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혈창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영아의별
작품등록일 :
2012.11.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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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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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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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신권혈창(67-5)

DUMMY

( 67-5 )


남들 다 잘 때 혼자 뭐했나 의심받을까 봐 억지로 부릅뜨고 버텨 보지만 이 날 이동은 그 어느 날보다 지루했다.

따각.. 따각..

인고의 열매가 제 아무리 달아도 이틀 연속 찰나의 기회를 노리고자 수 시진 식 심력을 소모한 동방백은 반복되는 말발굽 소리에 꾸벅꾸벅 졸다 몇 번이고 낙마할 번 했고 이를 보다 못한 초연휘는 건량 대신 작은 부락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무사 귀환을 위해 내부 일정의 준수를 원하는 호위들의 뜻에 반한 결정인데 정작 수혜자는 참으로 잘되었다는 듯 그 즉시 한 구석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 저 자식 아무리 봐도 한 거 같아 )

그 모습에 시선조차 주지 않는 철무화지만 얼마 전 밀회의 선례를 밟아본 초연휘에겐 그것이 되려 의도된 침착함으로 느껴진다.

( 하하. 정말 그 빡빡한 틈새에 가능했다면 실은 그전부터 그런 관계였던 게 아닐까 )

당당히 병법의 한 갈래에 속하는 미인계지만 설사 당사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작용하는 세상의 이치이니 역시 수컷 쪽에 의심의 추가 기운다.

하지만 무면화와 자신이 기왕 그리 된 게 단순히 저들에게 분위기를 더한 것이라면 다행이나 둘 모두 의도를 깐 접근일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동방백 스스로는 별 자각이 없어 보이지만 타인의 시선에 본 그는 이미 꽤 인상적인 인맥을 갖고 있었다. 이사부인 양시은은 비록 금분세수의 시기를 이미 한참 넘긴 몸이여도 잊혀진 혈마의 후예이며 또 그와 의형제를 맺은 모용성왕은 자신조차 역량의 천장을 예단할 수 없는 숨은 초인.

거기에 모용세가의 여식과 그녀 곁을 맴도는 출신내력이 불분명한 백치 여고수. 그리고 강호인으로서는 조용히 살아왔어도 잠재력이 상당한 사부와 그의 처가인 사천당가 등 앞서의 성왕을 제외하고 육가 전부가 공히 파악한 이들로만 한정해도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당사자 스스로도 이른 연령에 이미 완숙한 절정에 가까우니 허튼 짓만 하지 않는다면 계속 가까이 두고 총애할 만 하다.

그런데 철무화를 향한 연정 하나가 그 모든 걸 남 좋은 꼴로 만들 수 있었다.

( 지금까진 만서당주지만 놈의 선망어린 눈빛을 보건데.. )

그 치마폭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어느 순간 칼 끝을 우리 쪽으로..동방백에게 동행을 권유한 건 그저 여정 중 심심함을 경감하려던 거지, 진심으로 둘의 야합을 응원해서가 아니었던 초연휘는 괜스레 입맛이 쓰다.

일의 성사는 스스로의 공이다 말한 게 녀석에게 괜한 용기를 불어넣는 실수였을지도.

" 성주님. 하루 전에 온 지급 보고입니다."

이제서야 저 멀리에서의 일을 개략적으로나마 알게 된 초연휘는 기분이 한결 들떠 수하에게 서찰을 넘긴다.

" 후후. 좀 더 자세한 정황이 궁금해지는군. 그런데 내가 이랬어도 말이 많았겠는데..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 맹주가 그냥 단순히 좀이 쑤셔서 이랬을까."

" 맹 밖에선 몰라도 총단에서는 여럿이 굉장히 불..아니 걱정했겠지요."

호위의 책무에 갇힌 대답에 만족 못하는 그를 기쁘게 한 건 진영령이다.

" 그런데 일찍이 빈 손으로도 삼두육비의 괴물이라 불리우던 분이 어째서 검을 든 걸까요. 그것도 왜 굳이 반으로 부러뜨려서."

그렇지. 이래서 내 자네를 아낀다네..기다렸다는 듯 초연휘는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바를 털어놓는다.


