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씹. 가까이서 보니 더 크잖아."
"걱정 마라. 그래도 무기는 없으니까."
"뇌창."
거인의 손에 거대한 기둥을 쥐였다.
"......이제 있네."
"도망칠까?"
그렇게 소근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고 싶으면 가."
얘네들이 범죄자도 아니고.
굳이 도망치는 놈까지 잡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방해했다.
"개소리 하지 마. 도망치는 놈들은 내가 죽인다."
'쳇. 아쉽다.'
"그럼 도망치는 놈들은 없는 걸로 알고."
팔을 든다.
내 동작을 따라 뇌신이 창을 들어 올렸다.
"목숨줄 잘 붙들어 매."
쿠구구궁!
뇌창이 떨어진다.
"발사!"
군대가 준비한 묵직한 질량탄이 뇌창과 뇌신을 향해 마구 날아왔다.
이제 그런 거에 막힐 내가 아니다.
벼락이 질량탄을 삼켜 불태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벼락을 떨어트렸고.
"끄아아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날아갔다.
군인 놈들을 생각해서 살려준 건 아니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있어서 밀어버린 것 뿐.
잔해 속에 묻힌 경찰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죽은 이는 없었기에 마을 어귀까지 밀어버린 것이다.
군인이 날아간 것은 덤이었다.
이제부터 싸울 군인들은 최소 요급 이상.
그리고 시위대는 혈장석까지 쓸 수 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며 기절한 똘마니들까지 커버해 줄 능력을, 난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날려버린 것이다.
'군인은 알아서 덤비러 올 거고.'
문제는 바닷물이다.
기절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감전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잔해를 이용해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니까 해변의 콘크리트와 그 밑의 땅을 옆으로 밀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긴 공간으로 바닷물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만히 두다간 마을까지 휩쓸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으니 한동안은 몰려오는 바다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파직.
뒤에서 몰려오는 바닷물을 향해 번개를 흘렸다.
그런데....
"너희는 언제 덤빌 거냐?"
내가 밀어낸 건 경찰과 그 근처에 있던 군인들 뿐이다.
군인보다 조금 더 뒤에 있던 시위대는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제일 앞의 대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민간 조합인 우리가 먼저 나설 이유는 없잖아. 우리는 의무가 아니니까."
내 힘이 다 빠지면 그 때 치겠다는 소리다.
정말 약은 수다.
'뭐, 상관 없지.'
오히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면 유리한 쪽은 나였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물살을 전부 뇌신에 두른다.
남은 잔잔한 물결이 움푹 파인 구덩이를 메웠다.
그 때까지 시위대 놈은 가만히 있었다.
내가 무얼 하려는 지 전혀 눈치 못 챈 기색이었다.
물과 합쳐져 거대한 질량을 머금은 뇌신.
그리고 뇌창을 들어 올렸다.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콰아아앙.
시위대를 향해 뇌창을 꽂았다.
놈들이 기함한다.
"으아아아!"
반 쯤 비명 섞인 기합을 지르며 능력을 발동했다.
머리를 쓴다는 게 느껴졌다.
본인들이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능력을 유지했다.
같잖은 잔머리다.
'그럼 하나 씩 노리면 되지.'
능력의 강함에 따라 조금씩 출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득, 우득, 우득.
보석이 부서지는 소리.
그들이 혈장석을 쓰기 시작했다.
혈장석을 쓴다는 건 꽤 높은 지위에 있다는 뜻.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지닌 느낌은 별로 없었다.
'나를 잡으려고 뿌렸구나.'
하긴 난 이전에도 몇 번, 놈들을 쓸어버린 전적이 있다.
'이 정도 보험도 없이 날 잡으러 올 리가 없지.'
뭐, 부족한 보험이라 문제지만.
정말로 날 붙잡고 싶었다면 시위대장 그 자가 직접 왔어야 했다.
적어도 검은 후드는 있어야 했다.
그 둘도 없는 똘마니들로 날 잡겠다고?
