
추천수 :
1
글자수 :
8,147

작성
24.12.13 08:00
조회
16
추천
1
글자
18쪽

무법자

DUMMY

-이 시간 들어온 속보입니다.


-국내 사상 최초로 사살 수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경찰은 지난 끔찍한 연쇄 살인의 주범인 A씨를 더 이상의 체포 시도 없이 즉시 사살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A씨는 추가적인 살인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사살 수배 명령은 그 윤리성과 법적 타당성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


피육.


앵커의 멋들어진 얼굴이 검은 화면으로 변해 초라한 내 얼굴이 비쳤다.


뭔가 중요한 보도가 나왔던 것 같지만 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에 흘려들었다.


나는 잠시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텔레비전에 비친 내 얼굴은 여전히 초라했고 눈은 비침 없고 초점 없는 흐리멍덩한 동태 눈깔이었다.


“······.”


입을 때려 했지만 앙다문 퍽퍽한 입술이 무거워 때지 못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물먹은 솜털 같은 관절이 무거워 일으키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비추어진 내 모습은 마치 뭉친 솜털이 듬성듬성 들어가 만들어진 축 처진 봉제인형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누구보다 폐인 같았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따금 내가 이렇게 된 사건의 원인을 떠올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떠올려지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구역질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 것이었다.


······사건을 떠올려 본다.


맨 처음 이야기. 이 사건의 발단.

맨 처음의 이별. 그리고 순수한 분노, 순수한 구역질.


그 발단은 가족과 영원히 헤어진 때부터였다.


사실 가족과의 사별은 꽤 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내 가족은 살해당했다. 그것도 무법자에게.


타인에 의한 가족과의 이별은 그 상대를 향한 분노의 불씨가 되었다.


하지만 그저 분노한다고 가족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타인이 대가를 치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무법자가 대가를 치르게 법으로 맞서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무법자였다.


무법자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법자는 법의 창살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인간은 법이 없으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기적이며 공격적인 본성이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 갖춘 것이 바로 무법자이다.


나는 그런 무법자가 미웠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히 그 후에 나는 잠시나마 행복의 감정을 느꼈었다.


내 스스로가 가족을 만들었으니까.


나는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를 찾았고 피붙이인 아이와 함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픔과 분노가 엄습해왔다.


또다시 무법자가 내 가족을 앗아간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구역질이었다.

이 장면이 떠올려질 때면 답답한 구역질이 났다.


나는 무법자가 미웠고 국가도 미웠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으니까.


이제 나는 혐오의 감정만 남아 있었다. 그 대상이 누구든 혐오스러웠다.


“······죽을까?”


사실 이미 결정은 내리고 있었다.

내 손에 든 날카롭게 날이 선 사시미 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모 사이트에서 어디를 찔러야 사람이 죽는지, 어디를 찔러야 고통스러운지, 어디를 찔러야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등등 이론적인 부분들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나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깜냥이 안된다거나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 망설이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억울했다. 국가가 보상해줘야 돈 몇 푼이었다. 가족들을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법자들을 처벌할 수도 없었다.


죄책감에 속이 얽매이고 분노로 눈에 핏발이 선다. 그리고 우울함에 폐인이 된다.


아마 무법자는 속이야 편할 것이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이럴 때면 내가 무법자가 되고 싶었다.


무법자가 되면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속 편히 살아가면 된다. 모든 것이 허용되니까.


나만 피해 입고 그 끝도 나만 피해를 입는다고?


나 자신이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었다.


나만 당해선 안되는 거였다. 절대로.


지금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


남들도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 너무 억울하잖아.


하지만 분명 나는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거야.

내가 혐오하고 미워하는 그것으로.


어차피 나를 봐줄 사람은 더 이상 없는데 괜찮지 않을까?

맞아. 그렇지 더 이상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어. 무조건 괜찮지.


어차피 난 내가 내 손으로 죽을 거야.


그중에 한 번쯤 남 인생을 망친다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할까?