--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박투가들은 가능한 더 많은 병기의 쓰임새와 일반적 대처까지 두루 신경 써야 할 걸세 --

-- 아예 처음부터 대적이 불가한 상황에 처한 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거 같나. 일단 도망쳐 살고 보자는 생각 뿐일 게야. 자신의 손맛에 그게 가장 맞아 선택한 건지 알 순 없지만 그 바탕엔 적들의 오판을 유도하면서 자신의 힘을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을 거야 --


현장에 관련한 초연휘의 추정들은 여러모로 구체적이었고 그리고 그 모든 걸 조용히 듣는 철무화는 감탄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갈래는 달라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싸움의 바탕에 적용될 무리(武理)는 대체로 비슷하기에 만류귀종이란 표현이 강호에 정착된 거 아닐까.

나중에 더 자세한 걸 알게 되면 빗나간 부분도 많겠으나 정황을 상상하다 보니 그가 꺼낸 저 추정들이 이치에 가장 걸맞다.

권왕처럼 현격한 실력의 고수여도 아무 계산 없이 쳐들어갔으면 개방된 장소에서 그토록 완벽한 소탕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은 반절의 척살 과정엔 앞선 개방의 연통에 서둘러 달려온 보림문의 문도 서른 가량이 힘을 보탰으나 그만 다섯이 죽고 열 가량이 중상을 입었으며 도주자들을 추격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다.

소소백이 너무도 자신있어 하는 그들을 기꺼이 믿고 잠깐 자신의 싸움에만 집중한 사이에 벌어진 피해였다.

서찰엔 전혀 없는 내용이나 ' 강자들은 흔히 남들이 얼마나 약한지 잘 모른다.' 는 이치가 어느 정도 작용한 부분이리라.

본래 집단끼리 싸우면 부득이 손실이 따르는데..

( 정포 형님도 내게 단병기를 권했는데 비슷한 연유였나 )

계속 자고 싶었으나 비몽사몽 중에도 성주의 음성과 내용을 의식해 퍼뜩 정신을 차린 동방백은 누운 그대로 생각에 잠긴다.

십절 무인이 진지하게 말을 풀면 그것이 가장 기본적 무류일지라도 하나 하나가 의미 깊게 들릴 수 밖에 없는데 더욱이 권왕의 이야기라 하니 더더욱 집중할 수 밖에.

아쉽게도 전해진 소소백의 행적이 너무 간결해서 화제는 남은 다른 무리들의 행보로 전환되었다. 개방에선 최대한 노력하는 데도 거리 탓에 사천엔 아직 일지신도의 개파소식이 당도하지 않았다.

( 장기간의 고된 수련의 결과는 몸에 어떤 식으로 든 남는 법인데 세상은 왜 그리 가짜들에 잘 속는 거람 )

철무화처럼 상처를 도외시하면서 혹독하게 수련하지 않았더라도 보통 범인을 훨씬 상회하는 민첩함을 장착한 무인은 일단 근육의 발달 정도부터 다르다. 그건 노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엄청난 노력과 끈기의 수련으로 기예- 이른바 술을 갖추지 못하면 갓 이류를 밟은 이에게도 당할 수 있는 데도 갈수록 내공이 조금 더 앞서 가는 걸 우선하는 이가 는다.

문파의 위명이나 재력만 믿고 자화자찬을 일삼는 이들 상당수의 공통된 특징이 몸이 근육이랄 게 거의 없는 물렁살이란 점이다.

뭘 모르던 어린 시절에야 번듯한 무기와 복색만으로도 산에서 긴 세월 수련에 매진했다는 자랑을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나 지금은 위 아래만 두어 번 훑어도 코웃음을 쳐야 할지 말지 알게 된다.

방심이 강호인의 가장 큰 위험이라 하나 진짜 어딜 가든 고수를 사칭하는 이가 가득한 것.

이전처럼 편하게 남도북검을 거론하는 이가 없지만 그들이 발 딛는 곳마다 싸움을 거는 통에 ' 평생 적수를 찾기 어려웠다던 독문절기를 자랑하던 이' 들이 너도나도 종적을 감춘 걸 통쾌해 하는 이가 여전히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진짜 잘난 놈이 으스대는 것도 꼴보기 싫을 판에 가짜라면 더 할 나위 있나.

" .............. "

슬쩍 시선이 마주친 그녀에게 눈을 찡긋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에휴. 남 몰래 연정을 나눈다는 건 항상 아쉬운 일이고 말고.


.. 아아. 너른 품에 꼬옥 안긴 지금 이순간에도 서방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건 소첩에겐 견딜 수 없는 슬픔이랍니다..


