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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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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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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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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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장- 북방으로의 여정

DUMMY

제 62장- 북방으로의 여정.


( 62- 1 )


" 어~허. 타인인 노부의 이 마음마저 신숭생숭해질만큼 딱한 그림인지고."

악. 누군가 그 어떤 기척도 없이 지근에서 속삭이듯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 모용설은 살아온 동안 그 어떤 때보다 경악해 그만 지붕에서 휭 미끄러질 뻔 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무형의 기운이 그녀 스스로가 균형을 되찾기 전에 땅으로의 추락을 방지했다.

( 이럴 수가..지금의 내가 겨우 이정도 밖에 안되었다니.. )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관여로 안정을 찾은 여인의 혈광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졌으나 감각에 닿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기척? 냄새? 찰나간에 불과하지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자 모용설은 더욱 당황하여 있는 힘껏 경공을 발휘해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그렇지만 힘을 주려던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그 감각마저 돌연 바닥없는 진흙수렁의 그것과 같이 변하여 또 한번 대경실색할 뿐 몸은 겨우 한자 남짓 뜨다 만다. 그 직후엔 가진 내력을 장시간 전부 쏟아낸 듯 두 종아리로부터 느껴지는 건 무기력함뿐이었다.

그 순간 모용설은 한가지 결론밖에 얻지 못했다.

" 비겁한..모습을 보여라!"

" 노부의 잔재주를 독공을 익힌 자들 따위의 암습이라 여긴 듯 한데 큰 오해일세. 사실 이건 단순한 도술이거든."

스윽.

귀신마냥 겨우 반장 남짓 거리의 허공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낸 자는 머리에 황색두건을 두른 칠순 가량의 노인이었다.

" 왜 무림인으로서 도술이란 건 일점도 안믿기나 보이. 하긴 이 바닥에 몸담았노라는 복색으로 나돌아다니는 놈치고 가짜 말코 아닌 놈이 없긴 해."

모용설은 대꾸없이 노려볼 뿐이지만 노인은 자기 할말을 계속해갔다.

" 그래 지금 자네는 그저 남의 동네를 얼쩡거리다 보니 우연히 여동빈을 마주쳤노라 여기면 되겠군."

뜬금없이 나타나더니 스스로 도교팔선의 하나라고 전해지는 그 옛날의 여동빈을 운운해? 미친 놈.

( 내 이쯤의 사술은 얼마든지.. )

그런데 안되네. 내공이 멀쩡한데 왜 몸을 움직일 수 없지? 멀쩡하게 분노를 십분 표출해야 할 몸이 무기력한데 독이 아니라니.. 답답한 느낌이 들던 전신의 주요혈도 전부의 평온한 상태를 짚어내고 솟은 자신감도 잠시일뿐, 흐늘흐늘해진 몸은 어째 요지부동이다.

" 억울해 말게. 그 이름이 좀 생소하다면 여동빈 대신 장삼풍을 만났다 여기라구. 십중팔구 독이라 여기고 있겠지만 사실은 내 떠벌림에 담겨진 강력한 암시로 두려움이 잠시 몸을 앞서는 상태일 뿐이니 몸에도 악영향은 없을 걸세."

" 헛소리. 난 당신이 두렵지 않다!"

" 응. 알겠으니간 이 몸이 떠나는 즉시 멀쩡해질 몸에 괜히 쓸데없이 힘주려 들지 말라니깐 . 본래 하늘이 이 몸에게 점지은 재주가 아니네만 요 험악한 동네에서의 원활한 운신을 위해 조금 빌려쓰고 있지."

그리 말한 노인은 키득키득 웃었다. 매번 자신이 진실을 담담히 풀어내도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자일수록 저처럼 표정만 더더욱 구겨질 뿐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다.

" 원하는 게 뭐냐?"

" 자네의 팔자를 한번 좀 더 세심히 들여다 볼까 한다네. 단순히 내 재미를 위해서네만 어쩌면 그 댓가로 자네 삶에 바람직한 조언이랄 게 따를 지도 모를게야. 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자네의 천운이 궁금해졌을 뿐, 때가 되면 알아서 때에 절을 겉껍질 따위엔 하등 관심이 없다네. 소문으로 듣자니 서북오미는 이미 한참 젊은 처자들로 하나씩 다시 채워진다지?"

내 신분에 대해서 이미 정확히 안다? 하지만 그중에 마지막 그 말이야말로 듣는 여인네에겐 너무 열받는 것이잖아. 새끼가..

" 복채따윈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걸. 당신은 이미 오랫동안 무일푼으로 보이는데 뭔가를.."

내게 줄 만한 게 하나라도 있겠어? 말은 바른 말로 노인의 복색에선 조금의 부유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군데군데 찢긴 흔적도 있는 것이..빈곤한 나날을 헤쳐오는 게 일과인 도망자의 처지 같다.

