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추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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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주
작품등록일 :
2025.03.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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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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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와 안주애

DUMMY

65화. 이정호와 안주애


홍수명 피디는 한참 전부터 안녕항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해경초소 옆에 서 있다.


새벽에 출어하는 배가 대부분인 안녕항에서 이 시각 쯤이면 초소는 비어있어 특별히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산과 바위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상 항구로 돌아온 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앞을 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귀어한 배는 20여 척에 달하는데 아직도 이정호 씨가 선원으로 일한다는 민양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창우 씨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돌아올 뿐이다.

홍수명 피디는 뻣뻣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풀어본다. 스쿼트까지는 차마 못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서서 상체만 뒤로 젖히는 요추전만 체조까지 했을 때 멀리 배 한 척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안녕항에 정박한 배의 흰색 옆구리에는 검고 굵은 페인트붓글씨로 민양호라고 적혀있다.

배 위에서 물고기 상자와 그물을 내리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은 다섯 명. 외국인 노동자 세 명에 나이가 들어보이는 아마도 선장인듯한 한 명. 그리고 이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한 명. 아마도 그가 오창우 씨가 소개한 이정호 씨인듯했다.


잠시 후, 작업용 고무수트인 갑빠를 벗어던지고 멀끔하게 샤워를 한 듯한 이정호 씨가 부두 저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이정호 씨의 옆에 다른 선원들이 함께 있었기에 홍수명 피디는 말을 걸지않고 일단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다같이 술을 마시러 가면 그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이정호 씨와 동료 선원들은 항구 앞 삼거리에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혼자가 된 이정호 씨는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홍수명 피디가 가까이 가서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홍 피디를 힐끗 옆눈으로 본 이정호 씨는 답을 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선다.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 일하다 돌아왔기 때문에 대단히 지친 상태. 당신이 누구건 상대하기 귀찮다는 티가 역력하다.


홍 피디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둔 채로 서서 말한다.

“오창우 씨 소개로 왔습니다. 이정호 씨 되시죠?”


오창우라는 이름을 듣자 이정호 씨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지더니 홍수명 피디를 쳐다본다.

“창우가요? 누구세요?”


“오창우 씨가 메시지 보내놓는다고 했는데. 혹시 휴대전화 확인해보시겠어요?”

홍수명 피디의 말에 이정호 씨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 버튼을 누르고는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이게 오래돼서 바로 안켜집니다. 무슨 일인지 바로 말씀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배 탈 분 같진 않은데 뭔 일이세요?”

기다리는 걸 어지간히 싫어하는 듯 그냥 용건을 말하라 독촉하는 이정호 씨.


별수 없이 홍수명 피디가 정체를 밝힌다.

“저 방송국 피딥니다. SBN요.”

“방송국에서 나를 왜요?”


“오창우 씨가 저희 프로그램에 제보를 하시고 인터뷰도 하셨는데요. 인터뷰할 분이 더 없을까 했더니 이정호 씨를 소개해주시더라고요.”

“무슨 프론데요.”


오창우 씨의 소개라니까 박대는 못하겠지만 점점 못마땅한 기색이 이정호 씨의 얼굴에 티나게 드러난다.

“미제사건 추적단이라고 합니다.”

“그거 살인사건 범인 잡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자 이정호 씨가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듯 내뱉는다.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홍수명 피디가 진지하게 답한다.

“선생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도움 주실 일이 있을 거라고 오창우 씨가 그랬거든요? 조용한 데서 조금만 얘기 나누시죠.”


짧은 순간 뚫어지게 홍수명 피디를 바라본 이정호 씨는 한 마디를 내뱉고는 뚜벅뚜벅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따라오세요.”


*******


안주애 씨의 꽃집 마당에는 수십 가지의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었다.


다래나무와 고광나무가 꽃을 피운 아래로 붓꽃과 은방울꽃이 봉오리를 서서히 열고. 금창초와 현호색과 고깔제비꽃이 보랏빛 꽃을 피운 옆으로는 작고 흰 별꽃이 피어있고. 그 곁으로 찔레꽃이 넝쿨을 지으며 신선하면서도 아찔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더 이상 야생에 살지 않고 도시의 마당에서 자라는 것을 야생화라고 불러도 될까 혼자 생각하던 김혜욱 작가는 갑자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작가님, 꽃다발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으세요? 지금 찔레꽃이 제일 좋으니까 찔레 위주로 좀 늘어지는 스타일로 풍성하게 잡아볼까요?”


안주애 씨가 쾌활하게 묻다가 김혜욱 작가의 표정을 살핀다.

“왜 그러세요? 맘에 안드는 거 있으세요?”


“아니에요. 다 너무 예쁜데... 갑자기 어디서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김혜욱 작가가 답하자 안주애 씨가 조금 놀란 듯이 하하- 웃는다.


“진짜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작가님 눈썰미 참 좋으세요.”