아휴. 저건 너무 애달프잖아요.

나쁜 놈. 결국엔 왜 애까지 만들어서..

( 에에? 처음부터 적이 될 공산이 큰 집안임을 거진 알았으면서도 몸을 허락한 게 어리석은 거 아냐 )

무..물론 적극 꼬드긴 새끼가 제일 큰 잘못인데..아후. 어차피 진짜 있던 일인지 의심스러운 우연의 연속이건만 여인들은 왜 저런 이야기에 눈물을 줄줄 짠담.

본래 자신의 휴식을 위한 일정 변경이었는데 마침 가무희를 하는 기예단이 마을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 초연휘는 진영령을 위해 그들을 불러들였다.

( 저들도 실수하지 않으려 부단히 저걸 반복했겠지 )

노래를 잘 부른다 거 빼곤 사내인 자신이 보기엔 딱히 감격스럽지 않은데 어느덧 진영령을 위시한 여인들은 눈가가 축축하다.

철무화만이 무덤덤한 표정이길래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해 늘어뜨린 손을 슬며시 잡았는데 관람에만 집중하고 싶었는지 즉각 팔을 거두어버리는 그녀.

그대도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던 거구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은밀하고 수줍은 접촉시도였건만 뭐 저렇게까지 냉담하담.

( 쳇. 반금련이나 양산박 이야기가 더 재밌지 않나 )

호위들이야 사방팔방을 지키고 있으니 채 열이 안되는 이들만을 위한 공연인데다가 오늘 숙식까지 제공하려면 돈 꽤나 들었을 거야 따위의 생각으로 하품만 일관하던 동방백도 마지막 극은 꽤 재밌게 봤다.

( 저..인면수심의 주인 자식. 내리 칠년을 정성으로 모셨는데 결국 쇠 한푼 안주고 다른 집에 팔아 넘기다니 )

분기가 치밀어 몇 번이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건 의천방에 얽매여 산 과거로 인한 감정의 이입이리라.

짝짝.

세 가지 소재의 가무희가 끝나 모두 모여 인사를 하자 몇 안되던 관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주섬주섬 전낭을 꺼내든다.

음?! 분명 부를 때 다 지불한 거 아냐. 거리에서처럼 관람료를 내야 하나 망설이는데 노래를 부르며 극을 행한 이들이 각기 바구니를 들고 주르륵 다가온다.

너희들 용돈 많니? 어째서 시비들인 너희까지 부산한 거야.

== 상대에 따라 금액은 달라도 되니 자네도 마음 가는 대로 성의를 보이게 ==

휴. 상류 문화를 몰라서 혼자 바보가 될 번 했어. 아깝지만 다 경험이라 생각해 다른 이들에겐 삼 전 식만 주고 주인에게 배신당해 팔린 하인 역의 애랑 그의 반려가 된 연상의 아름다운 소저 둘에겐 그 갑절을 건네자.

" 고맙습니다."

뭐야. 이 머리칼을 쭈뼛하게 하는 음색은? 아까 들은 그 가는 미성이 아닌데. 분명 마지막 해후에 둘이 입맞췄잖아? 아무리 허연 가루를 뒤집어 썼어도 이토록 고운 이목구비인데 누나가 아니고 형이라니.

"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 어디에서든 건강히 잘 살아요."

아름답긴 개뿔. 하필이면 왜 네 살 차이야. 그냥 쭉 몰랐어야 하는데..달린 것끼리 주둥이 부빈 걸 마치 나의 행복처럼 받아들인 그 감격 돌려 줘. 배우들에게 덕담을 건네는 그녀의 두 시비와 다르게 청년은 상처를 받았다.

언제는 전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폄하하더니.


..괜찮아. 오늘은 너무 피곤했고 내 품엔 사저의 향취가 밴 부적이 있잖아..

가무희 때문에 본래 계획된 잠자리가 아닌 이 부락에서 천막을 치고 지샌 다음 날. 바뀐 일정은 다소 귀찮은 대면을 불렀다.

" 서촉 강호의 영웅 무쌍성주님께 무림말학인 노운양이 배알을 청합니다."

부락을 막 떠나려던 차에 나타난 스무 명의 남짓의 무리.

이잇. 짜증을 숨기지 못하며 나서려는 호위들을 손짓으로 만류한 초연휘는 일단 웃음으로 말을 조금 앞으로 몬다.

