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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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칠
작품등록일 :
2025.01.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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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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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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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도둑 (5)

DUMMY


애런델의 시선에 대문쪽을 바라보았던 매튜 역시 철제 대문 틈 사이로 빼꼼히 안을 들여다 보던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너! 거기서!”


매튜는 누군가가 밖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잽싸게 대문 쪽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꺄악!”

“거기서라!”

“살려주세요!”


애런델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문 너머에서 마리와 매튜의 목소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들이 시끄럽게 뒤엉켰다.


“잘못했어요! 꺄악!”


애런델은 어떻게 된 일인지를 확인하러 대문 쪽으로 다가섰다. 그때 열린 대문 너머로 마리가 후다닥 달려들어왔다.


- 쿵.


마리는 대문을 넘자마자 앞에 선 애런델을 발견했지만 속도를 멈추지 못해 애런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대비없이 서 있던 애런델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고 마리도 그대로 애런델의 위로 넘어져 버렸다.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매튜가 다급하게 곁으로 다가서자 애런델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애런델과 함께 몸을 일으킨 마리는 애런델의 다리 위에 앉은 채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마리는 저택 안으로 들어올 생각까진 없었다. 어쨌건 애런델이 집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여기 근처에 가발이 떨어져 있나 보러 왔다가 안에서 소리가 들려 잠시 들여다본 것 뿐이었다.


‘그랬는데 저택에서 누가 뛰어 나올 줄은...’


꼼짝없이 잡혔구나 싶어 눈물부터 났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게다가 여기 저택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칼부터 빼어 드는 것이 특기인가보다.


“엉엉. 공작님. 잘못했어요. 엉엉. 살려주세요.”


매튜의 칼이 목 근처로 와닿아 마리는 기겁하고는 애런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정작 어젯밤에는 애런델이 칼을 들고 쫓아왔단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뭘 하는 거지? 그만 일어나지 못해?”

“살려주세요. 엉엉.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엉엉. 잘못했어요.”


매튜가 버럭버럭 화를 낼수록 마리는 더욱더 애런델의 품에 숨으려 애를 썼다.


“매튜. 칼부터 거둬라.”

“공작님.”


이 상황에 난감한 건 뜻하지 않게 품을 내준 애런델이었다. 마리를 떨어트려 놓고 싶어도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어대는 마리를 밀어낼수가 없었던 것이다.


매튜가 빼든 칼이 무서웠겠지. - 칼이 없더라도 덩치고 크고 매서운 눈매의 매튜는 곧잘 어린 아이들을 울리곤 했다.


“또 여길 찾아오다니. 공작님. 어젯밤에 보신 아이가 이 아이가 맞습니까?”


매튜는 칼을 칼집에 넣고는 드디어 침입자를 잡았다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어 보였지만 애런델의 시선은 마리의 떨리는 어깨에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들어가지.”

“네?”

“자초지종부터 들어보자는 말이야.”

“아. 네. 그래야지요.”


아무래도 좋다. 어젯밤 담을 넘은 이유나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뭐가 됐건 애런델은 마리를 이대로 떨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만 일어나! 감히 어느 분 무릎에 앉아 있는 거야!”


매튜는 거칠게 마리의 팔을 잡아끌어 마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마리가 어떤 연유로 이 정원에 숨어든 것인지 밝혀지지도 않았건만, 매튜는 마리를 애런델을 죽이러 들어왔다 잡힌 사람처럼 대했다. 마리는 속수무책으로 매튜의 거친 손길에 끌려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애런델은 매튜에게 조심히 데리고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봐줄지 말지는 네 이야길 듣고 결정할 테니까. 얼른 따라와!”


눈물을 쏟으며 힘없이 휘청대는 마리의 모습이 애런델의 머릿속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살려주세요. 기사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전쟁 당시 살려달라 울부짖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애런델은 현기증을 느끼며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둬라. 아이가 무서워 하고 있지 않아.


“어허. 얼른 따라 오래도!”


애런델의 상태를 모르는 매튜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고 그럴수록 마리의 걸음이 불안정해졌다.


