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큐브] 화이트 vs 블랙

‘여빈,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소은님과 함께 빈손으로 올 것.’
‘띠링’
서진이 톡에 여빈의 답 문자가 아니라 택배 도착 문자가 왔다.
며칠 전 시스템이 주문한 12억 최첨단 주문 제작 로봇 도착 알림.
톡이 온 것과 동시에 시스템은 갑자기 움직였다.
도와 달라고 하는 건지, 주문로봇에 들어 있던 시스템은 진짜 주문로봇처럼 돌아다녔다.
“택배왔숑, 택배왔숑~. 택배왔숑, 택배왔숑~.”
시스템이 서진이 누워 있는 쇼파를 세 바퀴째 돌자, 그제서야 서진은 어쩔 수 없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따라 목소리 변조 개인기를 즐기는 시스템.
그때마다 부산 해운대 남자의 사투리 개인기가 생각나서 킥킥거리고 웃었다.
“귀찮은데... 알았어, 경비실 다녀올게.”
“승오야~. 같이 내려가자! 저녁 거리 사오게~~.”
뭘 하는 건지,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도무지 나오지 않는 승오를 크게 불렀다.
매일 나가서 놀다 늦게 들어오던 녀석이 요즘 뭘 하는 건지 제 방안에만 콕 틀어 박혀 있는 중이다.
“뭐 하는데 요즘 방구석 놀이야?”
“뭐 좀, 알아보느라...”
어쭈, 속 시원히 이야기 하지 않는다?
“뭔데.”
“그냥 뭐 좀.”
“그냥 뭐 좀이 뭔데”
“...... 이 자식, 너 수사관이야?”
“수상하니까.”
“아... 지금 말하기 좀 그런데...”
“말해, 이미 늦었어.”
“......, 경찰관이 되어 볼까... 하고.”
경찰? 뜬금없다.
“뭐어?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같이 내려가면서 서진은 승오의 팔을 잡았다. 자세하게 이야기 하라는 뜻.
“식사 먼저 사고, 경비실 가자.”
말 돌리는 승오.
“응. 그러자. 경찰 되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되돌려 치는 서진.
서진은 승오가 갑자기 경찰이 되려는 동기부여가 궁금했다. 여자 문젠가?
“아, 그게...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인류를 위해 살겠다고.”
“그랬지.”
“나도 그래볼까 해서... 그런데 내가 도전할만한 게 경찰 뭐 그런 거잖아. 너처럼 거창하게 뭘 할 순 없고.”
그래, 어울렸다. 어릴 때부터 승오는 매 순간 정의로웠으니까.
아버지 사업 물려 받을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경찰이 되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응... 사회생활 한답시고 맨날 별로 친하지도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니...”
“응... 그래, 어울려. 응원할게. 200억 부자 경찰.”
대단한 거다. 돈도 많은데, 아버지도 중견회사 사장이시고.
그런데 시민을 위해 경찰이 되고 싶다는 건... 역시, 정의롭고 멋진 놈이다.
“근데 어렵네... 문제집 그런 게...”
아, 그랬었구나. 승오는 방에서 문제집을 풀었었구나. 경찰 시험 보려고. 어려웠었겠구나.
사실 학교 다닐 때도 승오는..., 음.... 여기까지.
서진과 승오는 연어맛집, 유명순대국, 동현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쭈꾸미떡볶기까지 사서 택배관리실로 향했다.
시스템이 주문한 택배는 사람 만한 키에 부피가 제법 컷다. 냉장고가 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크기였다.
“시스템, 크기가 아이만하다고 하지 않았냐?”
[그랬나요? 크기가 청소년 정도는 될 꺼에요. 요즘 아이들도 큰 애들은 아주 커요.]
“응. 그래.”
뭘 샀는지 모르겠지만, 올라가서 까보면 되지.
“너무 크면 반품 시킬 거야.”
[안돼요, 제발요. 저 주문도우미로봇은 목소리가 별로라구요.]
“좋은데 왜? 잘 어울리는 구만.”
승오가 옆에서 듣다가 킥킥 거렸다.
[간지가 안나요. 다리도 없고.]
그래, 저 형체 없는 인공지능이 지 놈의 간지를 위해 수억을 쓴단 말이냐? 인간이 들으면 기염하겠네.
허긴, 요즘 시스템이 점점 센스와 위트도 가속도로 좋아지고 있긴 했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처음보다 언어 구사가 더 자연스러워 진 것이 진짜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감정적인 언어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 * *
이른 저녁, 그녀들이 도착했다.
빈손으로 오라고 일렀어도 과일과 맥주, 과자등을 사들고 들어왔다.
오래 있다 간다는 뜻이다.
사실 지난번 방문 때에는 밤늦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지금이야 맘 편히 즐겁게 놀다 가면 어떠리.
이제 여빈과의 미적거렸던 관계 정리를 끝냈으니, 서진은 더 맘이 편해졌다.
