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한 번 대답을 받으면 이후는 간단하다.
한 번 물꼬를 튼 이상 흐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가장한 유도 심문을 시작했다.
"그야 그렇잖아요? 범죄자를 억제하던 제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날뛸 것 아니에요?"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답했다.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경찰은 네가 아니라 우리야."
피식, 의도한 비웃음.
그가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감정이 많이 상한 티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비웃음 띈 얼굴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럼 3개월 동안 저만 쫓아다닌 건 뭔데요? 다른 범죄자는 아예 내팽개쳐 뒀으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범죄자를 관리하는 건 우리가 한다? 너무 양심 없는 소리 아니에요?"
"너...."
그의 말을 끊는다.
"당신들이 먼저 본업을 버렸고, 그 동안 그 역할은 제가 한 거 같은데?"
"...."
"거 봐. 부정 못 하잖아요."
"...."
그가 자존심 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도움이 아예 없었다고는 못 해. 하지만 네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냈든 네 행동이 올바르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한 건 살인, 범죄지. 그 행동에 정의는 없어."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뭐래요."
그가 길게 늘어놓은 소리는 이미 알고 있는 말들이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직진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뻔뻔하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제가 잡히고 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죠?"
"다시 말하지만 너에게 가르쳐 줄 이유는 없어."
"그래요? 그럼 그 두 명은 어디 갔는데요? 신급 경찰이요."
"......그것도 너에게 답할 이유는 없지."
"다른 범죄자들을 막으러 간 거죠?"
"....."
그가 입을 닫고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내 장단에 맞춰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알겠어요."
제대로 된 대답은 못 들었다.
하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병원에 입원할 만큼 중상을 입은 그 둘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병원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아직 다 회복도 못 한 그들이 왜 급하게 여기로 왔을까?
이규영, 그 군인 놈을 막기 위해?
그러기엔 타산이 맞지 않는다.
고작 그런 놈 하나를 말리려고 신급이 둘까지 나서야 하냐.
그렇게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심지어 나 같은 범죄자 놈을 위해서?
더 말이 안 된다.
즉, 그들이 온 이유는 다른 것이라 봐야 타당했다.
사람이 회사에 오는 이유야 뻔하지.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경찰의 일은 뻔하지 않나.
그래.
범죄자 놈들은 이미 어제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어제의 둘은 아마 급하게 치유 능력을 받고 왔을 거다.
대충 활동만 가능한 상태로 말이다.
능력은 힘 싸움.
그건 부상에서도 비슷하다.
능력으로 인한 부상은 평범한 부상에 비해 회복하기 위해 많은 힘을 요구한다.
잔존한 능력이 회복 능력을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능력을 직접 상쇄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소모량이 적기는 하다.
애초에 회복 능력 자체가 다른 능력과 비교하면 효율이 좋은 편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낸 상처를 전부 낫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
심지어 소모한 능력은 회복 능력으로 회복할 수도 없다.
능력도 제대로 회복 못 한 그들이 겨우 활동만 가능한 수준에서 나왔다.
그럼 그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다 예상하면서도 물어본 이유는 단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답은 경찰의 침묵으로 충분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
여기서 탈출하는 것 뿐이다.
아, 그리고 압수 당한 소지품을 찾는 것.
뭐, 탈출하려면 혈장석이 필요하니 결과적으로는 하나인 거나 마찬가지다.
일단은 감옥부터 나가자.
나는 점심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감시역이 교대.
새로운 얼굴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평범한 반응이다.
개의치 않고 물었다.
"오늘 점심은 뭐예요?"
"햄버거."
다행히 답은 해주네.
안심했다.
여유로운 척 물꼬를 틀기 시작했다.
일단은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
"또요? 그러다 굶어 죽겠는데요."
"안 죽어."
"에이, 제가 근육이 얼만데. 여기 오고 벌써 이틀은 운동을 못 했다고요. 벌써 근육이 쫙 빠졌어요."
"그럼 그만큼 덜 먹어도 되겠네. 그리고 그만 말 걸어."
"왜요? 누가 대화하지 말래요?"
그가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그런 꽉 막힌 짓은 하지 않아. 단지...."
'단지?'
그가 머리를 긁더니 정답을 말했다.
"세상 누가 범죄자와 얘기하고 싶을까. 그것도 아무 죄책감 없이 태연히 있는 놈이랑."
"아하."
이런 노골적인 대답은 나도 예상하지 못 한 일이었다.
잠시 말문이 막히는 것과 반대로 상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굳이 근처의 쓰레기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으니까.
상대의 전적도 모르는 내가 그 정도다.
그들은 내 이력을 알 뿐더러 그걸 직접 경험한 자들이다.
지금 와서 깨달았다.
'나를 경멸하는구나.'
대화에 어울려주는 게 아니라 살려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게 내 입장이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그게 전부.
해야 할 일을 감정으로 그르치는 건 미친 짓이니까.
나는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만 하나 할게요."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만 답해주면 저도 더 이상 말 안 거는 거죠. 서로 윈윈. 좋죠?"
"그건 네가 무슨 질문을 할 지에 달렸지."
"별 거 없어요. 제 짐 처분했는지 궁금해서, 봤으면 알겠지만 일기장이 있거든요. 예쁜 보석도 하나 있고. 둘 다 소중한 거라."
"아, 네 짐."
"네, 제 짐이요."
"넌 어차피 못 써. 그런데도 궁금해?"
"그야 아끼는 거니까요. 처분했다면 아깝잖아요. 특히 일기장은."