" 노가라면 혹시 관운표국의 자제 아니신가?"

멋들어진 문양이 새겨진 자색 비단옷에 가슴보호갑을 갖춘 청년은 십 보가 넘는 거리에서 무릎 꿇은 그대로 감격 어린 절을 넙죽 올린다.

" 아앗. 어찌..기억해주시니 참으로 무궁한 영광입니다."

왕부에서 나온 이라도 대하는 듯한 극공의 태도.

" 하면 거기 맏이인가? 보자. 자네가 한 칠, 팔 살 때 사마가에서 봤던 거 같으이."

" 아! 어른들에게 그랬노라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제가 우둔하여 일신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습니다만..헤헤."

과례는 그쯤 되었다는 눈빛으로 초연휘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사이 동방백은 곁의 호위 중 하나에게 얼른 관운표국에 대해 묻는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노가라 하니 장판보와의 관계가 궁금해서다. 직계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나 앞서 마종일의 소행 덕에 생긴 조심성이랄까.

장판보주와 직접 사돈 관계는 아니여도 역시 먼 인척 관계로 휘하 긴밀한 관계라는 귀뜸이 돌아온다.

" 약소하나마 예물을 준비했으니 부디 거절치 마시길."

청년의 뒤로 몇 겹의 비단을 보자기에 받혀 든 이가 공손히 나선다.

사천의 특산인 촉금 두어 필에 요란 떨 입장이 아니나 하층민들이라면 평생 옷감으로 누리기 어려운 호사품.

" 감히 청하건데 소인과 본 표국의 표사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내려 주옵소서."

어허. 어디서 감히 그딴 데 시간을 낭비하게 해. 과연 너희가 진짜 관운표국에서 온 건지 그 어떤 확신도 없거늘..호위들의 그 입장을 아는 초연휘도 슬쩍 고민에 빠져 있다.

저렇게 일단 굽신굽신 하다가 흑도의 마귀대왕을 죽여라 외침과 함께 일거에 몸을 날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남들도 다 인지할만한 공개적 암살시도는 벌써 사오 년도 넘었다만.

" 긴 시간을 할애할 여력은 없네만 내가 어떤 걸 봐주면 되겠나."

단박에 안됩니다 표정이 변하는 호위들이나 초연휘는 뜻을 굽치지 않는다. 밝힌 신분이 확실하고 청년이 사천 경내에 계속 살더라도 대부분의 순간 인의 장벽을 두르고 사는 자신에게 저런 청을 넣을 기회는 이런 식 밖에 없는 게 사실.

" 누대에 걸쳐 갚기 어려운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그 저 혼자가 아닌, 제 벗들이 같이 나서려 하는데..괜찮을까요."

이런. 합격이라니 더더욱 안되고 말고..천하의 내노라 하는 무명을 가진 자치고 어느 누가 고작 표국 짐을 노리려 들겠어..부글부글 끓는 호위들을 다시 한번 시선으로 달랜 초연휘는 빙그레 웃었다.

" 무당 본산에서 칠성진을 훔쳐 온 건 아니겠고 일곱인가, 아니면 자네는 주선만 하는 입장인가?"

헉. 그걸 대체 어떻게.. 깜짝 놀란 노운양의 눈이 휘둥그래지자 초연휘는 주저 없이 그의 동행인 스무 명의 사내 중에 여섯을 연달아 지목한다.

" 망설이지 말고 가져온 걸 차려보게. 나 역시 일단 뭘 보고 나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와. 죄다 발끝까지 동일한 복장인데 어떻게 골라낸 거야..결국 한껏 어안벙벙해진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 사내들.

대체로 연령은 스물 초반과 스물 중반에 걸쳐 있는 거 같다.

" 그대까지 일곱이라..그냥 해보는 소리네만 북두칠성이라도 딴 건가?"

하하. 설마 그럴리가요.

명색이 천하십절의 일인을 겨우 이 숫자로 성공적으로 압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온 이는 아무도 없으나 어딘가 비아냥처럼 들린 덕에 없던 오기가 슬그머니 스미는 그들.

" 절정고수를 능히 상대하기 위해 수 없는 고련을 거듭했습니다. 부디 눈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부족함을 지적해주시길."

말은 저리 해도 고대하던 기회가 오자 젊은이 특유의 자신감이 깊게 묻어난다.

