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아침 해가 떴다.
남은 술은 고작 한 병.
19병 중 대부분은 진우가 들이켰다.
술고래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술에 절어 침대에 뻗기 직전이었다.
"으으. 이 미친 놈. 어떻게 저걸 다 마시고 멀쩡하냐. 우욱."
나는 헛구역질을 했고 진우는 혀를 끌끌 찼다.
"또 토 해?"
고개만 끄덕이고 화장실로 직행.
밤새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우웨엑!"
"난리 친다. 진짜."
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러며 막 화장실을 나온 나에게 술잔을 건넸다.
"방금 뱉었는데 또 마시라고?"
"원래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술잔에도 술을 채운다.
미친 놈이다.
질색하며 말했다.
"무슨 성장이야. 어차피 이게 마지막 술인데."
"어허. 또 만나서 마셔야지. 그러니까 한 잔 해."
"...입만 더 헹구고 올게."
"그래."
진우가 대답하며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미친 놈."
한 마디 뱉고 화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
"으윽."
속이 뜨겁다.
명치를 문지르자.
"우욱."
토가 쏠린다.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우왜애액."
위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냈다.
변기를 잡고 있길 10분 째.
진우가 일어났다.
놈이 멍한 눈으로 지껄였다.
"야, 비켜. 오줌 싸야 돼."
"우왝. 넌.... 멀쩡해?"
"당연하지."
멀쩡한 기색으로 배를 긁고 있다.
다시 토했다.
"우왝."
"야, 비켜. 오줌 싸야 된다고."
"우왜애애액."
대답 대신 토가 나왔다.
"아오, 이 연약한 새키."
진우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바지를 챙겨 입었다.
"잠깐 나갔다 온다."
"우왜액."
구토로 대답했다.
"아오. 더러워."
"우왜액."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진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여전히 구토 중이었다.
"아직도 토하냐."
진우가 한숨을 뱉으며 화장실로 들어와 내 등을 두드렸다.
조금 남아있던 토사물이 우왝 하며 튀어나왔다.
"아오, 더러. 아오, 더러."
아무리 더러워도 그렇지 굳이 두 번이나 말 해야 하냐.
그런 생각만 할 뿐 말할 수 없었다.
아직 토사물이 남아있었다.
"우왝."
"헹구고 나와. 좋은 거 준비해왔다."
고개를 끄덕이고 변기에서 얼굴을 들었다.
"아오, 더러."
진우가 진저리치며 화장실을 나갔다.
입을 몇 번이고 헹궈 토 맛을 전부 지워냈다.
"야, 먹어."
화장실을 나오니 진우가 곧장 숟가락을 건넸다.
식탁을 내려다보니 뼈다귀 해장국이 차려져 있었다.
진우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물었다.
"넌 왜 멀쩡하냐?"
진우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훗. 난 술고래니까."
"....괴물 자식."
"뭐, 임마? 간이 튼튼한 거야. 그리고 네가 약한 거라고."
"아니, 혼자 5병은 마신 거면 센 거 아냐?"
"나머지 15병은 누가 먹었는데?"
"넌 이제부터 사람 아니야."
"헛소리 한다. 또. 어떻게 아직도 술이 안 깼지? 빨리 이거나 처먹어."
"...."
묵묵히 앉아서 숟가락을 움직였다.
해장국이라는 이름 답게 속이 싹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걸음을 옮기고 중천에 떠 있던 빛이 도로 아래로 떨어진다.
하늘이 어두워진다.
"이제 갈 거지?"
진우가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가야지."
몸을 일으킨다.
진우가 물었다.
"술은 다 깼고?"
"그래. 하루 지났는데 깨야지."
"난 취하지도 않았는데. 킥킥."
"네가 고래만 한 간을 가져서 그런 거야."
"그래. 그래."
진우가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응."
"뉴스에서 보자."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뉴스에 나오는 게 절대 좋은 일은 아닌데.
