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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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칠
작품등록일 :
2025.01.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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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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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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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도둑 (1)

DUMMY


꿀꺽.


마리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리까지 곧게 뻗은 갈색 머리. 막 내린 깨끗한 눈처럼 티 없이 맑고 새하얀 얼굴. 그 얼굴을 가득 채운 마리의 옅은 연둣빛 눈동자는 밤의 고요함이 내려앉은 눈앞의 낯선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가 선 곳은 브리타니아 수도 글린트 외곽에 자리한 ‘스카버러 공작 저택’의 정원이었다. 저택 밖 담장과 길가의 살풍경한 풍경과 달리 저택 담장 안 정원은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담장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는 저택 건물까지. 정원을 가득 메운 수많은 나무와 꽃들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진정해. 마리.’


솜씨 좋은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놓은 아름다운 정원을 마주하고도 마리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마리가 몰래 담장을 넘어 들어온 장소라서가 아니었다.


‘애도 아니고. 세상에 유령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아이들이 떠들 땐 한 귀로 듣고 흘렸던 ‘소문’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기는 하는지 5년 동안 문이 열린 적 없다는 이 저택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령 저택’으로 불리고 있었다.


“어서 푸른 장미부터 찾아보자.”


마리는 자꾸만 도로 담을 넘어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려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모르는 저택 담을 넘어놓고 이제 와 돌아서더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삭. 사사삭.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작은 나무들 뒤에 몸을 숨기며 정원을 탐색하던 마리는 브리타니아에서는 보기 힘든 블루베리 나무를 확인하고는 눈이 커졌다.


“어? 블루베리 나무가 있네?”


정원에 들어서서도 이곳에 푸른 장미가 있을지 어떨지 반신반의했던 마리는 블루베리 나무를 보고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블루베리라면 푸른 장미와 함께 ‘셰리아’가 원산지였다. 이 정도로 솜씨가 있는 사람이 가꾼 정원이라면 여기 어딘가 푸른 장미밭이 반드시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긴가? 아닌가?”


어느새 이 정원이 익숙해진 마리는 이리저리 휘젓고 돌아다니며 푸른 장미를 찾아 나섰다.


“정말 있었구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리는 산과 맞닿은 낮은 언덕을 넘어섰을 때 넓게 펼쳐진 푸른 장미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리타니아에서 이렇게나 넓은 푸른 장미밭을 보게 되다니.’


그 광경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리는 알았다.


/자! 여기 네가 너무 비싸서 보지도 못했던 푸른 장미!/


올리비아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 그런 건 부차적인 이유였다는 걸.


“엄마...”


마리는 단순히 눈앞 가득 펼쳐진 푸른 장미밭을 보고 싶었던 거였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를,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푸른 장미를 볼 수 있었던 셰리아가 그리워서.


“그래도 걔 덕분에 보게 됐으니 고마워해야 하려나?”


마리는 푸른 장미를 조심스레 매만지며 오후에 봤던 밉살스러운 올리비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


브리타니아 황립 귀족 학교.


그날 오후 아이들은 ‘유령 저택’으로 불리는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직전 수업 시간에 배운 레몬 전쟁에 대해 떠들다가 이야기가 그리로 빠진 거였다.


‘레몬 전쟁’이라면 마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전쟁으로 타스몬 대륙 중앙과 남쪽을 다스리고 있던 브리타니아가 대륙 전체를 다스리는 제국으로 변모하였고, 마리의 고향인 타스몬 대륙 북쪽의 작은 나라 셰리아도 브리타니아에 공물과 세금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일까? 일찍이 영면에 드신 공작님이 유령이 되어 저택을 돌아다니고 계신단 이야기가.”

“공작님이 영면에 드셨다면 그곳이 스카버러 저택이 아니겠지.”

“그래도 공작님을 5년이나 본 사람이 없다잖아.”

“정말 유령이 되셔서 저택을 지키고 계실지도 모르지.”


아이들이 말하는 유령 저택의 주인인 ‘스카버러 공작’은 그 레몬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었다.