반면 오오. 이런 구경 나쁘지 않지..동방백을 비롯한 이쪽의 중인들은 뭔가 신선한 걸 기대했다.

호위들이야 속내가 어떻든 그저 여차하면 바로 뛰어나가고자 미리 눈빛을 교환하고 자리를 지킬 뿐이다.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각기 자리를 잡고 작은 깃대를 든 사내들.

말이 깃대지 엄연히 잘 간 날이 달린 창으로 깃발은 그저 관운표국의 문양을 새겨 위용을 뽐내려는 목적이다.

호위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이유가 저 버젓한 창들에 있었다. 과연 진짜 살의를 배제한 대련이란 게 가능이나 한 건가 의심하던 그들 입장에선 상관을 눈 앞에서 적대자들에게 내준 기분이리라.

" 공격은 안 하는가?"

" 표국 운영을 위한 수비 방진이 주 목적입니다. 성주님을 상대로 먼저 헛점을 내보일 순 없지요."

그렇군.

휭.

" 어?"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방진의 저너머로 훅 뛰어버리는 중년인.

" 방호진이라 해서 그런가 일단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대응책의 느낌일세. 제대로 된 절정 고수라면 열에 아홉은 이 정도는 일거에 뛸 거라 보는데?"

그..그건 그렇죠. 그래도 김 빠지게 진짜 허공으로 그렇게 통과해버리시면.

" 서두르게. 마음 같아선 그대들 숫자대로 최소 네 다섯 번의 기회를 더 줄까 하네. 두 번째는 그대들이 원하는 지점에서 시작하지."

으헛.

유령처럼 자신들의 방진 중앙에 새로 서 있는 목표에 기겁하는 청년들.

이형환위.

뭐 일류 상급이라면 흉내 정도는 낸다는 수법이긴 해도 정말 잔영만 남기고 칠보 이상의 거리에서 단박에 위치를 바꾼 이와 눈길을 마주한 자들은 위축되어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절정 고수를 가정한 신속함이지만 방위를 채워가는 깃대 사이를 마치 산보하듯 미리 파훼하며 앞지르는 목표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방진 자체의 포위는 일찍이 와해되었는데도 그저 한 명이라도 뒤를 잡으려다 보니 되도 않는 보폭으로 아빠 뒤에 붙으려는 꼬마들이 되어버린 그들.

" 노력했겠지만 아무래도 숙련도가 부족한 거 같군. 오기 전 다짐으론 이런 김 새는 운용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닐 거야. 소요된 시간 상 한 세 번 남았다네."

크크. 차고 계신 검을 뽑으실 일조차 없겠군. 성주님은 천하무적일진데 저렇게 의욕만 충만한 일류들론 꽁지조차 잡지 못함이 당연하잖아..어느덧 구경꾼의 심정으로 피식대려는 수하들을 호위조장들은 눈빛으로 다그친다.

" 본래 절정을 상대로 가정했다 들어 조금 천천히 움직여 봤네만 이리 끝내면 그대들에게 여한이 남겠지?"

이이.. 이게 뭐야. 똑같은 두 발인데 어떻게 사람이 혼자만 저리도 빨라. 아니지 가장자리 위주의 회피로 일관하니 저런 거 아냐. 그렇다면..

" 성주님. 기왕이면 저희의 표물을 간절히 노린다는 상황에서.."

아하. 이 시간이면 수레에 실린 표물 따위 벌써 열 번은 쥐었을 거 같지만 그거 좋지. 노운양의 간청의 의미를 즉각 알아챈 초연휘는 손가락을 두어 번 튕겼다. 그 직후 모든 행동을 멈춘 청년들.

( 뭐지..몸이 안 움직여.. )

허. 방금 가느다란 뭐가 사방팔방으로 쏟아졌는데..그 한 순간의 공기 파동을 감지한 이는 동방백과 철무화 뿐이다.

다만 그들도 저리 가까워선 대응할 방법이 없노란 느낌을 받았다. 강호를 이야기로만 접한 자들이 즐겨 입에 담는 사술이란 표현이 튀어나올 법한 기분.

" 이거 저..점혈입니까?"

물론 방향부터 한참 엉뚱한데 두어 번의 시도로 일곱 전부를 동시에? 노운양은 내공으론 아직 일류에 그치는 자신이 점혈을 당했다는 사실 보다는 죄다 함께 몸이 굳은 것에 더 황망해했다.