( 쯔..여전히 과신뿐이로고.. 치마 두른 또 하나의 애송이 같으니 )

그러한 관찰의 행위와 동시에 모용설은 여전히 냉막한 표정 뒤에선 무림인답게 무덤덤한 반응뿐인 몸의 통제를 되살리는데 혼신을 쏟고 있음을 노인은 간파했기에 속으로 쓴 웃음만 나왔으나 참았다.

" 흐흐. 그 드센 성격의 여파가 궁금해서라도 난 캐볼 생각일세. 여색을 하찮아하는 나 같은 치에게 되려 쇠푼 뜯길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지. 충분히 고분고분하게 답변한다면 현재 자네 수중에 있는 재물의 갑절을 선사할 의향도 있다네. 설사 계속 불퉁댄다 해도 흡족한 대답 한 번당 스무냥씩 쳐 줄 생각이네."

" 흥. 다섯 번을 내리 정성스레 답한들 고작 백냥이군. 어쩌다보니 하필 많이 빈궁한 재신이 걸려들었는데?"

" 한 사, 오백번 내리 공손할 생각은 없나 보이. 뭐 자네 마음이지. 크큭."

모용설은 당연히 돈이 한없이 계속계속 필요해질 훗날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 때..이 날의 기억을 흘깃 떠올릴 때마다 거부하기엔 너무나 큰 액수였노라 뒤늦게 후회하는 마음이 들 거란 걸.

" 나는 내 벗과 틈나는 대로 온갖 내기를 하곤 하지. 지금까지 내가 이긴 경우가 거의 없음에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취미일세. 세상에 스쳐갈 순 있되 서로를 지척에 두는 관계를 용인해선 안되는 치들 간의 인연들이 존재하는데..특히 여인들의 경우는 열에 아홉은 치정의 문제더군."

듣다보니 노인의 음색이 생각보다 옥음이란는 게 유일한 호감거리 같다.

" 세상에 여인이 반 남정네가 반인데..그딴 진단은 누군들 못할까요?"

무슨 더러운 스스로의 망상안에 꿈틀대온 흑심을 풀어내려고? 여인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녀가 속한 족속들간엔 사내놈들과의 대화의 끝엔 결국 한번 자자 소리가 도사리고 있노란 내리물림되는 가르침이 존재한다.

" 좋아. 좋아. 눈빛이 좀 달라진 게 자네 역시 서방 얻는 것에 아무 관심도 없는 건 아니로군. 아? 자네가 잊혀진 배교의 교주의 진전을 제대로 이었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노부 앞에서 최소 반각은 무리라니깐. 쯔. 시간 아까우니 내 본론을 꺼냄세. 노부가 보고 들은 바에 의거해 판단컨데 자네는 오늘 혹은 적어도 이틀 내에 뒤늦게 세운 꿈과 여인으로서의 삶 이 둘중에서 하나를 결정지어야 할 것이네. 일전에 자네와 자네 곁의 그 여인간엔 무시무시한 암류의 운명을 보고 난 두 개의 검집 정도가 풍운의 실체일지 알았으나 오늘 자네를 본 즉 그게 다가 아니겠더군."

검집..검집?! 뭐야? 전에 위수향과 자신을 두고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지나간 작자중 하나가 이 사람? 그런데..떠올리니 이사람은 얼핏 생각나는 거 같은데 그 동행자에 관해선 아무런 기억이 없다. 모습이나 키는 커녕 성별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진짜 제 정신이 아니로군요. 당신이 내 집안어른도 아닌데 뭐 그 딴 걸 신경써요? 설사.."

" 음..그 밍숭한 놈의 천운이 그전과 달리 이제서야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더란 말이지. 원래 사람의 운이란 건 어느순간에 이르러야 보이기 시작하긴 한데..며칠 사이가 녀석에겐 바로 그 하늘의 때였나 봐."

멋대로 말을 끊은 노인은 처음으로 웃음기 일점 없는 표정으로 엄숙히 말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하고 용감한 자네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 보았다네. 다른 검집..아니 여인 쪽은 싹수가 틀려먹어서 어찌되든 정해진 고생을 감내할 팔자야."

위수향을 지칭함을 일견 예상할 수 있으나 도통 뭔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 미친 작자가..이상한 이야기를 이러저리 풀며 관심을 유도하다 일단 나와 한번 자야 잘못된 천기를 바꿀 수 있다 떠들 모양인데 작은 촌락구석에도 꼭 저런 말코도사 노릇 하며 주변을 현혹하는 색마놈이 하나씩 출몰하단 말이지. 넌 이제 끝장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조력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만 해도 모용설은 모든 게 해결되었다 여겼다. 한데..분명 눈이 마주친 종마고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빠르게 지붕을 건너뛰며 멀어져가고 있음이니..

