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EX급 전설의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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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뇌검
작품등록일 :
2025.02.06 06:58
최근연재일 :
2025.05.20 22:30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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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5.03.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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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라면 국물에 여덟 시간은 불린 듯해 보이는데요?

DUMMY

“·······?!!”


황급하게 별장으로 돌아와 이제 막 어웨이칸들을 썰어내려고 검을 고쳐 잡았던 네이트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바로 별장의 2층에서 벌어진 광경에 의해서.


물론 얼어붙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정문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고 했던 닌자들도, 그리고 그곳을 뚫어내기 위해 파죽지세로 공세를 퍼붓고 있었던 어웨이칸들도 다들 똑같은 행동을 취하며 멍하니 2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글자들이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공간 속에서, 검은색으로 새겨진 단어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쳤다.


그것들은 폰트를 극대화한 거대한 한글 문장들.


책의 페이지를 찢고 나와 허공을 가로지르며 둥글게 회전하는 문자들의 파도였다.


아영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돔.


둥글게 배치된 글자들이 일정한 궤도를 따라 빠르게 회전하며, 이곳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장벽이 아니었다.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지는 순간—


슉!


가장자리에서 튀어나온 검은 문자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적을 향해 파고들었다.


단어들은 규칙적으로 회전하며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갈아버릴 듯 맹렬한 소용돌이를 이루었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장벽을 유지하며 주변 공간을 압도했다.


“저건가?”


네이트가 중얼거렸다.


아영이가 지니고 있는 비밀.


연약해 보이는 15세의 소녀가 어떻게 혼자서 어웨이칸 여럿을 해치우고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바로 그것.


서거걱!


네이트는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 있던 어웨이칸 두 명의 목을 동시에 베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아영이의 글자 배리어가 형성되는 지점의 경계선에 도착해 등을 돌리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검을 고쳐 잡았다.


어웨이칸들이 아영이에게 가려면 반드시 자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때 하루카가 도착했다.


“혈랑대와 은섬대는 협공하여 적을 쳐라!”

“와아아아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저기 반대편에서 C급 안개 괴수를 마침내 마무리하고 합류한 은섬대의 닌자들도 도착했다.


아직도 80여 명이 남은 상태였지만, 어웨이칸들은 일단 기세에서 크게 밀리고 말았다.


게다가 체계적인 대형을 짜면서도 피 끓는 분노의 공격을 가하는 핫토리 가문의 닌자들은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형 따위는 모르는 어웨이칸들을 각개 격파하며 점점 밀고 들어갔고, 순식간에 대략 절반의 숫자를 잃은 어웨이칸들은 마침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 전투.


네이트는 다시 뒤로 돌아 아영이와 그녀가 생성한 글자 배리어 안에 누워서 멍하니 아영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김실장을 살폈다.


“차아영···”


그녀의 시커멓게 물든 두 눈.

마치 성난 맹수의 눈빛과도 같았다.


분명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며 자신과 눈빛을 마주치고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네이트는 아무래도 아영이에게 의식이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이트는 아영이의 글자 배리어에 손을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카라라락!


갑자기 성질을 내며 달려드는 글자들.


네이트가 빛의 기운으로 손을 감싸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손바닥이 크게 찢기거나 아예 손가락이 잘려 나갈 수준의 힘이 실려 있었다.


‘응’ 같이 생긴 것 자체로는 날카로운 부분이 없는 글자가 자신의 생김새를 무시하고 비수가 되어 머리통을 들이미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러나 그걸로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이 바로 그 무딘 칼을 억지로 쑤셔 박은 듯한 자상의 정체로군.”


네이트가 하는 짓을 보고 있던 김실장도 슬쩍 자기 손을 뻗어 글자 하나를 만졌다가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계속 누워 있도록. 저 아이. 지금 피아식별을 잘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고···사장님. 이거 완전 지뢰밭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인데요? 그런데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저 책.”


네이트는 아영이의 손에 들려진 <노인과 바다>를 가리켰다.


“확실해요, 사장님? 책에는 완전 조그마한 글자로 쓰여 있던데, 지금은 그 크기가 완전···뭐. 라면 국물에 여덟 시간은 불린 듯해 보이는데요?”

“확실하다. 이건 내가 아는 문장이니까.”


네이트는 자기 가슴 쪽을 흘러 지나가는 글자들을 가리켰는데, 김실장은 그게 무슨 문장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피곤했고,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졸리기도 하고, 그냥 누워서 푹 쉬고 싶을 뿐이었다.



***



아영이는 꿈속에서 악몽의 시리즈를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주변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말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에, 꾸었던 악몽들이 도대체 무엇들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흩어져 갔다.


“그렇다면 네이트님께서는 어웨이칸들이 이 모든 걸 계획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증은 없다. 심증만 있을 뿐.”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인천항에서도 여기에서도···그래도 어웨이칸들이 안개 괴수를 불러냈다는 건···너무 황당한 주장 아닙니까? 녀석들에게 그 정도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요?”


