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할 결심 (1)

“끄아아아악!!!!”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두통에 닉스는 몸부림쳤다.
그런 소년을, 아멜리에는 바로 앞에서 몇 분째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그 말과 함께 몸부림치는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리자, 고통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비명소리가 끊겨 고요가 찾아온 방 안에서, 아멜리에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한숨은 한편으로는 딱하다는 듯도, 또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듯도 했다.
“그러게 조심성 좀 있게 하지, 어휴. 제 때 치료가 됐다면 살았을 지도 모르지만, 돌아오는 걸 보기 전까진 신중해져야겠네.”
두통의 여파로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닉스를 뒤로한 채, 아멜리에는 방을 나섰다.
“소식 들려오기 전까진 좀 쉬고 있어~. 혹시라도 다음 번이 있다면, 좀 더 조심하고 말야.”
“......”
홀로 남겨진 닉스는 힘없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움켜잡는 그에겐 아직 직전 격통의 여파가 선명했다.
전투의 마지막 순간, 도망치는 세라를 보고 발사한 에너지가 소년의 머리에 대신 적중했다.
에너지의 출력과 피격 부위를 감안할 때,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즉, ‘소년을 죽게 해선 안 된다‘라는 명령의 위반.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인지된 그 순간부터, 잔인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백발 소년의 몸 그 어디에도, 하얀 깃털은 붙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멜리에가 내린 ‘명령’에 그의 정신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헌터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 때문이었다.
지구로부터도, 전장으로부터도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항성계.
태어나서부터 10 여 년을 살아간 고향 별에서, 소년은 작은 부족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12살이 되던 해에, 북쪽의 거대한 도시가 그의 터전을 침범해왔다.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사회 치고 너무나 야만적이었던 그들은 소년의 부족을 몰살하고, 살아남은 일부를 포획해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약물과 전극, 그밖에 차마 살아있는 인간에게 시도하고 싶지 않은 온갖 잔혹한 ‘연구’들.
그 과정에서, 한 때는 어둡고 진했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그 색을 잃어버렸다.
인격 없는 실험체로 지내기를 몇 달, 삶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절의 자아마저 서서히 잊혀가던 무렵,
햇빛조차 들지 않는 실험실의 풍경을 지우고 나타난 하얀 문이 그를 헌터의 길로 이끈 것이었다.
그것은 어린 소년에게 있어 구원이자, 성격이 조금 다를 뿐인 저주의 시작이었다.
육체는 해방되었으나,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장기간의 약물 주입으로 심각한 중독에 빠져있던 그는, 머지않아 금단현상으로 끔찍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몬스터와 싸우기는커녕 몸을 제대로 일으킬 수조차 없는 그와 동지들이 처음으로 소환된 곳은, 전장 동부에 위치한 루드비아 마을.
그곳에서, 그들은 아멜리에에게 발견되었다.
‘부탁이야, 이 애를 살려줘...’
‘...그럼, 얼마든지.’
표정도, 말투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때 들었던 텍스트만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금발의 여인의 손길이 소년을 짚었고, 그는 머지않아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눈과 머리카락의 잃어버린 색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더 이상 금단 현상도, 머리를 가르는 듯한 통증도 없었다.
이대로 모든 게 해피엔딩이었을 지도 모른다.
닉스를 구원한 헌터가 그저 타인을 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길을 지나던 다른 정신계 능력자였다면.
하지만, 그의 구원자는 아멜리에였다.
“자, 내가 구해줬으니, 나랑 같이 가자.”
딱히 크게 거부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갑자기 마주한 상황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주 잠깐 거부의 가능성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 순간, 이전과 똑같은 극심한 두통이 닉스를 덮쳤다.
그제서야 그는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이 자신의 머릿속에 해 놓은 일이 ‘치료’만이 아니었음을.
아멜리에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라야한다.
거부하거나 그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려는 의사를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그 벌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내려진다.
명령을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한 채찍.
그것에 적응하여 거부와 관련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도 하지 않게 되기까지 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며 적응기를 겪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는 점점 누적되어 분노와 증오심으로 변질되어갔다.
다만 그것이 원흉을 향할 수는 없었기에, 그 부정적 감정은 다른 모든 것들을 향해 표출되기 시작했다.
레드 하운드의 거의 모든 멤버들이 그를 광견 취급하며 기피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러한 분노의 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세라...’
자신의 눈앞에서 도망치다가 리더가 찾는 소년을 방패로 삼아, 자신이 다시 한번 끔찍한 두통을 느끼게 한 배신자.
백발의 소년의 모든 감정은, 오직 그 한 점만을 향해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산채로 갈아버리겠어.‘
* * *
24시간.
본의 아니게 남의 집에 들어오게 된지 벌써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희민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였다.
