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솔직히 말하겠네. 난 자네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궁금해. 형의 죽음. 그걸로 끝내기엔 자네는 너무나 힘든 길을 가고 있으니까. 힘들고 또 험악하지. 남는 건 단우와 비견되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는 범죄자. 자네가 칭하는 쓰레기가 되는 것 뿐."
"...."
다 맞는 말이다.
나도 자각하고 있던 얘기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네. 자네의 목표가 쓰레기일까. 그럴 리는 없지. 자네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착실한 학생이었으니까."
눈살을 찌푸렸다.
시답잖은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바로 본론이라기엔 서론이 긴데요."
"이게 본론이네. 내가 봤을 때 자네는 꼭 멈추고 싶어 하는 것 같다네. 본인 스스로 못 멈추니 다른 사람들이 멈춰주긴 바라고 일을 벌리는 거지."
"...."
"그게 아니면 영원히 숨을 수 있는 자네가 여기 이렇게 있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야."
그는 정말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그건 틀렸다.
아주 완벽히 틀렸다.
난 이 일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걷기 시작한 길.
내가 핏물에 뒤덮여도 나는 이 길을 관철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내가 잡히며 그는 완벽히 오해를 한 듯 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오해를 풀어줄 이유는 없지.
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만 하면 되니까.
그가 완전히 틀려준 덕분에 긴장이 탁 풀렸다.
내 그런 속도 모른 채 대륙 통치자는 말을 이었다.
"자네의 그 바램 내가 이뤄주겠네."
"...."
아니, 그거 내 바램 아닌데.
"어쨌든 자네도 죽고 싶지는 않잖나."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대륙민들은 널 살려두고 싶지 않을 거야. 자네를 살려주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지."
그가 씩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펼친 손을 흔들었다.
"그렇기에 자네에게 딱 맞는 두 번째 제안을 가져왔지."
첫 단추부터 완전히 틀어졌는데.
일단 들어는 보자.
"그게 뭔데요? 구체적으로."
"자네의 번개 능력. 그걸 이용해 대륙에 전력 공급을 해주면 좋겠네. 물론 월급 포함 숙식 제공. 그리고 기타 편의 사항까지 들어주겠네. 자네가 지켜야 할 건 하나 뿐이네. 우리가 지정한 구역 밖에서 나가지 말 것."
"......제가 마음 대로 능력을 사용하면요?"
"아, 물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안 되네. 그건 자네 뿐만 아닌 시민들에게도 적용하는 것. 모두에게 적용하는 규칙은 당연히 자네에게도 적용해야지. 즉, 범죄 행위
에 구역 밖으로 나가는 걸 금지한다. 이걸 추가한다고 생각하면 되네."
으음. 납득이 되는 제안이다.
유곡은 자원이 풍부하다.
유곡이 4대륙 중 제일 부유한 대륙인 이유가 그것이다.
거기에 나라는 전력 자원까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그걸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고, 그만큼 다른 자원을 활용해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윈윈인 제안이다.
나는 잃어야 할 목숨을 보전하고 이후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 받는다.
그리고 유곡은 더욱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대륙민의 불안도 잠재울 수 있다.
뭐, 날 가둔 뒤에 나를 사형했다, 알릴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갇힌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물론 그가 생각한 첫 단추가 맞으면 말이다.
아쉽지만 그의 생각은 첫 단추부터 틀렸다.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도 없고 그들은 내 목숨 줄을 붙잡지도 못 했다.
"왜 그러지? 표정이 별로 안 좋군. 두 번째 제안이 마음에 안 드나. 범죄자에 대한 처우로 이 정도면 파격적이네."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냥...."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 말했다.
"제가 갇히면 도시에서 날뛰는 다른 범죄자는 어쩌려고요?"
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건 자네가 걱정할 거리가 아니네. 경찰이 생각할 문제지. 그리고...."
그가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 자네 때문에 군대도 드러났으니 말이네. 이제 그들도 치안에 힘 쓸 예정이네."
"그런 생각 치고는 한동안 범죄자는 손도 안 댔잖아요?"
"자네 탓이잖나!"
화들짝.
갑작스런 그의 노기에 깜짝 놀랐다.
그가 분노한 채 말을 이었다.
"자네가 유명해지며 그리고 감옥까지 부수며 자네를 처리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었네! 그런데 하필 상대가 역사나 신화에 나오는 신화급, 다른 범죄자까지 신경 쓰면 그 때는? 자네가 범죄자 말고 시민들에게 손을 펼치겠다 마음 먹으면, 그 때는 어떻게 막지!?"
으득.
그가 이를 갈고는 다시 소리쳤다.
"그 때는 최악이다! 최악을 막기 위해선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
"...."
맞는 말이네.
할 말을 잃었다.
으득, 그가 다시 한 번 이를 갈았다.
"젠장. 너무 흥분했군. 아무튼 제안은 신중히 생각하도록. 미안하지만 시간은 얼마 못 준다. 이제부터는 날뛸 범죄자 놈들을 해결해야 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그가 등을 보이며 말했다.
"....뭐지?"
"범죄자들이 벌써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나요?"
그가 인상 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그걸 알아서 어쩌려고. 혹여나 하는 말이지만 범죄자를 대신 잡아주겠다는 둥 수 쓸 생각 말게. 어떤 이유든 자네의 수갑을 풀어줄 생각은 없어.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알고 있어요. 그냥 궁금해서요. 내가 지금껏 한 일이 범죄자를 틀어 막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그가 떫은 얼굴로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지. 악수이고.... 다른 사람에겐 절대 권장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나는 씩 웃었다.