" 글쎄. 얼핏 그리 여길 법 하겠지만 사실 아닐세. 표사들이 소지하는 방패라면 어느 정도 대비 가능하지 않을까 싶으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칠인의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자세가 나빴던 셋은 그만 엎어지고 만다. 사실 효과의 지속은 단 서너 호흡에 불과했는데 멀쩡했던 자신들이 동시에 못 움직이게 되자 너무 당황한 게 더 크다.

" 음. 계속 이런 식이면 내 자네들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긴 힘들 거 같네. 부디 사력을 다해보지 않겠나?"

에잇. 더 이상 구겨질 자존심 따윈 없지. 찬사를 이끌어내기는 틀렸어도 남들이 보는데 뭔가 전력을 다 한 것처럼 보여야 하잖아.. 어느덧 또 스스로 중앙에 선 사냥감을 향해 마침내 무리는 모든 내공을 쏟아낸다.

가두지 못 해 순차적인 조임이 불가능하니 그만 마지막 차분함마저 잃었다.

( 그래. 합체전력은 아니나 숨은 노림수가 있었군 )

어설프지만 신녀궁의 절기로 알려진 이화접목의 이치로 갇힌 상대의 내기까지 더한 최종 공세가 본래 노운양이 자랑하고자 했던 이 합격의 핵심이었다.

완벽히 발휘된다면 이갑자의 공력에 해당되는 위력을 내니 진짜 절정을 상대론 꽤 위험한 타격일 터. 또 아무리 십절급 무인이더라도 기분이 팍 상하거나 운 없이 급소에 맞는다면 치명타가 될 여지도 있다.

하나 포위된 초연휘는 방진이 완성되기 앞서 순식간에 구성원들의 한쪽 견갑을 전부 뜯어버리는 식으로 이화접목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 ! )

신녀궁주 본인이 발휘한 것도 아니니 허공으로 흩어버리는 건 손바닥 뒤집기나 마찬가지.

" 서둘러 달려왔을 노고가 가상해 최대한 배려한 걸세. 그래서 자녀는 두었고?"

일부러 고개를 삐딱히 두어 지척에서 흘겨보는 상대에 얼음이 된 노운양은 눈만 깜박이다 겨우 입을 뗀다.

" 예. 장가를 간 지 이제 막 일 년이라 아직.."

그렇군. 히죽.

" 내 애꿎은 여인의 한을 둘러 쓸 번 했군 그래. 후후. 귀가하면 후손 두는 것에 매진하게. 이 험한 세상 어디에서 대체 누굴 불쑥 만날지 모르니."

금나수로 모았던 견갑들을 땅에 흩어버리며 일관된 보폭으로 방진을 벗어나는 초연휘의 여유에 질린 청년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바라던 칭찬은 내리 백번을 반복해도 영영 올 거 같지 않다.

" 저런. 스스로의 약조를 잊을 번 했어. 이대로면 가르침이 부족한데 저 얄밉게 생긴 만서당주 자네가 나머질 맡아주지 않겠나?"

예? 아. 나 말곤 달리 나설 이가 없구나. 그래도 좀 갑작스러운데..게다가 밉다니요?

" 그 표정은 뭔가? 자신이 없다 그건가."

"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만 저야 힘 위주로 가지 않으면 낭패를 볼 여지가.."

" 뭐가 되든 최선을 다 해보게. 이게 다 자네 때문에 생긴 일이니."

저도 저들을 오늘 처음 봤는데 이게 어째서 제 탓이죠. 에잇. 어디 보자. 나도 뭐가 있어야.. 마침 부락 입구의 풀더미 위에 걸쳐져 있는 한 자루의 도리깨가 눈에 띈다.

" 저기 당주님께선 올해 몇 살이십니까?"

" 내 기억으론 스물 다섯..인데 그게 중요한가?"

뭐? 서른이 코앞이라면 또 모를까 나보다 고작 두 해 위? 노운양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저 대답 한번에 난생 처음 초인의 벽을 체감한 충격을 말끔히 털어낸 것.

" 절정고수를 상정한 방진인데 조금.."

너 이놈. 그 나이에 무슨 절정이야. 매일 같이 공청석유를 차에 타 마시고 살았다면 믿을게. 감정을 구기느라 마치 뒷간이 절실한 표정인 노운양.

