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서곡(16)

중기관총을 사용하는 레인저와 스캐너가 호흡을 맞혀봤자 일 텐데.
애초의 두 병과가 가진 임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벨리가 사용하는 중기관총 모델, HMG-42는 비교적 작은 7.7mm 탄을 사용하는 총이지만, 다른 중기관총들과 마찬가지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 엄청 많은 편이야. 무겁기도 하고.”
“탄통까지 생각하면······.”
중기관총 특성상, 워낙 반동이 심하므로 지지대 같은 부품을 장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사격을 했다간 사용자의 몸이 아작날 것이다.
설치 형태의 총기이기 때문에 지지대 없인 사격 자체를 하지 않는다.
몸이 부서지는 걸 감안해서라도 사격을 해야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벨리는 기동전보단 지점 방어에 특화된 레인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임무는 목표 위치까지 도착해야 완수하는 형태라서 중기관총에겐 많이 불리하겠지. 짐도 많아서 기동력도 무척 낮고.”
로즈가 반듯하게 세운 엄지를 좌우로 흔들며 호기롭게 말했다.
“하, 지, 만! 나는 아니란 말이지.”
스카우터인 로즈는 들고 다니는 장비가 무척 가볍다.
레이더 포트는 휴대하기가 좋고, 장비를 가동하지 않는 상태에선 무게가 1k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수집한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6인치 스크린이 달린 기기도 비슷한 무게다.
스캐너의 전체적인 무장 중량은, 탄 무게를 더한 권총 무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
“그래서 벨리가 책임져야 하는 무게의 반을 내가 대신 질 수 있지!”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크게 특이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무장이 가벼우니 벨리의 짐을 나눠 들어준다는 얘기니까.
“재미있게도 로즈는 본인이 다루지도 못하는 중기관총을 빠른 속도로 설치할 수 있어.”
빠르면 대체 얼마나 빠르다고.
로젠이 눈을 치켜들며 생각했다.
레지스탕스 대원 중에서 유독 중기관총을 잘 다루는 동료가 한 명 있었다.
그가 중기관총 설치를 끝내고 사격 준비에 들어가는 데까지 아무리 빨라도 2분 정도였다.
중기관총 레인저가 기동전에 적합하지 않은 최대 이유였다.
단순히 손기술이 좋고 빠르다고 해서 설치를 빠르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높은 수준의 마력 운용 능력을 요구하니.’
자리를 잡는 요격 형태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전력이겠지만.
로즈가 두 손을 활짝 피며 말했다.
거기에 벨리가 자기 손까지 모두 더했다.
“20초.”
로젠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중기관총을 설치하는 데 고작 20초밖에 안 걸린다고 말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전이 확보되고 나서부터 벨리가 사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분해하고 이동까지 가능한 시간은 40초나 넘게 걸리지만 말이지.”
멜리나와 프레나는 이해를 못 한 표정이었다.
머리 좋은 리켈은 싱긋 웃고 있었고.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라이너와 폰은 뚱한 얼굴이다.
그리고 로젠은.
“······대단하군.”
리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심하고 냉철해 보이는 로젠이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비쳤다.
의외라고 하면 의외겠지.
로젠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중기관총에 대한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중기관총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사용 제약이 심해서 쉽게 운용하지 못하는 총기다.
그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적을 섬멸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기여를 하게 되겠지.
“무장이 가볍고, 정보 수집을 끝마치면 할 일이 거의 없는 로즈 펠른이 벨리 쿼비디를 서포트한다는 건가.”
“그렇지.”
“맞아.”
“우리는 반년이나 넘게 이런 식으로 전투 훈련을 치러왔어.”
“성과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 리켈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응. 너희 둘을 영입한 ‘진짜’ 이유가 되겠네.”
전방 부대에선 중기관총을 다루는 레인저에게 기관단총을 사용하는 레인저를 붙이기도 한다.
지금 로즈처럼 서포트 역할로서 말이다.
전투병이 지원병이 되는 꼴.
