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지만 영웅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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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트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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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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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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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이틀 뒤. 나는 피그발리온의 저택을 찾아갔다. 스딘발루드의 저택은 이오푸스디의 저택과 달리 도시의 번화가를 지나가야 했기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한 번씩 내 얼굴을 쳐다본다. 마치 누군가 과음하고 토한 것을 보듯이 나를 본다. 나는 얼굴을 직접 가릴 수는 없기에 눈이라도 가리기 위해 모자가 큰 후드를 입었다.


저택의 대문 앞에 도착해서 시간이 되길 기다렸더니 약속 시간에 맞춰서 티오페가 나왔다. 그녀가 붉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왔나, 죄인. 따라와라.”


피그발리온의 저택은 이오푸스디의 저택 못지않게 거대했다. 다만 썩은 정원 낡은 대문과 외벽으로 흉가나 다름없던 이오푸스디의 저택과 달리 피그발리온의 저택은 새 건물처럼 깔끔하고 웅장했다.


이게 진짜 귀족의 저택인 건가.


“어때. 볼만하지?”


티오페가 묻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멋지네요.”


정원은 풀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꽃과 연못은 반짝였다.


“돈 많이 썼으니까. 정원사한테도 돈이 들어가고. 하녀한테도 돈이 들어가고.”


이래서 돈 많이 벌어야 한다니까. 라고 티오페가 덧붙였다.


저택 안은 더욱 화려했다. 창틀에는 먼지 하나 남아있지 않았고 벽에도 그림처럼 깔끔했다. 조금의 흠집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로비에 가고일 석상 같은 이상한 것이 놓여있지도 않았다.


2층 응접실에 들어서자, 피그말리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머리숱이 적어 이마가 훤히 보였으며 그 대신 수염이 많고 길었다. 너무 길어서 귓불에 닿을 정도였다. 또한 덩치가 아주 컸다. 귀족답게 잘 먹고 사나 보다.


솔직히 말해서 뚱뚱했다. 물론 직접 입으로 뚱뚱하다고 말하면 실례일 테니 입에 담지는 않기로 했다.


“어서 오게나.”


“초청에 감사드립니다. 피그발리온님.”


“오는 길이 순탄했나 모르겠군.”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고 있는지라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구먼. 자, 일단 한잔하고 이야기하지.”


“감사합니다.”


피그발리온은 뜻밖에도 나를 환대해 주었다. 티오페도 그렇고 윗선에는 죄인을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걸까?


게다가 고급스러운 와인까지 내주었다. 이런 술은 평소에 내가 마시는 싸구려 술과 뭐가 다를까 궁금했었는데.


음.


향은 더 독한 것 같았다. 맛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더 이상한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인상이 찌푸려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 입맛이 이상한가?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


“티오페에게 듣기로는 제법 실력이 괜찮다던데.”


피그발리온이 띄워주는 말로 시작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는 나 스스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전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티오페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모양입니다.”


“자네라면 이 일에 적합할 거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더군.”


“우선,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피그발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저택에는 넓은 지하실이 있네. 중요한 물건을 감춰놓기 위해서 지은 거라서 구조도 복잡하지.”


감추기 위해서 넓게 지을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넓다는 걸까? 가늠이 잘 가지 않았다.


“이번에 지하 확장 공사를 좀 했는데······파내다가 지하 동굴 같은 곳과 연결되어 버린 모양이야. 게다가 그 동굴에는 몬스터가 살고 있었더군. 그 몬스터가 한창 공사를 하고 있던 내 하인들을 모조리 도륙 내버리고는 숨어버렸어.”


그 몬스터가 내 목표인가 보네.


“어떤 몬스터인지 아십니까?”


“모르네.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놈은 정신이 나가버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더군. 시신이 상당히 큰 힘에 찢겨나간 상태인 것을 보아 키클롭스나 미노타우로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황소 형태의 대형 몬스터 미노타우로스. 어느 쪽이든 강한 몬스터다.


“어지간한 용병이면 고민도 안 하고 거절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지. 할 수 있겠나?”


들어보기만 하고 직접 싸워본 적은 없는 몬스터다. 다만 내 그런 몬스터의 시체로 강을 메꿔버릴 수 있을 만큼 숱하게 잡아 왔다. 그런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이젠 네가 나보다 강하구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우리 신뢰를 쌓을 시간을 잠시 가져보지 않겠나?”


신뢰?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일세. 직접 본 게 아니면 믿지 못해. 아무리 내가 믿는 티오페의 추천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내가 길드에 의뢰를 넣지 않고 이렇게 자네를 고용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실력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말인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따라오게.”






피그발리온은 나를 저택 뒤 공터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이미 티오페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러는 알파하고 베타만 사용할 거야. 실력을 보자는 거지 죽이려는 건 아니니까.”


티오페는 열기의 오러가 특기인 것 같았는데 그런 상위 오러 없이 실력으로 승부를 보자는 의미 같았다. 만약 그걸 사용한다면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긴 했다.


마족의 쓰던 순간이동은 반사신경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지만 공간 전체에 영향을 주는 열기의 오러는 상대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창날이 뭉뚝한 연습용 창을 들어 올렸다. 티오페도 연습용 검으로 자세를 잡았다.


“시작하게.”


피그발리온이 구령하자마자 티오페가 오러를 발동시켰다.


“알파, 베타!”


티오페의 검이 하얗게 빛났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채색의 오러를 사용한다면 연습용 검이든 진검이든 다를 게 없는 거 아닌가?


“알파!”


나는 전처럼 육신의 오러만을 사용했다.