“음? 왜요?”

안주애 씨가 장난스레 웃더니 말해준다.


“이거 다 현규네 정원에 심은 거예요.”

“아??”

“스타다큐 찍기 전에는 제가 마당이 없어서 키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보고싶은 야생화들을 전부 현규네 정원에다가 구현했어요.”


“아하! 스타다큐 때 현규 씨네 정원 찍었어요. 그러네그러네. 정말 비슷했네요.”

그제서야 기시감의 정체을 알게된 김혜욱 작가가 편안하게 웃는다.


“현규 씨가 꽃을 참 잘 안다 생각했는데. 주애 씨가 조경을 다 해준 거였군요?”

“아 현규도 꽃을 잘 알긴 해요. 그 집 정원에 현규가 따로 구해다 심은 것도 제법 있고요. 현규는 언제 배웠는지 나물도 잘 알고 풀도 잘 알더라고요?”


그때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 옆으로 담장을 타고 내려온 치즈 길냥이 두 마리가 지나간다. 아직 한 살이 채 안된 것 같은 청소년냥이 두 마리인데. 이 마당을 드나드는 게 익숙한 듯 전혀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다.


좀 떨어져서 꽃 구경을 하고 있던 장성연 작가가 작은 소리로 알린다.

“어 고양이!”


안주애 씨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밥 먹으러 온 거예요.”


치즈 길냥이 둘은 천천히 꽃집 마당을 가로질러, 그러나 야생화들은 다치지 않도록 기가 막히게 살짝살짝 피하며 구석으로 가더니. 사발에 담긴 맑은 물을 할짝할짝 마시고는 그 옆 또 다른 사발에 수북하게 담겨있는 사료를 아작아작 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안주애 씨가 말한다.

“쟤들은 오후반이에요.”


김혜욱 작가가 재밌어하며 묻는다.

“그럼 오전반도 있어요?”


“그럼요 심야반도 있어요. 하하. 오후반에는 쟤들 둘이 오고요. 오전에는 고등어 세 마리가 와요. 심야에는 삼색이 혼자서 오고요. 근데 다들 어려요. 엄마한테서 독립한지 얼마 안된 애들 같아요.”

안주애 씨가 자식 자랑하는 것처럼 신나게 밥먹으러 오는 길냥이들 소개를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김혜욱 작가를 돌아보며 말한다.


“현규도 고양이 엄청 좋아해요.”


김혜욱 작가가 뜻밖이라는 듯 묻는다.

“집에서 키우지는 않던데요?”

“네 현규 스케줄이 워낙 장난 아니잖아요. 그래서 키우지는 못하고 그 동네 길냥이들이 정원으로 들어오면 먹으라고 늘 사료랑 물을 놔둬요. 가끔 해외촬영 가면 제가 가서 대신 하기도 하고요.”


“오... ” 하며 놀란 장성연 작가가 이어서 말한다. “모나미들은 그거 모르는데.”


안주애 씨가 장성연 작가의 어깨를 톡 치며 말한다.

“작가님 모나미셨구나? 하하. 근데 현규는 절멱에 살 때도 길고양이 밥 주고 포획해다가 입양시키고 그랬어요.”


김혜욱 작가와 장성연 작가가 그 말에 동시에 주목한다.

“절멱에서도요??”


안주애 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답한다.

“제가 길고양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현규 때문이었어요. 몇 번 밥주는데 따라가기도 했고요.”

“절멱에 길고양이가 많았나보죠?”

“아뇨 우리가 살던 절멱읍에는 많지 않았고요. 바로 옆에 조영리라고 있어요. 거기 펜션이 많았는데. 그쪽에 유난히 길고양이가 많았거든요.”


조영리와 펜션과 길고양이. 세 개의 단어가 조합된 얘기를 김혜욱 작가와 장성연 작가는 이미 접한 적이 있다. 보도국 한희웅 기자의 취재노트 속에 적혀있던 얘기. 펜션 근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사라진 사건.

절멱낚시사건 일 년 전부터 일어난 이상한 일들 중 제일 첫 번째로 적혀있던 사건이다.

그 일을 기억하는 김혜욱 작가와 장성연 작가는 여전히 웃으며 듣고 있지만, 조금 긴장한다. 그리고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다.


“혹시 길고양이들이 사라지고 그런 적은 없나요?”

장성연 작가가 대놓고 물어본다.


그러자 안주애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글쎄요? 사라졌다기보다는 현규가 전부 포획해다가 입양시킨 적이 많죠?”


“아... 입양을요? 대단하네요. 고양이 입양시키기가 쉽지 않던데...”

장성연 작가가 놀랍다는 듯 말하자 김혜욱 작가가 맞장구를 친다.

“입양도 문젠데 포획 자체도 어렵지 않아?”