“......”
그 24시간 동안, 세라는 잠든 시간을 제외하면 거실을 떠나지 않고 소년만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호흡과 맥박이 끊기지 않았으니, 육체가 생존해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포션으로 모든 손상을 치유했음에도, 그 사이에 타격을 입었을 정신만큼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거나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젓기도 하였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병원에 데려가보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별로 좋은 방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주소도 모르는 생판 남의 동네에서 적당한 병원을 찾는 것부터가 큰 일이거니와, 진료비를 낼 최소한의 재화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어떻게든 한다 치더라도, 이미 신체에는 생채기 하나 없는 이 소년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설령 어떻게든 의사에게 상황을 납득시킨다 해도, 미성년자에게 금지되어있는 헌터 활동을 언급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네가,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이어질 답이 없는 것만 같은 문장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세라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거실 벽 끄트머리의 시계 옆에 달린 큼지막한 사진을 향해 자석처럼 시선이 달라붙었다.
젊은 부부와, 그 밑에 유치원생 쯤 될 법한 어린 남매의 가족 사진.
두 아이들의 가슴팍에는,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코팅된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정희민.
여정을 함께해온 소년의 진짜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세라는 고개를 돌려,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당시로부터 10년 가까이 나이를 먹은 소년의 앳된 얼굴은 여전히 꽤나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어딘가 결정적인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곤 그녀는 고개를 다시 돌려, 사진 속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정지민.
부친이 내린 두 팔을 양손으로 하나씩 꼭 붙잡은 채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소녀를, 세라는 이제서야 처음으로 보았다.
저 사진 안의 네 사람은 모두 웃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얼굴의 잔근육 하나 바뀌지 않고 그럴 터이다.
그러나 흐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의 파도에 휩쓸린 바깥의 그들은 지금 어떠한가.
떠나간 사람, 사라진 사람, 휩쓸린 사람, 그리고 저항하는 사람.
과연 저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저 사진과 같은 미소를 되찾을 수 있는 운명일까.
“...있잖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세라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네 동생, 내가 데려올게. 예전이랑 다를 거 없이, 건강한 채로 꼭 데려올 테니까... 그러니까, 넌 그 때까지 꼭 일어나서 웃는 얼굴로 동생을 맞아줘.”
이것을 지난 날의 실수에 대한 속죄라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로지 그 사명만이 이 순간 세라를 다시 한번 일어나게 했다는 것뿐이었다.
정자세로 누운 소년이 숨쉬고 있음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세라는 왼쪽 손목에 찬 팔찌를 만졌다.
몇 년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지구와는 너무나 다른 상식을 가진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도구.
중앙의 붉은 진주를 문질러 차원문이 나타나자, 세라는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한 뒤 그 사건의 지평선을 향해 몸을 던졌다.
놀이기구에 몸을 맡긴 것처럼 강한 중력에 이끌리는 감각이 몇 초 정도 이어지다,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거리를 날아와 마주한 첫 감각은, 고작 하루만에 어딘가 낯선 것이 되어버린 공기의 냄새.
큰 유리창을 통해 무도회장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처절한 전투의 흔적으로 남은 검게 그을린 바닥.
그리고, 날카롭게 벼린 칼을 겨눈 채 그녀의 사방을 둘러싼 경비 기사들의 무리.
“꼼짝마!”
팔찌를 통해 고향 세계에 갔다가 돌아오면, 귀환 시점의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나타나게 된다.
적의 코앞에서 귀환했던 시점에서, 복귀와 동시에 적에게 둘러쌓이는 것은 그녀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단지, 그녀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방해하지 마.”
단호한 외침과 함께, 세라를 중심으로 급격히 팽창한 공기의 충격파가 경비 기사들을 일제히 날려버렸다.
그들이 일어서 보복할 틈조차 주지 않고, 소녀는 천장 위의 샹들리에를 향해 칼날처럼 얇은 바람을 날려보냈다.
거칠게 천장으로부터 분리된 샹들리에가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는 동안, 세라는 바람으로 그것을 벽면의 유리창으로 밀었다.
째애애앵!
경쾌한 파쇄음과 함께 창이 산산조각나며, 바깥 공간과의 공기의 길이 이어졌다.
그 기류를 타고 세라는 곧장 무도회장을 나와 성 바깥에서 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라이언의, 정희민의 동생이 잠들어있는 방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연히도 운명은 그녀가 그렇게 곧장 목적을 달성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빌어먹을 배신자야!!!”
꼭대기층 언저리까지 올라왔을 무렵,
시끄러운 바람 기류를 뚫고 귀에 선명히 꽂히는 외침소리와 함께, 잿빛의 에너지 덩어리가 성의 외벽을 부수고 세라를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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