어차피 죽을 거 한 명이라도 데리고 가야지.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건 범죄행위야.


아니, 아니. 아무도 쫓아 오지 않아.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못할 거야.


죄로서 벌을 받지 않아도 돼.


그래. 어차피 나는 그 전에 죽을 거야.


감시가 붙기 전에, 신고당하기 전에, 누가 쫓아오기 전에, 누구한테 얻어맞기 전에.


그냥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난 이제 무법자야.”


날 단정 짓는 순간 나는 날 억누르고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속이 편안해졌다.


나는 손에 있던 사시미 칼을 계속해서 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콰르르.


내가 일어나면서 균형을 간신히 잡고 있던 쓰레기 무더기들이 무너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어차피 쓰레기는 어떻게 생기든 쓰레기일 뿐이니까.


나는 옆으로 돌아 쓰레기 무더기 속 간신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싱크대로 갔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싱크대의 상판 위에 녹조 낀 물이 담긴 컵이 보였다.


미지근해 보였지만 갈증이 쏟아졌기에 상관하지 않고 들이켰다.


메마른 목을 적시는 미지근한 물의 감촉은 역겨웠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다.


나는 여전히 손 한쪽에는 사시미 칼을 꽉 쥐고 있었다.


물을 다 마셔도 갈증은 다시 찾아왔지만 집 안에 물은 더 이상 없었기에 밖으로 나섰다.


현관문으로 가던 도중 깨져 있던 거울들의 파편에 발이 찢기고 피가 새어 나왔지만 나는 맨발을 허름한 운동화에 쑤셔 넣었다.


현관문을 열자 옅은 달빛이 희미하게 눈에 비쳤다.


어떤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었다.


나는 그대로 까만 후드집업에 달린 모자를 눌러 쓰며 컨테이너 집에서 멀어졌다.


인근 마을에 도착했을 때쯤 4개로 나누어져 있는 좁은 골목길들이 보였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골목길은 가장 오른쪽에 있는 가장 캄캄하고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 골목길의 바닥에는 갈라지고 튼 아스팔트가 깔려있었고 가로등은 듬성듬성 꺼져있었다.


만들어진 뒤 한 번도 관리한 적이 없어 보이는 길이었다.

나는 그 골목길에 발을 옮겼다.


누군가에겐 위험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겠지만 내게는 뭉클한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여전히 내 손에는 사시미 칼이 들려 있었다.




골목길의 중간쯤 왔을까.


저기 저편에 나랑 같이 검은 후드집업을 눌러 쓴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사시미 칼을 등 뒤편에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나는 결심했다. 저 사람의 인생을 망치리라고.

딱히 이유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만 혼자 죽기는 싫기도 했고 저 사람이라도 끌어내려야 내가 덜 비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결심의 순간이 찾아왔다.


저 사람이 나를 넘어서려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내 뒤편의 사시미 칼을 손톱이 손바닥을 뚫을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완전히 넘어서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등을 향해 매섭게 돌진했다.


날카로운 사시미 칼을 매개로 저 사람의 후드집업을 뚫고 살점을 찢는 느낌이 손 끝으로 전해지는 순간.


푸우욱!!


내 사시미 칼이 저 사람의 등을 뚫으며 폐를 관통했다.


따뜻한 선혈의 감촉이 손끝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며 온몸에 퍼졌다.


피비린내의 풍미는 혀끝과 코를 저리게 했고 그의 몸과 동화된 손목에서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진짜로 사람을 찔렀다는 생각은 척추에서부터 시원하고 짜릿한 무언가가 발사되도록 했고 그것은 온몸을 타고 순환했다.


뇌가 무언가로 세척되는 기분에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 마저 들었다.


미지근한 물도 해결하지 못한 갈증이 여기서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커어어억.


폐에 구멍이 뚫려 허우적거리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정신을 차린 뒤 나는 칼을 빼주었다.


철푸덕.


