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별빛 찾는 용사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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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꽃
작품등록일 :
2025.02.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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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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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7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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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내가 미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를 놓고 벌어진 설전은 그렇게 어이없이 끝났다.

할아버지께서 밀던 탐험가와 아버지께서 밀던 기사 모두 어머니의 한 마디 앞에 무력화되었다.


‘직업이 왜 필요하지? 재산 관리법이나 배우면 되는 게?’


진짜로 저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설전을 벌이던 두 분 귀에는 거의 저 수준에 가깝게 충격적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역시 전생으로 치면 건물주도 ‘따위’ 취급할 로열 패밀리라서인지, 어머니의 시야는 남달랐다. 사실 약이나 도박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죄다 탕진하고 말아먹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물려받은 재산 까먹기만 하는 것보다는 건실하게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게 뿌듯하고 모양이 좋겠지?


그렇지만 당장의 일은 아니니까 우선 지금 상황부터 해결해야겠다.

일단 어머니께서 ‘정리’해버린 뒤에 찾아온 이 어색한 침묵부터 끝내야 한다,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재산 관리법은 나중에 어머니께서 적당하다 싶은 때 배우면 되겠네요. 직업에 관해서는 두 분 말씀 잘 들었으니까 저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당장 결론내기 쉬운 일도 아니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요?”


“ “아니, 다른 일이라니?” ”


두 분 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반문하셨다. 그런 게 있기는 하냐, 상상도 못한 발상이란 생각을 하고 계신 게 목소리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일단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도 여쭤보고 싶고···”


“안 돼!”


아니, 할아버지 의견은 들으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의견은 안 듣고 진로결정하겠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라? 그런데 왜 두 분 목소리가 아니지?


안된다고 단호하게 선언한 분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였다.


“두 분은 사적으로 내 부모님이고 네 외조부모님이지만, 공적으로는 황제와 황후시라는 걸 명심하렴, 바토르. 가벼운 질문 하나로, 네 뜻과 무관하게 네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랑 연애결혼까지 하셨잖아요. 그것도 허락해주신 분들이 저에게 굳이 강제로 시킬 만한 일이 있을까요?”


어머니의 말씀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지만, 가족들 앞에서도 차마 대놓고는 하기 어려워서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도로 꾹 삼켰다.


“차라리 두 분이 정말 그런 분들이었다면, 이모들과 외삼촌이 다툴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이 말 한마디, 해보고 싶었습니다···

일침 한 번 하면 속이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하게요!


하지만 참아야 하느니···

나는 참을 수 있다! 나는 척수반사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내 입은 뇌가 통제한다!


환생하며 전생에 놔두고 온 줄 알았던 내면의 사이다패스가 도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참고 또 참아가며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전생보다 자제심이 더 생긴 걸까?


···1년 뒤에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예 대놓고 노빠꾸로, 아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들에 외삼촌까지 일가붙이들 다 모인 앞에서 들이박으시더라. (* 14화, 15화 참조)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나서 이 때의 일을 다시 생각해자,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닌데 혼자 설레발을 떤 것 같다고 감상이 바뀌었다.


물론 이 때는 미래에 벌어질 일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입에서 헛소리가 튀어나가지 않게 참을 뿐이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을 되새기는 사이, 강제로 시킬 일이 뭐가 있겠냐는 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답변해주신 분은 어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셨다.


“바토르, 이건 네 어머니 말이 맞다.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비관적인 가능성을 고려하고 조심하는 게 낫지.”


“할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세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자리를 옮기자꾸나.”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일하는 사람들도 떼어놓고 우리끼리만 자리하면서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도 다소 나아졌다. 식탁 위의 그릇들을 치워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겠냐는 할아버지의 너스레. 속을 가라앉혀주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기분 좋게 달달한 맛의 디저트. 거기에 약간의 시간이 만들어준 머리를 식힐 여유까지. 소소한 점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더 나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가 푸딩 종류로 보이는 디저트를 한 숟갈 떠서 음미하는 동안, 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일과 내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해주셨다.


“너희 어머니, 3황녀 전하의 혼사가 그냥 연애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이뤄진 것 같으냐? 천만에. 그건 얼빠진 젊은이들이 넋을 빼놓고 듣는 음유시인들 연애시에나 나올 소리고.”


‘엘 스라마흐 같은 유명 음유시인이 공연하면, 어르신들도 잔뜩 와서는 눈물콧물 쏙 빼가며 듣지 않냐’며 지적하고 싶은 걸 참느라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렸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할아버지께서 ‘요즘 젊은이들’을 폄하하신 건지, 음유시인들을 폄하하신 건지, 둘 다 폄하인지 모르겠지만, 그 편견은 추후에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여쭤보도록 해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 어머니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연애결혼이라는 목적에 접근 하는 노력을 했다는 얘기다. 두 분이 ‘황제’와 ‘황후’ 자격으로 생각해도, ‘3황녀’의 연애결혼을 인정하도록.”


“정말인가요, 어머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지금 셋이 다투는 걸로도 골치아픈데, 나까지 끼어서 넷이었으면 상황이 얼마나 더 복잡했겠니?”


어머니께서는 이 자리에서 어른들의 사정인지 높으신 분들의 사정인지를 시시콜콜 설명할 마음은 없으신지 그냥 저렇게만 설명하셨다. 어쨌건 개략적인 설득 방법은 알 것 같았다.