"날 얕봐도 너무 얕봤잖아!"
어차피 놈들에게 얻을 정보는 없다.
나는 가감 없이 힘을 실었다.
경찰이야 시민들한테 필요하니 기껏 살려뒀지만 시위대는 어딜 가나 민폐만 끼치는 것들이다.
굳이 죽일 생각도 없지만, 굳이 살려둘 생각도 없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는 전압을 끌어올렸다.
쿠웅.
끝없이 전압이 올라간 뇌창은 상대의 능력을 뚫어냈다.
뇌창에 담긴 물이 육중한 무게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쿠드득.
땅이 무너졌다.
3초.
땅을 꺼트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정신을 유지한 시위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없네.
수백, 수천의 능력이 겹쳐지며 하나의 균등한 능력처럼 효과를 낸 듯 했다.
'보통은 서로 충돌해서 사라질 텐데....'
중요한 건 아니라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산 사람을 굳이 죽일 생각은 없다.
아직 힘도 많이 남았으니 군인들이 오기 전에 도망칠 준비를 했다.
뇌창과 뇌신에 담긴 바닷물을 천천히 풀었다.
"...."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린다.
물이 넘치지 않게 조심하려니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러다 놈들이 더 빨리 오겠어.'
심지어 놈들이 오해하기에도 딱 좋은 상황이다.
바다까지 머금은 거대한 번개의 화신이 바닷물을 게워내고 조금씩 흩어지는 상황.
그들은 내가 시위대에 밀리거나 많은 힘을 소모했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물론 제대로 된 머리가 박혀 있다면 고작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힘을 다 쓸 거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군인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머저리들 뿐이었다.
그러니까....
쿠르르릉.
하늘 끝에 번개를 모은다.
그리고 벼락 수십 발의 벼락을 연달아 내리 찍었다.
'이 정도면 내가 아직 건장하다는 것도 알겠지.'
몰라도 조그마한 시간 벌기는 될 거다.
그 동안 나는 바다를 전부 뱉어내고 도망치면 된다.
그러기 위해 더욱 벼락에 힘을 실었다.
기다란 봉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
정황 상 능력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 벼락을 뚫었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군인 중에 그런 일이 가능한 놈은 한 명도 못 봤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진실이라는 듯 놈들의 능력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 주변에 번개의 장막을 펼쳐 놈들의 능력을 막아냈다.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강해졌어.'
요급의 최상위 그리고 신급까지.
심지어 신급의 수준이 더욱 많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단 하나 뿐이다.
혈장석.
'하지만 저 놈들은 시위대가 아닌데, 어째서?'
도망은 보류다.
확인을 해야겠어.
정말로 혈장석을 쓴 건지 아니면 메노기아에서 다른 장비를 공수한 건지.
그리고 만약 전자라면....
시위대와 대륙이 결탁했는지도.
계획을 변경한 나는 벼락을 멈추고 뭍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벼락을 멈추자 놈들은 더욱 거세게 능력을 날렸다.
조금씩 정확도가 올라간다.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중력장이 사라진 덕에 나는 눈으로 보듯 놈들의 행동과 대화를 훤히 볼 수 있었다.
"최대한 능력을 쏟아부어! 조금이라도 회복하게 두면 안 된다!"
"네!"
딱 내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제대로 된 머리는 못 갖춘 놈들이다.
이 정도 힘을 가진 능력이면 나처럼 능력에 감각을 배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헛방치고 있다는 건 감각을 쓰는 놈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뜻.
가진 능력에 비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강해지면 뭐해. 정작 주인이 그 힘을 못 쓰는데.'
나는 몸 주변에 펼친 번개의 장막만 유지하는 중.
그들의 능력은 사방으로 퍼졌고, 그 덕에 실제로 내 힘을 깎는 능력은 몇 개 없었다.
나는 몰래 땅 밑으로 퍼트린 번개를 이용.