“너 다리를 다쳤구나.”


잘 보니 마리는 왼쪽 발을 잘 내딛지 못한 채 절뚝거리고 있었다.


*****


먼저 응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매튜는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훌쩍. 공작님 감사합니다. 훌쩍.”


그도 그럴 것이 애런델은 마리가 다리를 접질렸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마리를 품에 안아 들어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공작님은 전부터 사람이 너무 좋아 문제였지.’


남몰래 한숨 짓는 매튜의 뒤로 들어선 애런델은 응접실 의자에 마리를 내려놓은 후 황급히 마리의 발목을 감쌀 깨끗한 천을 가져왔다.


“발을 내밀어 봐.”

“네?”

“공작님. 이젠 정체 모를 아이의 다리까지 치료해 주시려는 겁니까?”


걷기 힘든 마리를 안아서 데려온 것도 모자라 애런델은 마리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직접 발목까지 치료해주려 했다. 매튜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애런델을 밀어냈다.


“공작님은 앉아계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누가 보면 귀한 손님이라도 온 줄 알겠다.


매튜가 툴툴대며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애런델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마리를 바라보았다.


두려운가. 내가 자신을 해치기라도 할까 봐.


그런가. 내게는 아직도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는가.


“자! 무슨 일로 겁도 없이 공작님 저택을 찾았는지 들어볼까?”


매튜는 순식간에 마리의 발목을 천으로 고정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고 마리는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으며 애런델과 매튜의 눈치를 살폈다.


“어서 대답해!”


쩌렁쩌렁한 매튜의 목소리에 흠칫 마리는 또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었다.


“저는... 흑... 저는....”

“어허! 어디! 어린 여자애가 울면 대충 넘어가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안 통해!”


애런델은 메튜가 자신을 걱정해 이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매튜의 말대로 전쟁때에는 이보다 더 작은 아이도 애런델에게 칼을 꽂았으니까.


“매튜.”

“네. 공작님.”


하지만 지금은 전쟁중이 아니다. 애런델에게 앙심을 품은 자가 아직 어딘가엔 있을지 모르나 여지껏 저택의 담을 넘은 적은 없다. 그런데도 매튜는 눈앞의 마리가 애런델에게 어떠한 해를 가할까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가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어떤 의미로 전쟁 후 5년이나 지난 지금도, 전쟁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건 매튜도 마찬가지겠지.


“공작님.”

“자꾸 몰아붙여서야 아이가 울기만 할 텐데. 언제 이유를 들을 수 있겠나.”


매튜의 그 마음을 알았어도 애런델은 한눈에 봐도 두려움에 떨리는 마리의 작은 몸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작은 소녀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알겠습니다. 공작님.”


애런델은 마리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괴로워졌다. 마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마리의 울먹임이, 애런델의 지난 기억을 자꾸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애런델은 어떻게든 마리를 빨리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이대로는 매튜가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습니다. 공작님.”


어서 마리를 돌려보내려면 마리가 단순한 장미 도둑이었다는 확인이 필요했다.


“내 정원에는 왜 들어왔지?”


그래서 애런델은 발밑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한 어두운 기운을 애써 무시한 채 물었고 마리는 훌쩍이며 대답했다.


“장미를 가지러...”


그래. 역시 그랬지.


정원에서 열매를 따 먹었던 부랑자가 어딘가에 푸른 장미에 관한 이야기를 흘린 것이 분명했다. 이 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장미를 훔치러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상대로다. 알았으니 그만 가보라.


애런델은 마리에 대한 다른 궁금증은 무시한 채 바로 마리를 돌려보낼 생각이었지만 매튜가 이어 질문을 던졌다.


“오늘도?”

“오늘은...”


그 질문에 마리는 망설였다. 뭐라고 이야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마리의 모습이 애런덜의 눈에도 수상쩍게 느껴졌다.


“오늘은 담을 넘으려던 건 아니고 여기 근처에 찾을 게 있어서...”

“뭘? 뭘 찾으러 왔지?”

“그게...”


마리는 또 한 번 망설였다. 이렇게 나와서야 매튜가 마리를 보낼 리 없다.