“정말이면 어쩌지? 우리 집은 스카버러 공작 저와 가깝단 말이야. 찾아오면 어떻게 해.”

“문 앞에 십자가를 걸어두면 어떨까?”

“그럼 들어오지 못하실까?”

“그 저택 안에 푸른 장미밭이 있대.”


한창 유령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아이들 사이에서 엘리사가 난데없이 푸른 장미 이야기를 꺼냈다. 열 살짜리 애도 아니고 유령이라니, 대화에 낄 생각이 없었던 마리는 푸른 장미라는 단어에 귀를 쫑긋 세웠다. 푸른 장미는 마리의 고향인 셰리아의 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스카버러 공작 저택 정원에 브리타니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푸른 장미밭이 있다지 뭐야.”


뜬금없는 엘리사의 말에 당황한 아이들이 말을 멈춘 사이 교실 앞쪽에서 적당한 홍조를 띤 하얀 얼굴에,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올리비아가 크게 비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엘리사. 5년 동안 문이 열리지 않은 저택 정원에 푸른 장미가 있는지는 어떻게 아는 거야?”

“그러게. 엘리사. 공작님 유령이 전해 주기라도 한 거야?”

“엘리사는 참 이상하다니까.”


올리비아가 큰 소리로 엘리사를 비웃자 교실 안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엘리사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삼 개월 전 마리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부터 그랬다. 올리비아가 엘리사를 놀리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엘리사를 놀리곤 했다. 듣자 하니 브리타니아에선 머리 색이 옅은 것을 선호해 짙은 갈색 머리의 엘리사는 놀리기 쉬운 상대가 되는 거였다.


“그리고. 뭐? 푸른 장미? 그런 장미가 정말 있기는 해?”


마리는 아이들이, 특히 올리비아가 너무 대놓고 엘리사를 비웃어 한마디 할까 싶은 걸 꾹꾹 참았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푸른 장미까지 부정하는 말을 해 결국 대화에 낄 수밖에 없었다.


“푸른 장미가 왜 없어? 푸른 장미꽃 차는 신경이 곤두선 사람에게 안정제로도 쓰이는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푸른 장미를 직접 봤고 차로 만들어 보기도 했으니까.”

“누가 들으면 네가 셰리아에서 오기라도 한 줄 알겠어. 마리.”


마리는 올리비아가 내뱉은 ‘셰리아’라는 단어에 뜨끔 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마리는 사정이 있어 셰리아에서 온 걸 숨기고 있던 차였다.


“셰리아에서는 푸른 장미가 흔하다는 말이 사실일까?”

“모르겠어? 셀린느? 셰리아 사람들이 괜히 특별한 척하느라 하얀 장미에 푸른색을 칠해 놓고 푸른 장미가 있다고 사기를 치는 거잖아.”


대화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 데본셔 후작님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말린 푸른 장미를 직접 본 적이 있는걸? 색을 칠한 것과는 달랐어.”

“네가 그렇다고 하니까 더 믿음이 가지 않잖아. 엘리사.”


슬쩍 대화에서 빠졌던 마리는 엘리사를 향한 비웃음이 아까보다 강해지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참아야 한다고?’


아무리 조용히 지내야 한 대도 그렇지. 이곳에서의 유일한 친구가 비웃음을 당하고 내 고향 사람들이 사기꾼 소릴 듣는데 가만히 있어야만 하다니. 마리는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셰리아 사람들은 아이를 그렇게나 많이 낳는다며? 밤이 길다는 핑계로 밤마다 남녀가 그런 짓을 한단 거잖아. 징그러워. 꼭 짐승 같잖아.”


입술을 깨물며 하고 싶은 말을 삼키던 마리는 이어진 올리비아의 말에 더는 참을 수 없어졌다. 아무리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눈에 띄지 않고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 한다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푸른 장미는 있어.”


마리는 당당한 목소리와 함께 올리비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어떻게 알아? 그렇게 자신해?”


마리의 단호함에도 올리비아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자신해.”

“그래? 그렇게 자신한다면 푸른 장미를 가지고 와 보지 그래? 그 푸른 장미는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있다던가? 갈 수 있겠어? 유령 저택에?”