아영이는 계속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는데, 말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통해 짐작하건대 네이트와 김실장은 자신의 침대 왼편, 그리고 하루카와 미사야오는 자신의 침대 오른편에 앉아서 침대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왠지 횟집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활어회가 된 것 같아···’


아영이는 이 약간은 희한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계속 가만히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아무튼 피해 상황은 어떤가?”

“네이트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미사야오의 목소리에는 오히려 가문을 찾아온 손님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느낌이 실려 있었다.


“아무튼 여기를 빨리 떠나야겠다.”

“그럼, 사장님. 어디로?···”

“어딜 것 같나, 김실장?”

“··········”

“중국행 비행기를 준비하라고 이미 지시를 내려두었습니다.”


김실장 대신 하루카가 대답했다.


“아! 그 바빌로니아 언어로 쓰인 문장을 해독하기 위해서!”


그제서야 김실장이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가볍게 내리치며 말했다.


“그런데 중국 어디요?”

“그거야. 이제부터 차아영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깨어났으면 일어나라. 발가락 꼼지락거리는 거 다 보인다.”

“··········”


아영이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로 쏟아지는 질문들.


그건 주로 아영이가 오전에 보여준 글자 배리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었기에 그녀는 답해줄 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듣고 있자니 너무 어이가 없어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네이트가 자신이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동하면서 그 능력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자,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론 처음에 찾아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에 그 감정은 억울함과 섞여 갔고, 점점 크기를 불려 나가다가 자신은 어째 이리도 재수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우울함과 만나 결국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승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감정이 폭발한 아영이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아영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리를 조금 내어 주는 게 좋을 듯하네요.”


하루카가 아영이를 달래며 말했다.


네이트는 알았다면서 바로 그 방을 나갔다.


김실장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다가 역시 네이트를 쫓아 나갔다.


미사야오는 얼른 가서 작업을 마무리해야겠다며 휠체어를 움직였다.



***



그날 저녁 시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미사야오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조용히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진수성찬이라는 표현 가지고는 한참 부족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지만, 왠지 그걸 향하는 아영의 젓가락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아영아. 왜 그렇게 못 먹어?”


김실장이 물었다.


“모르겠어요···그냥 입맛이 없네요···”

“어제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그럴 수도. 아무튼 억지로라도 먹도록. 내일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


네이트의 친절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깃들어 있지 않는 딱딱한 말투.


아영이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어차피 내가 위로 자라든 옆으로 자라든 이마트 아저씨랑은 상관없잖아요?!”


그녀는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관있다. 계약된 고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우리 사무실에 있으니까.”

“헐···완전 개짜증이야···고객을 짜증 나게 하는 건 계약 위반 아닌가요?!”

“계약상 우리 사무실은 고객인 너의 신체를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너의 정신 건강까지 책임져야 하는 의무는 없다.”

“··········”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아영이는 그냥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네이트가 내뱉은 다음 단어에 걸음을 멈추고 얼어붙고 말았다.


“중국 이창시.”


네이트의 차분한 눈빛이 아영이의 화가 잔뜩 난 눈빛과 마주쳤다.


그렇게 둘은 눈꺼풀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잠시 서로를 눈싸움하듯이 똑바로 응시했다.


“거기에 네 외할머니가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정신 병원에 갇힌 상태로. 맞나?”


아영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현재 타이머에 남은 시간은?”


그 질문에 아영이는 굳게 쥐고 있던 왼 주먹을 살짝 풀고 거기에 적혀진 시간을 확인했다.


타이머의 시간은 현재 100: 43: 27로 줄어 있었다.


“백사십삼.”


아영이는 짧은 대답과 함께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아영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네이트는 아까 오전에 보았던 아영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이성을 상실하고 생존 본능만 살아 있는 듯한 상처 입은 야수의 눈빛.


그건 안개 괴수가 내뿜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어웨이칸이 되는 자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기는 했지만, 사뭇 달랐다.


어웨이칸들은 파괴의 본능만 살아서 꿈틀대지만, 그 당시 아영이는 오히려 ‘날 내버려 둬!’ 라는 자가 보호 본능이 강했으니까.


- 뭐랄까? 누군가가 나를 무의식이라는 공간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대신 나서는 듯한 그런 기분?


아영이는 분명 그렇게 표현했었다.


‘빙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면 혹시 이중인격 같은 것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벽히 똑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아영이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만약 아영이가 그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그때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네이트는 잠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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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남이 나를 걱정한다? 25.05.15 27 1 12쪽
61 내가 굳이 그런 상황에 휘말릴 이유가 있나? 25.05.14 26 1 12쪽
60 연애 사업을 하시는 중이다? 25.05.13 26 1 12쪽
59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25.05.12 26 1 13쪽
58 굉장히 물렁해지셨군요? 25.05.11 26 1 14쪽
57 네가 괜히 건방지게 깐죽거려서 그런 거 아냐? 25.05.10 27 1 12쪽
56 실력 향상에 도움이 좀 되었나? 25.05.09 2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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