"그래요. 그럼 됐어요."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보다.
대륙 통치자까지 인정할 정도면 말이다.
그가 멍하니 나를 보더니 몸을 돌렸다.
"뭔가 이상하군. 그만두고 싶어서 잡힌 거 아니었나?"
"....!"
잠깐. 아니겠지?
설마 이런 짧은 대화에 바로 의문을 품는다고?
그는 의뭉스럽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아주 작게, 나지막이 중얼댔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건가?"
그건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도 못 들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귓속말이었다 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그런 작은 목소리.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오감이 탁월하다.
신체 강화를 자주 쓴 덕이었다.
그렇기에 들을 수 있었다.
방금의 중얼거림보다 더 작은 소리를.
"설마 범죄자들을 모으려고?"
씨발. 좆 됐다.
고작 질문 하나 했다고 내 계획이 전부 탄로나는 거야?
더럽게 어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대륙 통치자.
대륙에서 제일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내 계획을 눈치 채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의 혼잣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는 것.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다른 핑계를, 그가 더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 방법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답은 하나 뿐.
"그만두고 싶은 거 맞아요."
우선 태연하게 그의 질문에 답한다.
딴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질문한 이유를 넌지시 설명했다.
"그래도 제가 벌린 일이니까요. 책임감은 느끼거든요."
"아, 그렇군."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뒷일은 걱정 말게. 애초에 그건 자네 같은 아이가 해결할 일이 아니야. 그건 경찰이, 그리고 우리 어른이 해결해야 할 일이지. 자네는 두 번 째 제안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아, 그리고 이건 당연한 말이네만...."
'응?'
"두 번째 제안을 거절하면 자네의 선택은 자연히 첫 번째로 넘어가는 거네."
즉, 사형이란 뜻이지.
그의 미소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완전 협박이네.
내가 탈출을 못 한다는 가정에서 말이다.
그래도 내 계획은 들통나지 않았다.
"후우."
제자리에 걸터앉고 금속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댔다.
분명 안도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서늘한 기분이 드는 걸까?
그의 미소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대륙 통치자가 서장을 부른다.
"서장."
"네, 통치자님."
"아무래도 남궁우, 그 놈 탈출할 생각인 것 같네."
"네? 그게 무슨...."
"단순한 내 짐작이라 자세히 말하긴 그래."
그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아무튼 경계를 철저히 하게."
그가 서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또 놓치면 그 때는 우리의 수치를 넘어 모욕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대륙 통치자가 서장의 어깨에서 손을 뗀다.
그는 서글서글한 어투로 말했다.
"난 이틀 뒤에 다시 올 생각이야. 그 때까지만 제대로 붙잡고 있어주게. 그건 가능하지?"
"....네. 물론입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그 말을 끝으로 통치자는 밖으로 사라졌다.
"서장님, 무슨 말을 들으신 겁니까. 이마에 식은땀이."
그의 부하 직원이 서장에게 티슈를 건넸다.
"별 말 아니었네. 그보다 경계 인원을 더 늘려야겠어."
"네? 수갑이 세 겹. 아, 하긴 능력자 감옥까지 부순 놈이니.... 네, 알겠습니다. 그럼 몇 명을 붙일까요?"
"일단 상철과 윤은 무조건."
"그 둘은 중상이라 지금 병원에 있어요."
"아, 그래. 그랬지."
서장이 지끈거리는 두통에 이마를 짚었다.
신급은 그 둘 뿐이다.
그 둘 없이 신화급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된다고?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었다.
남궁우 그 놈은 왜 매일 이런 고난만 들고 오는 건지.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조졌네."
/////////
"왠지 경비가 심해진 거 같지 않아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정보 하나 줄 수 없다는 의사였다.
"쩝."
혀를 다시고 차가운 감옥 벽에 등을 기댔다.
잠시 뒤, 저녁 시간이 되어 식사를 받았다.
경찰 중 한 명이 창살 사이로 던져 준 햄버거 하나가 식사의 끝이었다.
물끄러미 햄버거를 내려다 보며 물었다.
"설마 이게 끝이에요?"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서장님이 신경 써 주신 거다."
이게?
아무리 경찰서라도....
그럴 것 같긴 하다.
감옥에서도 제대로 된 음식은 없었지.
햄버거를 집어 들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수배범으로 쫓겨 다닐 때도 이렇게 초라하게 먹진 않았다.
적어도 무인 펀의점에서 밥 만은 양껏 먹었다.
불만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작잖아요. 이걸로 누구 배를 채워요."
"네 배."
그가 나를 째려보며 머리를 헝클었다.
"너 말이야. 지금 네가 무슨 처지인지 잊은 거 같은데. 너 지금 수감자야. 그것도 역대 최악의 수감자."
말을 할수록 그의 인상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그런 너한테 줄 밥이 있을 리 없잖아. 그걸로 만족해라."
그의 화난 음성에 난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납득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햄버거를 집었다.
포장지를 벗겨 본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지금까지 이름으로만 들어 본 햄버거.
이름이 햄버거인 정말 단출하고 기본적인 햄버거였으니까.
이름만큼이나 단출한 햄버거를 씹으며 설욕을 굳게 먹었다.
그 날 밤이었다.
내 식사는 그 단출한 점심 식사가 끝이었다.
햄버거 하나라도 들어왔던 낮이랑 다르게 저녁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밥 없냐고 물어도 보고 투정도 해 봤지만 당번은 묵묵부답.
저녁 당번은 과묵한 성격이었다.
내 밥은 없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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