그럼에도 진우는 나를 보고 싶다는 뜻이니까.
그가 덧붙였다.
"이왕이면 현실에서 보는 게 더 좋고."
"그래. 노력해 볼게."
파직, 온 몸에 전류를 흘린다.
"잘 가라."
"잘 있어라."
우리의 작별이 사이에서 얽힌다.
번개화. 나는 번개로 화했다.
씁쓸한 눈빞의 그를 바라보다.... 눈을 돌리고.
파직, 해야 할 일을 향해 몸을....
번개를 날렸다.
아오, 속 아파.
해장국의 효과도 잠시.
너무 날아다닌 탓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숙취가 찾아 왔다.
번개 제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번개가 뒤죽박죽 움직이더니 급기야 투명화 상태도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투명한 몸이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감옥에 처들어가면 내가 맞아 죽겠는데?
도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처음 마신 술이라 5병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다섯 병이면 작은 것 같긴 한데....
내 위를 생각하면 다섯 병은 많은 게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다른 사람 주량이랑 비교할 게 뭐야.
어차피 이제 마실 일도 없을 텐데.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었다.
오늘 일 하는 건 불가능이다.
타이밍은 참 좋은데.
스산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
감옥 위의 벽을 부수고 침입하면 손쉽게 일을 벌릴 수 있는 시간.
경험 상 이 시간이면 경찰들은 퍼질러 자고 있다.
일어난다 해 봤자 야간 서는 한 명이 전부.
위치도 알고 있으니 경고음이 울리는 동시에 기절 시킬 수 있었다.
나에겐 너무나 쉬운 일.
내가 취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으윽."
속이 쓰리다.
도착지를 변경했다.
감옥 근처의 숲에 숨었다.
나무 위로 올라탄 나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여기 나무는 잎이 울창해서 푹신하네.
"우왜애액."
나무 밑으로 음식물을 뱉어냈다.
왜 토가 나오냐.
전부 해장한 거 아니었어?
자연스레 토사물이 보인다.
거기엔 삼 시 세 끼로 먹은 해장국이 고스란히 보였다.
처참하고 더러웠다.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까무룩 기절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쌩쌩하다.
이틀이면 다 회복하는구나.
다행이다.
파직, 손끝에 전류를 세웠다.
꼿꼿하게 아주 잘 선다.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쉬고 나니 계속 쉬고 싶어진다.
게으른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다시 일 해야지.
내 목표는 세상의 모든 범죄자들을 없애는 것.
한 번 더 마음을 다잡는다.
번개로 화하고, 파직, 하늘로 올랐다.
벽이 여기였나.
이제 네 번 째.
감각으로 벽의 위치를 가늠하기 충분했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번개화를 풀고 주먹에 강화를 두른다.
그리고 일격.
쿠웅.
묵직한 진동이 감옥 전체를 흔들고.
쩌적, 투명한 벽을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 번개.
찬란한 번갯불이 감옥을 뒤덮었다.
이래 봤자 봉인 금속에 닿은 부분은 소멸한다.
죄수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얼마 없다.
이건 단순한 선언.
내가 등장했다는, 그리고 너희를 벌하겠다는, 그런 선언.
빛을 뿜으며 광장으로 내려간다.
시선을 내리니 시꺼먼 머리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흠."
그래도 광장에 있는 인간은 죽을 줄 알았는데.
순간적으로 수갑을 들어올려 막은 듯 했다.
벽이 깨졌을 때 반응한 건가.
이건 좀 의외네.
톡, 천천히 땅에 내려섰다.
"너 이 자식!"
땅에 내려서자마자 경찰이 능력을 겨눴다.
"의미 없는 건 다 알지 않아?"
인정하는지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또 여기에 처들어 온 거냐."
"간단해."
어깨를 으쓱였다.
"바깥에 있는 쓰레기는 전부 치웠으니까. 이제 안 쪽을 치워야지."
