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지하의 지배자 (4)

알렉스는 교단장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교단장도 그를 마주 보면서 자리에 앉자, 알렉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올 줄 알았다고?"
"물론이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교단에서 대부분 다 알아야 하니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일세.
어디 그뿐만인 줄 아는가. 북부에서 서부에 이르기까지 자네가 해온 일들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지."
이든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친절했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는 마치 모든 걸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다니 오히려 당황스러운걸."
"이곳에선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정보 덕분에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 자네도 이미 느꼈겠지만."
교단에서는 알렉스를 어느 정도 조사한 듯 보였다. 하지만 알렉스는 그들에게 모든 패가 드러나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셰퍼라고 했나? 그건 또 뭐지."
"아아, 발굴 중인 고대 병기는 이미 확인했겠지?"
알렉스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 병기를 오랜 세월 동안 섬겨왔네. 하지만 지금까지 실물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교단의 힘도 점점 약해지던 찰나였지.
그리고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지.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에 남아 정착할 수밖에 없었네. 그 병기의 이름이 바로 셰퍼라네."
알렉스도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엘리시온 교단이 신격화한 대상은 단순히 신 같은 추상적인 게 아니었으며, 또한 그것이 고대 병기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교단을 키우고 있던 건가."
"물론이지. 우리가 왜 이곳에 정착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했기를 바라네. 셰퍼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나아갈 길을 안내하는 존재야.
그리고 이곳이 곧 셰퍼의 영역이자, 우리의 영역이지. 이곳에서는 모두가 셰퍼의 은총 아래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네."
알렉스는 이든이 셰퍼라고 부르는 고대 병기에 대한 태도가 단순한 신앙심을 넘어선 일종의 맹목적인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고대 병기를 숭배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는 것이었다.
"이든, 내가 온 이유는 간단해. 추방자들이 언제 약탈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계속 지켜보는 건 좋지 않아."
"추방자가 우리와 적대적이란 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네만, 그렇다고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건 또 무슨...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고."
"하지만 셰퍼는 건들지 않는걸."
실제로 추방자 무리는 약탈을 일삼으면서 고대 병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과의 사이가 좋지는 않을지언정,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너희의 목적은 이곳을 장악하는 거잖아. 그렇지? 교단의 세력으로 모두 끌어들이고 싶다는 건데, 추방자 녀석들이 남는다면 장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어불성설이로군. 우리 신도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네만."
"신도가 늘어난다고 이곳의 소유권을 가지는 건 아니지. 개척지라서 사람들은 계속 해서 몰려오고 있고, 지금도 아직 반 이상은 개척민들이 장악하고 있어.
그리고 다른 세력들은 적어도 정찰이라도 다닌다거나, 방어라도 한다거나, 뭐라도 하는데 너희가 하는 건 그저 물자 나눠주는 것 말고는 없다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이곳을 차지하는 것도 영영 못 하게 될걸. 그리고 다른 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충이 되겠지만, 너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포교하는 게 전부잖아."
사실 이는 다소 과장된 말이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유리한 건 아무런 성과도 못 내는 다른 세력이 아닌, 적어도 개척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교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든은 그 말을 듣고는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분석을 내놓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신중하게 기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개척민들은 그저 물자를 나눠주는 우리에게 감사를 전할 뿐, 셰퍼를 믿으려고 하지도 않으니...
하지만 그대 말대로, 이번 기회에 모두의 골칫거리인 추방자들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우리에게 승기가 좀 더 기울 수도 있겠지."
교단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심. 단순히 물자를 나눠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신앙심을 주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추방자 무리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이 모든 게 셰퍼 덕분이라고 말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내 계산이 끝난 이든은 음흉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리고 알렉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대 말은 잘 알아들었네. 추방자들이 우리의 신성한 영역에 침범하는 것도 계속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래... 그렇다면 적어도 지원이라도 좀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만 이거 하나만은 약속해주게. 신도들이 직접적인 폭력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 쉽게 말해 인간 방패로 삼는다거나, 무기를 쥐게 해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생각보다 쉽게 교단의 협력을 얻은 것 같아 한편으론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에리나이트가 많이 필요하다네."
"그건 왜?"
"셰퍼를 일으키는 데 필요하거든. 하지만 서부에 에리나이트가 많은 편은 아니라서 문제일세.
지금 물자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경비가 많이 드는데, 그렇다고 다른 도시에서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사고 싶지는 않고..."
마치 알렉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그는 조용히 바라본다. 알렉스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자네 소문은 익히 들었지. 실력 있는 포저라고 말이야. 그리고 포저는 지상에서 에리나이트를 캐는 일을 하곤 하지."