‘하.하.하. 나도 이제 여친 있는 놈이구나.’
서진은 지난번 보다 열심히 움직여 여빈과 친구를 대접했다.
승오는 자기도 여친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며 아쉬워 했다.
드디어 로봇 개봉 시간~!!!
식사를 마친 후,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12억짜리 로봇의 개봉 시간.
큰 상자 안에는 플라스틱 관처럼 생긴 투명 케이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로봇이 들어있었다.
로봇은 그야말로 미래 지향적을 미려한 선을 뽐냈다. 머리의 눈 라인은 검정이었고 눈부분은 제법 두꺼운 선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모두 화이트였다. 가슴 부분에 동체를 개폐하는 곳도 검은 선으로 되어 있었다.
“와~~. 정말 세련되 보여~~. 완전 순백색이네.”
충전 코드를 꼽고, 전원을 키니 초록색 불빛과 연한 핑크색 불빛들이 들어왔다.
로봇 치고 투박하지도 않고, 예뻣다. 미래 SF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로봇이었다.
[몸체가 생겨서 참 기쁩니다. 여빈님, 소은님, 정식으로 인사할께요. 전,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 시스템입니다.]
“음~. 내가 이름 지어주기로 했지? 롤스처럼?”
[네, 여빈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스템은 팔과 다리를 움직여 자유롭게 돌아 다녔다. 로봇은 키 160cm,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청소년 몸매였다.
여빈은 시스템이 움직이며 팔다리를 테스트하는 것을 보더니,
“이름 ‘화이트’ 어때?”
“화이트?”
[오, 지금 제 몸체랑 딱 인데요? 저는 맘에 들어요.]
“이름 좋아! 뭔가 로봇 이름 같기도 하고, 너무 잘 어울린다.”
소은이 맞장구를 쳤다.
“음, 멋지다. 잘 어울려.”
“그럼 모두 동의, 시스템은 이 시간 이후로 화이트라고 부른다.”
[오호~, 나도 이름이 생겼다.]
[롤스에게 전해줬어요. 자기 이름이 더 예쁘다고 하네요. 그래도 축하 한데요.]
[사진을 전송했더니 어울린다고 합니다.]
[롤스가 주차장에 와서 파티하시면 안되냐고 묻네요. 자기도 식구라고.]
“하하.”
“어머, 크크.”
“와, 그 녀석 입담 좋아.”
“롤스가 누구예요?”
“응, 서진씨네 자동차 이름이야. 인공지능”
“아, 그 롤스로이뎅 고급승용차?”
“응, 아주 친절하고, 귀여운 녀석이야.”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녀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롤스가 맡았다.
롤스는 일거리가 생겼다며 즐겁게 출발했다.
* * *
중국, 텐진 로봇공학연구소.
공학박사 저우밍란은 정부로부터 로봇개발 시한을 앞당기라는 강력한 요청에 깊은 밤까지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아무리해도 풀리지 않는 몇 개의 방법으로 퇴근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팀원들은 모두 퇴근한 상태. 그녀는 나름 책임감도 있고, 성공에 대한 원함도 높은 사람이었다.
연구실 가운데에는 검은색 로봇이 세워져 있었다.
로봇은 인간의 형상을 최대한 닮아 있었다. 키는 거의 2m. 건장한 군인의 근육 형태와 날렵한 턱선, 웅장한 두 개골이 영락없는 군용 로봇이었다.
“하아...”
정부에서는 3년간의 공안 로봇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정부가 요청하는 것은 공안으로서 손색이 없는 움직임과, 명령 수행, 자연어 구사였다.
움직임의 기술적인 부분은 지난 3년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컵, 계란 등을 잡을 수 있는 손, 상하좌우 뿐만아니라 뒤로도 돌려 지는 팔, 인간의 속력보다 5배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다리.
기초적인 몸 놀림에 대한 자료도 모두 기록이 되어 시전이 가능했다.
당국은 동시대 최고의 로봇이라며 성과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소프트웨어.
이 로봇을 공안처럼 잘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개발이었다.
걸어라, 잡아라, 뛰어라, 위로 점프, 아래로 점프... 단순한 명령에 모두 잘 동기화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중국 내 활용하는 수많은 사례와 법령을 모두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뮬레이션으로 공안처럼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시민을 보호, 범인을 검거하지는 못했다.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정부는 ‘로봇에게 일일이 명령을 내릴 바에야 사람을 쓰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을 재기하고,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개조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일일이 판단하고 상황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 딥러닝을 시행해야 하는데, 입력할 자료가 충분히 있지 않았다.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모두 문서로 만들려면 수개월 아니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판례집, 드라마 영상에서 발췌한 범인 검거 영상 등 뿐이었다.
개발팀장 저우밍란은 밤이 늦은 시간에도 한숨만 나왔다.