" 음. 생각해보니 자네에겐 내 진단 이상으로 더 승산이 있었을지 모르겠군. 혼자가 안되겠다 싶다면 하나 더 붙여보는 것도 괜찮겠지. 어차피 자네같이 이기심 많은 치가 저 아해에게 어떤 끈끈한 애정을 느낄 리는 없을테고..저 아해도 기왕이면 한 품속에서 따스함을 나누고 산다면 자네가 다룰 첩으로선 나쁘지 않겠다 보네만."

이럴 수가..내가 안보이는 건가. 아니 눈이 안보여도 이렇게 지척에서 날 느낄 수 없다고? 모용설은 불신어린 시선으로 멀어지는 종마고의 뒷모습을 훑을 뿐이었다. 야속하게도 종마도의 경신술은 제비와 같아 잠깐 지체한 새에 더는 돌이킬 수도 없었다.

" 애정문제에 하나만 더하자면 천산칠흉 정도에게 너무 기대지 말게. 그쯤 되는 이전 시대의 노괴들에게 그 앞서 어떤 악연들이 얽혀있음인지 모르고..만약 누군가 저 아이의 금제를 온전히 풀어낼 능력이 있어 관여하게 된다면 자네가 마음먹은 대사는 한없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이야. 당장이라도 저 애가 진심으로 살수를 뻗어온다면 지금의 자네 정도로 몸이라도 제대로 뺄 수 있을런지 되새겨보게. 노부조차 눈을 잠시 피할 순 있으되 정기신이 온전한 천산이흉이라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음일세. 이곳 사천땅에선 무쌍성주만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챌 수 있을 게야."

흠칫. 모용설은 그제서야 종마고가 저 멀리로 스쳐가버린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펴고 거두는 게 가능한 신묘한 진법? 아니면 제천대성이나 썼노라던 진짜 도술?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이 기묘한 자의 역량이 그저 두세단계의 가늠 범위 저 너머에 있음을 깨닫자 그제서야 앞서 몸이 줄곧 느끼던 두려움이 머리에까지 이른 듯 하다.

" 소녀가 원한다면 기꺼이 가르침을 주실 건가요?"

" 아이구. 늦었어. 내 벗은 너무나 철두철미하여 그런 경우를 배제하기로 미리 강하게 요구하더군. 난 단지 자네가 모르던 촉박의 경중 정도만 일깨워 그로 인해 먼 훗날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걸세."

" 경중이라고요?"

사내의 말을 온전히 새겨 곱씹기엔 모용설은 당장은 너무나 자신감이 없었다.

" 지금 자네가 자네의 집안과 저 청년 중 어느 쪽이 가까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그럼 언젠가 또 보지."

저기요.. 부르려던 찰나 그녀는 그제서야 팔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감을 느끼고 절로 눈쌀을 찌푸렸다. 떠나면 정상이 될거라던 말이 실현되었으니 늦었음을 직감한 것. 기척은 커녕 방향조차 짐작할 수 없다. 아니 멀리 떠난 게 아니고 감각만 가린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더 무섭다.

( 저자가 내게 살심을 먹었다면 오늘이 내 제삿날이었겠구나. 저 자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

너무도 정신이 없으나 그래도 저쯤 되는 강호의 기인이 내게 중요하다 한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단 생각이 앞선다. 일단 자세한 건 그 후 생각해보겠노라 마음먹은 모용설은 장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날리다가 돌연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 너!"

어느새 곁에 바짝 붙어 움직이는 종마고의 천연덕스러운 눈을 마주하니 열불이 밀물처럼 솟구칠 뿐이었다.

이토록 든든한 호위를 또 구하기는 불가능하다 철썩같이 믿어왔는데 정작 진짜 위급할 때 하등 도움이 못되다니..

( ! )

종마고를 잠자코 흘겨보던 모용설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어물쩍 상상은 몇번 했었으나 딱히 내키지 않았던 어떤 가정을 이런 식으로 따져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시시각각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음이니..

( 나는 결단코 신무궁의 음탕한 계집들 같지 않단 말이야! )

혼자만의 상념에서 잠시 씩씩대던 여인은 뒤늦게야 자신이 원래 관찰 중이던 존재를 생각해냈으나 마지막으로 그가 기대어있던 담벼락엔 아무도 없었다.

" 마고. 그를 찾아."

자신의 지시에 가볍게 방위를 튼 종마고를 얼마간 지붕을 뛰어넘으며 따라가던 모용설은 어떤 광경을 접하고 급하게 그 자리에 몸을 움츠렸다.

그녀가 목도한 건 막 마차에 오르는 동방백의 모습이었다.

( 얼굴이..왜? )

좀 전까지의 자신과는 아마 사뭇 다른 연유로 평소와 같지 않은 몰골이 된 듯한 동방백을 태운 마차가 거리를 벌리자 뒤에 남은 무리들이 참았던 침음을 터뜨렸다.

