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감녕.

“아무튼 이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장위는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장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가족의 생사가 걸렸는데, 어찌 이렇게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이냐?”
“유장은 절대 가족을 해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리한다면 우리에게 복수와 독립의 대의명분을 주는 셈이니까요. 형님. 약하게 마음먹지 마십시오. 그는 원래 유약한 성격인데,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이런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장위의 강한 발언에 장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생각해보니 장위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그럼 이 모든 게 익주목의 뜻이란 말이냐?”
“그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유장은 절대 이런 생각 못 합니다. 아마 익주목은 두 아들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테니, 당분간 쉬면서 유장에게 대리를 맡긴 것이지요. 그리고 한중이 불안하니 이런 얄팍한 계책을 쓴 겁니다.”
그제야 장로는 훤히 그림이 그려졌다. 그동안 유장이 주관한다고 생각하니 헷갈렸는데, 유언이 뒤에서 유장을 조종한다고 생각하자, 의문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일단 버티자. 이 말이냐?”
“예. 성도현에서 고생할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병권을 내놓는다면 결국 한중군을 빼앗길 겁니다. 어떻게 얻은 한중군인데, 그에게 빼앗길 순 없잖습니까? 그리고 어머니는 익주목의 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절대 가족은 해를 입지 않을 겁니다.”
장로는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는 장위의 어깨를 다독여 준 후, 황권을 찾았다. 그리고 냉정하게 유장의 제안을 거부했다.
“허어,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신중히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권을 달라는 건 지나칩니다. 이 사람은 한중태수로써 여전히 익주목을 충심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저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것 같아, 불쾌하군요.”
장로의 발언 수위는 장위를 만난 후, 매우 세졌다. 황권은 당혹스러웠다. 그가 머리를 굴려 설득하려고 할 때,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십시오. 더는 황 주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단호한 장로의 태도에 황권은 설득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좋은 대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알아두십시오. 익주목을 향한 이 사람의 충성심은 변함이 없다는 걸.”
“분명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치소를 나온 황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장로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한중태수는 익주목을 두려워할 뿐, 익주목 대리는 가볍게 보고 있다.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한 번도 익주목 대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전쟁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로구나. 익주목 대리께서 물러날 의향이 없어 보이는데.’
황권은 전쟁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유언이 여러 반란을 진압하고 간신히 안정시키면서, 익주는 평화를 누리는 중이었다. 만약 한중군 토벌이 진행되면, 반 유언 성향이 강한 건위군과 파군에서 반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어서 돌아가야 한다. 익주목 대리께서 많이 단호해졌으니, 올바른 결정을 하시겠지. 난 그분이 현명한 결단을 내리도록 진언을 올려야 해. 그게 최선이다.’
황권은 서둘러 한중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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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현.
감녕은 유장의 부름을 받고 성도현에 도착했다. 조위는 고집불통인 감녕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딸랑딸랑.
감녕의 허리춤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내자, 조위는 참지 못하고 소릴 질렀다.
“경망하게. 이곳에서는 방울을 떼게.”
“누가 보면 병조종사가 아니라 익주목 대리인 줄 알겠습니다.”
“내가 익주목 대리는 아니더라도, 네놈의 관직은 언제든 떼어낼 수 있다.”
“그러시든지요.”
감녕은 조위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감녕은 그를 지나쳐 유장 치소로 향했다. 그는 조위를 싫어했다. 유언이 익주를 통치하며 토박이 호족의 반란을 진압했는데, 그때 조위는 익주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유언의 편에 서서 반란을 진압했었다.
“익주목부를 싫어하는 자네가 어째서 익주목께서 내린 현위를 받았으며, 어째서 순순히 익주목 대리의 부름을 받고 성도현까지 왔는가?”
조위가 감녕의 등에 대고 비난하자, 감녕은 우뚝 멈춰섰지만, 뒤돌아서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궁금해서 왔습니다. 이제껏 성도현에서 이 감녕에게 관심을 가진 분이 없었으니까. 익주목께서도 파군을 안정시키려 여러 호족에게 관직을 내렸고, 난 그중에 한 명이었을 뿐이오. 그러니 익주목도 내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하는데, 그분의 아들인 익주목 대리께서 왜 관심을 기울일까? 그게 궁금할 뿐입니다.”
감녕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저런 건방진 놈.”
조위는 감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자를 성도현으로 부른 유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익주에 인재가 많은데, 굳이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감녕이라니. 그가 익주목 대리였다면, 감녕을 부르긴커녕 그의 관직을 삭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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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치소.
“강주현위 감녕, 익주목 대리를 뵙습니다.”
감녕은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유장은 군례를 받은 후, 그를 살폈다. 8척이 넘는 키와 부리부리한 눈,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야생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내였다. 장임은 거칠지만, 어느 정도 통제된 느낌이라면, 감녕은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와 닿았다.
‘이 자는 이 시대보다는 현대의 삶이 더 어울리겠군.’
“반갑소. 이리와 앉으시오. 차 한잔하시겠소?”
“시원한 냉수 주십시오.”
“그럽시다.”
유장은 감녕에게 냉수를 따라 건네준 후, 차를 따라 앞에 놓았다. 감녕은 그런 유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연유로 소인을 불렀습니까?”
다분히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감 현위는 천하를 어찌 보시오?”