"뭐, 이딴."
"미친 놈이군."
"이 개 같은 놈."
그들이 갖가지 욕을 쏟아냈다.
나는 귀를 후비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됐고. 여기가 임시 보호소 역할도 한다며. 그래서 그 사람들은 다른 죄수들이랑 같이 있어? 아님 따로 배치했나?"
"네가 알아서 뭐하게."
"난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한 번 씩 나름의 기회를 줬어. 가능하면 그 사람들한테도 주려고. 여기 갇힌 사람들은 어차피 무기 징역이니 기회 자체가 없지만 그 사람들은 원래 사회에 살 기회를 한 번은 얻은 사람들이잖아? 그 기회를 나 귀찮다고 버리긴 양심이 찔려서."
"너 같은 놈이 양심을 챙긴다고?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
살짝 짜증.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경찰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범 ,1급 범죄자.
나도 그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서 더 열이 받는 건가.
미간을 풀고 물었다.
"그래서. 걔네들 안 풀 거야? 그럼 다 죽이고. 솔직히 난 상관 없어. 내가 구별하긴 힘들어서. 너희가 싫다면 포기할 거 거든."
"쯧."
그들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시간은 얼마나 줄 수 있지?"
아무래도 그가 제일 계급이 높은 듯했다.
경찰이 은근히 이런 협박이 잘 통한단 말이지.
인심 쓰듯 말했다.
"음. 십 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쳇."
그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넌 상선에 보고하고 나머지는 임시 보호 인원들 대피시킨다. 빨리 해."
"정말입니까?"
"그래. 아님, 뭐. 걔네 다 죽일 거야? 1급 범죄자만 있으면 모를까 2급, 3급도 있어. 걔들 죽으면 더 골치 아파져."
"으.... 그건 그렇지만."
"알겠으면 빨리 가. 그리고."
그가 옆 사람에게 눈짓했다.
옆 사람이 얼굴을 구겼다.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일단 경고를 해 본다.
"이상한 수작 부릴 생각 마."
"십 분이다. 그럴 시간이 있겠냐."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너흰 무능하니까."
으득.
그가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좀 도와줄게."
"뭐?"
번개화를 풀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벽으로 이동했다.
벽에 손을 대고 물었다.
"여기 사람 있나?"
"당연히 있지."
뭔 뚱딴지 같은 소릴 내뱉냐.
그가 얼굴로 말했다.
혹시 모르니 물었다.
"그래도 임시 보호 인원은 없지?"
툭툭. 벽을 두드려 강도를 확인했다.
"너.... 지금 뭐 하려고...."
"뭐 하긴. 나가려면 큰 길이 있는 게 편하잖아."
팔에 힘을 실었다.
온 힘을 다해 벽에 주먹을 날렸다.
콰앙, 굉음과 함께 벽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미친 놈이!"
그가 소리를 질렀다.
무너지는 봉인 금속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렸다.
"봉인 금속은 약하잖아? 살 놈들은 살겠지."
뭐, 죽어도 된다.
어차피 1급 범죄자는 내가 죽일 놈들이다.
오히려 할 일이 줄어서 좋지.
무너지기 시작한 벽은 그 주변까지 균열을 일으켰다.
쿠구궁.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으아악!"
한동안 벽이 무너지는 소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1키로 정도 되는 길이 뻥 뚫렸다.
"어때? 여기로 내보내면 꽤 빠르게 내보낼 수 있지? 십 분이면 넘칠 거 같은데?"
경찰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무전기를 꺼내 동료들에게 전했다.
"방금 그 굉음은 들었겠지. 남궁우가 길을 뚫었다. 보호 인원 전부 여기로 데리고 와. 3번 구역이 전부 붕괴했으니 거기로 내보낸다."
웅성대는 경찰의 목소리.
그가 무전을 끊었다.
"정말 멋대로 일을 벌이는군."
"그래도 나쁘진 않잖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