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원에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일이칠
작품등록일 :
2025.01.24 09:17
최근연재일 :
2025.02.07 00: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22
추천수 :
0
글자수 :
76,452

작성
25.01.26 00:00
조회
9
추천
0
글자
11쪽

장미도둑 (3)

DUMMY

마리가 어디선가 가발을 잃어버렸다는 걸 안 데본셔 후작의 얼굴이 여태껏 본 적 없이 붉어졌다.


“가발을... 네 머리를 누군가에게 보인 게냐.”


데본셔 후작은 큰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마리는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걸 알았다.


“그게...”


어떡하지.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다녀왔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마리?”

“죄송해요. 후작님.”


마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마리. 너도 네 상황을 잘 알지 않니. 사람들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걸. 네가 셰리아에서 왔다는 걸 들켜선 안 된다는 걸.”


마리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마리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마리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어떠한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까 오후에도 내가 셰리아에서 와서 푸른 장미를 잘 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었던 올리비아와의 언쟁에서 출신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한 거였다.


/좋아. 그럼 내가 스카버러 공작 저택에 들어가 푸른 장미를 가져오면 되는 거지?/


그럼에도 마리가 스카버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던 건 들키지 않을 거로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사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로 늦은 시간엔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을 줄 알았다.


“부모님 오해가 풀릴 때까지는 얌전히 지내야 한다 분명히 말했을텐데. 어쩌자고...”


마리가 사람들에게 셰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숨겨야만 했던 건 마리의 아버지인 <윌리엄 트위데일 백작>이 브리타니아에 대한 반란을 꾸미고 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닥쳐! 감히 황제께 반역을 꾀하다니. 샅샅이 뒤져라!/


어느 날 갑자기 브리타니아 병사들이 셰리아의 트위데일 백작가 저택으로 들이닥쳤다. 마리의 아버지가 체포되고 저택을 수색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마리의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마리를 탈출시켜 브리타니아의 수도 글린트로 보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 일이 억울한 누명이라는 것만은 명확히 밝혀둡니다. 아직 데뷔당트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험한 대우를 받게 될까 하는 우려에 후작님의 도움을 바라고 아이를 보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마리만은 안전히 보호해주시기를.]/


혐의가 있을 뿐 아직 반역자로 낙인찍힌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 딸을 숨겨주는 것에는 위험이 따랐다. 그런데도 데본셔 후작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마리를 받아주었다. 브리타니아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집안이니 혹시 문제가 되어도 심각한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이제껏 쌓아왔던 두 집안 간의 신뢰와 친분을 생각한 호의임이 분명했다. 또한 데본셔 후작님도 우리 부모님이 그런 일을 할 리 없다, 확신하신 거라고 마리는 생각했다.


“어딜 다녀온 건지는. 말하지 않을 셈이냐?”

“잠이···. 잠이 오질 않아서···.”


마리는 차마 푸른 장미를 찾아 스카버러 저택의 정원에 들어갔었단 소릴 할 순 없었다.


“오늘따라 유독 달이 밝아···. 마음이···.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때 잃어버렸나 봐요. 죄송해요.”


그렇다고 도움을 주고 있는 분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이 그리웠고 셰리아가 그리워서 그 푸른 장미밭이 보고 싶었다. 그것만은 진실이었기에 마리는 그 부분만을 떼어내 데본셔 후작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너도 부모님 걱정은 물론이고 갑자기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겠지. 그렇지만 마리. 너의 정체가 탄로 난다면 너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문에도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주길 바란다.”

“네. 후작님. 앞으로 더 주의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거라. 다친 곳을 치료해줄 사람을 보낼 테니.”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늘어놓는 것도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 마리는 허리를 크게 숙여 마지막으로 힘껏 사과의 뜻을 전했다.


*****


그날 밤 마리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느라 완전히 잠을 설쳤다.


‘공작님이 그 가발로 날 찾으려 들면 어쩌지?’


당장이라도 가발을 들고 애런델이 집으로 쳐들어올까 두려워서였다.


/마리? 너 머리가-./


엘리사는 알고도 보닛으로 머리를 감춰줄 정도니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 해주겠지만 애런델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데본셔 후작 님께 사실대로 털어놓고 도움이라도 청했어야 됐나 후회 됐다.


“마리 쟤는 저기서 뭐 하는 거래?”

“그러게. 혼자 또 뭘 하는 건지. 아무튼 이상한 애라니까.”


잠을 못 자서 퀭해진 얼굴로 마리는 아침 일찍 학교 근처에 도착해 멀찌감치 떨어져 학교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카버러 공작 가에서 누군가가 찾아와 있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휴우... 아무도 없네. 다행이다.”


다행히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아도 학교 주변에서 수상쩍은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날 찾을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마리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애런델이 그 가발의 주인을 찾으려했다면 지금쯤이면 찾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 가발은 글린트 최고의 가발 장인이 만든 가발로 그 장인에게는 가발을 누가 사 갔는지 장부가 있을 테니까.


“마리.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룻밤 사이에 어디서 머리카락을 태워 먹기라도 한 거야?”


마리가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마리에게 핀잔을 줬던 올리비아가 대놓고 한소리를 했다.


평소라면 찌릿 올리비아를 노려봤을 마리였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가발을 정원에 떨어뜨려 꼼짝없이 잡혀갈 줄 알았다가 평소와 같은 핀잔을 듣게 되니 그 악의 어린 말들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리. 안녕. 좋은 아침이야.”

“안녕. 엘리사. 어서 와.”