거점을 잡고 방어하는 작전이라면 모를까, 기동전을 펼쳐야 하는 타격 형태의 작전에선 이는 심각한 전력 낭비로 이어진다.
폰이 중얼거리고.
“기관단총은 권총과 위력이 거의 비슷하니 그리 큰 전력을 기대할 수 없지, 아마?”
라이너가 말을 거들었다.
“그냥 권총을 더 빠르게 쏘는 것뿐이잖아.”
동감하듯 리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이들은 자신의 주특기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공유했다.
그 외에 특기라 할만한 것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다 결국.
“그래서? 저 조교 킬러 녀석은 뭐가 특기인데.”
라는, 폰의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리켈이 입술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은 고민 끝에 로젠을 이 분대에 넣었지만, 사실 리켈도 로젠의 정확한 전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프레나의 의견이 있었다지만, 무턱대고 소꿉친구의 말을 들어줄 만큼 리켈은 무모하지 않다.
이 분대는 그의 명석한 두뇌로, 이번 시가지 훈련을 위해 철저하게 만든 분대니까.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리란걸 예상했고, 로젠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말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다.
로젠의 영입만큼은 예외를 두었고, 복잡한 계산 같은 건 모두 집어치운 리켈은 걸었다.
그가 가진 경이로운 반응 능력과 이유 모를 ‘기대감’에.
이걸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폰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렇다 할 답을 하지 못하는 중이다.
“어깨를 보니 배정받은 병과도 없는 것 같은데.”
로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비웃는 느낌은 아니었다.
단순한 흥미 정도의 수준.
“훈련병들이 하는 얘기 들었어. 너, 열외병이라며?”
“뭐?! 열외병?”
처음 듣는 얘기였는지, 폰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짧은 웃음을 뱉었다.
“허, 조교를 스무 명이나 때려잡은 녀석이 열외병이라니.”
“잠깐만. 보통, 병과는 적성에 맞는 무기에 따라 결정되잖아? 어이, 로젠. 네가 사용하는 마도 웨폰은 뭐지?”
라이너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로젠에게 집중되었다.
리켈이나 멜리나, 그리고 프레나는 로젠과 함께 전날 병과 배정 훈련에 참여했지만, 로젠이 끝내 적성에 맞는 무기를 찾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멜리나가 리켈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며 귓속말했다.
“리켈, 훈련 다 끝나고 몰브어 대위님이랑 같이 어디론가 갔다며?”
“그랬었지.”
“그럼, 그 뒤로 적성 무기를 찾은 게 아닐까?”
리켈이 슬쩍, 곁눈질로 로젠의 표정을 살폈다.
로젠은 프레나가 사다 준 과일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 있었네요.”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로젠이 고개를 들었다.
“어! 레일러 중위님!”
리켈이 일어서자, 나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훈련병들이 모두 기립했다.
그리고 깍듯한 경례가 이어졌다.
“야, 로젠! 뭐해! 어서 일어나! 경례해야지!”
에클라가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들 편히 있으세요. 저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온 거니까.”
로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저 남은 음료수를 비워 낼뿐.
쉬는 시간이든, 훈련 시간이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계급이 높은 자를 만났을 땐 경례로 인사하는 게 군의 예법이다.
병장도 아니고 상사도 아닌 중위를 눈앞에 두고 이런 태도라니.
리켈을 비롯한 분대원들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에클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로젠의 냉담한 반응은 어제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이드를 사용하기 전에 나타난 카르만과 에클라에게도, 그는 경례를 하지 않았다.
베르틴과 라타샤라는 보는 눈이 있었기에 카르만의 지시엔 고분고분 따랐지만.
“하워드 훈련병.”
“네.”
상관이란 존재를 넘어서 에클라는 훈련소장의 전속 보좌관이다.
이 훈련소 내의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경례는 안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는 갖춰야 할 텐데.
로젠은 꼼짝하나 하지 않고 고개만 들어 답했다.
“어제 말했었던 물건이 일찍 도착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남았는데, 일부러 절 찾아오신 겁니까?”