그가 대답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압류품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무조건 대답을 거부하겠지.
하지만 내가 물은 것은 처분의 여부.
이건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그걸 알고 나도 질문을 날린 거고.
그가 입을 다문 지 5초가 지난 그 때였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리던 여경이 입을 열었다.
"그 붉은 보석에 대한 거면 우리도 궁금한 게 있어."
"응??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건가요?"
"그래, 그 질문은 그냥 대답하기엔 곤란하거든."
"곤란하다는 건 갖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단순히 기분 문제. 그도 말했지만 우린 널 싫어하거든."
"대답은 해줄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정답이야. 그러니 그럴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그게 지금 네 역할이란 거지."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준다.... 라.
좋은 거래다.
"그러죠, 뭐. 어떤 게 궁금한데요?"
"그 붉은 보석, 시위대가 갖고 있던 거랑 같은 거지?"
"??"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나도 모르게 표정이 변화했다.
의문 어린 내 표정을 그녀는 다르게 해석했다.
"모르는 척 해도 소용없어. 네가 시위대와 많이 충돌한 건 우리도 다 알거든. 시위대와 부딪치다 보석을 주웠다. 있을 법한 이야기잖아?"
아, 다행이다 보석을 주운 걸로 생각하는 구나.
뭐, 비슷하긴 하다.
주운 게 아니라 뺏은 거니까.
다행히 그들은 보석의 능력이 뭔지 모르는 눈치다.
그러면 대답은 쉽다.
"맞아요. 시위대랑 충돌하는 도중에 주웠어요. 근데 시위대가 똑같은 보석을 가진 건 어떻게 안 거예요?"
"시위를 못 막는 거지, 그 쪽에서 사고를 일으키면 출동해야 할 의무는 있으니까. 평소에 확인은 해두거든."
"아하, 잠재적 범죄자라 감시한다는 거군요."
그녀가 서류에 펜을 놀린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네."
"하핫. 시위대를 썩 좋아하진 않아서."
"그런 것 치고 그 쪽은 꽤나 봐주던데?"
쓰기를 멈추고 물었다.
내가 시위대의 인간은 안 죽이는 걸 말하는 듯 했다.
내가 놈들을 안 죽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범죄자는 아니니까요."
이걸로 끝내기엔 찝찝해서 덧붙였다.
"물론 짜증은 나요."
"흐음. 너도 선은 있다는 거구나. 의외네."
그녀가 다시 펜을 휘갈겼다.
어깨를 으쓱였다.
"됐고, 대답은요? 처분했어요?"
"흠. 우리 이미 하나 씩 답하지 않았나?"
그녀의 능청스런 대답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걸 말이라고 하냐.
이 소리가 튀어나오기 직전.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장난이야, 장난."
그녀는 손을 흔들며 웃음을 터트리는 중이었다.
저 인간 짜증나네.
한껏 웃음을 뱉은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약속은 약속이니 대답은 해줄게. 처분은 안 했어. 아직. 네가 대륙 통치자의 제안에 답을 안 했으니까. 애초에 일기 같은 개인 용품은 잘 처분 안 해."
"...."
남의 집에서 일기장을 훔쳐간 놈들이?
원하는 대답은 들었지만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알겠어요. 위치는...."
"위치는 말 못 하지. 당연하잖아?"
"그렇죠. 거기까진 저도 기대 안 했어요."
납득하는 척 고개를 주억거리며 벽에 등을 기댔다.
이제 필요한 정보는 다 모았다.
남은 건 실행 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얼음 다 녹았는데, 새 걸로 교체 좀."
그녀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새 얼음을 들고 왔다.
새 걸로 교체 받은 얼음을 상처에 문지른다.
최대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한 조치였다.
시간이 지나고 햄버거 냄새가 경찰서 내부에 퍼졌다.
내 점심 식사.
하지만 냄새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건.... 치킨이다.
이 자식들 나는 햄버거 하나 던져주고!
열이 뻗친다.
나는 햄버거 하나로 대충 때우라고 했으면서 자기들은 점심부터 치킨을 시켜 먹어?
"이건 범죄야!"
철창을 흔들며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른다."
그가 나에게 햄버거를 던졌다.
두 손을 들어 햄버거를 받는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양심도 없어? 나한테는 고작 햄버거 하나 던져주고 너희는 치킨 시켜 먹고!"
"이건 우리 돈으로 시킨 거야."
"나도 돈 많아!"
"물론 네 계좌는 전부 정지했지."
그의 동료가 덧붙였다.
"너 이제 거지야."
뭐? 나는 충격 먹었다.
계좌가 정지 먹은 건 둘 째 치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안 한 거였어?'
그들의 안일함에 더 충격을 먹었다.
"설마 지금까지 막을 수 있는데 안 한 거야?"
"...."
"예전에 막아뒀었어."
한 명은 침묵, 한 명은 솔직히 대답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막힌 기억이 없는데?"
오히려 경찰이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네가 푼 거 아니었어?"
"아닌데, 내가."
어떻게 푸냐고, 하려다 말았다.
생각해보니 나에겐 정말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난 막힌 적이 없다 생각했어."
여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금방 신경을 껐다.
"뭐, 됐어. 중요한 건 넌 거지라는 거고. 우리는 점심으로 치킨을 시켰다는 거지."
"이 거지 같은."
"그래, 거지는 너야."
"진짜 양심 터졌네."
"너만 하겠어? 먹기 싫으면 주던지."
그건 아니다.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얌전히 햄버거를 꺼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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