“이제 겨우 익주목 대리에 올랐는데, 천하를 논하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습니까?”
“아니오. 천하가 어지러워 익주로 많은 이들이 피난 오는 상황이오. 장안에서는 이각이 폐하를 겁박하고 있으며, 중원은 여러 영웅이 힘겨루기하고 있으니, 광무제의 혼란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소. 이리 천하가 어지러운데, 어찌 천하를 논하지 않고 장부라 할 수 있겠소?”
한이 멸망하고, 잠시 신이 세워지며 극심한 혼란이 닥쳤는데, 이를 광무제가 통일하여 안정시켰다. 유장은 이를 광무제의 혼란기라 표현했다.
감녕은 유장의 준엄한 일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아는 유장의 성정은 유약했고, 천하 정세를 논할 그릇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익주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인데, 자신 있습니까?”
“당연히.”
유장은 싱긋 웃고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익주를 안정시키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그도 알 수 없었지만, 강한 자신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언이 안정시켜 놓았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익주를 안정시키지 못한다면 어찌 천하를 논하겠는가?
“그럼, 소장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동주인을 안정시키고, 장정을 선발하여 군대를 창설할 생각이오. 성도현에 머무르면서 일군을 맡아주시오. 장임이란 장수가 먼저 와 군을 조련하고 있소.”
“장임이라. 혹 가사도 현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얼마 전까지. 지금은 사마요. 그를 아시오?”
“익주에서 소문난 맹장입니다. 가문이 한미하여 승진을 못 하고 촌구석으로 좌천되었지요.”
감녕은 눈빛을 반짝이며 유장을 바라보았다. 흙 속의 진주인 장임의 가치를 알아보고 발탁한 유장이 새롭게 보였다. 그저 조위를 비롯한 중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익주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한중태수는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그는 절대 익주목 대리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성도현에 그의 가족이 있소. 그리고 병권을 내준다면 모든 걸 내줄 의향이 있소. 주부 황권을 보냈는데, 그가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소. 일단은 평화롭게 협상하는 수밖에.”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랬으면 좋겠소. 만약 나를 거부한다면 그땐 전쟁을 벌여야 하니까.”
“거부하면 죽일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유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거부하는 자를 그대로 놔두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장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토벌군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버릇없이 굴어 죄송합니다. 익주목 대리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고맙소. 사마에 임명하겠소. 그리고 나도 한 가지만 묻겠소.”
“말씀하십시오.”
“만약 내게 실망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소?”
“관직을 내던지고 낙향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마음으로 내 뜻을 받아들였소?”
“희망이 보였습니다. 익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익주목 대리에게서 느꼈습니다. 소장은 강력한 힘을 숭상합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대답하는 감녕을 보며 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가 역사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유장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장으론 안된다고 생각해서, 형주자사 유표와 손잡고 난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긴 역사에서 유장은 나약하기 그지없었으니, 그의 판단이 틀렸다곤 볼 수 없지.’
역사 속의 유장은 초반에 매우 고생했다. 장로가 독립했을 때 토벌군을 보냈지만 실패했고, 감녕 등의 반란은 간신히 진압했지만, 뒤에 조위의 반란 때는 익주를 빼앗길뻔했다. 그때 동주인이 끝까지 유장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익주는 조위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래의 반란자가 유장의 앞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병권을 쥔 채 성도현에 머무르는 중이고. 참 재밌는 현실이었다.
“대답이 되었네.”
“고향에 따르던 무리가 있는데,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워낙 거친 놈들이라 보기 불편하실 테지만, 전투를 벌인다면 매우 쓸만합니다.”
“데려오시오.”
유장은 시원하게 승낙했다.
“그럼 임강현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감녕은 유장에게 군례를 올린 후, 고향 임강현으로 사람을 보냈다. 임강현은 파군 소속으로 장강 연안에 있는 현이었다. 감녕이 물러나자, 유장은 생각에 잠겼다가 동주병을 통솔하는 장임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범종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 확실히 장임은 용장이었다.
“강주현위 감녕이 이곳에 왔소. 고향의 무리가 이곳에 올 텐데, 그에게도 동주병을 맡길 생각이오. 참 그에게 사마를 제수했소.”
“알겠습니다. 감 사마는 소장이 잘 아는데, 거칠지만, 매우 훌륭한 장수입니다. 익주목 대리께 정말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친분이 있다니 다행이구려. 이것을 오 교위에게 전해주시오. 훈련 및 양성은 장 사마와 감 사마 몫이지만, 병력 선발은 오 교위 몫이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임은 충직하게 군례를 올린 후, 유장의 친서를 받아 물러났다.
장임이 밖으로 나오자, 감녕이 고향으로 사람을 보낸 후, 기다리고 있었다.
“장 사마, 반갑소.”
“반갑소. 이제 우리 익주를 위해 노력합시다. 그런데 어찌 남으셨소?”
“의외요?”
“아마 성도현의 모두가 그리 생각할 거요.”
“난 입으로만 떠드는 자를 싫어하오. 대답이 되었소.”
“되었소. 갑시다. 내가 안내해줄 테니까.”
장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녕을 군영으로 안내했다. 힘을 숭상하는 감녕다운 발언이었다. 아마도 유장에게서 그걸 느꼈을 것이다. 장임도 그러했으니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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