메노기아에서 만든 듯한 장비를 찾았다.
하지만 눈에 띌 만한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가능성은 혈장석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면....
'얼마나 썩은 거야.'
시위대 놈들이 합법적으로 설치는 것도 짜증나는데, 그 더러운 돌덩이까지 받아 처먹는다고?
가능성이 그 쪽으로 기울었어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우득.
"너무 많이 쓰지 마라. 고작 3개 밖에 없으니."
한 놈이 붉은 보석을 깨뜨리는 장면과 고작 3개 밖에 없다고 지껄이는 소리를.
파직, 나는 곧장 몸을 옮겼다.
목표는 방금 혈장석을 쓴 놈 바로 아래.
땅 밑으로 퍼트린 번개를 통해 몸을 옮기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몸을 옮긴 후 곧장 능력을 끌어올린다.
올라간 전압과 상승한 번개가 땅을 뚫으며 치솟는다.
"크아악!"
그렇게 바로 위의 놈을 감전시켰다.
"뭐야! 기습이다!"
놈들의 능력이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주변에 장막을 치며 그 능력을 전부 막아냈다.
동시에 눈 앞의 멱살을 쥐었고.
"크헉!"
놈을 땅에 처박았다.
놈이 능력을 사용하려는 낌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무슨 능력을 쓰기도 전 번개를 퍼트려 능력을 소멸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안전하게 번개화까지 쓴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대륙이 시위대와 손까지 잡은 거냐."
놈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어 목을 더욱 짓눌렀다.
"흐억."
숨이 막히는 소리.
"대답 안 하면 죽인다. 어차피 물을 놈들은 많으니까."
놈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놈의 눈동자로 쏟아지는 능력들이 보인다.
그 능력은 내가 퍼트린 번개에 닿는 족족 소멸했다.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힘을 풀었다.
놈이 막혔던 숨을 다급하게 들이마셨다.
"대답은?"
그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다. 그 놈은 그냥 우리를 따라온 것 뿐이다. 놈들이 널 노리던 건 예전부터 그랬잖아."
아니, 시위대가 온 걸 묻는 게 아닌데.
역시 수상하다.
나는 번개로 놈의 몸을 수색.
주머니에 있는 혈장석을 꺼냈다.
"이거 말이야. 시위대한테 받은 거잖아. 딱 봐도 둘이 결탁했네."
팔에 조금씩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저항했다.
그러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거랑 시위대랑 뭔 상관이야! 그건 메노기아에서 준 거라고!"
"메노기아?"
예상치 못한 답이다.
"메노기아가 어떻게 이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거긴 뭐든 다 뚝딱 만들잖아!"
아무리 그래도.... 메노기아가 이걸 만들고 있었다고?
'그건....'
퍽.
뒤통수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둔기가 아닌 질량탄.
심지어 능력을 두른 질량탄이었다.
번개화가 풀린다.
가해진 충격이 내 골을 떨리게 만들었다.
으득.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는다.
그리고 번개를 방출했다.
콰광.
신체 강화까지 쓴 내 번개는 사방으로 퍼지며 모든 것을 감전시켰다.
놈들이 혈장석을 쓸 틈도 없도록.
순식간에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
머리를 짚었다.
한 번에 많은 능력을 쏟아낸 반동으로 두통이 몰려왔다.
번개로 주변을 살폈다.
정신이 있는 놈은 없다.
그래도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아니지.
내가 무너트린 해변이 남아있다.
'그건 고치고 가야지.'
파직. 힘을 끌어올린다.
바다로 가득 찬 웅덩이 그리고 아까 밀어둔 잔해.
그 모든 것을 번개로 삼키고 번개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번개화를 해제.
내 기억 속의 멀쩡한 해변으로 복구된 것을 확인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몸을 번개로 화했다.
'계획을 수정한다.'
아인랴르보다 메노기아에 더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파슷.
"크흑."
번개화가 풀리고 무릎을 꿇었다.
공격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힘이 없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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