엘리사가 교실로 들어서자 올리비아는 마리와 엘리사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래서 푸른 장미는 언제 가지고 올 거야? 어제 당장이라도 저택에 들어가 가져올 것처럼 그러더니. 엘리사. 마리가 언제 그 저택에 가긴 한 대니?”

“우리 어제 그 저택-. 우웁.”


엘리사가 어제 저택을 다녀왔단 말을 하려 해 마리는 황급히 엘리사의 입을 막고는 엘리사를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엘리사. 우리가 어제 저택에 다녀온 건 비밀이잖아.”

“참! 그렇지? 큰일 날 뻔했다.”


엘리사는 직전에 말을 멈춘 것에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마리는 작게 숨을 들이쉰 뒤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엘리사.”

“응?”

“또 한 가지 더 비밀로 해줄 일이 있어.”


마리의 망설임에 엘리사는 고개를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머리카락 말이지?”

“응.”

“알았어. 그런데 왜 머리카락이 비밀인 거야? 네가 한번도 원래 머릴 드러낸 적이 없어 어제보고 비밀인가보다 하긴 했는데.”

“어... 그게...”


아무리 엘리사가 이곳에서의 유일한 친구였대도 마리는 자신이 셰리아 인이라는 걸 밝힐 순 없었다.


“아파서.”

“아파?”

“응. 아파서. 원래는 연한 갈색이었는데 머리 색이 빠져 버렸거든.”

“저런!”


머리카락뿐 아니라 눈동자나 피부도 색도 원래보다 옅어지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는 마리의 대충 둘러댄 말을 엘리사는 의심 없이 믿었다. 그런 신뢰에 마리는 괜히 더 미안해졌다.


‘엘리사 미안. 혹시 내가 도망자라는 걸 들킨다면 그걸 알고 모른 채 해준 너도 위험해질 까봐 그러는 거니까. 이해해 줄 거지?’


병이 낫기 전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마리가 정혼자를 찾기 힘들어질까 봐 숨기고 있다는 말에, 엘리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해 보였다.


“병이 나으면 머리 색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응.”

“아쉽다. 그런 은발이면 정혼자가 줄을 설 텐데.”

“하하...”


엘리사의 말에 마리는 웃었다.


글쎄. 이 머리색이 통하는 건 여기 브리타니아 정도다. 정혼자는 셰리아에서 찾게 되겠지.


“전에 가발이랑 머리 모양이 많이 달라졌어. 마리.”

“급하게 구하느라 이것밖에 구하지 못했어. 데본셔 후작님 댁 하녀 가발을 빌린 거야.”


올리비아 일행이 놀려대는 것도 이해가 된다. 마리가 급하게 구한 가발은 전보다 윤기도 없고 모양도 영 별로라 꼭 뭔가를 잘못해서 억지로 머리카락을 잘린 듯한 인상의 가발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잘못해서 머리가 잘린 거나 마찬가지기도 하다. 엉뚱한 짓을 해서 좋은 가발을 잃어버려 이 가발을 쓰게 되었으니까.


“가발은 새로 살 거지?”

“그래야겠지?”

“요즘 가발값이 전보다 더 비싸져서 어린 하인 한 달 치 급여 정도는 한다던데.”

“뭐? 한 달 치 급여?”

“응.”


어차피 이 난리를 친 거 푸른 장미라도 가지고 나왔으면 좋았으련만.


이미 데본셔 후작 가에서 마리의 생활을 위해 쓰고 있는 돈이 얼만데, 가발이 그렇게 비싸다니 마리는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는 기억나? 한번 가서 찾아 볼까?”

“응? 어디서 잃어 버렸냐니?”


마리는 가발을 당연히 스카버러 저택 안에 떨어트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담을 넘었을 때 엘리사가 마리의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랐던 건 무슨 이유였는지.


“난 그때 네 머리카락이 흩날려 달빛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게 너무 아름다워 감탄한 거였던걸?”


마리의 질문에 엘리사는 놀란게 아니라 감탄한거라고 했다. 엘리사는 스카버러 저택까지 걸어가는 길에 너무 긴장하며 누가 볼까 주변을 살피느라 마리의 머리색이 언제 바뀌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정말?”


마리는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맞잡았다.


‘어쩌면 정원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가발을 떨어 트린 걸지도?’


마리 역시 사람이 다닌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스카버러 저택 주변에서는 괜히 누가볼까 무서워 정원에서처럼 엘리사의 손을 끌어 이 나무 저 나무 뒤에 숨어가며 걸음을 옮겼더랬다.


/다녀올게!/


혹시 엘리사가 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들킬까 봐 담과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 있으라 했었다.


‘그래서 날 못 찾은 거구나!’


그러다 거기 어디 나무에 가발이 걸린거라면. 나를 찾지 않은게 아니라 찾지 못한거라면.


“어딘가에서 가발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 정원에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침윤 (5) 25.02.07 4 0 11쪽
14 침윤 (4) 25.02.06 5 0 12쪽
13 침윤 (3) 25.02.05 6 0 10쪽
12 침윤 (2) 25.02.04 6 0 12쪽
11 침윤 (1) 25.02.03 6 0 11쪽
10 호의 (5) 25.02.02 6 0 11쪽
9 호의 (4) 25.02.01 7 0 11쪽
8 호의 (3) 25.01.31 7 0 11쪽
7 호의 (2) 25.01.30 6 0 11쪽
6 호의 (1) 25.01.29 6 0 12쪽
5 장미도둑 (5) 25.01.28 9 0 13쪽
4 장미도둑 (4) 25.01.27 9 0 12쪽
» 장미도둑 (3) 25.01.26 10 0 11쪽
2 장미도둑 (2) 25.01.25 10 0 11쪽
1 장미도둑 (1) 25.01.24 2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