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왕자 7

왕궁을 나온 우리들은 일단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우와, 여기가 너네 가게구나. 생각보다 되게 넓네."
아까는 가게 문이 잠겨 있어서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했을 거다.
가게에 처음 와 본 서포터는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가게 입구에 임시 휴업이라 써진 판을 내걸고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만 돌아다니고 와서 앉아 봐."
나는 먼저 앞 테이블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하나 둘씩, 마지막으로 돌아다니던 서포터까지 네 명이서 같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전 회의를 시작하자고."
회의 주제는 우선 이 의뢰를 정말 받을지 어떨지다.
오는 길에 마법사와 잠깐 이야기해 본 결과 의견이 잘 모이지 않아 넷이서 다수결로 어떻게 할 지 정하기로 했다.
"나는 반대야. 이건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의뢰보다 너네 목숨이 더 먼저야."
정보가 없다는 게 너무 컸다.
이건 내 추론인데, 신마는 아마도 이전 마왕을 이을 새로운 마왕, 그러니까 마족의 통수권자일 가능성이 크다.
신마가 나타난 시기를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마왕이 사라지고 모든 마가 사라진 건 그들이 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그들이 자신을 이끌어 줄 새로운 주인, 신마를 추대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의견이다.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대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만발의 준비를 갖춘 다음 우리들은 마왕에 도전했었다.
그런데도 마왕을 쓰러트리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만약 신마가 이전의 마왕보다,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만약 그보다 더 강하다면 우리들에게 승산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 이대로 바보처럼 멀뚱멀뚱 구경만 하자고?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신참 마족이 이전 마왕보다 강할 리 없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
"하지만, 가능성이 0은 아니지. 무엇보다도 마왕보다 약하다고 해서 우리보다 강하지 않을 거라고는 절대로 확신할 수 없어."
우린 그때와는 다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약해졌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내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는 너무 약해졌어. 지금의 나는 칼 한 자루도 없다고. 설마 부엌칼 들고 싸우라는 건 아니겠지?"
"흥, 실력만 녹슬은 줄 알았는데 마음가짐까지 무뎌져 버렸던 거야? 너, 실망이야."
회의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관계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금이 가고 있었다.
"너, 너무 그러지 마. 안 그래도 힘든 때인데, 우리들끼리 싸우면 더 힘들어질 거야."
"맞아. 이럴 때일수록 우리끼리 뭉쳐야지."
옆에서 보다 못한 전사와 서포터가 우리들을 말리고 들었다.
"너네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의견을 말해 봐. 너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대?"
덕분에 조금 진정한 마법사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와 둘의 의견을 물었다.
"나, 나는···"
전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용사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분명 이 가게도 소중하지만, 나 역시 모두를 잃고 싶지는 않아."
그녀는 끝까지 망설이는 듯하더니 끝내 내게 동조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동자가 남은 한 사람, 서포터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웃어 받아 넘기며 말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모르겠네. 나야 이 가게랑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중립이려나?"
"뭐야, 그게. 애매하잖아. 딱 한 쪽으로 정해줘."
"음······, 어렵네. 이 가게도 엄청 소중한 곳이라는 거잖아. 하지만 무턱대고 신마에게 덤비는 건 너무 위험하고."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생각이 난 듯 "그렇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요컨대 지금의 우리로는 신마에게 도전하기 어렵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인원을 더 모으는 거야."
나는 곧장 그녀의 의견에 반박했다.
"파티를 더 모으자는 거야? 하지만 이전 현역들이 대부분 은퇴한 마당에, 이제 와서 어디에서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자는 거야?"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생각해 보니까 나 도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도적이라는 말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뜻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그녀는 은신, 즉 숨어 다니는 게 특기인 사람이었다.
임무 중일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정체를 숨기고 다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어려웠다.
"나, 사실은 돌아다니면서 이전 동료들을 한 번씩 찾아가고 있었거든. 완전 우연이기는 한데 여기 오기 전에 도적을 멀리서 본 적이 있어. 거기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도적은 우리들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실력은 이전 파티 때부터 지켜봐 와서 잘 알고 있었다.
항상 필요할 때만 나타나고, 용무를 마치면 소리 소문 없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신출귀몰한 그녀를 끝까지 파티 멤버로 인정하고 함께 활동한 것은 오로지 그녀의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평소에는 만나기도 어려운 그녀와 함께 파티를 짤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도적이 합류한다면 해볼 만할 지도······."