‘가발?’


마리가 무언가를 찾으러 왔다면 가발 일 터였다. 하지만 마리는 끝까지 가발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곤란해하며 눈을 피하는 마리의 모습에 애런델은 마리가 왜 그러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가발 이야길 하면 본인이 셰리아 인임이 들통날까 봐 이러는 거군.’


*****


“말해봐라. 뭘 찾으러 왔지?”


마리는 정말 이 근처만 둘러보다 갈 생각이었다. 가발을 찾다가 없으면 그냥 돌아가려 했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 알았다면 근처에도 오지 않았을 거다.


‘어쩌지?’


매튜가 뭘 찾으러 왔느냐 마리를 추궁하는 내내 애런델의 시선은 정확히 마리의 머리 쪽을 향해 있었다. 마리는 그 시선에 기분 나쁘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셰리아 인이라는 걸 아시는 것 같은데.’


큰일이다. 마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허. 대답하래도.”

“그때 푸른 장미를 떨어트리고 가서요!”

“뭐?”

“어제 기껏 꺾은 푸른 장미를 떨어트렸거든요. 혹시 이 근처에 떨어트렸을까 해서 주으러 왔어요. 그 장미는 말린 상태로도 비싸게 팔린다고 들었거든요.”


마리는 순간적으로 푸른 장미를 떠올려 푸른 장미 핑계를 댔다. 어차피 푸른 장미를 훔치러 들어왔단 사실을 이미 인정한 터였다.


“확실한가? 다른 이유는 아니고?”

“네? 어떤 다른 이유요?”


그런데 매튜는 마리로서는 상상치도 못한 걸 물었다.


“공작님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고?”

“네? 제가 공작님을 해치다니요? 전 정말 푸른 장미 때문에... 여기 어느 분이 살고 계시는지, 이 저택의 존재조차 어제 처음 알았던걸요?”


매튜의 질문에 마리는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이 저택 사람들이 왜 사람을 보자마자 칼부터 빼드나 했더니 내가 공작님을 해치러 왔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어딘가에 공작님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아닙니다. 공작님. 저는 공작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아는 바도 없이. 그저 푸른 장미를 찾아 들어왔을 뿐입니다.”


마리는 응접실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애런델과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저택에 숨어 계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걸요?”


이리도 아름다운 공작님을 해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감히 공작님께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렇게나 놀란걸?


“믿어주세요. 공작님.”


마리의 단호함에 애런델의 얼굴에서 살짝 난감해 하는 기색이 보였다. 마리는 공작님이 왜 저러시나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가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는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목숨이 위협받는 이런 순간에 내가 무슨 소릴...


“공작님 얼굴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암살을 하러 온 건 아닌 것 같군. 어떻게 할까요? 공작님.”


마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 실수에 매튜가 경계를 풀었다. 매튜는 아무리 애런델이 아름다워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자가 얼굴 타령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


‘다행이다. 이제 보내주겠지?’


여전히 부끄럽긴 했지만 아까보다 풀어진 분위기에 마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죄송하다고 마무리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마리의 가발이 툭하고 떨어졌다.


‘큰일 났다!’


뛰어 다니고 넘어지고 하는 사이 고정해둔 부분이 풀어진 것이었다.


“가발?”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내 목숨은 물론이고 데본셔 후작님도 위험해진다.


‘도망가자.’


마리는 패닉에 빠져 무작정 도망가야 한다 그 생각만 들었다.


“멈춰!”


마리가 눈치를 살피다 문 쪽으로 달아나려는 손을 뻗는 순간 애런델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마리가 애런델에게 달려드는 줄 안 매튜가 마리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던 것이었다.


“꺄악! 살려주세요!”


놀라서 바닥에 넘어진 마리는 비명과 함께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는 무릎을 굽혀 몸을 숙인 마리는 팔 어딘가에 서늘한 검이 닿을 거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공작님!”


마리의 팔에 닿은 것은 매튜의 칼이 아닌 매튜의 칼날을 잡은 애런델의 손에서 떨어지는 붉은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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