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신룡

생각지도 못한 협박에 문지기들은 당황했으나 이윽고 남궁탁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이, 이 공자님이!”
사색이 된 문지기들이 급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남궁의 무사들이 몰려올건 뻔한 일이었다.
지운은 잠자코 기다리지 않고 일장에 문을 부숴버렸다.
콰앙!
박살난 나무들이 허공에 비산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지운과 악영롱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침입자다!”
정문의 소란을 들은 남궁가의 무사들이 정문으로 몰려왔다. 지운의 눈이 빠르게 그들을 훑었다.
‘대충 열댓 명쯤 되는군.’
당장 달려들 기세로 검을 뽑던 이들이 기절한 채 엎혀있는 남궁탁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고, 공자님···! 이 공자님이 잡혀계신다! 다들 멈춰!”
무사들은 남궁탁이 인질로 잡혀 있는걸 보고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지운과 악영롱을 에워쌌지만 이제 어째야 할지 몰랐다.
그때, 저택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무슨 소란이냐!"
준수한 용모의 사내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남궁가의 장남 남궁정이었다. 첫째 공자님이 오셨다면서 무사들이 뒤늦게 외치는데 지운이 살펴보니 확실히 남궁탁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남궁탁이 날렵하게 생겼다면 남궁정은 각진 얼굴에 견실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옆에는 사촌 동생 남궁기민도 함께였는데 데려온 무사들의 숫자만 얼추 스무 명은 되보였다.
남궁정이 지운과 악영롱을 노려봤다.
"누가 감히 대 남궁세가의 저택에서 소란을 피우느냐! 그리고, 우리 탁이를 어찌 한 것이냐!"
"너희 차남이 절검문의 금 소저를 납치했으니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이 놈의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
챙!
“네 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지운의 협박에 남궁정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허나 남궁탁이 인질로 잡혀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탁이를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살려줘? 웃기는군.”
지운이 비웃었다. 금 소저를 내놓으랬더니 남궁탁을 놓고 꺼지란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걸 참았다.
"남궁탁을 놓아주면 곧바로 우릴 죽이려 들겠지. 마지막으로 말한다. 금 소저를 데려와라. 그럼 남궁탁을 돌려주는걸 생각해보마.”
빠드득.
남궁정이 이를 갈며 그를 노려봤다. 그때, 저택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들 하거라.”
남궁 가주, 남궁상극이었다. 저택 안쪽에서 백색의 전포를 걸친 그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어나왔다.
지운과 악영롱을 차례로 쓸어본 뒤, 마지막으로 기절한 남궁탁에게 시선이 닿았다.
“누군가 했더니 낮에 본 이들이군.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한겨울의 삭풍처럼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운은 기절한 남궁탁을 때려 강제로 깨웠다.
“이 놈이···!”
장남 남궁정과 무사들이 이를 갈았지만 무시했다. 얼굴과 등짝을 연달아 때리자 남궁탁의 정신이 돌아왔다.
“컥! 그, 그만! 그만 때리시오!”
지운은 깨어난 남궁탁을 질질 끌고 몇 걸음 나아갔다.
“야밤에 몇 놈이 복면을 쓰고 왔더군. 한 놈은 잡았는데 금 소저가 납치 당하고 말았소. 근데 잡은 놈의 복면을 벗겨보니 여기 남궁탁의 얼굴이 나오더군.”
지운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내공을 실어 외쳤다. 목소리에서 심후한 내공이 느껴지자 여유롭던 남궁상극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남과 친족들을 비롯한 일반 무사들도 움찔 놀라며 움츠러 들었다.
악영롱은 지운의 옆에서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눈빛에선 비장한 결의마저 느껴졌다.
“금 소저를 데려오시오. 지금 당장. 말로 하는건 이게 마지막이오.”
지운의 입이 굳게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건만 이젠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남궁상극이 나직이 말했다.
“오해가 있는듯 한데 금 소저는 여기 없소. 그녀를 찾는거라면 도와줄 수 있지만, 먼저 거기 있는 내 아들을 풀어주는게 순서일 것이오.”
지운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고분고분하게 나오진 않을 거란걸 알고 있었지만 남궁상극의 뻔뻔함은 예상을 웃돌았다.
“악 소저, 잠시 남궁탁을 부탁합니다.”
악영롱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현원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현원금강체를 얇은 막처럼 전신에 두르자 희미한 금빛이 감돌았다.
지운의 주위로 강렬한 기운이 솟아오르며 폭풍처럼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 이게 무슨···!”
포위망을 형성한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현원공력이 손끝으로 집중되자, 주변 공기가 압축되며 소용돌이가 일었다.
“이야압!”
지운은 곧장 앞으로 뛰어들며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려쳤다.
콰아앙-!
굉음이 터지며 바닥의 돌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사람 하나 쯤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순식간에 생겼다.
“쿨럭, 쿨럭!”
먼지를 마신 무사들이 기침을 해댔다.