특히 그녀는 첩보 활동에 능한 면도 있었다.
어둠 속에 숨어들어 정보를 모으는 게 우리 파티에서 그녀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그녀만 있다면 정보가 부족하다는 지금의 문제 상황도 해결할 수 있다.
"좋아. 도적이 파티에 합류한다면 나도 토벌에 찬성이야."
"뭐, 인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그건 나도 찬성. 그런데 찾는 게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 거잖아?"
마법사는 다시 서포터에게 물었다.
"도적을 봤다는 데,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
"음, 1주일 정도?"
"1주일이라···, 좋아. 그러면 이동 시간까지 포함해서 한 달 안에 못 찾으면 포기하는 걸로 해. 그때는 그냥 우리끼리 가는 걸로. 그 조건이라면 나도 만족할게."
아무래도 마법사는 토벌하러 가는 데 있어서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 조건에 나도 만족해야 하는 걸까?
"좋아. 없으면 나도 포기할게."
나는 그곳에 그녀가 있을 거라는 쪽에 걸기로 했다.
지금은 서포터의 말을,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네? 서포터 씨,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어?"
"응. 내가 앞장설게."
길을 잘 아는 서포터와, 앞장서서 무리를 수호해 줄 전사를 선두로 해서 우리들은 가게를 떠났다.
다시 모인 네 명의 우리들이, 새로운 용사 파티가 되어 떠나는 첫 번째 모험의 순간이었다.
수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교통이 좋다는 게 제일이지 않을까.
그 장점을 톡톡히 살리기 위해 우리들은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나저나 거기는 어떤 곳이야?"
방금까지 언쟁을 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놀러 가는 기분이 된 전사가 창밖을 바라보다 말고 서포터에게 물었다.
"음, 뭐랄까 굉장히 어둡고 칙칙한 곳이야!"
발랄하게 말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불쾌한 장소인 것처럼 들린다.
"되게 도적 씨 답네, 그지?"
"어? 어 어, 그렇네."
분명 맞는 말이기는 한데···, 도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기차를 타고 가는 건 그날 밤까지만이었다.
밤에는 숙소를 잡고, 하룻밤 잤다가 일어나서 어떤 때는 마차, 또 어떤 때는 다시 기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가는 동안 중간중간 식사는 가게에서 싸가지고 온 고기로 때웠다.
조금 남았다고는 해도 본판이 되는 고기가 워낙 큰 놈이었어서 그런지 다행히 네 명의 일주일 치 식량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이것도 계속 먹으니까 질리는 것 같기도···"
그런 문제가 조금은 있었지만, 없는 형편에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들은 드디어 일주일 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오면서 말했던 대로 칙칙하면서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마을이었다.
밤의 뒷골목 같은 느낌이랄까.
"도적을 만났던 건 우연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원래는 왜 여기에 오려고 했던 거야?"
"응? 별 이윤 없어.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 너네 가게로 찾아가는 길에."
이런 기분 나쁜 곳을 지나가다 들렀다고?
나였으면 왠지 돌아서 갔을 것 같은데.
서포터는 정말이지 대담하다고 해야 할 지 위기 감지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할 지 잘 알 수가 없다.
"뭐 해? 안 들어가고."
솔직히 지금도 딱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뒤에서 마법사가 재촉하는 바람에 일단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돼?"
"응. 그런데 길이 좀 어두워서 헷갈리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치 밤길처럼 주변이 어두워져서 제대로 모르고 오면 길 잃기 딱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왔던 곳을 되돌아갈 뿐인 우리들도 헷갈리는데, 처음인 애들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이리저리 헤맨 끝에 우리들은 변두리에 위치한 한 작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다 왔어. 여기가 내가 도적을 봤던 곳이야."
"상당히 안쪽까지 들어왔네. 나갈 때도 길 헤매겠는데."
"됐어. 빨리 데리고 나가자. 야, 도적! 거기 있으면 얼른 나와!"
마법사가 소리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야! 무시하냐?!"
재차 소리쳤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라? 잠시만. 뭔가 이상한데. 서포터 씨, 정말 이 집이 맞아?"
전사가 무엇을 이상하게 여기는 지는 나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응. 분명 여기가 맞는데······."
"그런데, 아무 인기척도 없는데?"
사람 소리는커녕 주위에는 새소리조차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전사가 앞장서서 오두막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
문을 활짝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 이건···"
도적은 분명 이 안에 있었어야 할 터.
그러나 방 안에는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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