" 응.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네만 한 두 해 전부터 한발 걸치고 있는 정도야. 그보다 조금 무식해 보이는 이걸 들어도 되나?"

이 새끼가. 쇠도 아닌 나무를 사슬로 겨우 얽은 그딴 걸 두고 뭔 오만이야. 오냐. 꿩대신 닭이다. 아니 봉황 대신 닭이 더 걸맞겠지.

노운양은 미처 몰랐다.

일류와 절정의 격차가 그렇게 클 줄은.

" 저기 아파도 용서하라구. 일부러 져줄 순 없는 일이니."

혼자인 내가 일류 여럿을 몸까지 살펴가며 억누를 실력은 아직 아니지. 도리깨 끝이 박살났는데 이런 거 굳이 배상해야 하나.

"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또 보세. 그럼 다들 살펴가시게."

이제 와서 굳이 그렇게 눈 맞출 필요 없어. 냉큼 꺼져 버리라구. 이 살벌한 새끼야.

" .................. "

무리가 떠날 때까지 잠자코 눈치만 살피던 표사들은 한참 뒤에야 주공과 동료를 챙길 수 있었다.

" 괘..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씨발. 소싯적 아버님에게 처 맞은 후로 실로 오랜만에 먼지 털리게 맞았네. 그것도 뭔가를 터는 용도에 불과한 농기구 따위에.

다들 전혀 생각지 못할 때 찾아 드는 게 인생의 쓴 맛이라지만 어떤 쓴 맛은 너무 혹독하다.

" 난 거의 못 걷겠는데.."

" 나 역시..이봐. 누가 양쪽에서 좀 잡아 줘."

그나마 상대가 머리를 한껏 피해 준 덕에 이 정도에 그친 걸 이들은 알까.

" 이 봐. 그렇게 요란 피우지 마. 난 걷기도 힘들지만 두 팔 모두 뼈에 금이 가 밤에 혼자 위로도 못 하는.."

아. 그래. 우리 중 혼자만 동정인 네가 제일 불쌍하구나. 삶이 그리 척박해선 안 될 텐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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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취서생
    작성일
    22.11.28 07:13
    No. 1

    재밌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영아의별
    작성일
    22.11.28 07:23
    No. 2

    재밌게 봐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가나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취서생
    작성일
    22.11.28 08:32
    No. 3

    지난 우루과이전은 우리 대표팀이 멋졌는데 오늘도 멋진 경기가 되기를......일본도 코스타리카와 의 경기 내용이 좋았는데 마무리에 문제가 있었죠. 아시아 축구 맹방들이 힘을 좀 더 내길 빌어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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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신권혈창(70-4) 24.01.26 108 6 19쪽
486 신권혈창(70-3) +4 24.01.03 152 7 22쪽
485 신권혈창(70-2) +1 23.08.31 241 7 21쪽
484 제 70장- 십이천녀(十二天女) +2 23.08.03 279 6 32쪽
483 신권혈창(69-7) +2 23.06.02 259 6 24쪽
482 신권혈창(69-6) 23.05.12 218 7 28쪽
481 신권혈창(69-5) 23.04.20 235 7 26쪽
480 신권혈창(69-4) 23.03.22 277 7 21쪽
479 신권혈창(69-3) +2 23.03.08 271 8 24쪽
478 신권혈창(69-2) 23.02.27 239 9 18쪽
477 69 장 - 사검(邪劍).. 그리고..(1) 23.02.21 277 8 18쪽
476 신권혈창(68-9) 23.02.14 271 8 22쪽
475 신권혈창(68-8) 23.02.07 266 10 15쪽
474 신권혈창(68-7) 23.02.01 257 9 19쪽
473 신권혈창(68-6) +4 23.01.24 282 10 16쪽
472 신권혈창(68-5) 23.01.16 304 10 36쪽
471 신권혈창(68-4) 23.01.06 314 9 17쪽
470 신권혈창(68-3) +2 23.01.02 295 9 22쪽
469 신권혈창(68-2) 22.12.28 302 7 19쪽
468 68장- 매화산장 +2 22.12.24 313 9 16쪽
467 신권혈창(67-12) 22.12.21 304 9 22쪽
466 신권혈창(67-11) 22.12.19 272 9 18쪽
465 신권혈창(67-10) 22.12.16 296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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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신권혈창(67-7) 22.12.06 299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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