올리비아는 지지 않고 마리를 도발했고 마리는 대답 전 엘리사가 말한 소문의 출처부터 확인했다.


“엘리사.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푸른 장미밭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

“우리 집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부랑자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거든. 거기 온 부랑자가 말하는 걸 들었어.”

“풋. 뭐? 부랑자?”


올리비아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마리는 믿을만한 이야기다 싶었다.


부랑자라면 잠자리나 먹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이니까.


“좋아. 그럼 내가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들어가 푸른 장미를 가져오면 되는 거지?”

“뭐?”


이쯤이면 꼬리를 내릴 줄 알았던 마리가 저택을 다녀오겠다 나서자 올리비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뒤덮였다. 거기서 올리비아보다 더 놀란 건 엘리사였다.


“마리! 정말 그 유령 저택에 들어 가려구?”


말도 안 된다며 표현 그대로 방방 뛰었다.


“대신. 올리비아. 내가 푸른 장미를 가져온다면 엘리사에게 사과해.”

“사과?”

“엘리사를 비웃었잖아.”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대놓고 입에 올리지 않던 표현에 올리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과 할거지?”


올리비아는 입술이 삐죽거리는 걸 감추며 억지로 온화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러~엄. 네가 푸른 장미만 가지고 나온다면. 엘리사의 말이 사실이 되는 거니까. 당연히 사과해야지.”

“약속 지켜. 올리비아.”


*****


괜한 자존심을 부렸나, 살짝 후회도 됐지만 푸른 장미밭을 봤으니 됐다.


마리는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줄기를 살펴 두 개의 푸른 장미를 꺾었다. 하나는 올리비아에게, 하나는 담당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엘리사에게.


“이 정도면 됐겠지?”


성공이다. 밝게 웃으며 돌아선 순간 마리의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유령이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져 만들어낸 어둠 속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정체가 무엇인지 검은 실루엣밖에 보이질 않자 마리는 공포로 인해 몸이 굳었다.


‘엄마. 미안. 나 여기서 죽나 봐.’


겁에 질린 마리가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던 사이 천천히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아!...”


구름이 걷힌 뒤 달빛에 드러난 남자의 모습에 마리는 이번엔 전혀 다른 의미로 몸이 굳었다. 마리는 열일곱 평생 이렇게나 아름답게 생긴 존재를 본 적이 없었다.


청명하게 빛나는 짙고 푸른 사파이어를 닮은 파란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사람을 매혹 시켜 쉽사리 눈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두 눈동자 아래 높고 곧게 뻗은 코는 그 자체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 보는 사람에게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며,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은 남자의 입술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붉고 윤기가 흘렀다.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빚은 듯한 남자의 이목구비는 투명하게 비칠 듯 맑고 깨끗한 얼굴 위로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고, 바람이 불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남자의 밤을 담은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은 천사의 날갯짓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섬세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얼굴과는 달리 남자의 몸은 멀리서도 존재감이 느껴질 만큼 컸다. 마리의 키에 엘리사 키의 반을 더하면 그 키와 비슷할까. 얼마나 키가 큰지 또래에 비해서도 키가 작은 마리로서는 한참이나 고개를 들어야 그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직각으로 뻗은 넓은 어깨와 광활한 가슴은 마리는 물론 마리만큼 작은 엘리사까지 한 품에 안고도 남을 듯했다.


이렇게 한순간 사람을 매료시키는 외모의 남자를 두고, 소문이라도 유령이라는 말이 돌았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요정님?...”


오히려 남자의 그런, 도무지 말로는 형용 되지 않을 아름다운 모습은 요정이라는 말에 어울렸다. 달빛에 흔들리는 푸른 장미밭에 선 요정. 마리의 눈에는 딱 그렇게 보였다.


“요정님. 저를 사방 가득 푸른 장미밭이 펼쳐진 셰리아로 데려다주세요.”


그래서 마리는 소원을 빌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이루고픈 소원을.


“넌 누구지? 부랑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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