"그래... 뭘 원하는지 알겠어."
"물자는 충분히 지원해주겠네. 그리고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곧 발굴될 테니까, 그걸 타고 올라가면 될 걸세."
"혹시 서부에도 부족이 있나?"
"지상의 다른 이름이 뭔지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알렉스는 그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곧이어 이든이 문을 열자, 바깥에서 신도가 알렉스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예배당에서 벗어났다. 예배당의 가운뎃길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신도들의 눈은 알렉스를 좇고 있었다.
* * *
도시 세력과 교단의 협력을 이끌어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먼저 도시 세력의 병사들이 이곳을 떠나 정찰하게 된다면, 이곳을 방어할 사람이 부족해진다.
그리고 교단은 전투에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도시의 방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바로 이곳의 개척민들이었다. 그들도 분명히 합류하는 의사를 보이면 좋겠지만, 이곳에서 정치와는 가장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스도 그들을 포섭하는 건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추방자 무리를 내쫓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 있는 다른 도시 세력이나 교단이 모두 사라져야 만족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저 보금자리를 개척하고 넓히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알렉스는 칼딘에게 개척민들을 광장으로 모두 모일 수 있도록 부탁했다. 칼딘은 이곳에 오래 남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개척민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뭐, 그 정도야 쉽지. 여기 사는 주민 중에서도 영향력이 제법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설득하는 건 오직 너의 힘으로 해야 할 거야. 교단이나 알바로타가 접근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는 더 이상 협력하려고 하지 않겠지."
칼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서부에 사람들은 점점 몰리기 시작했고, 이 틈을 타서 다른 도시들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 이곳을 먼저 개척하던 사람들은 후발 주자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면 지금의 협상도 무리가 있었다.
칼딘은 인부들이 작업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천천히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광장에 모여들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느덧 광장은 많은 개척민으로 꽉 들어찼고, 서로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렉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내심 긴장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이야기를 꺼낸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전에 한 일도 일대일로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설득이었다. 알렉스는 잠시나마 호흡을 가다듬고, 광장 앞으로 나아갔다.
알렉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기 시작한다. 알렉스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외쳤다.
"모두 내 이야기를 들어줘.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해. 나는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거야. 아마 대부분은 대체 왜 날 도와야 하는지 모를 거야."
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개척민들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고, 조금은 지쳐 보였다. 반응도 없고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알렉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 서부에 온 건 다 같은 이유라고 생각해.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서부를 찾아 떠난 거겠지.
물론 지금은 교단이나 다른 도시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돌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어.
바로 추방자 녀석들이야. 그놈들은 항상 틈만 나면 이곳의 식량과 장비를 약탈하고는 하지."
알렉스가 추방자를 언급하자, 개척민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이 지역의 고대 병기가 모두 발굴되거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터전을 세우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이곳을 약탈하러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이미 늦었겠지.
교단과 도시 세력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을 제대로 쓰러뜨리지도 못했어. 오히려 놓치거나 방관하기까지 했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여기에 정착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거야. 이곳을 지켜야 하는 건 저들이 아닌,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추방자 놈들을 완전히 내쫓으려고 해. 그래서 지금까지 방관했던 교단이나 도시 세력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리고 이곳을 지켜야 하는 건 결국 너희들이잖아. 그러니 부탁할게. 이번 기회에 추방자 놈들을 완전히 내쫓아버리고, 너희들이 꿈꿔 온 터전을 완성해 보자고."
알렉스는 강한 어조로 말하며 연설을 마쳤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그대로였고,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알렉스의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사람들의 무반응을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미 연설을 끝낸 터라 이 이상의 설득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 속에서 한 남자가 무심하게 손을 들었다. 알렉스가 놀라서 그쪽을 바라보자,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그 남자의 말에 개척민들은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동의했다.
알렉스는 그 광경을 보고 당황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며 안도감을 느꼈다. 그 남자 옆에 있던 중년의 인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추방자 놈들이야 언젠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지. 그게 어려워서 그랬던 것뿐이니까. 난 그냥 빨리 끝내고 다시 공사나 하고 싶을 뿐이야."
그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저 평범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도와주겠다는 교단이 언제까지 우리를 보호해 줄지도 모르고,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하는 거지."
알렉스는 순간 허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들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 너희들의 힘이 정말 필요해. 그렇다면 이번 전투는 반드시 이길 거야."
그러자 아까 말을 했던 남자가 다시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그럼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알겠으니까 빨리 끝내고 일이나 하자고."
이제,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 추방자들과 싸울 준비가 마침내 끝난 것이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