“억지로 정략결혼 시켰다가 어머니께서 이판사판으로 나오는 것보다, 연애결혼하게 두고 이모들과 외삼촌 사이 갈등에서도 거리를 두게 하는 게 깔끔하다는 뜻이죠?”


“그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다만, 얼추 비슷하다고 이해해도 될 것 같구나.”


그런데 뭔가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유를 모르겠으니 찝찝하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아까 답변을 듣지 못한 질문을 다시 해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그럼 아까 여쭤봤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그렇게까지 제가 미래에 할 일이라며 강제로 정할 만한 게 있을까요?”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세 분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잠깐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에게 발언 기회를 양보하는 것 같더니, 어머니께서 공중에 마력으로 된 글씨를 띄우셨다.


[새로운 관료는 언제나 환영이야!]


관료? 그거 공무원 아닌가?

그럴 듯한 감투 하나 받으면 오히려 좋은 게?


환생 후에는 전생의 소시민 라이프와는 전혀 다른, 신분제 최상위 티어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 관료라고 해도 당연히 고위직에 낙하산 투하 해주시겠지?


환생하면서 양심도 떼어내버린 거냐고? 무슨 맹장수술도 아니고 그럴 리가.

신분제 사회니까 신분제 룰에 적응한 겁니다만?


내가 그다지 설득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자,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부연설명 하셨다.


“아직 납득을 못 한 것 같구나. 괜찮은 자리 하나 받으면 좋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지?”


척 보면 척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실이라 반박할 수가 없네요.

불리할 때는 침묵하며 시간을 끄는 게 미덕. 나는 뭐라 말하는 대신 그냥 푸딩을 마저 먹는데 집중했다.


“잘 생각해 보거라. 두 분 폐하께서는 어떤 덕목을 지닌 인재에 가장 목말라 하고 계실까?”


“글쎄요, 국내의 어수선한 상황에도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인재?”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내저으셨다. 어째 눈빛이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는 눈빛인데···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그보다도 ‘믿을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계실 거다.”



“믿을 수 있는 인재··· 능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능력이 믿음직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능력은 미지수더라도, 충성심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여전히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그렇군! 그런가, 그런 거였나···

아까 이래서 어머니 말씀을 들을 때 위화감이 느껴졌던 건가.


어머니께서는 본인 몫의 푸딩을 다 드셔놓고서는, 빈 그릇을 아버지의 것과 슬쩍 바꿔놓고 아버지 몫의 푸딩까지 드시고 계셨다!


분명히 아까 바닥을 드러냈던 푸딩이 다시 리필되는 마법이 벌어진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푸딩 그릇 한 번, 어머니 얼굴 한 번.


“어머니, 더 드시고 싶으셨다면 그냥 밖에 사람을 불러서 시키시지 그러세요··· 사람 오가는 동안 입조심을 한다고 해도 겨우 몇 분 늦어지는 정도일텐데.”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너희 아버지는 단 맛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잖니. 그렇지만 이만큼 정성을 들인 디저트인데··· 손도 안 대고 돌려보내면, 요리사가 너무 실망하지 않겠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도 어머니를 편드셨다.


“나야 디저트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니까. 당신 입맛에는 그렇게 맛있다면 얼마든지 더 먹어.”


“억지로 먹는 것보다는 맛있게 먹는 게 낫지. 암, 그렇고말고.”


이게 왜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을 들춰낸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 거지··· 하긴 뭐 두 분이 서로 양해하셨으면 끝난 일이니까. 그렇지만 결혼한지 십수년 된, 나 같은 11살 자식도 있는 분들이 아직도 이렇게 꽁냥대다니··· 왜 여기가 판타지 세계인지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버지께서는 잠시 푸딩으로 향했던 내 정신을 다시 아까 하던 대화로 돌려놓으셨다.


“왜 두 분 폐하께서 충성심 있는 인재를 가장 절실히 원하실까? 물론 군주라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 전에도 이야기했던 게 있지?”


“후계 분쟁이 여기서도 문제군요. 관료들이 대놓고 딴마음을 품지 않더라도 문제란 말씀이시죠? 예를 들어 객관적인 보고나 정책을 내놓으려는 노력이 사라진다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보고를 왜곡하거나 편향된 정책을 내놓는 게 쌓이다 보면, 관료들을 통해 제국의 현황을 파악할 수 밖에 없는 두 분 폐하의 현실인식부터 왜곡될 테니까요.”


“그래. 그럼 이제 두 분이 너를 반강제로라도 관료로 키울 동기가 충분하다는 건 이해하겠지?”


혈연을 통해 황실과 운명공동체로 엮여있고, 3인이 벌이는 후계분쟁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 셋도 굳이 무리해가며 끌어들이거나 적대하려 들지 않을··· 이렇게 보니 충분한 수준을 넘어서 이유가 넘쳤다.


“그래도 그 정도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돕는다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회의할 때마다 네 이모들과 외삼촌의 3개 파벌이 서로 다툴 텐데, 그걸 누가 교통정리하고 끝까지 떼쓰는 거머리들한테 싫은 소리를 소금처럼 팍팍 뿌려서 정리해야 할까?”


아, 역시 충신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네요.

어쩌면 관료라는 직종부터가, 저처럼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직업이 못 될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팍팍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할 말을 잃었을 때는 뭐다? 주제를 바꿔야 한다.


“아, 참. 할아버지, 점심 먹기 전에 말씀하셨죠? 마법 시전자의 음성을 정자체로 받아쓰는 마법은 있는데, 필기체로 써주는 마법은 왜 없는지 설명해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 17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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