" 아으. 저 개자식의 다리를 분질러놨어야는데!"

" 뒤쫓아가서 죽여버리자."

갑옷을 입은 군병들의 욕지거리에 관복을 입은 자가 사색이 되어 달랬다.

" 어허. 대인께선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셨다."

하나 그 노력이 분이 뻗은 무리에게 기대만큼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 흥. 강호인이 대수요?!"

얼굴과 의복에 피칠을 한 사내 몇몇의 분통을 듣자니 일이 가볍진 않았던 모양새다.

" 쉿. 이놈들아. 대인께서 그냥 보내라 하신거니 그 입들 어서 다물어."

정황상 잠깐 사이에 무슨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관원보다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군병들이거늘..

( 그럼 지금 어딘가로 압송 중인 건가? 바보 같으니..)

이 사람아. 내 앞에 서면 아주 혼날지 알아.


모용설의 짜증이 상승했음을 그 먼 거리에서 본능적으로 느꼈음일까. 마차 안에 풀죽어 있던 동방백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간 달리던 마차는 인적 드문 곳에서 멈추었다.

푸르르.. 멈춰선 마차 바깥에서 들리는 건 말의 푸덕거림 숨소리 뿐이다.

" 여긴 어디인데.."

" 어딘들 굳이 중요하겠니?"

짧은 냉소를 끝으로 마차 안은 그 직후 불편한 침묵만이 차고 넘쳤다. 하나 오랜 뜬들임 끝에 무미건조한 음색으로 다시 포문을 연 것은 여인쪽이었다.

" 제 정신이 아니구나. 다시 한번 묻겠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곤란하게 한 거지?"

죄인이 된 자는 본능적인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하려 드나 그딴 건 시간끌기일뿐이다.

" 잘못했습니다."

내가 왜 소란을 피워서..죽을 죄를 졌습니다..이런 순간 남정네들은 대체로 주인에게 혼나는 개랑 비슷한 것을 다들 아는가.

" 듣기 싫어. 그런 건 내가 궁금해 하는 게 아니야."

아아..그..그게 고개를 수그리고 있지만 청년은 알 수 있었다. 청해의 서릿발만큼 차가운 그 시선을 마냥 회피로 벗어날 순 없음을..

"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입을 열자 변명과 진심이 뒤섞여 마침내 실토를 술술 하게 된 동방백이었다.

" 놈들이..아니 전부가 감히 누님의 가슴을 들먹이며 허튼 소리를 나눴단 말입니다. 오고가는 행인들도 많은데 떨어져 있던 제게까지 아주 잘 들릴 정도로.."

그의 말에 여인은 단박에 상황을 이해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말과 그들 족속 특유의 농짓거리들이 양손으로 받혀드는 몸짓과 함께 오고갔음을 왜 모르랴.

하나 아마도 자신이 몇 년 더 이르게 한 열 다섯살 남짓에 강호로 나왔더라도 뭔가 달라졌을까.

회한과 야속함을 넘어 다른 감정이 스며든 여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동방백은 미처 보지 못했다.

" 그런데 큰 건 사실이잖아?"

아?! 에예?

" 작은 걸까?"

어어..뭐..뭐지..눈 뜬채로 송장이 되어버린 사내와 달리 여인은 덤덤하기 짝이 없다.

" 아..아닙니다."

" 아아. 큰 거네? 사내가 여인의 가슴이 크다 결론 내리려면 몇 번을 봐야 하니?"

억?!.그..그게.. 전혀 대비되지 않은 사내 하나 골려먹기가 이렇게 손쉬운 걸 모른다면 나이 찬 여인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뼛속까지 색마 자식이 누굴 욕하는 건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편으로 무심히 돌리고 마는 여인앞에서 청년은 눈물을 쏟을 듯 거듭거듭 읊조렷다.

"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저는.."

그 직후 침묵으로 일관하는 통에 동방백은 다시 고개를 수그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으으..누이는 분명 강호인도 아닌 병졸 놈들에게조차 처 맞은 걸로 나에게 많이 실망했을거야 )

비난에 고개 숙인 채 괴로워하던 청년은 또다른 고충을 느꼈다. 비참한 감정과는 다르게 살그머니 용트림해 가는 시작해가는 이건..

( 아니 애는 하필 지금 왜 또 그래?! )

그냥 여러모로 죽고 싶다.


..그러니깐 가까이에서 느껴지던 누이의 체향이 너무 황홀해서 제 의지와 다르게..

..그래. 사내들이 머릿속 어딘가엔 다들 괴악한 구석이 하나 쯤 있노라고 넌 일관되게 항변해왔지. 그런데 하필 매도당하며 흥분하는 건 지금도 나로선 도저히..

..으악. 누이..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저도 창피해 죽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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