티오페가 먼저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내가 고개를 뒤로 젖히자, 검날이 내 눈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몇 올 베었다.


피하면서 티오페의 검술을 살폈다. 그저 검을 붕붕 휘둘러댈 뿐이었던 마족과 달리 티오페는 제대로 된 검술을 썼다. 내 움직임에 맞춰 빈틈을 찔렀고 내 공격에는 제대로 대처했다.


“이얍!”


그렇다고 해서 검의 옆면을 쳐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호?”


내가 채색의 오러가 발라진 티오페의 검의 옆면을 쳐내자, 피그발리온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 내 것도 쳐내는 거야?”


티오페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마구 밀어붙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네요.”


“쳐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티오페가 분한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뎌 나를 압박하려 했다.


이렇게 달려드니 오히려 빈틈이 크게 보였다. 티오페가 내 머리 쪽으로 검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몸을 숙이고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턱을 향해 창을 찔러넣었다.


“큭!”


티오페가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나는 몸을 낮춘 자세 그대로 전진하여 티오페의 등 뒤를 잡았다.


“윽! 어느새?”


나는 창대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이대로 힘을 주면 바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허.”


피그발리온이 허탈한 듯한 소리를 내었다.


“······항복.”


티오페가 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승부가 끝났으니 나는 창을 내려놓았다.


“실력은 더할 나위 없군.”


피그발리온이 자신의 뾰족한 수염을 두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어째선지 불만이 있어 보였다. 티오페는 그를 잠시 보더니 내게 물었다.


“너, 오러 일부러 감추고 있는 거지?”


나는 내심 놀랐다. 이게 들켰다고? 어떻게?


“네가 알파만 쓸 수 있다기엔 알파를 발동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출력도 좋고. 이 정도의 숙련도를 갖고도 베타를 쓸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육신의 오러의 숙련도. 생각도 못 한 맹점이었다. 사실 알았어도 자연스럽게 미숙한 척 오러를 연기할 자신은 없지만.


“감춰서 죄송합니다. 베타를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베타는 잠시 쓰는 것만으로도 오러가 동나서 잘 쓰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베타.”


내가 시동어와 함께 창날을 쓰다듬었다. 창날에 오러가 씌워져 하얗게 빛났다.


“오호라, 과연. 아예 못 쓰는 건 아니었구먼.”


피그발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오러를 다시 닦아냈다.


“의뢰 때는 마족을 상대하기 전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소모해 버린 터라 쓰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흐음, 그래?”


티오페는 의심하는 어투였지만 일단 수긍했다.


“여기서 뭐 하시나요?”


갑자기 피그발리온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너무 곱고 아름다워서, 그렇기에 이질적이라 놀랐다.


“음? 딸아, 여긴 어쩐 일이냐?”


피그발리온의 등 뒤에서 나타난 여인은 목소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초록색 눈동자와 달빛처럼 빛나는 머리칼, 그리고 꾹꾹 눌러 담은 밀가루처럼 티 없는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부녀가 정말 맞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둘은 전혀 닮지 않았다.


“저분이 의뢰를 맡아주실 분이군요?”


“그렇단다.”


그녀의 시선에 나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내 낙인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진행은 내일 한다고 하셨었죠?”


“그렇게 될 것 같구나.”


“판매 실적 서류는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그래. 있다가 확인해 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피그발리온의 딸은 다시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날 밤. 나는 내 숙소에서 무기를 정비하고 내일 의뢰를 준비하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린 것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 처음이었다.


“······누구십니까?”


“제 목소리를 기억하실까요? 피그발리온의 딸이라고 소개하면 아실까요?”


적어도 내일은 되어야 다시 듣게 될 것으로 생각했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아침에 멀리서도 보기 힘들었던 그녀를 바로 코앞에서 보게 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렸다.


“여,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버렸다.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예, 들어오시죠.”


내 숙소는 침대, 책상, 장롱 이렇게 셋만으로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좁은 곳이다. 귀족의 여식이 들어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대동하고 있는 여인도 있었다. 어젯밤 내게 의뢰를 맡지 말라고 경고했었던 그 여인이었다.


“이런, 이올라. 미안한데 밖에서 기다려 주겠어?”


그녀의 목소리에 금발의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댔다.


“음, 앉을 곳이 있을까요?”


“여기에 앉으시죠.”


나는 그녀에게 의자를 권했고 나는 서서 대기했다. 딱딱한 나무 의자를 권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통성명은 하지 않았었죠? 저는 피그발리온의 딸 셀레나라고 해요.”


“······에클레스입니다.”


“그래요, 에클레스. 이올라는 구면이죠?”


그녀가 문밖을 살짝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녀와 같은 제의를 다시 하러 왔어요. 의뢰를 포기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내려갔다.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속 시원하게 대답해 드리는 게 죄송할 따름이네요. 다만 이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결국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저의 대답은 같습니다.”


셀레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벽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이올라가 손가방 같은 것을 건넸다. 그 안에는 난생처음 보는 양의 금화가 들어있었다.


“당신이 받기로 한 의뢰 보수의 정확히 2배가 들어있어요.”


나는 돈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것에 혹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것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셀레나님. 혹시 아십니까? 죄인은 많을 돈을 가지면 안 됩니다.”


“아.”


셀레나는 생각 못 하고 있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는 의뢰를 수행해야 합니다. 꾸준히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제 이미지가 좋아져서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어려운 꿈을 꾸고 계시네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그렇다면······.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하겠군요.”


셀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피그발리온을, 제 아버지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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