칼을 빼면서 지탱할 지지대가 없어졌는지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꺼어억. 꺼어억.


다리가 풀리고 폐에 구멍이 뚫려 숨이 쉬어지지 않음에도 남자는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남자의 행동은 무의미했다. 허우적거린다고 몸에 구멍이 메워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니까.


무의미한 저항의 끝은 무기력함이다.


남자는 탈진해 완전히 쓰러졌고 그를 중심으로 약간 파인 땅에는 핏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까까지 파문이 일렁이던 피 웅덩이에는 잔잔한 물결만이 남아있었다.


명백한 살인이었다.


“살인······.”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손이 경련했다.


분명 모든 것이 해방된 것 같았지만 무언가가 또다시 마음을 옭아매었다.


찝찝하면서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 더러운 느낌.


······아니야. 나는 무법자다. 무법자는 책임을 지지 않아. 마음 한편의 죄의식마저도.


죄책감은 법의 테두리에 준한 마음이잖아?


무법자는 살인을 해도 범죄자가 아닌거야.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어차피 죄책감을 가져봤자 법에서 벗어나면 딱히 가질 필요는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쓰러진 남자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 저 남자와 함께 갈 차례였다. 어차피 죽을 거 잠시 무법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사시미 칼의 코 쪽을 반대로 두어 두 손으로 잡은 뒤 가슴 정중앙에 가져다 댔다.


칼은 기본적으로 매우 아프다. 찌르는 순간 수축된 근육이 칼을 부둥켜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치지도 않을 거다. 뼈를 비집고 들어오는 칼날에 내 크고 작은 혈관들은 이 차가운 칼날을 마주한다.


그 혈관들에선 핏줄기가 뿜어져 나와 내 속을 더럽히겠지.


다시 경련이 온 듯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칼을 쥔 손아귀는 느슨해졌다.


안 그래도 땀을 먹어 축축해진 손아귀였으므로 칼이 제대로 쥐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을 친다.


아무리 찌르려 해도 온갖 환경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무법자야. 지금 죽지 않으면 나는 무법자가 될 수 없어.


범죄자가 되고 말아. 그렇게 살인에 대한 책임을 지겠지.


순간 파도 마냥 밀려 들어오는 찝찝한 무언가가 내 몸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찝찝한 무언가는 점성도 엄청나 한 번 휩쓸고 간 자리에는 끈적하게 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범죄자는 되기 싫어.


범죄자는 책임을 져야해.


아니야, 그래 아니야. 나는 범죄자가 아니야. 나는 아직 무법자다.


그냥 죽는 순간을 미루는 것 뿐야. 그냥 어쩔 수 없이 미루는 거야. 나는 계속 무법자다.

책임을 지기 전에만 죽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


잠시 나는 범죄자가 되었었지만 다시 시원하고 짜릿한 무언가가 몸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었다.


나는 무법자다. 하지만 지금 죽지는 않을 거야. 죽는 건 나중으로 미루면 돼.


······그렇다면 기왕 한 명 죽인 거 더 죽여도 되지 않을까?


그래 몇 명만 더 데려가는 거야. 겨우 한 명으로는 아직 억울하잖아.


어차피 나는 계속 무법자야. 어차피 무법자인데 사람 몇 명 더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어.


나는 주체 할 수 없이 말려드는 입꼬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식은 핏물을 배경으로 하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어렴풋이 그의 얼굴과 그 배경이 떠올려질 것만 같았지만 누가 중재라도 하는 듯 갑자기 잊혀 버렸다.


분명 확실한 시각적 정보만 볼 수 있다면 떠올려질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의 얼굴이 내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의 얼굴을 볼 때면 옅은 구역질이 났다.


그 순간.


삐이이이!!


갑자기 휴대폰에서 강력한 경고음이 울렸다.