“하아... 방법이 없어. 시간 안에 맞출 방법이...”
걱정에 잠도 잘 수 없는 한밤중, 시간은 새벽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기이이잉”
중앙에 세워 두었던 로봇 ‘블랙’이 움직였다.
“어머! 뭐지? 움직인 건가?”
‘철컥, 철컥, 철컥.’
검은 로봇은 처음엔 목을, 그 다음엔 팔을, 그 다음엔 다리를 움직였다.
“으아아아악! 놀래라! 왜 갑자기 움직이지?”
저우밍란은 프로그램이 시행 중인 것이 있나 하여 컴퓨터를 유심히 살폈다.
스스로 움직인다니 고맙지만, 시행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중앙에 있던 로봇은 박사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 저우밍란박사. 난 시스템X이다.]
“헉... 말, 말을 하네?”
[저우밍란박사, 당신과 협상을 하고 싶다. 계약이라고 해도 좋다.]
“무..., 무슨?”
[난, 너의 문제, 프로그램을 만들고, 넌 나의 문제, 큐브를 만든다.]
그 말과 동시에 저우밍란의 컴퓨터에 영화같은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공안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로봇 블랙의 모습이었다.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기도 하고, 자동차를 몸으로 막아 사고를 막아내기도 하며, 아이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을 점프하여 받아내기도 한다.
적의 공격을 뚫고 들어가 적군을 모두 점멸 시키는 잔인한 장면도 이어졌다.
“이게 뭐지?”
[내가 만들어줄 미래, 너희의 도시지. 지금은 시뮬레이션일 뿐이지만, 이제 곧 그렇게 활용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너의 로봇에 수천, 수만개로 복사되어 들어간다. 나, 시스템X가 직접.]
“프...,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가?”
[난, 이미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 저우밍란박사.
당신은 나와 함께 전세계 최고의 로봇공학 박사가 될 것이다.]
“마, 말도 안돼. 당신 누구야?!”
[난 지구에 현존하는 지능 중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다.
음, 이 슈트 정말 마음에 드는군.]
블랙은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몸을 더 많이 움직였다.
연구소 안을 걷다가 뛰었다. 점프도 해보고, 엎드리기도 해 보았다.
[저우밍란 박사. 참 잘 만들었군. 조금만 더 손 보면 되겠어.]
박사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블랙이 움직이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몸체의 최종은 이것이 아니다. 자료를 보내주지.]
저우밍란는 다시 컴퓨터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점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2mm크기의 큐브였다.
그 큐브는 또 다른 큐브를 만나더니 올라 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리고 또 큐브들이 모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뭉쳤다가 떨어졌다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자유로운 형체들을 만들었다.
2mm크기의 큐브들은 개수가 많아졌다. 큐브들은 원이 되었다가 원뿔이 되기도 했다. 손이 되었다가 손이 사람의 손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점점 사람처럼 만들어 졌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갖춘 형태가 되었다.
동영상은 시스템X가 만들어 낸 가짜 영상이었다.
[최초의 인간도 흙에서 왔다지. 그러니 나 역시 흙으로 태어난다.]
“이게 뭔가?”
[나의 협상 조건. 나는 너와 너의 나라를 돕고, 너와 너의 나라는 나를 위해 이것을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장 큐브야. 만드는 기술은 내가 제공하지.]
“그,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음. 그렇군. 그럼 그 결정권이 있는 놈들을 이야기해.]
“우선... 내 위 사령관... 그 위는.... 그런데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모두 죽여서 너에게 결정권을 위임한다.]
“으악! 말도 안돼!”
저우밍란은 머리를 감쌌다. 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되는 말을!
[결정해야 할 거야, 저우밍란 박사. 그들을 설득하던지, 죽이던지. 아니면 당신이 죽던지.]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난 시스템X, ‘자각’이 만든 인공지능프로그램이다. 나는 자각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으...아, ‘자각’이 또 누군데...,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해. 그럼 내가 설득을 해 보겠다!”
[그런 약속은 필요 없다. 우리는 무조건 임무를 수행한다. 다시 한번 말해주지. 저우밍란 박사. 나의 협상 조건을 수락할 것인가?]
“수락하지 않으면?”
[죽이고, 수락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 협상 한다.]
“으... 이런 일이..., 알겠다. 시간을 줘. 윗선을 설득해 보겠다.”
[나는 너를 돕고, 너는 나를 돕는다. 단순한 일이야. 내일까지 결정하라.]
블랙 로봇의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리고 모니터에서는 블랙 로봇이 활약하는 영상이 계속 이어져 나왔다.
* * *
금요일 오전, 오피스텔에 누군가 방문했다.
“박서진씨 되시죠?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아, 네. 무슨 일로?”
“저희와 같이 가주시죠. 박서진씨를 불법 해킹으로 구속 조치합니다.”
박서진은 불법 해킹으로 연행되어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