“별로 수고는 하지 않았어요. 감시 카메라 몇 번만 돌려보면 훈련소 내의 훈련병 위치는 금방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에클라가 손목을 톡톡 두드렸다.
“훈련병들에게 지급된 개인 단말기에 위치 추적 기능 정돈 들어 있지 않겠어요?”
“······.”
로젠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로즈와 벨리가 일어서며 에클라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로젠한테 용무가 있으셨구나.”
“주, 중위님! 여기에 앉으세요!”
“아, 금방 갈 거라서 괜찮은데요.”
“아닙니다! 저희는 잠시 서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자리에 앉은 에클라가 들고 온 무언가를 내밀었다.
기다란 물체였는데, 천으로 꽁꽁 감싸져 있었다.
“이 훈련병들이 하워드 훈련병과 함께 분대를 이룬 사람들이군요.”
그게 아니라면 늘 혼자였던 로젠이 훈련장 출발 전에 이런 곳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것도 8명이라는 숫자로.
에클라가 그들의 면면을 가볍게 살폈다.
리켈과 프레나, 멜리나는 아직 훈련 성적이 전무하지만 다른 4명은 달랐다.
모두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유능한 훈련병이다.
다른 기수의 훈련병이 이제 막 병과를 배정은 훈련병들과 분대를 이루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강당에서 들었으니 잘 알겠지만, 이번 훈련은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임하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로젠은 무기 없이 이번 훈련에 임할 생각이었다.
조금 전,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그리 답하려고 했다.
“대항군의 무장은 총이니까요.”
로젠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이, 에클라는 싱긋 웃고 있었으니까.
“훈련장에 도착해서 정식으로 임무를 하달받으면 알겠지만, 이번 시가지 전투에서는 훈련용 전투복을 사용하게 됩니다. 교관들이 사용하는 탄은 고무탄이 아니라 위력이 낮은 실탄. 즉, 마력을 응집한 마탄을 사용하거든요. 훈련병들도 마찬가지고요.”
“저, 정말요?”
“가만히 있어, 로즈! 지금 로젠이랑 대화 중이시잖아!”
“윽,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훈련용 전투복은 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전투복보다는 성능이 매우 떨어지지만 사용 방법은 동일하다.
다루기도 무척 쉬운 편이고.
마력량에 따라 사용자의 운동 능력을 최대 3배까지 높여준다.
마력 탄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마력 보호막’도 펼칠 수 있고, 그 외에 전투를 보조해 주는 프로세스도 탑재되어 있다.
실전 전투복보다는 그 기능과 연산 능력이 한참 뒤떨어지지만.
리켈이 손을 들었다.
“저, 레일러 중위님. 이런 중요한 정보를 저희가 미리 알아도 되는 건가요?”
“원래는 안되지만, 하워드 훈련병과 같은 분대를 이룬 여러분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하워드 훈련병은 열외병이니까요?”
에클라가 검지를 세워 자기 입가에 갖다 대었다.
그 뜻을 이해한 리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어쨌든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은 거잖아, 리켈.”
“라이너 말이 맞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엔 엄청 큰 차이가 있으니까.”
대항군이 마탄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쪽의 대응이 너무 늦는다.
그땐 이미 분대원 중 누군가 마탄에 당하고 난 후일 테니까.
“메딕인 루아 훈련병이 있으니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대들은 고생 좀 하겠죠.”
위력을 대폭 줄였다고 해도 마탄이다.
만에 하나라도 보호막 에너지가 뚫려 피격된다면.
“생명엔 지장이 없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게 되겠네요. 그 첫 경험은 절 때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웃으며 말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에클라는 옛 추억을 회상하듯이 기분 좋게 말했다.
“자, 하워드 훈련병. 이번 훈련에선 이걸 사용하면 될 겁니다.”
로젠이 끈을 풀어 천을 벗겨냈다.
로젠을 위해 카르만이 따로 준비한 무기.
그 정체는······.
“뭐야 이게. 총이 아닌데?”
“이건······.”
“음?”
“하, 이게 이 녀석이 사용할 무기라고?”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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