[긴급 재난 문자]


-현재 [00동 00거리]에 범죄자 사살을 위해 경찰 투입 중. 해당 지역을 즉시 떠나거나 실내에서 대기 바랍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00동 00거리는 내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 범죄자가 있다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나를 말하는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분명 사살이라 했다. 아무리 살인을 저질러 누군가에게 신고를 당했다 하더라도 나를 체포하려 들지 사살하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긴급 재난 문자가 울릴 만큼의 영향력 있는 행동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나라에 사살이라는 단어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 아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사살 수배 명령을 떠올렸다. 그리고 앵커의 얼굴 옆에 있던 범죄자의 얼굴까지.


그 얼굴은 지금 이 남자와 일치했다.


닭살이 돋았던 피부가 다소 가라앉았다.


분명 사살 수배 명령이었다. 살면서 그런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일반 시민이 사살해도 괜찮은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보상금도 있겠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넘어서 보상까지 받는다.


그렇다면······.


······굳이······내가······무법자가 되어야 할까?


무법자가 아니게 되면 다시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편하니까······.


무법자는 원래 혐오하기도 했으니까······.


웨에에엥!


순간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갑자기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추는 파란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불빛이 내 앞에 멈춰서자 골목을 메우는 수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작은 총을 가진 무장 상태였다.


그들은 점점 내게로 다가왔고 그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이미 늦었어. 저 쓰레기 같은 새끼가!”


도대체 무슨 말은 하는 건지 잘 모르겠긴 했지만 내게 우호적인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에게 이 남자가 범인이라고 말하며 다가갔다.


아니, 그러려 했다.


내가 입을 때며 그들에게 걸어가는 순간 ‘탕!’하는 소리가 골목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폭력적인 소리는 내 왼쪽 어깨를 강타했고 나는 그 반동으로 뒤로 넘어졌다.


하필이면 쓰러진 곳이 피가 고인 웅덩이였기에 안 그래도 검은 후드집업이 더 검게 물들었다.


그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한테 총구를 겨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들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보상도 추가로 받아 내겠다는 생각을 끝마치려던 때에 다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앙!


이번에는 내 오른쪽 어깨가 이 소리의 종착점이었다.


챙그랑!


사시미 칼이 내 손에서 떨어지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계속 사시미 칼을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내게 총을 쏴서는 안되는 거였다.


법은 잘 모르긴 하지만 이건 정당한 행위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도 범죄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더더욱.


“너희들! 이래도 되는 거야?! 심지어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 저기 저 새끼가 살인자······.”


타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럽게 커다란 총알이 가슴을 꿰뚫고 속을 뒤섞었다.


찰나의 공허함, 그리고 나머지는 폭력적인 총알의 반동이 잇따랐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가까스로 일어났던 상체가 다시 뒤로 쓰러졌다.


숨에 헐떡여 꺼억꺼억 거릴 때에는 강혈이 뿜어져 나와 웅덩이에 담긴 핏물이 강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넘쳤다.


고개를 드니 빌어먹을 살인자의 면상이 보였다. 다 저 녀석 때문이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그냥 나는 운이 없었다.


왜 나한테만······.


저 경찰들이든 저 연쇄 살인범이든 죽어서도 저주할 생각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턱턱 막히는 이물감에 고개를 기울이니 이번에는 경찰차의 강렬한 불빛이 눈을 부셨다.


다시 고개를 구부려 웅덩이를 바라보니 아까까지도 안 보이던 내 얼굴이 보였다.


초라하면서 맥없는, 마치 폐인 같은······이 모습은 텔레비전에서 본 연쇄 살인범의 얼굴이었다.


매스꺼운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보기 역겨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주검이 된 피해자의 얼굴이 보였다.


피웅덩이의 파문이 점점 약해진다.


나는 끝내 타인에게 사살이라는 책임을 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하던 무법자는 이 세상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속보입니다. 사살 수배 명령이 내려졌던 A씨가 민간인 B씨를 살해한 뒤 오늘 자정 경찰에 의해 즉각 사살되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신속히 대응했으나 A씨가 이미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 상황이었다”라며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법인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무법자 24.12.13 17 1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