“그쵸그쵸-”


하지만 안주애 씨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고양이들이 현규를 얼마나 좋아하게요. 현규가 이동장 열면 애들이 알아서 다 들어갔어요. 캣닢이나 츄르 바른 것처럼. 하하하”


*******


이정호 씨가 홍수명 피디를 데리고 온 곳은 자신의 원룸이었다.


원룸에 들어서자마자 윗옷을 벗어 침대에 툭 던지고. 침대를 등받이 삼아 기대며 바닥에 앉은 이정호 씨. 홍수명 피디가 이정호 씨를 마주 보며 바닥에 앉는다.


“이거 참... 집까지 들어오는 민폐를... 실례하겠습니다.”

홍수명 피디가 조금 멋쩍어하며 양해를 구하고. 이정호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괜찮아요. 제가 여기가 제일 편해서 이리로 온 거예요. 근데. 저한테서 뭐가 궁금한 거예요?”


“일단... 임현규 씨를 왜 싫어하시나요?”

주변 눈치 볼 일이 없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자 홍수명 피디는 오창우 씨가 귀뜸했던 얘기를 바로 묻는다.


- 임현규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죠. 거의.

- 거의?

- 흐흐. 포인트를 딱 짚으시네요? 현규가 중1 때 절멱에 왔을 때부터 스타였거든요? 일단 잘생겼지. 키가 훤칠하게 컸지. 공부 잘하지. 운동 잘하지. 말도 막 서울말로 사근사근하게 하지. 친절하지. 뭐 칭찬하려면 끝도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이나 여자애들은 물론이고 남자애들도 다 좋아했죠.

- 그런데...?

- 근데 하나둘씩 현규를 피하는 애들이 생기더라고요. 티가 나게는 아니어서 그때

는 몰랐어요. 임현규 싫어하면 싫어하는 애가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테니까.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도 몇 명 되더라고.


- 이유는요?

-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피디님이 직접 만나보실래요? 제가 다리는 놔드릴게요.


그중 한 명이 바로 이정호 씨였던 것.

이정호 씨는 홍수명 피디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무덤덤해지며 되뇐다.


“제가 임현규 싫어하는 이유?”

“네... 아닌가요?”


“저는 임현규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겁니다. 이제는 뭐 볼 일이 없으니까 그말도 웃기지만.”

홍수명 피디의 질문에 이정호 씨는 굉장히 냉소적인 표정으로 돌변하며 답했다.


“그러면... 왜... 피하셨던 건지요?”

“피디님.”

“네?”

“지금 창우가 보낸 카톡 보니까는 절멱낚시 사건 하신다고요?”

“네 맞습니다.”


이정호 씨가 이상하다는 듯 홍수명 피디를 보며 또 묻는다.

“그런데 임현규 얘기를 저한테 왜 물어요?”


“아... 그건...”

이정호 씨의 직격탄에 홍수명 피디가 잠시 갈등한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정호 씨의 얘기를 끌어내자니 어느 정도는 얘기해야하는 상황.


그때 이정호 씨가 불편한 표정의 홍수명 피디를 살피며 묻는다.

“지금 혹시 몰카 찍으세요?”

“아뇨. 아닙니다.”

홍수명 피디가 단호하게 답한다.


그러자 이정호 씨가 딜을 건다.

“제가 솔직하게 다 말하면, 피디님도 솔직하게 다 말하실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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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남지용 선생과 신재철 교수 +1 25.05.11 50 7 13쪽
79 절멱고 관사 화재사건 +3 25.05.10 56 5 14쪽
78 낡은 휴대전화 +3 25.05.09 55 8 13쪽
77 기자회견 +4 25.05.08 59 7 14쪽
76 2번 회의실(2) +6 25.05.07 63 9 13쪽
75 2번 회의실(1) +4 25.05.06 55 9 13쪽
74 잠든 홍수명 피디 +3 25.05.05 59 8 12쪽
73 귓바퀴 패턴 +5 25.05.04 60 9 13쪽
72 운전하는 왼손잡이 +3 25.05.03 64 8 13쪽
71 그 사진 +4 25.05.02 66 11 12쪽
70 손재민 +2 25.05.01 62 10 13쪽
69 두 개의 진술 +8 25.04.30 68 9 13쪽
68 강인지 +6 25.04.29 65 7 12쪽
67 강인석 +6 25.04.28 63 4 13쪽
66 웅진산 폐가 25.04.27 64 7 12쪽
» 이정호와 안주애 +4 25.04.26 67 8 12쪽
64 새로운 제보자 25.04.25 65 8 12쪽
63 목격자 오창우 +4 25.04.24 77 8 13쪽
62 빈소없는 죽음 +4 25.04.23 72 5 13쪽
61 박영문과 세 여인 +8 25.04.22 79 8 13쪽
60 민영일과 박영문(2) +1 25.04.21 75 7 13쪽
59 민영일과 박영문(1) +1 25.04.20 66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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