“말로 안하겠다고 했소. 이제부턴 실력으로 금 소저를 받아가겠소.”
연신 기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운의 낮은 목소리가 남궁상극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아, 까먹고 말 안한게 있는데 남궁탁, 당분간 팔다리 못 쓸거요. 내가 분질렀소이다. 그리고 무공은 영영 못 쓸거요. 단전을 폐해버렸으니까.”
지운이 입을 닫자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누구도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남궁상극이 아닌 남궁정이 얼굴을 떨며 고함을 질렀다.
“저 놈을 죽여라! 당장 없애!”
분노한 남궁정과 무사들이 떼로 덤벼들었다. 싸움이 시작됨과 동시에 지운도 맹렬한 기세로 마주 달려나갔다.
가장 가까이 있는 무사 둘을 향해 각각 좌장과 우장을 날렸다.
퍼엉-!
퍼펑-!
연달아 폭음이 터지고 대응할 틈도 없이 둘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지체할 새 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의 발에 얻어 맞은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크악!”
“놈을 에워싸라!”
무사들의 비명과 고함이 사방을 메웠으나 지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착지하자마자 바닥을 구르면서 마침 검을 휘둘러오는 적의 급소를 공격했다. 움직임이 춤을 추는 듯이 유연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순식간에 쓰러진 사람이 대여섯 명을 넘겼다. 포위망은 진즉에 허물어졌다.
현원금강체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일반 무사들의 공격으론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무당의 태극권이나 개방의 항룡장 정도가 아니면 그에게 피해를 입히는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반탄력으로 공격자에게 내상까지 입혔다.
태앵!
“···쿨럭!”
순간적인 빈틈을 노리며 검을 찌른 무사가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지운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며 다가오는 적들을 모조리 일격에 쓰러뜨렸다.
그의 권각이 닿을 때마다 남궁가의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허물어져 갔다.
싸움이 시작된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십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바닥을 기었다.
그러자 처음의 기세와 달리 남은 적들은 자리에 멈춰선 채 검으로 위협만 해댈 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지운은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맨손이었지만 그의 몸이 흉기 그 자체였다.
“죽어라, 이 놈!”
도움이 안되는 무사들을 헤치고 남궁정의 검이 앞으로 주욱 삐져 나왔다.
‘느려.’
지운은 고개만 까딱 옆으로 젖혀 검을 피한 뒤, 곧장 남궁정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끌어올린 현원진기를 주먹에 실어 명치를 가격했다.
"컥!!”
짧은 비명을 토해낸 남궁정이 이 장 거리를 날아가 쓰러졌다. 한 번 공격에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고, 공자님!!”
그가 쓰러지자 무사들은 더 위축되었다. 온갖 몸에 좋은 영약으로 키워진 그가 일초지적도 못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느새 지운에게 덤벼오는 적이 없었다. 그때, 남궁가의 방계인 남궁기민이 다가왔다.
“후···”
지운과 눈이 마주치자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검을 들어올렸다. 눈동자가 흔들리는게 말도 안되는 무위를 지켜보고 자신감을 잃은듯 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직계와 방계 중에서 가장 오성이 뛰어났는데 지금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정면의 지운을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합비의 남궁기민이오. 내가 상대가 안되면 여기 무사들 중에 당신을 이길 사람은 없을 거요.”
“지금 비무라도 하자는거냐? 좋다, 내 이름은 지운이다.”
지운이 비웃자 남궁기민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한 사람을 두고 여럿이 덤빌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정식으로 비무를 펼치는거 마냥 자기 소개를 읊고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화산검법을 펼쳤다. 화산의 속가 제자로 검술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은 그였다.
검을 움직이자 한 순간 매화 한 송이가 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운은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천천히 떨어지는 매화 속에 숨겨진 칼날이 변초를 뿌리며 다가들었다. 지운의 눈을 현혹시킬 생각인지 남궁기민은 요란하게 사방위를 찍으면서 거리를 좁혀왔다.
목을 노리고 찔러간 검날이 그대로 목표에 적중했다.
태앵!
“지, 지 소협!!”
놀란 악영롱이 비명을 질렀다.
허나, 검날은 한 치도 살을 파고들지 못했고 목에는 한 방울의 피도 맺히지 않았다.
“···쿨럭!”
공격한 쪽인 남궁기민이 뒤늦게 피를 토했다. 입가에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앞섶을 뜨뜻하게 적셨다.
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난전 속에서도 매화는 핀다. 매화난무!”
내상을 참고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매화를 꽃피웠지만 이번에도 지운의 몸에 닿자마자 금방 시들어 버렸다.
태앵!
쇳덩어리를 때린 것 같은 감촉에 남궁기민은 비로소 자신의 적수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며 힘없이 주저 앉았다.
“하하··· 강호는 참으로 넓구나. 단리 대사형만큼 강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반탄력에 당한 충격이 뒤늦게 올라와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여러 줄기의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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